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호 커버스토리] 북한인권정보센터 부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윤여상 소장

   
▲ ⓒ복음과상황 이범진

지난 19대 국회에서 11년 만에 여·야 합의로 “북한인권법”이 제정되었다. 그동안 복음과상황은 ‘하나님 나라 운동의 정론지’가 되고자 우리 사회가 당면한 민감한 문제들을 다루고, 특별히 여러 통일운동에 주목해왔으나 ‘북한인권’ 분야만큼은 시원하게 다루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 북한인권 문제는 진보와 보수 간 ‘정쟁의 대상’이 아닌, 진지하게 살피고 참여해야 할 통일운동의 일환이다. 이에 20여 년 전부터 묵묵히 북한 내 인권 침해 사실을 기록해온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윤여상 소장을 만나 북한인권 문제 전반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 복상 독자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북한인권정보센터’는 북한에서 발생한 인권 피해 사건과 인물들을 조사해서 분석하고 데이터베이스 만들고 관련 자료들을 수집·보관하는 역할을 하기 위하여 2003년 사단법인으로 출범했습니다. 북한 안에서 조사하면 제일 좋은데 북한으로 못 들어가니까, 우선은 북한을 경험한 분들과 북한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인물을 만나서 수집합니다. 가령 북한이탈주민이 한국에 오면 국정원 조사 후 우리 NKDB가 전수조사를 합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북한 노동자, 탈북자를 조사합니다. 북한 방문자나 문헌자료들, 북한 내 법원 판결문이나 경찰 심문 조서, 영상자료, 북한인권 피해 관련 사건과 인물을 파악하는 가능한 모든 자료를 수집 파악하고 분석하여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있고요. 지금까지 사건은 5만8천 건, 인물은 3만1천 명 정도 수집한 상태입니다. 

고문이나 장기 구금, 인신매매 등을 경험한 인권피해자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그분들이 겪는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도외시하기 어려워서 그분들의 한국사회 적응 정착을 돕는 상담사와 사회복지사들이 또 한 팀을 이뤄 인권피해 상담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군포로들은 탈북자가 아니어서 하나원(통일부 산하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로 국정원조사를 마친 후 ‘보호’ 결정을 받은 북한이탈주민이 12주간 기초적응교육을 받는 기관)에서 교육받는 게 없기 때문에, 그분들의 사후 관리도 저희가 맡고 있습니다.

북한인권 관련 책자를 만들고(국제적인 신뢰성 확보를 위해 모든 자료는 국문과 영문으로 동시 출간함-편집자), 국내외에서 세미나 콘퍼런스 및 시민교육을 위한 아카데미도 엽니다. 북한인권감수성 증진을 위한 북한인권아카데미, 북한이탈주민 이해를 위한 상담심리 아카데미, 통일외교아카데미 등을 진행하고 있고, 서울에 있는 외교관들 대상으로 매달 북한인권에 대해서 영문브리핑을 하지요. 북한인권 피해조사 백서를 만들고 관리하는 건 정보센터 안에 있는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서 진행합니다.

― 많은 일을 하고 계시네요. 어떤 계기로 북한인권에 주목하게 되셨는지요?
특별한 계기는 딱히 없었고, 제가 대학 다닐 때가 사회 변혁이 일었던 80년대였고 사회운동이나 북한에 대한 관심이 많던 시기여서 나도 주로 북한에 대한 공부를 대학 시절에 했어요. 북한에 직접 가서 공부하고 싶었는데 그건 안 되니까 북한에서 탈출한 사람들을 접하며 그들을 통해서 공부하는 방법을 택했죠. 북한이탈주민의 사회적응에 관한 연구로 석사, 박사 논문을 썼습니다. 남북이 통일될 경우 북한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지, 그때 남북 갈등을 어떻게 준비하고 해결할지가 주 관심사였는데 북한에 갈 수 없으니까 이들을 만나서 제일 먼저 90년대에 논문을 썼어요. 북한이탈주민이 지금은 3만 명 정도지만 그때는 600명 정도밖에 되지 않을 때였죠. 어떤 분은 며칠을 만나며 같이 숙식하기도 했어요. 그때 그분들이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분들은 사용하지 않은 단어지만, 그 이야기는 결국은 ‘인권’에 대한 호소였어요. 북한에서 겪은 그 피눈물 나는, 한이 서린 인권 피해 이야기들을 누구도 귀담아들어 주지 않고 기록으로 남기지 않고 있다는 사실, 나중에라도 가해와 피해를 구분하여 사회정의를 구현해내려면 꼭 필요할 이 작업을 아무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자신이 말한 삶의 증언을 연구자가 남겨서 통일 이후 시시비비를 가려줄 거라 믿고 마음을 놓는 분도 있었어요.

