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호 무브먼트 투게더] 청와대로 행진한 ‘신학생 총연합 시국기도회’

 

갈라졌던 신학생, 그리스도의 길 위에서 다시 만나다

2016년 11월 8일 화요일 저녁 7시, 서울시청 앞 대한문에 신학생들이 700명가량 모였다. 신학교 학생회, 동아리, 에큐메니컬 단체를 비롯한 67개 단위가 신학생 시국 연석회의(連席會議)를 통해 묶였다. 처음에는 10월 23일 백남기 농민의 분향소를 지키기 위해 감신대, 서울신대, 장신대, 총신대, 한신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연석회의가 만들어졌고, 하루 이틀 사이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더욱 다양한 신학교의 자발적 참여가 이어졌다. 기도회 당일, 예상했던 참여자들보다 훨씬 많은 신학생들이 모여 연석회의 실무자들을 놀라게 했다. 준비했던 500개의 초와 순서지가 모자랐다. 성체도 모자랐는데 덕분에 쪼개서 먹는 나눔을 실천할 수 있었다.

11월 1일 각 단위별 대표자들의 첫 회의가 열렸고, 기도회와 행진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질 때 우리는 행진의 목적지로 광화문과 청와대 중 한 곳을 선택해야 했다. 안전한 코스와 안전하지 않은 코스에 대한 선택이었다. 현실적으로는 안전한 행진 목적지인 광화문이 더욱 합리적이었다. 싸움이 짧게 끝날 것 같지도 않았고, 진보와 보수 신학생들이 함께 모인 자리이다 보니 내분이 생길까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날 신학생들은 거의 모두 청와대를 선택했다. 나는 그때부터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대한문을 등지고 줄을 맞춰선 깃발들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을 보니 다양한 신학교의 이름들이 보였고 그것만으로도 우리 가슴에 뜨거움을 안겨주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민의 죽음 등의 사건을 만들고 민주주의를 유린한 불의한 권력에 대항하고자 감리교, 성공회, 성결교, 장로교 등 다양한 교단의 신학생들이 모였다. 한국교회의 선배들은 해방 후 수없이 많은 교파로 갈라섰지만, 오늘 우리 신학생들은 뜻을 하나로 모아 저항했다. 신학생 총연합 시국기도회와 행진은 에큐메니컬이라는 신학적 의미에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보수적인 교회는 성도들에게 사회참여를 멀리하게 한다. 설령 사회참여에 대해 이야기하더라도 위정자들이 정치를 정의롭게 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만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오히려 개인적인 평안을 말하는 동시에 기득권의 횡포를 방관하게 하는 ‘정치적’ 태도이다. 즉 교회가 줄곧 얘기하던 개인적 평안이란 세계와 사회를 보는 눈을 가리는 아편과도 같은 것이다. 실제로 교회는 오랜 시간 이 정신을 축적하며 배를 불려왔으며 한국 사회 속에서 예언자들의 목소리는 희미해져 갔다. 한국교회는 기도를 강조했지만, 기도하는 ‘삶’은 없었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시간은 많았지만, 삶이 기도와 일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성도들은 아쉽게도 신학생 총연합 시국기도회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떼제 찬양은 들어본 적도 없다며 복음성가와 경배와 찬양만이 성가(聖歌)인 듯 주장했고, 성찬식은 교회 안에서 해야 하는 것이지 왜 밖에서 하느냐며 얀 후스의 개혁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런 반응들을 볼 때 우리는 교회가 지금까지 얼마나 하나님 중심, 그리스도 중심이 아니라 교회중심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었다. 교회는 성찬의 의미와 찬양의 의미, 그리고 신앙의 의미까지 왜곡해왔다. 주님께서 함께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결단 등 신앙의 여러 형태는 우리 삶에서 온전하게 피어나야 하는데 교회는 예배 참석, 전도, 헌금 등 교회 성장을 위한 활동만을 강조해왔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은 교회활동만이 신앙 생활이라는 배타적인 이해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프레임의 강요 속에서도 박근혜 정부가 하나님의 정의를 거역했다는 의식은 많은 신학생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 아무리 교회가 교회중심적 신학을 펼친다 한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교회에 가둘 수 있겠는가! 우리를 당신에게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신학생들을 거리로 부르셨다. 그리고 거리에는 아직도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걸어야만 했다. 교회 밖에는 고난이 있었고, 그곳에 하나님이 계셨다. 춥고 굶주린 자들과 함께 아파하며 싸우고 계셨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힘 있는 자는 자기 속에 살고, 즐거운 자는 자연 속에 살지만 슬퍼하는 자는 신(神) 안에 산다고 말했다. 슬퍼하는 자들의 길목은 외롭고 춥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다. 교회가 아무리 벽을 치고 막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그 싸움의 길로 인도하셨고 700명의 신학생들을 모이게 하셨다.

