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완상 전 부총리, 사드와 한반도 정세, 그리고 한국교회에 대해 말하다

   
▲ ⓒ복음과상황 이범진

전 지구적 테러 위협, 전 세계 난민들의 아우성, 브렉시트와 국가주의 회귀 경향,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교수는 오늘날의 세계적 상황을 일컬어 “21세기적 혼돈”이라 했다. 21세기적 혼돈이 한반도 바깥의 이웃집 불구경은 아닌 듯싶다.

오늘 이 시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가 처한 당대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이 상황 가운데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폭염이 기승하던 7월말, 무거운 질문들을 품고서 이 시대 기독지성이자 어른인 한완상 장로(80·새길교회)의 자택을 찾았다. 일평생 “사회 의사”의 소명을 품고 살아온 한 장로는 빼곡이 메모하며 준비한 답변지를 앞에 놓고 근현대사와 당대 현실을 넘나들며 우리 사회를 향한 곡진한 마음을 담은 열변을 쏟아냈고, (정치사회학 특강에 가까운) 인터뷰는 두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끝이 났다. 한완상 장로는 서울대 사회학과와 미국 에모리대 정치사회학을 공부했으며, 서울대 교수와 문민정부 초대 부총리겸 통일원 장관, 김대중 정부 부총리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지냈다.

― 정부의 갑작스런 사드 배치 결정으로 오늘날 전 세계적 격동의 한복판으로 우리나라가 빨려들어가는 듯합니다. 한국이 처한 현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좀 더 종합적, 동태적으로 파악하려면, 지난 110년 간의 역사를 훑어야 합니다. 현재 우리가 목격하는 세계 정세의 위험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서쪽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간 갈등이 결국 브렉시트(Brexit)로 터져 나오는 것이고, 우리에겐 아시아의 대륙세력인 중국과 해양세력인 미·일 간의 충돌이 성주의 사드(THAAD: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인해 더욱 격화될 위험이 보입니다. 세계적으로 다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부딪히는 이 시기에 격발의 방아쇠를 우리가 당기는 듯하여 저는 몹시 두렵습니다.

― 사드 배치 문제를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충돌’이라는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말씀인지요?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서세동점(西勢東漸·서양 세력이 동양을 점유)의 서구 제국주의 물결이 110여 년 전 한반도 가까이 밀려왔을 때 조선은 식민지로 떨어집니다. 청일전쟁(1894~1895)도 10년 후의 러일전쟁(1904~1905)도 모두 해양세력인 일본과 두 대륙세력인 중국(청나라), 러시아가 각각 벌였던 전쟁이었으며, 결과는 대륙세력의 패배였습니다. 한반도는 대륙에 붙어 있다가 해양에 먹혔지요.
1910년 한일 병탄을 당할 때 일본 뒤에는 미국이라는 더 큰 해양세력이 있었는데,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910년 대한제국의 국권 피탈 당시 같은 해양 세력으로서 일본과 미국은 서로 밀약(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고서 미국은 일본이 한반도를 집어삼키는 걸 묵인합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게 되면 요즈음의 사드 배치 사태가 더욱 저를 불편하게 합니다. 미·일이 동맹세력으로 중국 대륙을 포위, 봉쇄하려 하기 때문이지요.

로마가 힘을 지녔을 땐 지중해를 지배했고, 대서양으로 힘이 기울었을 땐 스페인이 세계를 지배했지요. 그 다음엔 영국이 대영제국이 되어 100년간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20세기에 와서는 태평양을 지배한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게 됩니다. 20세기를 미국 주도의 태평양 지배 시기라고 할 만하지요. 이 20세기 초, 미국과 일본은 앞서 언급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미국이 필리핀을 집어삼키는 것과 일본이 한반도를 집어삼키는 것을 상호 묵인합니다.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가 된 건 그 맥락에서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일본이 대한제국을 병탄하고 나서 1941년에 태평양전쟁을 일으킵니다. 당시 태평양을 지배하는 미국에 도전한 거지요. 동남아시아 자원을 놓고 도전해서 겨루다가 원자폭탄을 두 발 맞고 참패합니다. 미국이 일본을 패퇴하는 과정에서 들어선 새로운 대륙패권세력이 바로 소련입니다. 이 거대한 세력이 연합군과 함께 히틀러를 물리친 후에 한반도에서 해양세력 미국과 심각하게 갈등합니다. 그 과정에서 한반도는 분단을 겪는데, 이 분단이 얼마나 타율적이고 억울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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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 분단이 대륙세력 소련과 해양세력 미국이라는 두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이뤄진 역사적 비극이라는 얘긴데,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한반도의 분단은 당시 미국이 새로운 주적(主敵)으로 부상하는 소련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38선이 그어지면서 일어난 비극입니다. 미국이 히틀러의 나치와 싸울 때 소련은 미국의 우방국이었습니다. 유라시아 대륙세력인 소련은 유럽 전선에서 나치 독일과 싸우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나라였어요. 전장에서 죽은 사망자 수로는 미·영·프 연합국을 합친 수보다 훨씬 많습니다. 당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아시아 태평양의 미-일 전쟁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당초 스탈린이 거절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자국민이 이미 너무 많이 죽었으니 태평양 전쟁에 미국측 연합군으로 참가할 수 없다고 한 거지요.

