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호 3인 3책]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 엄기호 지음 / 창비 펴냄

“존나 열심히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 근데 우린 열심히 안 하잖아.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몇 년 전 유튜브에서 본 어느 인디밴드 멤버의 성찰(?)이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된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던 시절이 있었다. ‘하면 된다’는 근거 없는 낙관, 자기계발 담론이 우리를 견인하던 시절 말이다. 불행하게도 현재 우리 사회는 그런 부질없는 낙관마저 사라진 폐허다.

“싸그리 망해버려라.”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의 저자 엄기호가 이 책을 준비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라고 한다. 세상은 어느덧 “우린 (열심히 안 하니까) 안 될 거야”를 한숨처럼 내뱉다가 ‘헬조선’이라는 세계를 고통스럽게 경험하며 모두 망하는 ‘리셋’을 꿈꾸게 되었다. 왜 ‘리셋’이냐고? 그나마 “이 가망 없는 사회에서 유일하게” 가능하고 공평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은 남녀와 노소, 좌우를 구분하지 않고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만큼 현재 우리 사회는 누가 봐도 ‘리셋’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상태로 진입했다는 뜻이다.

이 책은 그의 전작 《이것이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단속사회》 등이 그러했듯 우리 주변의 목소리를 통해 현상을 진단하며 대안에 접근한다. 저자는 “무기력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화가 나고, 화를 내도 세상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화가 난 상태에서 무기력”해지기를 반복하는 우리를 진단하며,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되었는지, 대안은 무엇인지 소개한다.

특히 존엄과 안전, 전환, 다시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3부의 내용은 우리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세월호’ 이후 극단적으로 드러난 시스템의 앙상한 몰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폭로한 총체적 전근대성의 양상은 우리 사회를 향한 ‘파산’ 선고와도 같았다. 이런 현실을 직면한 당혹감은 “이게 나라냐”라는 분노에서 “나라도 아닌 곳에서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라는 절망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저자는 “모두가 평등하게 존엄하기 때문에 삶의 전 공간에서 모두를 동료 시민으로 대하는 것, 이것이 새로운 사회를 만든다”고 제안한다.

나는 이 책을 특히 그리스도인이 새겨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종교를 가진 이들은 세상만사를 너무 쉽게 종교적 언어와 개념으로 환원하고 싶어 하지만, 나는 그 반대로 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동시대 인간에 관해 제대로 이해할 노력도, 언어도 가지고 있지 못하면서 세상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일이 얼마나 기만적인지 지겹도록 경험했기 때문이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닌데 모르는 걸 안다고 착각하고 자기 세계에 갇히는 건 죄다. 그런 무지는 세상을 나아지게 하기는커녕 믿음, 은혜 등의 용어로 포장하여 만들어낸 담론들이 얼마나 성공주의, 자기계발 담론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당위로 사용되었는지, 공동체를 지향한다고 하면서 얼마나 “서사적 주체”를 억압했는지 알지 못한 상태로 ‘생각 없이’ 살아가게 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오늘, 우리 사회를 가깝고도 두껍게 들여다볼 수 있는 참고서가 될 것이다. 새해를 시작하는 책 제목으로 이만큼 동시대적이고, 착 달라붙는 제목도 드물다.

오수경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지만 글쓰기 울렁증이 있고, 책을 많이 사지만 읽지는 않고, 사람을 많이 만나지만 부끄럼이 많고, 내성적이지만 수다스럽고, 나이 먹다 체한 30대, 비혼, 여성이다. 사훈이 ‘노는게 젤 좋아’인 청어람에서 열심히 일하는 척하며 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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