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호 무브먼트 투게더1] 2016 ‘한국공동체교회 한마당’ 무엇을 남겼나

   
▲ 2016 공지훈 연수회 참가자 단체 사진. (사진: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제공)

“친구들과 공동체를 시작하려 해요. 학사도 있고, 직장인도 있고, 공동체하우스에서 살아봤다는 친구도 있고요. 대학 때 경험하고 지나가는 추억이 아니라, 이후에도 공동체가 이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어요. 취업문제에 직면하면서 의지가 많이 깨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진로나 모든 게 불명확할 때 시작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요. 이번 연수회를 통해 여러 공동체들을 만나고, 잘 유지해가는 공동체 이야기들을 듣고서, 큰 힘이 되었어요. 각자의 결을 따라 공동체를 만드는 게 비현실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동체를 하면서 산이나 구석진 곳으로 갈 수도 있는데, 저는 도시에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비기독교인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공동체를 시작하고 싶어요.”
― 조준영(26세, 한국외대 4학년, IVF)

2016 공동체지도력훈련원(원장 최철호 목사·이하 ‘공지훈’) 연수회 ‘한국공동체교회 한마당’ 마지막 날 만난 청년 이야기였다. 여기서 처음 만나게 된 다른 선교단체 또래 학생들과 식당에 둘러앉아 기도한 뒤 밥을 뜨는 그에게, 이번 연수회에 참가한 소감을 물었더니, 이처럼 답했다. 사흘 전 이 자리에 모였던 이들이 이제 곳곳에서 펼쳐나갈 ‘공동체교회의 시작’이 기대된다. 자기를 넘어서 함께 사는 삶을 이루어갈 이들은, 언젠가 또 ‘도상에서’ 만날 것이다. 잠시 쉬면서 길을 물을지언정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곳이 우리가 돌아갈 ‘근원’이니까.

교회 ‘근원’ 찾아 전국에서 모여든, 공동체교회 한마당
‘한국공동체교회 한마당’은 7월 4일~6일 2박3일 동안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근원으로 돌아가자!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공동체 삶’을 주제로 진행됐다. 하나님나라를 사는 삶이 무엇인가 질문을 품고 곳곳에서 찾아온 이들, 그리고 자기가 터한 자리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일구어온 이들이 한 데 모여, 나누고 공부하는 자리였다. 폭력적 자본질서 앞에 개체화 된 그리스도인들이 마음 둘 곳 없이 우울과 중독에 빠져들어도, 지금 한국교회가 세상을 향해 보여줄 대안이 있을까? 교회됨의 본질을 회복하고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고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삶이야말로 오늘 교회에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공지훈 연수회 둘째 날 ‘더불어 사는 삶을 시작하는 공동체교회 이야기마당’은, 오늘 교회들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줬다. 기존 교회 안에서 겪은 목회적 고뇌와 시행착오, 그리고 새로운 관계와 삶의 양식으로 살아내는 공동체교회를 이루어가는 여정이 진솔하게 나눠졌다. 그 가운데 강광원 목사(서울·포천 섬기는교회), 이예원 목사(원주 새동네교회) 박은희 자매(포항 사랑마을공동체)가 공동체교회를 시작하게 된 과정을 들어보자.

이예원 목사는, 신학을 공부할수록 성경과 교회의 괴리가 느껴져 목회를 그만둔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다가 교회는 종교활동을 하는 곳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신앙공동체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나’를 중심에 두지 않고, 하나님나라를 추구할 때 공동체가 형성된다는 믿음으로, 원주 한라대학교 후문쪽 작은 산 아래에서 새동네교회(새동네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어린이, 청소년, 어른이 함께 신앙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강광원 목사는, 기존 교회에서 전원 부지를 매입하고 도시와 전원 통합공동체 사역을 구상하던 중 공지훈에서 공부하며 깨닫게 된 것을 나누었다. ‘교회와 목회가 과연 조직 관리나 행정 운영만 잘하면 되는 것인가? 교회는 생명이고 몸 된 관계가 아닌가?’를 고민하게 되었고, 교회 본질과 공동체성은 별다른 사역과 외적 형태가 아니라 훨씬 근원에 있음을 발견했다고 한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교회 지체들과 서로 삶에 깊이 들어가 성령과 말씀의 원리대로 목양할 수 있는 몸 된 관계를 이루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포항 사랑마을공동체 박은희 자매는, 유장춘 교수(한동대학교)와 한동대 학생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여러 공동체를 방문하면서 많은 환대를 받았고, 감사한 마음이 커져 자신도 공동체를 시작한다면 섬기며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가족과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 시골에 땅을 사고 직접 힘을 합쳐 집을 지은 과정도 들려줬다.