그랬는데 1945년 4월에 루즈벨트 사후 트루먼 부통령이 대통령이 되고, 태평양 전쟁은 더 격화되면서 끝날 날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해 5월에 나치가 항복을 하고 미국이 전승국이 됩니다. 당시 트루먼 대통령은 전임자였던 루즈벨트와 달리 스탈린을 믿지 않았기에 그에게 도와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7월 중순에 저 유명한 포츠담회담을 7월 중순에서 8월 초까지 여는데, 역사상 이례적으로 긴 정상회담이었지요. 이 회담에 트루먼이 참석하러 출발한 바로 그날에 미국은 뉴멕시코에서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합니다. 대량살상무기를 가졌으니 일본 항복은 시간 문제임을 확신한 트루먼은 굳이 스탈린에게 협조를 구할 필요가 더더욱 없게 된 셈이지요. 그렇다고 원폭 성공 사실을 스탈린에게 안 알릴 수는 없어서 신무기 개발에 성공했다고 살짝 흘렸는데 스탈린이 듣고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의심했던 거지요.

모스크바로 돌아간 스탈린이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10만 명이 한꺼번에 죽으니까 그제서야 트루먼의 말이 사실임을 깨닫고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기로 결정을 내립니다. 어차피 전쟁은 미국이 이길 테고 지금 참여하면 소련은 별다른 수고나 피해 없이 전승국의 지위를 얻게 되니까요. 8월 6일 소련이 태평양 전쟁 참전을 선포하고서 소-만(소련-만주) 국경 지대를 넘어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왔고, 8월 9일에는 일본 나가사키에서 원폭 투하로 7만 명이 사망하자 일본 관동군 사기가 떨어져서 소련이 더 빠른 속도로 남하하게 됩니다. 바로 이 무렵 미국 정부가 매우 당황합니다. 거리상 소련에서 더 가까운 일본 본토를 소련이 신속히 점령해버리면 미국이 그동안 전쟁에 쏟은 힘은 무위로 돌아가겠구나 하고 위기를 느낀 거지요. 그래서 소련의 남하를 신속하게 저지하려고 합니다. 당시 소련군의 남하를 저지하라는 명령을 받은 미군 장교(대령) 세 명이 있었는데, 본스필드와 딘 러스크(나중 국무장관 역임) 등이 그들입니다. 이들은 로즈 스칼라십(Rhodes Scholarship) 장학생으로 선발될 정도로 우수한 인재들이었지만, 한국 역사에는 무지했지요. 그러니 상황실 벽에 걸린 한반도 지도를 보면서 (자기들이 받은 지침에는 수도 서울을 소련이 장악하게 두면 안 되고 인천도 가급적이면 미군 관할로 하라고 하니까) 서울 바로 위에 보이는 38선을 저지선으로 결정한 겁니다.

