[305호 사람과 상황] 경동물류 지게차 사망사건, 故 주선우 군 아버지 주재훈 씨

   
▲ 주선우 씨의 책상, 그리고 영정 사진 ⓒ복음과상황 이범진

경동물류 신입사원 고 주선우(27) 씨는 작년 11월 12일, 공채 입사 한 달 만에 지게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사무직이었으나 수하물집하장 지게차 운전자로 ‘동원’되었다가 현장에서 순직했다. 근로기준법 위반도 ‘불사한’ 회사의 ‘갑질’이 가져온 결과였다. 그러나 경동물류는 매우 조직적으로 이 사건을 은폐하고 왜곡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선우 씨의 아버지가 밤낮없이 사고의 진상을 파헤쳤고, 공중파를 비롯한 언론 몇 곳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딱 거기까지다. 경동물류는 여전히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실 규명에 도움을 받고자 경찰서에 찾아간 유가족은 경찰로부터 “경동에서 돈을 적게 줘서 여기 왔느냐”는 모욕적 언사를 들었다. 가해자들은 진실에 다가가려는 피해자를 모욕하고, 주도면밀한 방해공작을 펼치며 똘똘 뭉친다. 

데자뷔, 세월호 참사 이후 ‘계속되는’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선우 씨의 아버지 주재훈(58) 씨와 어머니 조미재(58)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월호 유족의 모습이 겹쳤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단지, 아들 선우 씨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 규명이다. 그래서 다시는 자기 아들처럼 어이없이 생명이 희생당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만드는 것, 그게 선우의 죽음 후에 자신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다. 

인터뷰는 2월 29일 서울 도봉구 방학동 소재 주재훈 씨 자택에서, 천정근 목사(자유인교회)가 진행했다. 천 목사는 그간 적극적으로 이 사고의 실상을 알리는 데 힘을 써왔다.

― 무슨 말로 인터뷰를 시작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다시 한 번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 누가 아닌 부모님에게 이런 일을 계속 다시 물어야 하고, 그 누가 아닌 부모님께서 이런 고통을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한다는 현실에 저부터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들 선우 씨가 부모님을 따라 필리핀으로 가서 대학을 졸업했다고 들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요?
제가 IMF 사태로 2001년 11월에 회사(대우그룹) 생활을 정리하고 필리핀 바기오에 있는 레인보우교회에 약 한 달 동안 머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주변 분들과 현지 선교사님의 권유로 그곳에서 어학원을 개원하고 필리핀에 정착하게 됐고요. 마침 둘째아들인 선우는 고등학교 졸업 후부터 필리핀에서 함께 생활했지요.

― 선우 씨는 어떤 아들이었나요?
선우는 처음엔 필리핀 생활을 싫어했어요. 필리핀 대학에 입학 안 하겠다고 버텼었지만 당시 필리핀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기로 저와 한 약속이 있어서 필리핀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했고요. 막상 입학 후엔 학교생활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선우가 다닌 대학은 거의 매월 시험을 보는데 그때마다 한국 학생들과 필리핀 학생들이 선우에게 수학을 가르쳐달라고 저희 집으로 모였어요. 그때부터 선우가 자신감을 가진 것 같아요. 팀으로 졸업논문 쓸 때도 팀장으로 논문 작성을 진행하면서 대학생활을 아주 열심히 했고요.

―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해왔네요.  
졸업 전 인턴과정 3개월을 마쳐야 하는 코스를 당시 영국계 비행기 부품 판매회사에서 했어요. 최고 평가를 받아 몇 개 필리핀 회사들로부터 입사 제안도 받았죠. 아들이 남긴 휴대전화, 카카오톡 대화로 제가 미처 몰랐던 아들 모습을 더 알아가요. 선우를 기억하는 이들의 추모 글을 보면서 아들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좋은 친구였는지도 보고요.

   
▲ 주재훈 씨 ⓒ복음과상황 이범진

― 해외 장기체류자로 병역 의무도 면제됐는데, 한국으로 홀로 들어와 자원입대 했더군요. 그래서 작년에 제대하면서 병무청장으로부터 명예증서도 받았더군요. 
아들은 대학 졸업 후에 약 1년간 합숙훈련을 하면서 미국프로골프협회 티칭 프로 자격을 땄어요. 거의 완벽한 성적이었어요. 자격 취득 후 골프 레슨을 뛰기도 했는데, 자기가 생각하는 미래가 아니라면서 뜻을 더 ‘높은 곳’에 둬야 한다며 한국에 돌아가 생활하기를 원했어요. 해외 장기체류자로 군면제자였는데, 부모 입장에서 말려도 봤지만 결국 본인 의지대로 2012년 3월 4일 자원입대 하고는 그에 따라 병무청장으로부터 명예증서를 받고 제대했습니다. 