이들을 포함해, 광주 그루터기공동체, 태백 예수원, 산청 민들레공동체, 합천 오두막공동체, 포천 사랑방공동체, 서울+홍천 아름다운마을공동체, 옥천 라파공동체, 대구 한결공동체, 목포 디아코니아자매회 등 여러 공동체들이 참가했다. △공동체 자녀 양육과 교육, △제자 훈련과 공동체지도력 양성, △중독 치유와 상담, 공동체 삶과 회복, △생태건축과 에너지, △생명농사와 생명밥상, △공동체 삶과 영성수련 등 다채로운 공동체 삶과 사역이 소개되었다. “마을공동체를 어떻게 시작할 수 있는지” “자본을 거슬러 부동산을 어떻게 공유할 수 있는지” “공동체 안에 갈등이 드러날 경우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전도와 선교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지” 등 구체적인 질문들이 이어졌고, 축적된 지혜와 삶의 자세가 전수되었다.

공동체를 새로이 시작하는 이들은 앞선 경험에서 배우고, 한몸살이로 살고 있는 이들은 공동체 개척 초기 영감을 돌아보기도 했다. 나와 다른 지역, 다른 배경에서, 부르심을 따라 믿음으로 모호함을 뚫고 공동체를 세워가는 서로의 삶에 자기 모습을 비춰보며, 자기 형편을 객관화할 수 있다고 고백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 된 공동체들의 확장된 사귐을 통해, 다양한 공동체들이 성령 안에서 일치와 연합이 이루어가는 걸 느낀다고 했다.

둘째 날 오후에는 이 시대 강도 만난 이웃, 밀양 송전탑 피해마을 주민 김영자 님과 세월호 피해학생 어머니 박은희 님을 모셔서 증언을 들었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참사와 국가폭력으로 갑작스런 고통 아래 살게 되었지만, 그 다음을 위해 또 다른 피해를 막아내고자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분들이었다. 사건 당사자로서 문제가 호도되지 않도록 예리하고 분명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증언해주셨다. 생명이 다른 생명과 어우러지는 평화가 깨어지고, 국가폭력으로 생명이 왜곡되는 우리 사회 현실을 마주하며, 폭력의 구조와 맞서 싸운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평화와 화해를 이루는 몫도 오늘 공동체들에 주어진 사명임을 확인했다.

‘한국적 신학운동과 영성’ 돌아보기
“칼 바르트 신학이 어떻게 해서 나온 줄 아십니까? 1차 대전 후 그동안 지배적이던 서구의 낙관론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면서 신학 작업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라인홀드 니버는 미국이 산업화로 인간이 기계의 노예가 되고 인간성이 말살되는 상황을 주목하면서 윤리신학을 만들었습니다. 신학은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한국기독교는 자기 신학이 없어요. 수입 신학, 번역 신학뿐이에요. 수입 신학, 번역 신학 가지고 우리 문제를 풀어갈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지금 한국 신학교들에는 학문의 자유와 신학화 작업이 제대로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학문이란 건 ‘물음’에서 출발합니다. 우리 상황을 객관화하고 우리 고민과 문제의식을 체계화하는 게 신학입니다. 한국적 상황에 맞는 우리 신학을 세워가야 합니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숙명여대 명예교수)이 첫째 날 기조강연에서 한국 신학 현실에 대해 따끔한 충고를 했다. 이 땅에서 신학적 토대를 찾고 우리 신학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조선적 기독교’ 수립 운동의 계보를 정리해서 풀어냈고, 최중진, 김장호, 이만집, 이용도, 최태용, 김교신과 <성서조선> 모임, 이현필, 유영모 등의 등장, 토착화 신학과 민중신학을 한국적 신학운동과 영성의 주요한 흐름으로 거론했다.

한국교회가 계승해가야 할 ‘한국기독교의 창조적 사상운동과 영성’으로, 특히 이현필 선생의 창조적 신앙과 영성, 그리고 유영모 선생의 창조적 사상운동과 영성을 조명해보았다. 먼저, 다석 유영모 선생(1890~1981)은 망국의 아픔과 사대주의 지식문화 속에서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사상운동을 펼쳐갔다.

이정배 교수(감신대학교)는 유영모 선생의 호인 ‘다석’(多夕; 많은 저녁)이 지니는 동양적 함의를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지금껏 서구 기독교는 빛을 선호했고, 그와 동일시되었습니다. 서구 기독교에서 빛은 언제든 악을 이기고 어둠을 극복하는 선의 상징이었습니다. 빛은 인간의 의식과도 같습니다. 의식으로 인해 선악 분별이 가능해집니다. 그런데 다석은 자신의 호를 통해 오히려 이런 빛을 끄라고 말합니다. 빛 곧 의식 때문에 더 큰 세계(영성)을 보지 못하고 자신 속에 갇혀버린다는 것입니다. 빛이 꺼지면 빛 때문에 못 보던 밤하늘을 볼 수 있고 우주의 근원이 드러납니다. 다석은 하나님을 ‘없이 계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진짜 비어 있을 때 신비한 것이 가득 차 있습니다. 더 근원적인 것을 만나려면 빛과 의식을 버리라는 것이 동양적인 기독교입니다.”