행진은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들로 이루어졌다

함께 부른 떼제 찬양은 교파를 초월한 현장에 가장 어울리는 노래였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실천기도모임 ‘은혜와 정의’에서 주도한 떼제 찬양은 짧고 간결한 언어의 반복으로 깊은 곳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느낄 수 있는 노래다. 그날 신학생들이 부른 진리의 언어들은 그들 가슴 속에서 용기가 되었고, 선포가 되었으며 소망이 되었다. 1) “두려워 말라. 걱정을 말라. 주님 계시니 아쉬움 없네”. 이 노래를 부르면서 우리는 용기를 품고 한 걸음씩 나아갔다. 경찰들의 방패 벽 앞에 섰을 때 신학생들은 평소보다 더욱 주님을 찾으며 노래를 불렀다. 2) “찬미하여라 거룩한 주 이름.” 우리는 하나님을 찬미했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찬미 받는 대상이 신이라는 것은 그 아래의 피조물들이 모두 낮아지는 동시에 우리가 찬양할 대상이 민중을 괴롭히는 권력이 아님을 선포하는 것이며, 낮은 존재인 줄도 모르고 위에서 작은 자들을 억압하는 권력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3) “주님의 날 다가오니 온 맘으로 기다리세.” 신학생들은 정의의 하나님이 승리하는 내일을 소망하며 걸었다. 우리는 주님의 날, 높은 자는 낮아지고 낮은 자는 높아지는 복음의 날을 기대했다.

   
▲ 사진: 황푸하 페이스북

장신대 친구들과 함께 ‘은혜와 정의’를 만든 이유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내가 처음 떼제 기도를 경험했을 때 느꼈던 것은 그 방을 가득 채웠던 평화의 공기였다. 아름다움이 신이었고, 신을 만난 위로와 저항적 삶을 향한 결단이 부드럽게 자리 잡았다. 한편, 아쉬웠던 것은 고난의 현장이 늘 차가운 소리로 채워진다는 사실이었다. 고난 현장에서 들리는 공사 소리, 깡패 용역들이 욕하는 소리, 경찰들이 벽을 치고 해산을 명령하는 소리, 고난당한 사람들의 울음소리는 늘 외롭고 차가웠다. 그래서 작은 방에 갇혀 있던 떼제 멜로디와 화음을 차가운 공간에 마주하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실천기도모임은 2016년 5월 재개발로 쫓겨나는 사람들과 함께 투쟁했던 옥바라지 골목의 차가운 냉기를 따뜻하게 데우며 우리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기도 했다. 이번 행진은 700명의 목소리로 만들어지는 떼제 찬양으로 채워졌다. 떼제 찬양의 평화로운 멜로디는 차가운 거리를 따뜻함과 용기와 결단으로 채웠다. 우리의 발걸음이 평화의 그리스도의 발길을 따라가게 되었다.

선두에는 십자가가 섰고 그 뒤로 성찬기가 따라갔다. 그리고 그 뒤로 신학생들은 촛불을 들고 걸었다. 촛불은 어둠을 밝히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리고 십자가가 선두에 서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따라가는가에 대한 답을 가리킨다. 신학생의 행진은 그 형태가 신학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학생 연석회의의 행진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상징으로 가득 채워졌다. 평화의 그리스도, 빛의 그리스도,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선두에서 행진 대오를 이끌었고, 우리는 주님을 따라갔다. 상징이라는 이미지는 우상이 아니다. 행진과 함께하는 그리스도의 상징은 이미지 후면에서 우리의 걸음을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게 해주는 체험의 공간이었다. 슬퍼하는 사람들이 외로운 거리를 주님과 함께 걸었다.

경찰이 우리의 길을 방패로 막았을 때 우리는 경찰을 등지고 주님의 살과 피를 함께 나눴다. 경찰의 방패는 우리를 향하여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해산하라는 명령을 퍼부었다. 날씨는 매우 추웠고, 우리는 지쳐갔다. 경찰에게 둘러싸인 우리는 두려움과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상황은 오늘날의 시국처럼 최악이었다. 그때 주님의 살과 피가 찾아왔다. “이 빵을 먹으라 생명의 양식 주신 주님, 이 잔을 마셔라 구원의 빛 비추시네.” 찬양을 부르며 신학생들은 성찬을 받았고 어지러웠던 감정들이 녹아내렸다. 폭력의 상황 한가운데 놓였을 때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성찬은 그야말로 임마누엘 그 자체였다. 성스러운 예전, 성찬 예식이 끝나고 다 같이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드렸다. 다른 교단, 다른 신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모두 한목소리로 주기도문을 크게 외쳤다. 주님의 피로 다시 한 번 하나가 된 신학생들은 주님의 한 줄기 목소리가 되었다.