― 이후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했을 텐데, 당시 한국생활은 어땠는지요.
2014년 12월 3일 제대하고 한 달간 한국에 머물면서 친구들 통해 취업 정보도 얻고, 나름 방향을 정한 뒤 자격증 관련 책들을 구입해서 12월 말엔 필리핀으로 들어왔어요. 2015년 3월 20일 다시 한국으로 나가기 전까지의 3개월이 우리 가족이 함께한 마지막 시간이 되었네요. 혼자 한국에 가면서 휴대전화는 당장 필요하니까 그 돈만 지원해달라고 하더라고요. 나머지 생활비는 편의점 알바로 벌었고요.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 공부도 자기가 벌어서 한 셈이죠. 공부하기엔 야간이 좋다면서 편의점 알바도 야간에 했어요. 노력한 결과인지, 4개월 만에 물류기사 자격증을 따더라고요.

―  선우 씨가 가족과 떨어져 홀로 한국생활을 하면서 신앙의 비중이 커진 것 같습니다. 선우 씨 페이스북 10월 18일 메인화면은 고린도후서 6장 10절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였지요. 
저희 가족의 신앙은 증조할머니(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 장로의 이모)부터 시작됐어요. 불 같은 열정은 아니었어도 생활 자체는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하려고 애썼습니다. 필리핀 학원에서도 영어예배가 힘겨운 분들을 위해 매주 화요일 한국 목사님을 초빙하여 학원 내에서 예배를 드리곤 했어요. 아들의 신앙도 그때 생활로 자리 잡은 것 같아요. 경동물류에서 한 달 동안 정말 힘든 근무를 하면서도 주일학교 교사 직분을 감당했어요. 자격증 시험 준비 기간에도 수련회 교사로 참석할 정도였고요. 알바 하면서 용돈이 부족할 때도 십일조를 빠뜨리지 않았어요. ‘청년 예배자’의 삶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생활하는 게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은데, 중간중간 전화 통화할 때는 항상 밝은 목소리와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저를 안심시켰지요. 교회 생활은 자세히는 몰랐는데, 아들 떠나고 나서 교회 청년들, 학생부 학생들의 진심 어린 애도 속에서 아들의 신앙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첫 월급 타고는 하나님께 감사로 드리고, 교회 청년들에게 커피 대접하고, 그다음 주 점심은 학생부, 저녁은 청년들과 약속을 했었더라고요.

어머니 : 선우는 경동물류 다니면서 밤새워 열네 시간 근무를 하고 들어와서도 샤워하자마자 바로 교회로 갔어요. 아들이 이렇게 되고 나니까…. ‘하나님 왜요? 왜 이러셨어요?’라는 질문이 마음에서 떠나질 않더라고요. 그런 중에도 하나님 뜻이 있으리라 믿지만 마음은 너무 아픕니다. 

   
▲ 선우 씨의 어머니 조미재 씨 ⓒ복음과상황 이범진


― 선우 씨가 경동물류 사무직 공채에 합격한 게 지난해 10월 12일, 사고일이 11월 12일입니다. 정확히 한 달만에 경동물류 김포물류집하장에서 지게차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사무직원이 왜 수하물집하장에서 지게차 운전을 한 건지, 이게 첫 번째 중요한 문제점 같습니다.
9월 30일 경동물류에서 합격통지를 받고 엄청 기뻐하면서 저한테 전화를 했어요. 11월 9일부터 출근이라면서 그때까지 시간제 알바를 알아봐야겠다고 하길래 저는 출근 전까지 그냥 쉬면서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엄마가 10월 3일 한국에 들어가니까 양복과 구두 등 출근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그동안 못 만나던 친구들도 만나라면서요. 그러다 10월 10일 토요일에 갑자기 ‘10월 12일 오후 3시에 김포로 출근하여 수습기간 2개월을 해야 된다’는 연락이 왔다는 거예요. 회사 사정에 따라 일정만 변경된 줄 알았는데 첫 출근에 밤샘 야간작업을 한다는 얘기에 ‘좀 너무하다’고만 생각했지요. 게다가 다음날 오전까지도 연락 없이 집에 오지 않아 너무 걱정됐죠. 애만 태우는데 오후 3시경에 아들 전화가 왔어요. 엄마가 걱정할까 봐 잠깐 전화했다면서요. 전날 저녁 5시부터 다음 날 정오까지 일하고, 잠깐 자고 다시 5시에 출근한다고 그랬어요. 심하다 싶었지만, 그저 회사가 그런가 보다 했죠.