― 한 민족의 분단선이 그렇게 졸속으로 결정되었다는 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요.
일설에는 38선을 찾는 데 20분 정도 걸렸다는 얘기도 있고, 5초밖에 안 걸렸다는 주장도 있는데, 걸린 시간이 얼마였든 우리 민족이 뿌리를 이어온 한반도 조국의 분단 비극이 그들의 전혀 사려 깊지 못한 판단으로 허무하게 결정되고 말았습니다. 초중고등학교에서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안 가르치니 정작 우리 민족은 억울한 분단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살아갑니다. 러시아가 일본에 패한 게 1905년인데, 반세기가 지나지 않아 1945년에 초강대국이 되어 미국과 한반도에서 맞닥뜨리게 된 건데요. 어찌 보면 미국의 정책이 소련을 한반도에서의 대결로 초대한 셈입니다. 트루먼이 애초부터 소련의 태평양 전쟁 참여를 단호하게 막았다면 한반도는 분단되지 않았겠지요. 여러 역사 기록과 회고록 등을 살펴보면, 당시 미국의 처신이 사려 깊지 못한 졸렬한 속단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들의 졸렬한 속단이 우리 민족에게는 너무나 큰 역사적 트라우마를 안겨주었지요. 최근의 사드 배치 결정 역시 너무나 졸속(拙速)하기에 지난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 비탄적 성찰을 하게 됩니다. 이 점을 한국의 기독교 신자들이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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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미국이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대륙세력 소련과 해양세력 미국의 동북아 패권 다툼이 38선으로 가시화되었고, 마침내 수백만 생명이 살상된 한국전쟁의 비극으로 이어진 것이군요.
태평양 전쟁에서 승전국이 된 미국은 새로 등장한 대륙세력 소련을 동북아시아에서 견제하기 위해 전범국인 일본을 키워야 한다는 방침을 확정합니다. 해방 후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보면, 태평양 전쟁으로 자국 국민이 그렇게 많이 죽었는데도 오히려 그 전범국인 일본과 손을 잡고 소련 견제에 신경 쓴 나머지 한국을 경시하는 정책을 펴왔습니다. 1948년 한반도의 분단이 고착화(이승만 남한 단독정부 수립 한 달 후 김일성의 인민공화국 수립)되면서 민족은 갈라졌습니다. 한 달이 안 되는 사이 한 민족 두 국가가 등장하게 되는 거지요. 이로써 우리 민족은 결국 소련과 미국이라는 거대한 강대국의 대리전으로 이어져 비극의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 2년이 못 되어 1950년에 한국전쟁(6·25)이 일어나게 되니,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 뒤에 있는 대륙세력 소련을 더욱 더 견제해야 했습니다.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서둘러 시도한 새로운 국제규범이 바로 1951년에 나온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입니다. 목적은 철저한 소련 봉쇄와 견제입니다. 이를 위해 일본을 키워야 한다고 판단한 미국은 일본의 전쟁범죄 행위를 엄정히 따지지 않기로 합니다. 현재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가 당시 군수물자 조달에 관계한 각료였기에 사형 당할 죄목(A급 전범)인데도 오히려 사면을 받아 이후에 총리를 지내기까지 하지요. 바로 그 외손자가 군국주의화로 내달리면서 미국과 전략적 동맹을 맺고, 그 하부구조로 사드 배치를 통해 한국을 미국 위주의 체제에 끌어들이려 하니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좀 더 얘기하고 싶은 건, 미국이 초강대국으로서 전쟁에서 최초로 이기지 못한 한맺힌, 부끄러운 전쟁이 바로 한국전쟁이라는 겁니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서 해상과 육지에서 모두 이겼고, 태평양까지 완전 장악한 수퍼파워 지위를 확보했지만, 2차 대전 종전 뒤 5년 만에 터진 한국전쟁에서는 못 이겼으니 그들에겐 수치였습니다. 이기지 못한 이유는 중국이 참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미국은 소련이라는 거대 대륙세력을 주적으로 봤는데, 엉뚱하게 한국전쟁에 참여한 중공군 때문에 다시 휴전선을 중심으로 잠재적 거대 대륙세력 중공과 맞서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한반도가 다시 갈라지고 미국은 거대한 두 대륙세력과 대치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미국은 중국 때문에 최초로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다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셈입니다. 지금도 미국 학자들은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수정주의 역사학자인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 대학 석좌교수의 기록을 보면, 한국전쟁은 미국이 승리하지 못했기에 숨기고 싶어 하는 전쟁이 된 겁니다. (워싱턴에 한국전쟁을 기념하는 추모공원이 생긴 건 훨씬 뒤인 클린턴 정부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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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강대국 미국이 이기지 못한 최초의 ‘부끄러운 전쟁’이라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한국전쟁에서 안게 되었다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한국전쟁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미국에 끼친 영향이 있다는 것인지요?
한국전쟁이 미국 정치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는 오늘날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가 된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 정치가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젠하워가 군인 출신의 공화당 대통령이었음에도 고별사에서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군부와 방위산업체의 공동체적 유착 체계)를 민주주의의 적으로 선언하지요. 그것은 그가 군산복합체의 무서운 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이젠하워가 경고했던 군산복합체가 들어서면서 미국은 안보 국가로 변하고, 이 과정에서 나타난 게 매카시즘 광풍이지요. 1950년 초에 반공주의자인 상원의원 조셉 매카시가 미국 정부에 수백 명의 소련 스파이가 있다고 구체적 근거도 없이 무리한 폭로를 했지요. 이를 테면 미국 내 ‘종소 세력’이 있다고 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대개 문화예술인들, 작가나 영화인 들이 진보적인데 그들이 당한 고통이 컸지요. 물론 진보적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국에 매카시즘 광풍이 불어 닥칠 때 우리나라에 들어선 정부는 초대 이승만 자유당 정권인데 미국이 안보 국가로 변질되면서 매카시즘 광풍에 휩쓸리는 걸 보고 마음 놓고 권위주의 정치를 했어요. 김구 선생을 위시하여 민족주의적인 생각을 갖고 한반도 평화 통일을 갈망한 세력은 다 숙청당하고 반공냉전 세력이 지배세력이 됩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승만 정부 시기에 지배세력으로 등장한 반공냉전 세력이 일제 강점기에는 대체로 친일 세력이었다는 거예요. 이들은 토지를 많이 소유한 지주들로 김일성이 토지 개혁과 친일세력 숙청을 단호하게 해나가던 북에서는 생존이 힘들어져서 남하하게 되지요. 그들 가운데 기독교신자가 많았고 그들이 남한에서 교회 성장에 크게 기여합니다. 그들 안에는 보수적 기독교 근본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게 냉전 반공 친일 가치관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이승만의 권위주의 정치를 밀어준 격이지요. 그들의 냉전 반공주의가 한국의 우파 복음주의 세력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반도 주변 열강 얘기로 돌아가보지요. 1960년대 들어와서 소련과 중국이 서로 갈등하는데 중국으로서는 군사적으로 소련을 당할 수가 없는 거지요. 그들로서는 소련을 견제할 강대국이 자기편이 되면 좋겠는데, 문제는 미국이 자본주의 국가여서 중국이 손 내밀기는 어려운 처지였지요. 그 기미를 알아차린 사람이 닉슨 대통령입니다. 중-소 분쟁 과정에서 닉슨 대통령 같은 보수주의자가 미국 정부가 중국에 협조의 손을 내밀어야겠다 생각한 겁니다. 그러려면 베트남전을 얼른 끝내야 했지요. 엉뚱하게 닉슨 같은 반공주의자가 정책적으로 베트남전을 끝내면서 중국에 헨리 키신저를 파견하여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를 만나 소련 견제에 서로 힘을 모으기로 한 것입니다. 반공주의 국가 미국이 중국과 손잡은 이유는 딱 하나, 소련을 견제하고, 궁극적으로는 망가뜨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이해관계가 서로 맞은 거지요. 이렇게 해서 베트남전 같은 군사 개입은 피한다는 대아시아 외교정책을 담은 닉슨 독트린(1969)이 나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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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닉슨 독트린이 동북아시아와 주변 열강의 정세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요?
닉슨 독트린 이후 세계 질서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양극(냉전) 체제에서 ‘데탕트’(긴장완화)의 다극 체제로 옮겨가는데, 이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의 국교가 수립되고 중국의 유엔 가입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다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이후 소련이 해체되고 마침내 미국이 냉전에서 승리를 거두는데, 고르바초프랑 아버지 부시가 몰타에서 만나서 냉전체제가 끝났다고 공동으로 선언(몰타 선언)을 하지요. 우리나라에선 그때가 노태우 정부 시기였는데, 군인 출신이긴 하지만 노태우 대통령이 이같은 세상 흐름을 간파해서 북방정책을 취합니다. 남한이 소련, 중국과 국교를 맺고, 북한이 일본·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하려 한 것이 바로 이 시기지요. 그때까지 세계 판도는 역시 유럽 중심인데 유럽 국가들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중심으로 대륙세력인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는 데 미국과 힘을 합쳤습니다. 그런데 소련이 무너지고 나니까 예상 외로 중국 내 덩샤오핑 같은 사람이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중국이 경제적으로 놀랍게 성장합니다. 그 결과 80년대 이후 30년 동안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고도 성장을 해왔지요. 오늘날 중국은 GDP로는 일본을 제치고 지금은 미국을 따라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이렇게 커지니 미국은 주적을 소련에서 중국으로 바꿉니다. 그러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데, 이 과정에서 미국에게 중요해진 나라가 바로 경제대국 일본입니다. 일본은 미국의 중국 견제에 적극 협조합니다. 중국이 성장하는 사이에 1991년 한-중 관계는 정상화되었습니다. 이후 한국과 중국은 서로 전략적 우호 관계가 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국 시장은 일본과 미국을 합친 것보다 커졌고, 수출의 26%를 중국이 차지하니까 이제 중국 없이는 살기 어려운 지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거지요.