다른 건 몰라도 북한에서 발생한 인권 피해를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우리 사회가 충분히 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서독 정부는 1961년부터 통일이 되기 30년 전부터 정부 차원에서 기록을 했습니다. 바로 그 작업을 90년대 후반부터 제가 개인적으로 해온 것입니다. 1999년 하나원이 문을 열자 거기서 조사하다가 더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2003년에 사단법인을 설립하고 지금까지 해오고 있어요.

   
▲ ⓒ복음과상황 이범진

― 북한인권정보센터에서 매해 발행하는 《북한인권백서》에 보면, 사건만 5만 건이 넘고, 관련 인물만 3만1천 명이 넘는 방대한 자료(기록)입니다. 그런데 머리말에 보면 아직도 미분석 자료(사건 4천 명 정도 남아 있음)가 있다고 하니 안타깝습니다. 자료의 양이 많은데도 더 맘껏 분석하고 공개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요.
2007년부터 《북한인권백서》를 펴냈으니까 올해 나오는 백서가 벌써 열 번째입니다. 저희들의 활동 역량이 제한되어 있어서 모든 역량을 우선적으로 ‘자료 수집’에 두고 있어요. 한국에 들어오는 사람들에 대한 전수조사가 1차인데 인간의 기억에 의존하는 조사기 때문에 입국 직후(국정원 제외하면 탈북자 전수 조사하는 유일한 기관) 조사하는 데 역량을 집중합니다. 조사 내용을 국제 표준 방식으로 분석하고 인물 파일 및 사건파일도 형성합니다.(데이터베이스의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를 위하여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인권피해 사례 기록 및 분석 프로그램인 HURIDOCS의 WinEvsys와 Martus를 준용하여 독자적으로 개발한 〈NKDB 통합 인권 DB〉를 사용함-편집자)

조사는 당장이 아니면 하기 어렵고, DB로 입력해야 하고, 그걸 활용해서 백서를 내거나 연구보고서까지 내는 데는 인력이 많이 부족해요. 지금보다 두세 배는 더 있어야 조사 직후 바로 분석할 수 있을 거예요. 인력이 부족하니 ‘조사’에 최우선 순위를 둘 수밖에 없어요. 제일 안타까운 게, 즉시즉시 발생하는 북한 상황을 우리가 가장 빠르게 접수할 수 있거든요. 이런 정보들을 잘 활용하면 좋은데 시스템을 갖춰 놓고도 일손이 부족해서 일이 밀리는 경우가 있어요.

― 인력 보강은 어렵나요?
인력 부족은 사실 재원의 부족 때문이고, 동시에 사회적 관심의 부족을 의미하는 거죠. 대북인도적지원 사업에 후원해달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나서지만 ‘북한인권’이라고 하면 저 멀리에서 그냥 “좋은 일 하신다”고 하거나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게 다수에요. 오히려 유엔(UN)이나 유럽연합(EU), 캐나다, 미국에서 관심을 더 보이고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우리 문제인데 사실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북한인권정보센터는 원칙적으로 정치, 종교, 재정으로부터 중립을 지키게 되어 있어요. 북한인권법 제정을 두고 여·야가 11년 동안 대립할 만큼 우리 사회는 북한 문제에 첨예한 대립이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의 메인 역할이 데이터 관리와 확보이다 보니 다른 단체들처럼 시위나 성명 같은 활동을 하지도 않고, 세미나와 콘퍼런스 개최나 자료 책자 발행을 위주로 합니다. 우리가 가진 자료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고 국제적 인식 확보가 중요하기에 그 원칙을 고수합니다. 그런데 이런 원칙으로는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 설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고 언론 노출 빈도도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에 떠든다고 그다지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우리 목표는 객관적 자료 확보이기 때문에 조용히 자료 수집에 중점을 두고 있는 거죠.