그런데 아들 사건을 다룬 지난 1월 31일 MBC 〈시사매거진 2580〉 보도를 보니까, 당시 경동물류는 김포 물류센터 건설 이후 막 업무를 시작하면서 지게차 운전자 등 작업 인원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어려움이 생기니까 신입사원들을 수습이란 명목으로 본연의 업무와 전혀 무관한 지게차 운전과 물품 분류작업에 투입시켰던 거예요. 지게차 운전자들보다 신입사원들이 인건비가 싸니까 그랬겠죠.

― 지게차 운전 경험이 전무한 신입사원에게 하루 12∼16시간 지게차 운전을 시킨다는 게 납득이 안 가는데요. 
낮에도 12시간이 넘는 근무는 상당히 고된 일과입니다. 하물며 경동물류는 야간에 15시간 이상의 근무를 강요했을 뿐 아니라, 업무와도 무관하고 경험도 없는 지게차 운전을 형식적인 안전교육만 시키고는 현장에 투입했어요. ‘자동차운전면허만 있으면 지게차도 운전할 수 있다’ 생각했나본데 아주 위험한 발상이죠. 전문가들 의견으로는 소형 지게차나 대형 지게차나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라서 전문 기술을 익힌 후에나 작업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어머니 : 당시 아들 셔츠를 세탁하면 완전 연탄물이 나왔어요. 첫날 9명 출근했는데 다음 날로 두 명이 그만뒀다더라고요. 어렵게 취업했는데, 얼마나 힘들었으면 사표를 냈겠어요. 경동물류는 약간의 인건비를 아낀다고,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한 요즘의 세태를 이용한 겁니다. 항의하지 못할 신입사원들에게 위험한 작업을 강요한 거예요. 신입사원 대비 인건비가 비싼 기능직 요원들은 정시 퇴근시키고, 밀린 일들을 신입사원들에게 야간에 시킨 거죠.

― 아버님께서 나중에 밝혀내신, 그리고 여러 전문가 인터뷰에서 분석한 사고 상황은 정확히 어떤 것이었나요?
12월 8일 경동물류로부터 ‘경찰 조사와 노동청 조사 등을 근거로 아들의 과실이 50~70%로 판단되니 억울하면 경찰에 가서 재조사를 요청하라’는 내용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날 김포경찰서를 찾아가 사고 당시의 동영상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고요. 그런데 이때 보여준 동영상은 최초에 저에게 보여주었던 동영상이 아니기에 처음 보여주었던 동영상을 보자고 하니까 ‘사고 동영상은 이것 하나뿐이며 이전에도 이것을 보여주었다’ 거예요. 제가 계속해서 ‘내가 착각할 이유가 없다. 전에 본 것을 보여 달라’고 하니까, 사고 동영상은 이것 하나뿐 더 이상은 없다고 버티더라고요. ‘그럼 이 동영상이라도 복사를 하게 해달라’고 하니까 경찰은 줄 수 없다고 경동물류에 요청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경동물류에 동영상을 요청하고 형님이 확보하였다는 동영상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사고와 관련해 특별한 부분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12월 20일 밤에 갑자기 제 머릿속에 동영상 어느 부분을 살펴보라는 말씀이 들렸어요. 이렇게밖에 표현이…. 어쨌든 늦은 밤에 다시 동영상을 재생하며 그 부분을 관찰하기 시작했고, 거기서 사고 원인을 밝힐 수 있는 단서를 발견했습니다.  

   
▲ 지게차가 오작동하여, 주선우 씨가 차에서 뛰어내리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주재훈 제공)