그런데 군사적으론 여전히 중국이 소련을 앞지르기 어렵지만, 소련 못잖게 강력한 해군과  더 많은 육군, 거기다 경제력까지 붙으니 미국이 중국을 결코 무시할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시진핑이 주석이 되고 나서 오바마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태평양은 참 넓으니 우리 두 나라가 공동으로 나눠 관리해도 되지 않겠냐는 식으로 대담하게 말을 합니다. 이는 해양패권국가인 미국으로서는 불쾌하고도 두려운 이야기지요. 바다를 지배하는 세력이 세계를 지배하는데 태평양을 자기네 연못으로 생각하는 미국에게 중국 지도자가 감히 겁 없이 같이 나눠 관리하자고 얘기한 거니까요. 그리고 중국이 남중국해에 군사기지 만들어서 태평양 주도권에 도전하니까 오바마 같은 자유주의적인 사람도 미국의 세계 패권을 양도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요. 세계 패권국 강화에는 여야가 없습니다.

― 새로운 주적으로 설정할 정도로 고도 성장을 이룬 중국의 급부상을 세계 초강대국 미국이 아무런 견제 없이 그냥 지켜보지는 않았을 텐데요.
힐러리가 국무장관 하던 시기 나온 정책이 미국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다시 회귀하는 거였습니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이 태평양 국가이고 중국이 두 번째 경제대국이 되었고, 세 번째가 일본인데, 한국도 세계적으로 무시못할 경제 중견국이 되었지요. 그러니까 유럽보다 동북아시아의 중요성이 더 커졌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세계 전략의 중심축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옮기게 되는데, 유럽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이 정책을 ‘아시아재균형(Asia rebalancing) 정책’이라고 다르게 부릅니다. 정책의 핵심은 당연히 중국을 포위하고 견제하는 것입니다.

미국이 필리핀의 수비크 만에서 군사기지를 철수했는데, 중국이 커지니까 다시 수비크 만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호주의 제일 북쪽 다윈이라는 해안도시에 해병대 기지를 세우고, 얄궂게도 이때 제주도에 중국을 바라보는 해군기지를 우리 정부가 만듭니다. 이는 거대한 두 해양세력인 미국과 일본이 중국을 포위하겠다는 전략이고 그 사실을 중국도 알고 있는 거지요. 아시아뿐 아니라 아프리카에서도 미-중 경쟁이 치열할 정도로 지금 미국과 중국이 전 세계적으로 부딪히는 형국입니다. 미국은 중국을 두려워하여 포위하는 전략을 구사하면서도 겉으로는 ‘봉쇄정책’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점잖게 ‘아시아재균형’ 정책이라고 합니다.

그간 중국과 한국이 서로 긴밀해져서 지금은 전략적 동맹 관계로까지 발전해 왔는데, 바로 이런 상황에서 사드 배치가 결정된 거예요. 그런데 현 정부가 아무리 비전과 철학, 역사 인식이 없다 해도 중국 시장이 닫히면 우리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건 아니까, 사드 얘기가 나오면 늘 세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미국이 한국에) 요청한 바 없다, 협의한 바 없다, 결정한 바 없다. 이렇게 강하게 부인해 오다가 갑자기 사드 배치 결정을 내린 겁니다. 전 국민의 충격이기도 하지만, 성주 주민들로서는 청천벽력일 겁니다. 자기들이 마음 다해 지지하던 지도자에게 배신당한 격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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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사드 배치는 중-미 패권 경쟁 과정에서 미국이 내린 대중 봉쇄전략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거군요. 그렇다면, 결국 한반도가 중-미 패권 다툼 틈바구니에 낀 위태로운 상황이라는 말씀인지요?
그렇지요.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19세기 말부터 나타난 서세동점의 거대한 물결이 이제 사드 배치 결정을 통해서 중국과 미국의 대결로 귀결되는 양상이라는 겁니다. 세계 해양세력이 더 이상 세계 최강 대륙세력으로 굴기하는 중국을 봉쇄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최근 새삼 미국이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결정적 사건이 다름 아닌 브렉시트(Brexit)였습니다. 영국은 미국의 유럽 지배권을 보장해주는 중요한 고리였고 군사력도 다른 EU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든든해서 나토 체제를 받쳐줬는데, 영국의 EU 탈퇴 결정이 나면서 미국 주도의 나토 체제가 약화되는 거지요.