― 이제 북한인권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에 그 문제를 다루기 한결 수월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북한인권 개선 및 과거사 청산을 기대해도 될까요?
오랜 희망이 이루어졌어요. 기본적으로 북한인권을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제도화한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다만 핵심 내용이 북한인권재단을 세우고 북한인권 정보를 수집 기록하는 것이라서 기존의 민간단체와의 업무 중복성 문제가 있어요. 법령에 의하면 통일부에 북한인권기록센터를 설치하여 북한인권에 대해 조사하고 3개월에 한 번씩은 법무부에 설치될 북한인권기록보존소로 보내게 되어 있어요. 그간 정부가 직접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NKDB)가 그 일을 해왔었는데 이제 시대가 바뀌어 정부가 하겠다니까 하면 되는 건데, 정부가 직접 할 경우의 문제가 있어요. 법무부가 한다는 의미는 나중에 ‘형사처분’하겠다는 것이니 통일 후에나 가능한 일이죠. 국제사회에 정보를 제공하는 데 아무래도 제한도 있겠죠. 민간은 그런 측면에서 더 자율성이 높아요. 정부 기관은 아무래도 정권의 영향을 받게 되니 북한인권재단이나 기록보존소가 지속적으로 본래 기능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우려됩니다. 우리 민간단체의 활동을 정부가 제약하지 말고 민관이 상호공조하면서 보완적이고 협조적인 관계를 맺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하나원 조사도 우리가 계속하면 좋겠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 북한이탈주민들 전수조사의 주목적은 인권침해사실 조사겠지만, 일종의 빅데이터를 통해 어느 기관보다도 최근의 북한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어떤 상태인지를 빠르게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벌써 북한이탈주민이 3만 정도 들어왔고, 많은 분들이 통일은 이미 시작된 거 아니냐 말하기도 하는데요. 
요즘 보면, 사실 북한사회 변화가 우리 사회보다 더 빠르고 다이내믹해요. 그 변화를 따라가기가 힘들어요. 특히 의식과 사고 틀의 변화가 굉장히 빨라요. 개혁개방은 막혀 있지만 실제 주민들의 삶과 의식 변화는 폐쇄된 사회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내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이 그 변화의 핵심이죠. 배급제가 무너지고 사회체제가 붕괴되어 각자 스스로의 힘으로 생존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기 때문에, 돈이 되는 일, 나와 내 가족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자본주의 사회보다 더 철저합니다.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량도 증가하면서 눈을 뜨게 되고 한국 정보도 더 알게 되고요. 그들 삶의 방향은 남쪽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수준과 질의 차이는 있지만, 각자 자신의 삶을 지키며 살아야 하고 미래가 불안정한 것은 똑같아요. 원래 공산주의는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북한주민들이 자본주의사회가 갖는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과 어려움을 다 겪고 있다는 게 큰 변화입니다. 엄청난 변화죠.

   
▲ ⓒ복음과상황 이범진

― 북한이탈주민의 증언만으로는 북한사회 전반을 평가하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일부의 조사 결과로 북한사회 전체를 확대해석하진 않아요. 편향성이 있음을 전제하고 해석하는 거죠. 숫자가 100명, 200명이 아니고 연간 1천 명 이상 발생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증언은 검증됩니다. 이분들이 북한 시장물가를 다르게 얘기하진 않잖아요. 물론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의 양은 다를 수 있지만, 북한사회의 맥을 짚는 데는 문제가 없어요.