― 사고 단서라면…?
‘영상1’에서는 아들이 지게차를 세우고 잠시 지나서 갑자기 지게차에서 급히 내리는 모습과 이어서 지게차가 우측으로 기울어지며 아래로 추락하는 모습만을 보았는데, ‘영상2’를 관찰하니 아들은 다른 지게차와 마찬가지로 지정된 장소에 정차했고 이후에 브레이크등이 켜져 있는 상태로 지게차가 앞으로 전진하다 추락하는 모습을 발견한 겁니다. 두 영상을 대비해 보니 아들이 지게차에서 급하게 탈출하려 했던 이유가 ‘지게차 오작동’임을 알게 됐죠. 사고는 아들의 과실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 이 사고가 최초로 보도된 SBS 8시 뉴스에는, 선우 씨가 지게차를 멈춰 세우고 차량 대기장 아래로 내려와 작업을 하던 중 위에 세워두었던 지게차가 작동돼 사고가 난 것으로, 그러니까 내릴 때 지게차의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우지 않아 일어난 사고라는 식으로 나왔습니다. 아마 회사에서 설명한 걸 그대로 옮긴 거겠지만, 경찰도 같은 인터뷰를 하더라고요. 아버님이 확인한 CCTV 영상을 확인하고도 말이지요. 
가족 중 사고 현장에 처음으로 도착한 건 제 형님인데요. 사고 후 1시간 정도 경과 후였습니다. 그것도 회사가 아닌 아들의 입사동기로부터 개인적인 연락을 받고서요. 즉시 현장으로 달려가 확인하니 사고현장은 이미 ‘정리’ 되어 있었고요. 형님은 동종의 지게차를 같은 장소에 올려놓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어보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어도 지게차는 움직이지 않았고 사람이 밀어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때 다른 경동물류 직원이 와서 사진을 보여주며 최초의 사고 현장 사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사고현장에 있던 트럭을 찾으니까 200여 미터 떨어진 곳으로 데려가 보여 주더랍니다. 주변을 보니 천정과 경계 담장에 CCTV 카메라가 촘촘히 설치되어 있길래 확인시켜 달라고 요구하니 상황실로 데려가 모든 모니터가 꺼져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CCTV 연결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하나도 작동하지 않았다’라고 했고요. 경찰은 결정적 증거물인 지게차는 수사하지도 않았어요. 처음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했다더니만, 알고 보니 피의자인 경동물류 지하실에 보관되어 있더라고요. 결함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미 손 봤겠죠.

― 물류창고 현장은 도난 등의 이유로 CCTV로 철저히 관리되고 있었을 텐데요.
형님도 문제를 제기할 경황이 없었던 거지요. 직원들에게 ‘경찰에는 연락을 했느냐’ 묻자 회사관계자가 형님 주변에서 계속 서성이던 사람을 가리키면서 경찰이라고 알려주었답니다. 그때 경찰은 즉시 자리를 피했습니다. 경동물류에서 빨리 시신을 옮기자고 해 가까운 일산 백병원으로 옮기자고 제의하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원 의사가 사망 시기를 ‘이송 중 사망’으로 표기하고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고 해요. ‘현장에서 사망인데 왜 엉터리 검안서를 작성하느냐’며 항의하고 서명을 거절하니까 ‘현장에서 경찰이나 119대원이 확인하지 않으면 이렇게 검안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형님이 경찰이 같이 와서 확인했다고 하니까, 의사는 경찰 측에서 그런 말을 못 들었다고 하고요. 물론 그때 경찰은 주위에 없었습니다. 형님이 속상한 마음에 잠시 숨을 돌리고 있을 때 경동물류 인사과의 이기성 대리가 동영상을 하나 찾았다며 경찰을 찾는 모습을 보고, 그와 같이 다니면서 경찰을 만났을 때 본인에게도 복사해 달라고 요구하여 입수하게 됐어요. 사고 현장사진도 그때 전송받을 수 있었고요. 그런데 12월 9일 제가 김포경찰서에 가서 그날 입수한 동영상을 보여주니 경찰 측에서 처음 보는 동영상이라며 의아해하더라고요. 후에 알고 보니 경찰에서는 이 동영상을 확보하고서도 저에겐 숨긴 거였습니다.

― 결정적인 증거(영상)가 있음에도 초기 수사 결과가 바뀌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얼마 전 김포경찰서에 가서 정보공개를 요청하며 수사 기록을 보고자 했지만, ‘형법 268조로 검찰에 기소하였다’는 내용만 기재된 서류를 발급해주더군요. 마침 메리츠화재에서 수사 관련 서류 사본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저에게도 복사본을 보내줄 것을 요청하여 우편으로 받아보았습니다. 경찰 초기 수사를 보면 처음 SBS, MBC 등에 보도된 바와 같은 내용(내릴 때 지게차의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우지 않아 일어난 사고)으로 수사를 진행했고, 목격자 진술서도 전부 그와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아들이 하치장 아래에 내려와서 다른 곳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사이 지게차가 추락하며 덮치는 모습을 보았다고 천연스럽게 진술했더라고요. 이 목격자들은 경동물류에서 섭외해서 보낸 사람들 같아요. 회사 과실을 은폐하고자 처음부터 모든 걸 조작한 거죠. 동영상을 확보하고 있었으니까 경찰은 이런 목격자 진술이 허위임을 알았을 텐데도 엉터리 진술 그대로, 수사결과를 경동물류에 유리하게 결론 냈습니다. 