이현필 선생(1913~1964)은, 유영모 선생과 생각이 굉장히 달랐지만, 서로 존중하고 깊게 교류한 분이다. 전쟁 참화로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이들과 함께 동광원이라는 수도공동체를 일구며 살았다. 김영락 목사(홍천 하늘길수도원)은, 이현필 선생이 평생 자기 부인과 무소유로 철저한 십자가 신앙을 실천한 점을 강조했다. “예수님 앞에 온전히 자기를 드리고 예수님과 하나 되고 싶어하셨습니다. 십자가 삶을 온 몸으로 사셨기에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크지요. 지금은 풍요롭고 급변하는 시대이지만, 십자가 없는 예수, 십자가 없는 교회, 이건 아닙니다. 십자가 신앙이 (우리가 돌아가야 할) 근원입니다”

이정배 교수는 “기독교 역사에서 예수에 대한 믿음만 강조되느라, 상대적으로 예수가 품었던 하나님나라를 직접 생각하지는 못했다. 이제는 예수의 하나님나라에 대한 믿음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2천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 불필요하게 억압 받아온 신비주의 전통을 공평하게 이해하며 동양적 종교개혁을 꿈꿔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아는 만큼 행하며 온 몸으로 깨닫는 것, 그분을 따라 길을 걷다가 우리 스스로 길이 되는 것, 우리 일상에서 하나님나라를 사는 것이, 이현필, 유영모 선생이 한국교회에 물려준 소중한 가르침인 듯하다.

‘제자 훈련과 공동체 지도력 양성’을 위하여
둘째 날 저녁에는 공지훈 심화과정(어진이들) 훈련생들이 공동연구 결과물을 발표했다. △4세기 사막수도자들의 생활영성, △12~13세기 프란체스코회와 탁발수도운동, △16세기 철저한 종교개혁의 역사와 삶, △17~18세기 경건주의운동 등 교회사에 등장했던 교회 개혁과 신앙 회복의 움직임들을 살펴보았다. 교회들이 세속 권력과 부를 흠모하여 변질될 때마다 복음으로 제자도를 구현하며 큰 울림을 줬던 초기의 영감과 문제의식이었다.

제자도를 구현하는 곳에는 자연히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가 세워졌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곧 성령사건으로 생성되는 새로운 몸 된 관계 속에 더불어 사는 생명으로 사는 것이다. ‘제자 훈련과 공동체 지도력 양성’을 주제로 강연한 최철호 목사(아름다운마을공동체)는, 제자도를 구현하는 현장은 삶의 문제라고 했다. “먹고, 입고, 자고, 즐기는 일상생활, 결혼·임신·출산·육아·소비·교육 등 지극히 일상적인 지점에서 세상 정사와 권세, 시대우상에 지배당하지 않고 하나님 주권을 고백하고 구별된 삶을 생성하는 것이 제자도”라는 것이다.

공지훈은 하나님나라, 공동체, 생활영성(제자도)을 중심 주제로 하여, 공동체 성서읽기, 문명론, 교회사, 신학, 철학 등을 통전적으로 공부한다. 지난 11년간 다양한 생활과 사역 현장에서 철저한 제자도를 구현하는 신앙공동체를 만들어지도록 돕고, 신학생/목회자 뿐 아니라 다양한 평신도지도력을 함께 키워가는 사역을 해왔다. 공지훈 정규과정, 심화과정(어진이들/고운이들), 목회동지회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심화과정 훈련생들은, 관심 있는 다양한 주제를 설정해서 자기 삶과 연관 지어 연구발표를 한다. 목회동지회 과정은 목회자·신학생들을 공동체 개척지도력으로 훈련하고 연대한다.

초기 한국교회사에서, 사경회가 열릴 때면, 전라도에서, 충청도에서 보따리 짐을 싸들고 몇날 며칠 걸어서 듣고 돌아갔던 이 땅의 민중이 있었기에 한국교회가 놀랍게 성장하고 부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번 연수회에는 전국 각지에서 430여 명, 140여 공동체들이 신청하여 참가했다. 2박3일 동안 함께 기운을 나눈 이들은 그냥 모이고 헤어진 게 아니리라. 둘째 날 저녁 열린 ‘한국공동체교회 새로운 생태계를 위한 간담회’에 자리한 공동체교회들은 앞으로 연합하여 한국공동체교회운동을 해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신앙의 근원에 철저히 서는 것,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공동체 삶은, 더 이상 실현 불가능한 이상으로 치부될 수 없기 때문이다. 

 

2017 한국공동체교회 한마당 잔치 관련 문의


최소란
우리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여러 이웃들 이야기를 찾고 전하는 글쟁이. 달마다 <아름다운 마을>을 펴내며, 하나님나라 삶의 가치를 사람 사는 일상의 고백에 담아 이웃들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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