하나님의 정의는 법 너머에 있다

“하나님의 정의는 법 너머에 있다.” 이 구호는 재개발 현장과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에서 일하는 옥바라지선교센터에서 외치는 구호다. 쫓겨나는 임차상인들과 가난한 원주민들은 합법적으로 아주 잔인하게 쫓겨난다. 현대사회의 제1의 가치는 자본이기에 자본을 위해서 부자들은 합법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자리를 빼앗는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자본보다 생명이 더욱 소중하지 않은가? 그 어떤 자본이나 법으로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가치다. 그렇다면 정의는 무엇인가? 성서가 가르쳐준 정의는 기득권을 쥔 권력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들에게 떡과 옷을 주는 것이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그들을 변호하는 것이다. 오늘날 법의 사각지대에서 죽어가는 민중들을 살리는 것이 정의라면, 법 또한 하나님의 정의를 닮아야 하지 않겠는가? 신비주의자 도로테 죌레는 합법화된 불의에 직면하여 복종을 요구당할 때 법률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과 정의를 존중할 것을 주장했다.

누가복음 13장에는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열여덟 해 동안 허리가 굽은 여인의 병을 고쳐주셨다. 회당장은 일할 날이 6일이나 있는데 왜 안식일에 병을 고쳤느냐며 화를 내었다. 예수님은 그들이 안식일에 가축들에게 물을 주는 방법을 이야기하셨다. 안식일에 일을 할 수 없었던 유대인들은 외양간을 열어 물을 먹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였던 이 여인도 안식일에 해방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수종병 환자를 안식일에 고치셨는데 그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서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에라도 당장 끌어내지 않겠느냐?” 예수님은 왜 안식일 법을 어겼을까? 예수님이 안식일에 법을 어겼다는 것이 단순히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무법자로 행동할 수 있다는 권한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안식일 법은 안식일에 일을 하면 죽임을 당할 만큼 무거운 법이었다. 간혹 어느 교회는 이 법을 근거로 일요일에 그 어떤 노동이나 소비 활동을 금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나는 어렸을 때 하나님이 참 융통성이 없고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안식일 법을 제정한 하나님이 진정한 신이라면 안식일에 죽음을 걸고 휴식을 강요할 때 그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나는 하루도 쉴 틈 없이 일을 해야 살 수 있는 가난한 노동자들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여유를 넘어서 호화스러운 휴식을 즐기더라도 그들의 곳간이 점점 더 차고 넘치는 부자들도 본 적이 있다. 자본이 자본을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노동자들은 끝없이 착취를 당하고 부자들은 부조리한 구조의 승자가 된다. 생존을 위해 안식일 법을 어기게 되는 가난한 사람들은 부정해지는 취급을 당할 것이며, 제때 휴식을 취하는 부자들은 거룩함을 입을 것이다. 누가 주는 추함이며 누가 주는 거룩함인가? 하나님이 주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만들어 낸 부조리한 사회가 주는 추함과 거룩함이 아닌가!

예수님은 죽음까지 내걸고 지켜야 했던 안식일 법을 공개적으로 어겼다. 그를 통해 예수님은 안식일 법이 가난한 자들을 죽이는 법이 아니라 노동자와 종들에게 휴식을 주며 그들을 살리는 생명의 법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안식일 법은 참 해방의 법이다. 병자들은 오랜 시간 병에 갇혀 있었다. 죄 때문에 심한 병에 걸렸다는 사회의 질타와 귀신들림 때문에 얻는 추함의 감옥에 갇혀 외로운 눌림 속에서 살아갔을 것이다. 이 감옥에서 해방되는 사건의 날은 안식일이 마땅할 뿐 아니라 가장 어울리지 않겠는가?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로 법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초월한 것이었다.

그렇다. 하나님의 정의는 법 너머에 있는 것이다. 현재에도 공권력의 폭력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를 말한다. 그리고 약자를 위하는 그 정의는 약자를 착취하는 법 또한 초월한다. 법치주의와 자본주의를 이용하여 공권력이 약자를 누르고 막을지라도, 우리가 그 폭력에 마주하여 쓰러지고 실패할지라도, 우리는 오늘도 그 실패에 동참할 것이다. 신학을 몸으로 살아내는 신학생들은 정의의 하나님을 반역한 권력을 향해 계속 행진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법 너머에 홀로 오롯이 서 있는 하나님의 정의를 신뢰하는 신앙이 있기 때문이다.  

황푸하
성공회대학교에서 신학과 신문방송학을 공부하고 현재는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공부중(M.Div.)이다. 옥바라지선교센터에서 문화국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아현 포차를 되찾기 위한 기도회를 매주 열고 있다. 2016년 6월 황푸하 1집 앨범 <칼라가 없는 새벽>을 발매, 음악 활동도 하고 있다. 

저작권자 © 복음과상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