다른 물류회사는 CCTV 작동이 중단되면 작업도 중단된다고 하는데, 유독 경동물류만 CCTV 설치가 완료되지 않았는데도 한 달 넘게 방치하고 있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없어요. MBC 기자가 취재했을 때는 또 말이 바뀌더라고요. 500여 대 중 3분의 1이 가동되었는데 오직 사고 현장 CCTV만 가동되지 않았다고요. 그런데 김포경찰서는 물류회사의 특성을 몰랐는지 혹은 알고도 모르는 체했는지, 경동물류 말만 듣고 녹화자료 등은 확인도 하지 않고 수사를 진행했지요. 경동물류를 대변하여 저에게 ‘CCTV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친절히 설명을 덧붙였고요. 그러면서 나중에야 CCTV 영상이라고 보여주는 것은 대체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어요. 여러 정황상 이런 은폐와 조작은 경동물류만의 범죄가 아니에요. 경찰측과의 공모라고 봅니다. 

― 그런 조직적인 은폐와 조작, 공모가 사실이라면, 진실 규명이 쉽지 않을 텐데요.
저도 건설회사에서 25년여 근무하는 동안 비슷한 사고도 경험해봐서, 장례를 미루고 회사와 합의를 시도하는 게 유리하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당사자가 되고 보니 (아들 죽음을 그저 단순 사고로 알았을 때조차) 그런 생각을 할 순 없었습니다. 아들 시신 앞에서 속물적인 행위를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경동물류에 요구한 건 하나였어요. 망자인 아들의 명예를 지켜달라는 거. 그러겠다는 경동물류 말만 믿고 아들의 장례를 치러 편히 하나님 품에 안기게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런데 장례 후 주위 분들이 염려한 것처럼 경동물류는 한 달 가까이 시간을 끌다가 비인륜적이고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했어요. 한 사람의 고귀한 생명을 죽여 놓고, 눈앞의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 모든 잘못을 고인에게 뒤집어씌우는 몰염치한 행위죠. 그리고 김포경찰서측 역시 경동물류의 비인간적 행태에 동조했고요. 제가 12월 김포경찰서를 찾아갔을 때 “경동에서 돈을 적게 줘서 여기에 왔느냐”며 저를 다그치기에 저는 “(명예로운 죽음이었음을 인정해 달라는) 우리 가족의 의견을 경동물류에 전했지만 모든 잘못을 아들에게 덮어씌우기에 진실을 알고 싶어서 왔다”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경찰이 “그럼 경동에서 돈을 적게 줘도 미안하다고 하면 받겠냐”며 저를 다그치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해주면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담당 경찰의 비아냥거리는 모습에 저는 심한 모멸감과 굴욕감을 겪었어요. 경찰서를 나오며 얼마나 울었는지요. 자식 잃은 슬픔에다가, 횡포 부리는 가진 자와 공권력의 결탁을 체험하면서 절망감에 세상이 원망스럽기만 했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죽은 아들에게 면목이 없어 죽고만 싶었습니다.

   
▲ 주선우 씨가 교회 청년들과 나누던 기도 제목

― 그렇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계속 포기하지 않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들의 사인에 대한 근거를 발견하고, 또한 경동물류에서 보낸 공문의 주체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아들의 국민연금공단 가입 기록을 확인해보게 되었거든요. 가입 확인서를 보니 아들 소속회사가 경동물류가 아닌 듣도 보도 못한 (주)합진운송하역이었어요. 게다가 아들이 사망한 다음 날인 11월 13일에서야 신고가 된 사실도 발견했고요. 저희 가족을 안심시키며 한 달 가까이 시간을 보내게 한 이유가 이렇게 모든 것을 조작하기 위함이었고, 이런 조작에 공권력의 공고한 결탁이 합쳐졌던 거죠. 그렇게 해서 당당하게 모든 잘못을 아들에게 전가했던 거예요.

상·하역 작업의 경우 경동물류 업무 범위가 아니에요. 직원이 관련 작업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도 산재보험 적용을 못 받지요. 즉, 경동물류는 직원들을 상·하역 작업에 투입해서는 안되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제 아들이 그 일을 하다가 사고가 발생하니까 이를 은폐하고자 아들이 다니는 회사를 상·하역 전문 하청회사로 바꾼 거죠. 엄연히 근로기준법 위반이었어요. 그것도 부족해서 과실의 책임까지 덮어씌우는 거죠. 돈 때문에 고귀한 생명을 희생시키고도 회개할 줄 모르고, 다시 희생자 유족의 가슴에 깊고 큰 상처를 주는 몰염치한 행위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자행하는 것은 일개 소속 직원의 행위가 아닌 회사가 지속적으로 행해온 관행인 것 같습니다. 최고경영자의 윤리관과 연결되어 있겠지요. 결국은 고용주의 탐욕이 우리 아들을 죽인 겁니다.