이 사태를 러시아가 가장 좋아하는데, 이게 러시아를 견제하는 미국의 유럽 MD 체계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유럽에서 푸틴을 격동시킨 사건이 다름 아니라 미국이 그곳에 사드를 배치하여 러시아를 견제하는 유럽식 MD 시스템을 구축한 겁니다. 이 시스템은 러시아가 쏘는 대륙간 탄도탄을 그 자리에서 요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맞서 러시아의 대응이 나온 것이 바로 크림반도 사태(우크라이나의 자치공화국인 크림반도가 2014년 3월 러시아와의 합병을 결정한 이후 일어난 우크라이나-러시아 간의 무력분쟁 사태-편집자) 입니다. 그런데 브렉시트가 터지면서 푸틴이 숨통을 좀 트게 된 거지요. 유럽의 해양세력 영국이 EU를 탈퇴하면서 영국을 통한 미국의 유럽 지배력이 약화되게 생겼으니 대륙세력 러시아가 숨을 돌리게 된 겁니다. 그런데 브렉시트 결정 한 달도 안 되어 사드 배치 얘기가 한국에서 터져 나왔고, 이번엔 당연히 중국이 긴장하는 거지요.

― 브렉시트 후 매우 고무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바로 베이징을 가서 시진핑 주석을 만났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 무슨 얘기를 했을까요? 중국과 러시아 두 대륙세력이 다시 힘을 합치게 만드는 연결고리가 바로 브렉시트와 성주 사드 배치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사드 배치는 세계사적으로 엄청나게 위험스러운 사건일 수 있습니다. 평화에서 다시 대결로 가는 사건, 세계에서 가장 큰 두 세력 곧 대륙세력인 중국·러시아와 해양세력인 미국·일본이 서로 격돌할 위험이 커졌지요. 브렉시트 터지고 얼마 안 되어 사드 사태가 한국에서 터지는 걸 보면서 저는 다시 한국이 세계적 화약고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한반도에서 일어날 수가 있는가? 가슴이 꽉 막혀 왔습니다.

11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린 강대국 사이의 약소국이었기에 힘 있는 쪽에 늘 먹혔습니다. 오늘까지 식민지 30년, 분단 70년을 지나오면서 그 악조건에다가 해방 이후 문민 권위주의와 군사 권위주의 통치를 거치고, 거기다 고약한 신군부의 폭정까지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노력해서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모두 이루었어요. 권위주의적 독재 정치 하에서도 우리 세대가 열악한 상황에서도 헌신적으로 노동해서 일으킨 게 한강의 기적입니다. 지식인, 노동자, 청년학생 모두가 다 노력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세계 12위 경제대국이자 정보화에선 1, 2위의 문화대국으로 성장시킨 겁니다. 과거엔 한국이 고래 사이에 낀 새우였지만, 지금은 큰 고래까지는 아니어도 돌고래 정도는 됩니다. 고래 중 돌고래가 가장 영리하지요. 영리하고 똑똑하기 때문에 큰 고래 싸움을 조정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허무하게도, 박근혜 정부가 하루아침에 사드 배치 결정을 내리는 걸 보면서 110년 전의 새우로 이 나라를 다시 추락시키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이게 이 인터뷰에 응하는 이유입니다. 사드 배치가 그저 미국의 신무기를 도입하는 단순한 무기 도입 문제가 아니라 문명사적 대충돌을 촉발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대사건인데도 우리 정부는 생각 없이 저질러 버린 겁니다. 어려운 고난 속에서 우리가 성취한 민주화와 경제성장, 문화대국의 자긍심이 성주 사드 배치 결정으로 하루아침에 땅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이 사태를 다른 역사적 흐름과 연관지어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이 소련을 냉전에서 이긴 1989년 이후 세계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언젠가 미국 CIA 고위관리가 “소련이라는 거대한 용이 죽고 나니 밀림에는 독사들이 우글거린다”는 말을 했는데, 여기서 ‘독사들’이란 테러리스트를 말합니다. 그가 독사들이라고 한 새로운 테러리스트 그룹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괴롭히는데 특히 미국이 주 타깃입니다. 그들은 좌우 이념대립도 아니고, 국제법 테두리 밖에서 액션을 취하니 국제법상으로는 대처할 재간이 없습니다. 중국 같은 거대한 대륙세력의 등장 외에 미국이 맞닥뜨린 또 하나의 심각한 위협 세력이 있다면, 바로 과거 소련 견제를 위해 미국이 의도적으로 길렀던 무슬림 근본주의 세력입니다. 미국 CIA 지령을 받고 소련과 싸운 그들이 탈레반이 되고 알카에다, 오사마 빈 라덴이 나온 거지요. 그들은 미국의 최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은밀한 지원을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미국도 대책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미국이 키워 낸 새로운 괴물인 셈입니다. 이들 강력한 테러집단에는 두 파가 있는데, 하나는 이란 중심의 시아파 그룹, 다른 하나가 사우디아라비아 중심의 수니파 그룹입니다. 미국은 사우디랑 가까운데 이란과 핵협상을 하면서 시아파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미국은 둘 사이에 끼어 눈치를 보아야 할 처지입니다.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에 대해서도 오바마와 힐러리의 접근법이 서로 다릅니다. 국가 아닌 테러 집단으로부터 받는 위협이 심각한데, 이것들이 다 미국이 길러낸 자식들과 같습니다. 이 강력한 테러리스트 세력의 실체가 바로 해양세력 미국의 한계를 보여주는 셈입니다. 이런 때 미국에선 공화당 대선후보 트럼프가 무슬림들은 입국도 안 시키고 힘으로 IS를 때려잡겠다고 하니 미국 보수정치인이나 국민들이 거기에 잘못됐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문제는 이슬람이라는 거대한 주류 종교를 싸잡아 적으로 돌리는, 파시스트 포퓰리즘 경향의 인물이 지도자가 되는 일입니다. 만약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의 힘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텐데 그것이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는 우리가 지금부터 새롭게 고민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정치판에서는 극히 예외적이고 이단아 같은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아메리카니즘에 사로잡힌 이 극우적 성향의 인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흥미로운 게, 트럼프가 내세우는 정책을 보면 긍정적인 면이 있긴 합니다. 대표적인 게, 세계화, 신자유주의, 무역자유화 정책으로 인해 백인 중하류 노동자들이 고통받는다면서, 자유무역을 거부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WTO(세계무역기구)를 탈퇴하겠다는 얘기인데, 이건 진보 진영에서 좋아할 만한 이야기 아닙니까. 신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미국의 거부 트럼프가 이전 행적과는 달리 말로는 도전하겠다고 하니 미국 자동차노조에선 반길 일이지요. 한미FTA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도 없던 일로 하고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도 고치겠다고 하니 어떤 면에서는 친노동 정책인듯 하지요.