― 뉴스로 알려진 것만 해도, 중국 접경 지역의 거주민 상당수가 남한 가족과 통신을 하고 있고 북한이탈주민 상당수가 북한으로 송금을 하고 일부는 역으로 송금받기도 한다던데요. 남북한 가족의 해체와 재결합하는 과정에서 통일을 내다보며 짚어봐야 할 사례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북한이탈주민이 3만 명 가까이 들어왔고, 국군포로 80명, 납북자 9명이 돌아왔어요. 현재 남북관계가 꽉 막혀 있고 남북한 교류가 중단됐지만, 실제로 남북한 사람들의 교류는 한 번도 중단된 적은 없어요. 바로 이분들 때문이에요. 북한이탈주민의 약 80%가 북한의 가족들에게 송금을 해요. 돈만 보내는 게 아니고 한국의 소식, 정보, 안부를 전하죠. 서로 통화도 하고 카카오톡도 주고받아요.

대북지원 대북교류 중단은 정부 차원의 얘기고, 남북한 주민들 간 교류는 사실상 멈춘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앞으로도 이분들은 계속 교류할 거예요. 이보다 더한 ‘인도적 지원’이 어디 있나요? 가족한테 돈 보내고 ‘잘 받았다’는 답신도 받으니 100% 모니터링도 되고요. ‘작은 통일’은 이미 이루어진 거죠. 생활비, 약값, 생일축하 인사가 오갑니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북한의 부모님으로부터 생활비를 받아 쓰는 탈북학생들도 있어요. 국군포로, 납북자분들은 북한에 갔다가 다시 남한으로 온 건데… 통일하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 즉 가족의 재결합에 따른 상속권, 중혼, 가족관계 재형성 등 이런 법률문제들이 이미 발생했고 우리 법원에 판례가 다 있어요. 북한에 있는 자녀에게도 상속권을 인정합니다. 통일되면 발생하리라 했던 사건들이 이미 발생했으니 이분들로 인해 이미 작은 통일이 된 거예요.

― 그와 같은 ‘작은 통일’이 앞으로도 가속화될까요?
북한을 경험하고 오신 분들 중에는 남과 북 양쪽에 자식 있는 분들이 있어요. 탈북이란 것이 이런 ‘신(新) 이산가족’, ‘신(新) 실향민’을 만들어내요. 지금은 탈북하는 주된 이유가 가족의 재결합 때문이에요. 북한에 식량난이 해결되면 탈북이 줄어들 줄 알았지만, 지금은 배고픔이 없어도 가족의 재결합을 위해 더 많은 탈북자가 오고 있어요. 가족의 재결합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도 멈출 수도 없는 거예요.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작은 통일이 계속 가속화 되고 있는 거죠.

완전히 통일되거나, 그 전에 자유왕래가 실현되지 않으면 새로운 이산가족들이 겪는 고통은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 거주지 선택의 자유가 남북 헌법에 있기 때문에 살고 싶은 곳에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해요. 그럼 반(半)통일까지도 갈 수 있다고 봅니다. 동서독은 왕래를 허용했었고 반통일 상태에서 통일까지 간 거잖아요. 북한에도 삼성휴대폰이 많아요. 스마트폰을 개통해서 북한으로 보내서 전화도 하고 카카오톡도 하고 있어요. 탈북자가 워낙 많으니까 북한에서 감시를 강화할 뿐이지, 그 규모가 너무 커서 심한 처벌을 하기는 쉽지 않고요. 감시하는 사람도 그 송금액 중 얼마를 떼어 먹으면서 같이 사는 거예요.

북한주민들은 더 이상 국가가 자신들의 생계유지를 해주지 못한다는 걸 알아요. 부정부패가 더 심해지고 있어요. 당 간부들조차도 자식들을 생각하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사회주의사회에서 자본주의식 상속을 하는 이중적인 상황입니다.

― 북한의 인권침해 사례 중 상당수가 격리수용시설, 구금 시설에서 벌어진다고 하는데 북한인권에 대해서 얘기할 때 이런 사실들이 더 알려질 필요가 있지 않나요?
우리가 조사한 5만8천 사건 중 60%가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권에 대한 것이에요. 불법 체포, 불법 구금과 고문, 이런 사건들이 전체의 60%를 차지해요. 50% 이상이 구금시설에서 발생했고요. 우리나라는 유치장, 구치소, 교도소 이렇게 세 가지인데 북한은 정치범수용소, 교화소, 집결소, 교양소, 노동단련대, 인민보안서 구류장, 국가보위부도 시군구마다 구류장을 별도로 갖고 있죠. 합치면 700개 정도 있는데, 지도에 빨간 점으로 표시하면 북한 전체가 빨갛게 될 정도죠.