― 회사는 결국 주선우 씨 과실이 60%라고 ‘통보’를 했고, 그렇게 산정한 보상금액 1억 원을 일방적으로 법원에 공탁했습니다.
공탁을 했다는 건, 자신들은 유족들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는데도 유족이 계속 무리한 요구를 하므로 일방적으로 보상을 진행하겠다는 의사표현입니다. 그리고 경찰 수사를 종결시키려면 합의가 필요한데, 공탁이 이에 상응하는 절차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정당한 금액을 공탁하면 자기들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는 결과가 되니까 계속 아들의 과실을 주장하면서 사측 주장을 일관되게 표현하는 방식인 것이죠. 하지만 어차피 저는 그들이 10억 아니라 100억을 공탁했을지라도 절대 찾지 않을 거였어요. 그들은 불법행위의 주체인 경동물류가 아니라 합진운송하역 명의로 공탁을 걸었고, 어떠한 사과의 표현도 없었으니까요.

― 회사는 아드님의 사고 현장에 함께 있었던 동료 직원들도 급히 ‘격리 조치’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라도 사고의 진실을 위해 익명으로라도 도움을 준 사람이 있었던가요?  
진실을 폭로하는 내부고발자들이 고통 받는 모습을 언론을 통해 수없이 보아온 우리입니다. 앞서 말했듯 목격자 진술서를 보면 뻔한 거짓을 말하고들 있어요. 자신들의 현재 생활수준을 영위하기 위해서 회사 지시대로 했겠지요. 진실을 말할 때 돌아올 불이익을 걱정하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거짓 증거 하는 이가 똑똑한 사람인 세상이니까요. 저는 침묵하는 입사동기와 동료 회사원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들도 얼마나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겠어요. 겨우 입사한 회사인데,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없겠죠. 선우가 죽고 입사동기들에게 식사를 대접한 적이 있어요. 선우 형 덕분에 자기들이 이제 지게차 운전 안 하고 본사로 발령받을 수 있었다면서 고마워하더라고요.
침묵하는 자는 그래도 이해할 수 있으나 나서서 거짓으로 증거 하는 자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의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악이기 때문이죠. 

― 사고 이후 현재까지 혹여 회사측이나 경찰수사의 진척 사항이 조금이라도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가령 몽고간장이나 무학소주 같은 기업의 회장은 ‘갑질’ 문제가 불거졌을 때 여론에 고개를 숙이기라도 했었는데요.
기자들도 경동물류의 무대응에 대해 대단히 의아해들 하더라고요. 대기업 경우엔 회사 이미지에 민감해서 언론 보도 한 번에도 대국민 사과를 하고 개선을 약속하는 게 일반적인 흐름인데, 경동물류는 전혀 그러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어요. 모든 상식의 궤를 벗어나는 경동물류의 행태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저도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경찰수사 기록을 보니 알겠더군요. 경찰의 수사결과를 보고 앞으로 있을 법적 싸움에서 자신들이 유리할 거라 판단했겠죠. 대중의 비난이야, 일시적이잖아요. 적당히 시간 끌면서 제가 지치기를 기다리는 게 더 이익이라고 판단했겠지요. 부패한 경찰과의 결탁이 그들의 힘인 것 같아요. 우리 같은 힘없는 사람들이 기댈 곳이 공공기관인데, 오히려 힘 있는 저들과 결탁해서 우리를 짓밟네요.

   
▲ "이 사진이 아들의 성품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진인데, 영정사진으로 쓸 줄은 꿈에도 물랐네요." ⓒ복음과상황 이범진

― 최근 한국시민안전연구원 채수창 대표라는 분이 ‘주선우법’이라 명명한 ‘노동안전보건증진법’ 제정을 주장했습니다. 이 기사를 읽으며 그간 아버님 노력의 한 가지 결실을 맺는가 싶었습니다만. 
아들의 사고 이후 산업안전보건법과 근로기준법을 살펴보았습니다만, 법조문을 읽으면서 더욱 아들의 사고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무관리직원으로 뽑혀서 왜 지게차를 운전해야만 했을까요? 법만 따랐어도, 법이 정한 안전시설과 규칙들이 제대로 이행되고 점검되었다면 아들은 애초에 사고를 당하지도, 당연히 죽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이런 사고에 대한 소송의 어려움을 대신 할 ‘유족특별급여’ 조항이 있어 괴롭고 슬픔에 잠긴 유족을 보호해주는 줄 알았습니다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회사는 법 조항들을 지키지 않아도 경미한 벌금만 물면 되니까, 법이 정한 안전관리비용을 치르지 않는 게 나은 거지요. 벌금 내는 게 훨씬 싸니까요. ‘유족특별급여’는 회사 동의가 없으면 적용할 수 없는 명목상 조항일 뿐이고요. 이런 상황에서 누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겠어요?