그러나 트럼프의 전체 정책을 보면 여성차별, 유색인종 차별, 동성애혐오 등 극우 포퓰리즘입니다. 유럽에서 커져가는 극우세력들, 프랑스의 장 마리 르펜, 네덜란드의 민족주의 극우,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극우세력들이 트럼프의 인종차별 정책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의 정책 가운데 제일 염려스러운 경향은 근본주의적 기독교 친화 정책입니다. 트럼프는 버지니아에 있는 리버티 유니버시티라는, 미국의 근본주의 보수교회 지도자가 총장으로 있는 대학에서 강의한 이력이 있는 인물입니다. 근본주의는 실상 가장 반복음적인데도 미국은 근본주의자들이 복음주의를 독점하다시피 하니 한국에도 복음주의자들 속에 근본주의자가 많습니다. 트럼프는 미국 공립고등학교에서 성경공부를 부활시키겠다는 등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좋아할 정강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런 염려스러운 상황을 풍자하는 ‘트럼프 공화당 사도신경’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전능하사 세계를 만드신 미국을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공화당을 믿사오니, 이는 보수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남 도널드 트럼프에게서 나시고, 오바마와 민주당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8년 만에 히스패닉과 무슬림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백악관에 오르사, 전능하신 미국 앞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불량국가와 유색인종을 심판하러 오시리라. 인종주의를 믿사오며, 거룩한 총기와 보수주의자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감세하여 주시는 것과, 정권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숭미 사상에 빠진 한국인들이 ‘트럼프 사도신경’에 담긴 비판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이런 근본주의 신앙으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서 미국을 이끌고 세계를 이끌어 간다면 정신 나간 근본주의적 기독교인들은 무척 좋아하겠지요. 하나님이 아닌 미국을 믿는 근본주의 보수 복음주의 세력들 말이지요. 불행하게도 미국의 복음주의 세력 상당수가 트럼프에 동화되어 있습니다.

― 다시 사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사드 배치 결정이 국내외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 것으로 보시는지요?
사드 배치가 이 땅에 어떤 가공할 피해를 안길지, 배치 결정 전에 충분히 고민했어야 하는데 이 정부는 그 과정을 생략해버렸습니다. 이미 사회적으로 많이 언급된 사드의 군사 기술적 측면은 제쳐두고, 사드 배치로 인한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 피해에 대해서 잠시 얘기하고자 합니다.

중국은 사드 배치 관련 초기부터 강력하게 입장 표명을 해왔습니다. 왕이 외교부장이 지난 7월 26일 라오스 비엔티엔에서 한 말도 마찬가지지만, 올해 2월 18일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발언에서도 “한반도 비핵화는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입장이 맞는 얘기임에도 미국은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왕이 외교부장은 UN에서도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6자회담이 지난 8년간 중단된 사이에 북한이 핵실험하고 미사일 발사했다. 그렇기에 6자회담을 반드시 부활시켜야 하고 대북제재논의 과정에서 6자회담을 다뤄야 한다.” 한국의 수구세력들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햇볕정책 때문이라 속단하지만, 남북 대화가 끊어지고 교류 협력이 없을 때 북한은 항상 그렇게 호전적 조치를 취했다는 사실에 새삼 주목해야 합니다. “북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일단 UN 안보리회의 결과를 무시한 것이므로 북한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나 어떤 분쟁도 제재와 압력만 가지고 북한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며 군사적 수단은 더욱 불가능하다.”

왕이 부장의 말을 이어 받아서 지난 2월 22일 중국 인민해방군보는 “한국이 사드 배치하면 한 시간 내 그 기지를 초토화할 수 있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비엔티엔에서의 왕이 외교부장 발언은 오히려 점잖은 편입니다. 22일 보도대로라면, 북한 미사일 발사 전에 오히려 중국으로부터 우리가 진짜 무서운 대륙간 탄도탄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요.

4월초에 나온 UN 대북제재 결의안에 6자회담과 9·19공동성명(2005년 제4차 6자회담에서 결의한, 북한의 핵무기 파기와 한반도 평화협정, 북미 신뢰구축 등을 골자로 하는 공동성명-편집자)을 지지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결의안에 이런 내용이 있다는 걸 모릅니다. 중국은 왕이 외교부장이 한 말을 UN 결의안에 넣었는데, 정작 우리나라는 왜 이걸 주목하지 않는 걸까요?