거기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사건이 전체의 50%를 넘는다는 말은 북한인권 개선은 구금시설을 바꾸지 않는 이상 절반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바꿔 말하면 구금시설만 바꿔도 북한인권 문제의 절반은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죠. 우리나라나 국제사회가 북한에 병원, 양로원, 고아원, 학교를 현대시설로 바꿔주고 지원하는 일은 했지만, 구금시설 현대화는 왜 안 해주는지 모르겠어요. 가장 열악하고 가장 피해가 심각한 곳에 물질을 보내는 게 지원이라면, 제일 상태가 심각한 구금시설을 현대화해주고 그곳에 약품과 식량을 보내주면 왜 안 되는 거죠? 구금시설에 있는 분들은 범죄자라서 도우면 안 되나요? 인권은 죄의 유무를 따지지 않습니다. 북한 당국이 구금시설을 국제표준에 맞게 운영하면 북한인권 문제의 절반이 해결될 수 있어요. 한국에서도 이미 교회에서 교도소 사역을 하고 있잖아요. 게다가 북한은 특히나 범죄자만 구금되는 게 아닌데, 그들에게 식량과 의약품을 제공해주고, 국제기준에 맞는 구금시설로 바꿔주면 얼마나 많은 인권문제가 개선되겠어요. 가장 낮은 곳을 우선한다면 우리의 관심과 기도는 그곳으로 먼저 향해야 해요. 가장 어려우니까요. 가장 고통받는 곳, 가장 낮은 곳으로 가는 게 신앙인의 자세 아닌가요?

― 그런데 북한인권 문제는 우리보다 UN 등 국제사회의 관심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국제사회는 어떤 노력을 해왔고 어떻게 개선되어 가고 있나요?
가장 중점적으로 관심 있게 다루고 노력한 곳은 지금까진 UN이고, UN을 움직인 건 EU와 미국, 캐나다 등입니다. 그런데 EU를 움직인 건 국제인권단체고 국제인권단체를 움직인 건 북한 상황의 팩트, 즉 실상입니다. 탈북자들과 북한인권단체가 협력해서 알린 북한 상황이 그들을 움직인 거죠. 한국 정부나 한국의 인권단체는 북한인권 개선에 앞장서지 않았어요. 정부는 남북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종교기관이나 시민단체들은 앞장서야 했는데 지금까진 그러지 않았죠. 오히려 외국의 시민단체가 나섰습니다. 이제 북한인권법이 제정되어 우리 정부는 나서겠지만, 주류 종교계나 시민단체들이 정부처럼 제도화된 역할을 하거나 앞장을 설까요? 과거와 큰 차이는 없을 거 같아요. 지금까진 외국인한테 맡겼으니까 이제 우리 시민단체, 종교기관이 앞장서서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 《북한인권백서》와 별도로 《북한종교자유백서》를 펴내고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에 대해 별권으로 내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종교박해에 관해 관심이 많아요. 북한선교, 북한복음화도 마찬가지고요. 신앙인들이 숭고하게 생각하는 게 순교잖아요. 그럼 적어도 북한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박해당하고 목숨까지 잃는 분들은 기억하고, 구제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조치를 해야 하는 건 신앙인의 기본적인 덕목 아닌가요? 인권침해 조사를 하다 보니 종교박해  관련 사례가 많았어요. 신앙인으로서 이걸 세세하게 조사해서 같이 공유하고 알리고 막아주기 위한 공동 노력을 해야겠다 생각해서 세밀하게 조사했어요.

《북한종교자유백서》를 내면 더 많은 사람들이 북한에서 종교자유 수준이 어떠한지, 종교박해사건과 박해자, 순교자 수를 알 수 있어요. 북한에서는 종교박해 관련 사건이 1,000건 이상 발생했고 매년 늘어나요. 현재 수집한 전체 인권침해 사례 중 처형 등 생명권 침해 사건이 약 6천 건으로 전체의 10%를 넘고 한 건에 여러 명의 사망자가 있는데 그중에 종교박해로 인한 처형자가 상당합니다.