사업주들은 탐욕스럽기만 하고, 법은 (사고당한 근로자와 유가족의 인권을) 우롱하고 인명을 경시하는 현실이 원망스럽습니다. 법을 어기는 사업주들에게 엄격한 처벌조항이 적용된다면 법을 지킬 수밖에 없겠지요. 이런 제 생각을 한국시민안전연구원 채수창 대표에게 말할 기회가 있었고, 그분이 제 생각에 공감하고는 정리해서 논리적으로 글을 올려주신 겁니다. (‘노동안전건강증진법’ 관련 내용은 채수창 개인블로그 http://blog.naver.com/cg5art에서 확인할 수 있다.-편집자)

― 저도 개인적으로 알리고 여론을 환기해보려고 했는데, 결과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교회는 물론이고, 기독교 사회운동단체의 관점에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거대담론이나 큰 이슈, 혹은 자신들의 활동을 알리는 데는 역량을 쏟으면서도 정작 한 사람, 한 가정의 아픔에는 헌신하려 하지 않는 것 같아서요. 이상한 현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의 저도 억울한 사연, 가슴 아픈 사건들을 보도를 통해 접하면 실감은 못하면서 다만 심정적으로 공분할 뿐이었어요. 소극적인 거죠. 대표적으로 세월호 참사가 그랬어요. 그런데 막상 제가 당사자가 되고 보니 이러한 소극적인 표현조차도 제게는 큰 용기가 되더군요. 작은 위로 한마디도 저에게는 큰 힘이 됐어요. 물론 영향력 있는 사회 명망가가 나서서 이러한 부조리를 질타하고 올바른 사회 정의를 부르짖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염원하기도 합니다만, 공염불이겠지요. 세상에는 소수의 가진 자와 다수의 갖지 못한 자들이 있습니다. 소수의 가진 자들은 이미 모든 것을 갖고 있어 더 필요한 것이 별로 없으니까 그들이 탐낼 만한 아주 새로운 것이 아니면 굳이 나설 이유가 없겠지요. 별 이득이 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우둔한 행동’을 그들은 하지 않습니다. 자기 이익이 침범당하는 경우면 다르겠지만요. 하지만 그들은 알아야 해요. 자신들의 그러한 행동이 사회를 점점 멍들게 하고 부조리를 키워나가는 원동력임을 말이죠. 그들도 언젠가는 결국 이런 뿌리 깊은 부조리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또한 소극적이지만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작은 목소리, 당장은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지만 진실을 말하고 이를 전파하는 이들이 결국에는 사회의 정의를 일구어나가는 주체입니다.

― 누군가 전화로 아드님의 안치소 위치를 물었다고 들었는데, 이런 게 희망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일을 접하고서 ‘부림절’의 전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령 (한기총이더라도) 유명하신 목사님들이 한마디씩 적극 동참해주어 여론을 환기시키고 진실을 알리고 회사를 공론의 장으로 불러내는 구체적인 사건 해결의 과정을 통해 기독교인으로서 연합됨의 승리를 경험하는 전례 말입니다. 이런 구체적인 선의 실천, 고통당하는 이들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 그것만이 공동체적 윤리를 지닌 인간, 특히 그리스도인이나 교회나 사회의 사명일 것 같습니다.
제 얕은 신앙으로 교회나 목사님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기독교의 근본정신은 사랑이잖아요.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너무 사랑하셨기에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셔서 모든 인간들의 죄를 구속하셨잖아요. 사랑은 세상을 화목하게 하고, 사랑은 모든 이를 부유하게 하고, 또한 이런 사랑에는 자기희생이 필요합니다. 자기희생 없이 사랑을 실천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남의 불행에 대해, 사회 부조리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자신이 희생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이지요. 사랑이 없는 사람은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아들의 참변 이후에 아들이 사용했던 어떠한 것도 버릴 수가 없었어요. 아들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아들의 점퍼를 입고, 아들이 사용했던 휴대전화를 제가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요. 요즘 누구나 이용하는 카카오톡, 페이스북도 아들 계정을 제가 사용하고요. 