― 미국 국방관이었던 윌리엄 페리도 사드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는 보도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지난 3월 11일에 미국 전 국방장관 윌리엄 페리가 “사드 포함 MD체계는 기술적 문제가 있고, 돈 낭비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동유럽에 일방적으로 배치했기에 러시아와 반목이 심해졌다는 사실, 크림반도에 위태로운 상황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게 뭘 의미할까요? 페리 전 국방장관의 발언에는 과거 1962년 사태가 깔려 있습니다. 1962년 미국이 굉장히 위험한 안보 국면을 맞았었지요.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 설치를 위해 미사일을 싣고 쿠바로 가다 발각이 돼서 양국간 대립이 격화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미국 에모리 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였는데, 학교 도서관을 가니까 학우들이 “우리 이제 소련하고 전쟁하게 생겼다”고 야단들이었습니다. 쿠바로 소련 미사일이 오고 있다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지금 한국에 사드가 오기로 됐습니다. 사드는 미국이 세계를 군사적으로 계속 지배하기 위한 MD 체계에 속하는 가장 중요한 신무기입니다. 중국과 러시아도 한국에 사드 기지 운용 능력이 없다는 점을 잘 압니다. 공식적으로는 북한 미사일 대비용이지만 이면으로는 러시아와 중국 견제용인데 그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왕이 외교부장이 얼마 전 라오스에서 ‘정말 한국의 사드 배치가 동북아시아 전략적 균형을 안 해친다는 걸 설득시켜 보라’는 식으로 강경하게 발언했습니다. 중국과 한국은 보통 우방이 아니고 전략적 동반자 협력관계인데, 성주의 사드 배치 결정은 이 관계를 깨는 일이라고 말한 거지요.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한국의 사드 배치로 미국 MD에 한국이 편입되면서 동북아시아 지역에 삼각냉전이 작동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두 대륙세력인 러시아와 중국이 이렇게 우리에게 경고를 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외교부장관은 이게 보통 싸움이 아님을 알아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주 사드 배치 결정 후 중국이 지난 7월 17일에 서해 인접지역에서 대규모 군사 훈련을 벌였는데, 목적은 사드 기지 무력화였습니다. 또 발해만에서 무인정찰기와 전투기, 공중급유기 등을 총출동시켜서 밤늦도록 10시간 동안 훈련을 했습니다. 우리 언론은 이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지만, 이것은 참으로 심각한 위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7월 19일과 21일에는 해남 앞바다에서 대규모 군사 훈련을 했는데 역시 보통 일이 아닙니다. 최근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국제회의에 가서 중국은 WTO 회원국이므로 경제보복은 안 할 거라고 낙관적으로 얘기했는데, 당장 경제보복은 없을지 몰라도 군사보복 등 중국은 한다면 하기 때문에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닙니다. 최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중국이 “한국의 행위는 쌍방의 상호신뢰 기초를 흔드는 행위”라고 했습니다. 심각하다는 얘기지요. 경북 성주에도 당장 벼락이 떨어진 게, 자매결연을 맺은 중국 도시에 참외를 수출하려 했는데 일체의 관계를 끊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7월말로 예정된 대구 치맥페스티벌에도 대구 자매도시인 칭다오 시가 불참을 선언했고, 참가하기로 했던 대규모 유커(遊客·중국 관광객)들이 신청을 취소하기도 했지요. 구체적으로 갈등이 발생하고 경제보복이 국내 경제를 옥죄는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 충분히 예상 가능한 상황인 겁니다.

   
▲ ⓒ복음과상황 이범진

― 오늘과 같이 엄중하고 위태로운 현실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오늘 우리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이 보여주는 으시시한 전체주의 국가, 인간 삶의 총체적 영역이 감시 대상이 되어 침대나 부엌까지 감시가 들어오는 엄혹한 ‘오웰리언 소사이어티’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세계를 살아갑니다. 이에 더해 우리나라는 동북아에서 대륙과 해양세력이 부딪히는 대립구도에 반도 국가로서 운명적으로 끼어 있는 지정학적 위치상 주체적으로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는 ‘피스 메이커’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내야 함에도 어느 한쪽에 맥없이 편입이 되어 수족 노릇을 하는 딱한 입장에 빠졌습니다.

이런 엄혹한 역사 현실에서 우리가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을 증거한다는 게 뭘 의미하는 걸까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선포에서 그 핵심은 샬롬입니다. 샬롬과 공의를 구현하는 힘은 사랑입니다. 여기서 사랑은 단순히 이웃 사랑이 아닌 ‘원수 사랑’입니다. 이웃 사랑은 사실상 쉽습니다. 고향사람, 동창, 같은 종교에 속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건 쉬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토라의 율법을 신성하게 여기기에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한 유대인을 향해 ‘원수를 사랑하라, 너희를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말씀은 황금률적 이웃 사랑이 아니고, 너희를 박해하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겁니다. 그 말을 제자들이 너무 불편해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예수님이 아시고선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로 이웃 사랑과 원수 사랑의 차이를 가르치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강도 당한 유대인을 보고 같은 이웃(유대인)은 아무도 구해주지 않았는데 원수인 사마리아인은 모든 걸 다 바쳐서 자기들을 경멸하는 유대인을 선제적으로 무조건 사랑했습니다. 원수를 사랑한 이 사마리아인이야말로 진짜 영생의 복,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진리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한국교회도 이웃 사랑이 아닌 원수 사랑의 차원에서 가르치고 메시지를 전하고 실제로 사랑해야 합니다.