   
▲ ⓒ복음과상황 이범진

― 《북한종교자유백서》를 접한 종교기관이나 시민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국문판과 영문판으로 동시 출간하면서 (한국 대형교회들이 북한선교에 대해 굉장한 열의가 있으니) 대박 날 줄 알았어요.(웃음) 우리 기관이 재정적으로 어려운 데 《북한종교자유백서》만 수만 권 팔리면 도움이 좀 되겠다 기대했죠. 국문, 영문 각 500권씩 만들어서 배포하고 언론 인터뷰도 하고 세미나도 했어요. 소위 대형교회와 선교단체들에도 몇 권씩 보냈는데 별 반응이 없었어요. 시중에서도 거의 안 팔렸고요. 큰 교회에서 그 책을 보내달라는 전화가 오긴 왔어요. 한국에서 제일 부자교회가 가난한 인권단체에게 공짜로 책을 보내달라고 하더군요! 절망했어요. 북한선교를 단지 통일이 되면 그때 북한 가서 포교하겠다는 미래형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나쁘게 말하면 작은 교파나 이단들이 통일을 교세 확장이나 교세 역전의 기회로 보고 엄청 열심히 하는 것처럼요. 지금 종교박해를 받는 순교자들을 돌아보지 않는 한국교회가 미래 선교를 준비하고 기도한다고요? 저는 정직하지 않다고 봐요. 진정성이 있다면 지금의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구제하고 그런 일이 더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죠.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미래에 무엇을 하겠다는 건 정직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해요. 다른 종교들도 마찬가지예요. 종교박해에 대해 왜 말을 못해요? 선교를 이야기하면서 선교하다 목숨 잃은 사람들을 위한 노력은 왜 하지 않죠?

방법론적 고민을 해서 북한에 대한 지원과 별개로 순서를 정하든지, 아니면 역할을 나누든지 해서라도 노력하면 좋겠어요. 뭔가 구조화된 틀에서 안주하려는 것은 곤란해요. 선교하겠다면서 선교하면서 목숨 잃는 일이 매년 천 건이 넘는데 아무런 언급도, 기억도 안 하면서 통일 후 교세 얘기하는 건 참 이해가 안 가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북한종교자유백서》는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많이 팔려요.

― 북한인권과 관련하여 지역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어느 위치에서든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것들은 얼마든지 있어요. 인권운동이든 연구든 정책이든 그 출발은 고통받는 사람의 호소에 귀 기울이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많은 북한 주민들이 호소하고 있고, 그 절규를 들으면 인간은 반드시 반응하게 되어 있어요. 물에 빠진 사람이 소리를 지르면 거기에 반드시 반응하게 되죠. 신고를 하거나 밧줄을 던지거나 뭔가 할 거잖아요. 가르쳐서가 아니고 생득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인권적 반응이고 이건 하나님이 주신 겁니다. 아무 조건도 안 따지고 사람으로 반응하는 인권적 반응이 북한인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는 거예요. 북한 사람들의 절규는 우리가 가장 잘 알아들을 수 있어요. 언어가 같잖아요.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운동’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인권단체에 ‘격려의 글’을 보내거나, 정책을 만들고 관련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에 전화를 한다거나 편지를 쓰는 등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인권단체에 1,000원이라도 후원할 수 있고, 관련 행사 때 참여할 수 있고, 자원봉사를 할 수도 있겠죠.

우리 사회는 레드콤플렉스나 이념대립 등 장애물이 있다 해도 신앙을 가진 청년은 그에 대한 굴레가 없는 거 아닌가요?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도 내주고 왼손 오른손 구분이 없는 게 기본 정신 아닌가요? 구조화된 틀에서 그래도 자유로운 게 청년이고요. 작은 교회라고 할 수 없는 건 아니죠. 물론 북한인권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배분해서 하면 됩니다. 영어 교사는 영어를, 수학 교사는 수학을 가르치듯 하면 되는데, 대북지원하는 쪽은 북한인권하는 팀한테 대북지원은 왜 안 하느냐 하고, 북한인권 쪽은 대북지원 쪽에 왜 인권 얘기는 안 하느냐 하는 게 안타까운 상황이죠. 방법을 고민하고 역할을 나눠서 하면 됩니다.