가끔 아들 친구나 군대 동기들, 해외에 거주하는 친구들이 아들의 안치소를 물어오는 경우가 있었어요. 아들 지인이겠다 싶어 “혹시 군대친구?”냐며 물었죠. 그런데 그분의 답변이 저를 당황케 했습니다. “아닙니다. 다만 너무 안타까운 사연이기에 시간이 되면 한번 찾아가서 기도하고 위로해주고 싶었습니다”는 거였어요. 저는 너무 고마워서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고맙다고만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을 진실로 행하는 참된 기독교인들이 있음을 보았어요! 알려지지 않는, 보이지 않는 참된 신앙인들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의인을 구하시고자 혼탁하고 부패한 이 세상을 멸하지 않으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제가 살아가야 할 길이고 제 구원의 희망인 걸 알게 됐고요.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으니까 경동물류가 원수라면 용서하고 사랑하겠지만, 이건 분명히 세상에 대한 ‘불의’이기 때문에 싸울 가치가 있습니다. 

   
▲ ⓒ복음과상황 이범진

― 경동물류와 계속 싸운다는 건 매일 마주하고 싶지 않은, 아들을 잃은 깊은 슬픔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많이 힘드실 텐데요.
아내는 매일 울면서 새벽기도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왜 많은 사람이 사랑했던 아들을 이렇게 일찍 데려가셨나요?’ 그리고 저에게 말하더군요. 하나님께서 우리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심이 있을 거라고. 아마 경동물류와 같은 반사회적 기업을 응징하시려는 거고, 그래서 제도가 개선되어 우리와 같은 슬픈 가족이 계속 생기는 것을 방지하시고자 하는 거라고. 이렇게 응답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저희는 따를 겁니다. 반사회적 비인륜적 기업들이 이 사회에서 영원히 퇴출될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려 합니다.

이전엔 저는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보상으로 받은 돈으로 장학재단을 만들거나 기부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정확한 의도를 잘 모르고 그저 ‘좋은 일을 하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거든요. 이제는 이해합니다. 아들이 죽기 얼마 전 페이스북에 “사람이 영원히 죽는 때가 언제인가? 모든 사람들이 잊었을 때 그때가 영원히 죽는 때이다”라고 남겼더라고요. 만약 어느 누군가가 아들을 계속 기억한다면 아들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있을 거니까, 아들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돕는다면 그들은 아들을 영원히 기억해줄 거고 아들은 결코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겁니다. 저와 집사람은 이 결심에서 의견이 일치했어요. 저희는 하나님의 계시에 따른 실천을 할 뿐이에요. 아들의 희생을 안락한 삶을 위해 낭비할 수는 없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아들의 영원한 삶과 명예를 위해서 저희는 남은 생을 바치려고 해요. 이번 일이 해결돼도 저는 사회운동가로 나서려고요.

   
▲ ⓒ복음과상황 이범진

― 사회운동가요?
요즘 아들의 휴대전화를 갖고 다니면서 아들 삶을 따라다니고 있어요. 눈뜨면 제일 먼저 휴대전화에 말씀이 도착합니다. 아들이 매일 말씀이 도착하는 앱을 설치해 놓았거든요. 아들이 과거에 받아 읽었을 말씀을 다시 보며, ‘힘들 때 이 말씀 보며 힘냈겠구나’ 해요. 저도 말씀을 읽으며 처음엔 위로를 받았고 이제는 소명으로 받습니다. 바뀐 거죠.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 씨 이름도 갑자기 떠오르더라고요. 악한 세상이 그들을 노동문제 전문가가 되게 했듯, 저도 아들의 삶을 따라가며 한 뼘이라도 더 의로운 삶을 살아가고 싶어졌습니다. 제가 사회에서는 은퇴할 나이인데요, 우리 아들같이 피해당하는 노동자들이 없도록 활동하는 게 이제 제 사명이구나 싶어요. 물론 사회운동을 할 정도로 제가 적극적인 성격도 아니고, 대인관계도 넓진 않지만요. 30년 넘게 회계 파트에서만 일을 해왔기에 사회운동에 뛰어든다는 게 한편으로는 두렵죠. 그러면서도 따를 자신이 생기네요.

― 하루 속히 진상규명이 되어 정당한 재해 인정이 되고 합당한 예의와 예절로 고인을 예우하는 회사의 반성과 선례가 확립되기를, 또 ‘주선우법’이 제정되어 열악한 노동현장의 법적 제도적 미비점도 보완되기를 바랍니다. 계속 진실을 위해 싸우시는 심정에서 교회의 사명과 자각이 대단히 중대하게 요청될 것 같습니다만, 지면으로 이 기사를 읽게 될 복상 독자들에게, 동료 기독교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 아니에요. 사랑이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고요. 우리가 진정한 기독교인이라고 불릴 수 있게 불의에 행동으로 대항하고 선을 행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기를 하나님께 기원합니다.
 

※ 주재훈 씨가 개설한 ‘경동택배 피해자모임’(http://cafe.daum.net/kdexpress)에서 더 자세한 내용 확인 및 문의가 가능하다.

진행_천정근 목사(자유인 교회)
정리_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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