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자끄 엘륄은 《머릴 둘 곳 없던 예수》(대장간)에서 대도시의 의미를 성서적으로 살피며 “(도시는) 인간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도 독립적인 인격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인간은 이러한 도시에서 안정감을 누리며 정착생활을 하지만, 이것은 실로 완벽한 노예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이지요.

엘륄은 말합니다. “대도시는 전쟁을 일으키는 주체이며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고, 죄의 집합소이다.” 성서는 도시에 대해 늘 심판의 태도를 취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도시를 심판할 것이며, 이 심판이 “도시와 인간 사이의 영적 물리적 분리를 가져올 것”입니다.

인류의 첨단 기술이 집약되어 있는 분야, 원자력(핵)발전(nuclear power generation). 그러나 우리는 불과 몇 년 전, ‘기술 강국’ 일본이 천재지변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3·11 후쿠시마 원전(핵발전소) 폭발 사고를 목격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거의 다 잊혔으나) 지난 9월 12일 경주에서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진앙지 50km 반경 안에 위치한 12기의 원전을 떠올렸습니다. 경주엔 방사성폐기물처리장도 있어 사람들의 불안감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정부 기관은 지진 발생 한 시간도 채 안 된 시점에 “원전은 안전하다”는 말을 전파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고도로 복잡한 기술 시스템의 안전 여부를 정확하게 파악한 것일까요? 발 빠른 안전 홍보에 오히려 더 불안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질문들로 구상을 시작한 이번 커버스토리는 사실상 언제 일어날지 알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지진과, 그로 인해 더 큰 재앙이 될 수 있는 핵발전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규모 5.8의 지진을 가장 직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고도의 기술체계는 인간의 통제 너머에 있다”(오지은)를 비롯하여, 탈핵운동을 벌이는 활동가의 “지금 ‘탈핵생’ 열차를 타야 한다”(이상희), 아프리카 오지에서 지진 보도를 접한 도시계획가의 “탐욕으로 점철된 도시문명에서 벗어나야”(황종대)가 그 이야기들입니다.

몇몇 전문가들은 한 달 내에 더욱 큰 지진이 올 것이라 예측하기도 했습니다만, 빗나갔습니다. 천만다행이지만, 예상이 틀렸다기보다는 ‘유예’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지요.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런 ‘일상의 관성’이 우리를 구원해 줄까요? ‘유예된 재앙’을 염두에 둔 삶은 결코 이전과 같지 않아야 할 텐데요. 커버스토리 이외의 다른 글들도 ‘그때’를 대비하라고 촉구합니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1:29:300의 법칙’이라고도 하는데요.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나타난다는 이론입니다. 산업재해 발생 통계를 통해, 한 명의 사상자가 나오기 전에는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음을 밝혀낸 거지요. 큰 사고가 나기 전 여러 번의 전조와 징후들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 경미한 사고라도 조기에 근본 원인을 밝혀 개선하지 않으면 큰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무고한 사상자들이 넘쳐나는 이 시대, 그들이 남긴 징조 앞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복상도 늘 “근본 원인”을 응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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