― 분단 상황에서 남한의 원수란 주적으로 언급되는 북한이지 않습니까.
원수를 악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관점입니다. 나와 이해관계가 있어서 싸우는 사람이 원수가 되는데, 서로간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이 이해관계 상충 때문입니다. 이 이해관계로 인한 싸움, 전쟁은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닙니다. 서로 싸울 때 선은 양쪽 모두 다 소멸되고 악이 발현돼서[發惡] 서로 미워하며 죽입니다. 이를 예수님이 잘 통찰하셨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나와 원수의 내면에 있는 발악하는 악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나를 죽이려는 원수 속에 있는 얼어붙어 작동 못하는 착한 마음을 ‘발선’시키라는 뜻입니다. 발선(發善)이라는 말은 원래 사전에 없는데, 발악에 대응해서 내가 만든 말입니다. 이걸 사도 바울이 알았습니다. 로마서 12장 20, 21절을 보면,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합니다. 원수의 머리 위에 숯불을 쌓는다는 건 원수 얼굴이 발갛게 된다는 것으로 일종의 메타포, 은유입니다. 주리고 목마를 때 원수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베풂으로써 발악하는 악에 치여 꼼짝 못하는 선, 얼어붙은 선이 비로소 생기를 얻어 발동시키라는 권면입니다. 이 선이 발동하는 모습이 얼굴의 붉어짐, 곧 부끄러움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적이라서 죽여야 마땅하지만, 적이 내게 나눠주는 먹을 거 마실 거로 인해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원수를 미워하고 욕하고 죽이면 상대방 속에 있는 악은 더 강해지고 선은 더 얼어붙습니다. 그 발악으로 인해 나도 화가 나서 내 속의 선은 죽고 악만 발동합니다. 그리하여 발악과 발악이 서로 부딪히면 반드시 공멸할 뿐 아니라, 발악하는 거 자체가 지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붙잡혀가실 때 베드로가 칼을 빼서 말고의 귀를 자르자 칼을 빼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선포하시면서 ‘충성스러운’ 수제자를 엄히 꾸짖었습니다. 칼은 발악을 더욱 악화시킬 따름입니다.

― 국민이 ‘사드 반대’를 외치니까, 대통령은 ‘다른 대안 있으면 내놓으라’고 했는데요.
사드가 아니고, 미사일이 아니고, 사랑이 대안입니다. 악과 경쟁하고 싸우면서 그렇게 원수를 사랑하면 맞아 죽고 순교 당하기 십상이지요. 모든 순교자들에 앞서 예수님 자신이 순교한 게 바로 그 이유 아닙니까. 칼을 못 쓰게 하신 예수님이 칼의 세력에 의해서 어떻게 죽는지 제자들에게 실천으로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실제로 사형집행자로서 예수의 모든 수난과 수모의 과정을 지켜보았고, 예수가 잔인한 가해자들의 죄악을 용서해달라고 아빠 하나님께 간청하신 기도를 들었던 백부장은 ‘진짜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고백했습니다. 나면서부터 시저가 메시아고 주님이고 왕이고 하나님 아들이라고 철저하게 배워온 로마제국의 백부장이, 황제의 법령을 어긴 갈릴리 청년이 죽으면서도 원수 사랑을 선제적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이 사람이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깨닫고 회개의 고백을 한 겁니다. 사형집행관인 자신이 집행한 사형식에서 죽어가는 사형수를 보면서 말이지요.

예수님의 메시아 대관식이 언제 일어났느냐 하면, 십자가 처형 전 과정이 바로 대관식이라고 하는 톰 라이트의 탁월한 해석을 최근 읽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빈디케이션’(vindication), 곧 하나님의 아들이 옳음을 인정받는 순간, 예수의 부활은 필연적인 사건이 되고 맙니다. 사형집행관이자 로마 권력을 상징하는 백부장이 ‘당신이 하나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뒤집어 말하면 ‘우리 황제는 가짜’라는) 이 말은 당시 사회에서 굉장히 불경한 선언입니다. 예수 복음은 바로 원수 사랑의 실천으로, 죽은 듯해도 로마의 그 거대한 권력을 우아하게 항복시키는 감동적 힘이요 변혁적 힘이요 공공의 힘이었습니다.

― 이 엄중한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악이 극성할 때 기독교가 선택할 방법은 십자가뿐인데, 지금 한국교회에는 십자가 신학이 없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에서 십자가는 값싼 데코레이션(장식품)으로 전락했습니다. 서울 시내에 그토록 많이 세워진 십자가는 예수님의 원수 사랑 실천의 동력이 아니라 11, 12세기에 십자군이 이교도를 죽이기 위해 앞세웠던 십자가인 셈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친히 지고 가신 것이지, 백마를 타고 승승장구하는 장군의 군기가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모습은 교회 첨탑의 수직 십자가가 아니고 비스듬히 기울어진 십자가입니다. 엑스(X)로 보이는, 예수가 친히 짊어지신 십자가를 우리가 지면서 우리의 탐욕과 독선과 폭력의 악을 지워버려야(cross out) 합니다. 이것의 의미는 케노시스, 곧 ‘비움’의 신학입니다. 십자가는 자기를 비우고 내려놓고 탐욕과 이런 모든 것을 비움으로써 원수 사랑을 통해 새 역사를 만드는 놀라운 능력입니다. 한국기독교는 이런 케노시스의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칼로 쓰기 때문에 예수의 십자가가 없을 뿐더러 예수도 없는 듯합니다. 예수가 없어야 교회가 성장하기 때문에, 사드 배치 결정 과정에서 교회가 제일 먼저 앞장서서 ‘아멘 할렐루야’를 외칠까봐 겁이 납니다.

지금 하나님이 한국교회에 이렇게 물으시지 않을까요? ‘십자가가 이렇게 많은데 왜 공공적이고 희생적인 교회가 없느냐?’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천사들은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샬롬’이라 선포했는데, 하늘에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예 땅의 샬롬을 위해 일할 수는 없는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땅의 평화 없이는 하늘의 영광도 공허하지 않겠습니까? 성육신의 신학, 케노시스의 신학, 평화와 공의를 위해서 내가 내 가슴을 비우면서 원수까지도 변화시키는 힘이 절실합니다. 우리 삶 속에서 로마의 백부장 같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한국교회에 왜 손양원 주기철이 없습니까? 큰 교회를 성장시켰다는데, 그것이 과연 예수의 교회입니까, 아니면 사탄의 교회입니까? 사드를 통해서, 이 시대의 징조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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