   
▲ ⓒ복음과상황 이범진

― 이 일을 오랫동안 해오셨는데요. 지속해온 원동력이 있나요?
‘그냥’ 하는 거예요. 이 일이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냥 하는 거죠. 북한인권이 해결되면 멈출 텐데 아직 해결이 안 됐으니까요. 도움이 필요하고 역할이 필요하니까 그냥 쭉 하는 거죠. 돈을 많이 벌고 싶었으면 다른 거 했겠지만, 이 역할 하다가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냥 하는 거예요. 숨 넘어갈 만큼 힘든 것도 아니고 그냥 하루 세끼 먹으면 되죠.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는 거 별로 없어요. 그랬으면 아마 못했을 거 같아요. 산을 오를 때 무심(無心)으로 올라야 덜 힘들 듯, 과정은 힘들지만 인권 개선, 통일 후 과거사(북한인권 침해) 청산이 목표니까 그거 달성하기 전에는 그냥 계속 가는 거지 다른 이유 없어요.

― 북녘 사람들의 호소와 절규가 지금도 계속 들려오니까 ‘그저’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인권단체 일처럼 비영리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하는 일이 가치 있고 의미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경우를 많이 보거든요. 
의미와 가치는 스스로가 아니고 하나님이 부여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의미 없는 일 좀 하면 어떤가요? 내 생에 대한 판단을 지금 시점에서 스스로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것저것 생각하고, 가치를 따지다 보면 당장 무엇을 할 수가 있겠어요?

― 끝으로, 복상 주독자층인 청장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나도 청년이던 시절이 있으니까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지금 청년의 장래가 너무 어둡고 불안하니까 그만큼 우리나라의 미래도 불안해요. 그걸 극복하고 해소할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로 정부는 북한을 얘기하고 있죠. 통일을 이루어서 시장을 개척하고 미래 개척하자고 하는데…, 그런데 청년 개개인이 사회 비전에 얼마나 부응할 수 있을까요? 더 큰 사회 흐름에서 자기 비전을 찾을 필요가 있어요. 자식들이 청년인데, 전 아무 걱정 안 해요. 솔직히 우리나라 청년들에 대해서도 걱정 잘 안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가 어렵다고 해도 생존을 위해 먹을 것, 잠잘 곳, 입을 것 걱정하는 사회는 아니잖아요. 아무리 어렵다 해도 적어도 90%는 먹고는 살잖아요. 그럼 걱정의 범위를 좀 내려놓고 눈을 돌려야 해요. 내가 사회를 다 걱정할 필요도 없고 모든 걸 해결할 것도 없어요. 신앙을 갖고, 사회적 지위가 높든 낮든 이 사회가 움직이는 흐름 속에서 함께 고민할 ‘한 자리’만 찾으면 됩니다. 청년들은 그걸 찾을 수 있어요. 꼭 한국에서만 찾을 필요도 없지요. 그런데 구조적인 틀에 너무 갇혀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어요. 걱정할 수밖에 없는 구조도 문제지만, 걱정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몸을 움직이면서 찾아야 해요. 매슬로가 얘기하는 욕구 단계 중 1단계(생리적 욕구)는 충족되어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몸을 움직이고 뛰어들어가서 일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센터에서 근무해도 밥은 먹을 수 있어요. 사회 곳곳에 더 팽창해야 하는 분야가 있어요. 젊은이들이 더 몸을 움직여서 그런 곳에 들어가야 합니다. 청년들이 지나치게 안정적으로 살 필요 없어요. 젊은 세대는 불안정한 거, 불투명한 걸 추구해서 그걸 안정적인 것으로 만들어내는 게 사명이지 않나요? 왜 혈기왕성한 때 안정을 추구해야 합니까?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곳으로 가서 실패도 하고 깨지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고 그런 게 젊음의 상징이지 않나요? 사실 우리는 모두 평생 젊은이여야 해요. 계속 젊은이로 살다가 하나님이 오라고 할 때 미련 없이 가면 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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