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호 레드레터 크리스천] 캄보디아 어린이책 펴내는 망고트리출판사 대표 이성욱 선교사

   
▲ ⓒ복음과상황 옥명호

모든 일의 시작은 어쩌면 아주 작고 소소한 데 있는지도 모른다. 학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그는 애초에 선교사를 꿈꾸지 않았다. 장신대 신대원 재학 중 ‘신학생 산업선교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한 게 시작이었다. 그 인연으로 캄보디아의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해 세워진 프놈펜직업기술학교에서 1년간 컴퓨터 교사로 봉사활동을 했다. 신대원 졸업 후 현지의 요청에 응해 두 번째 캄보디아행을 택한 그는 2년에 걸쳐 캄보디아 곳곳을 살피고 경험했다. 그리고 빈부에 구애됨 없이 캄보디아 사회 전체에 두루 유익한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어린이책 출판을 결심한다. 캄보디아 사회의 열악한 어린이책 출판 현실, 오랜 세월 이어져온 왜곡된 ‘카르마(업) 사상’의 굴레, 전도된 윤리의식(“남을 속여 성공하는 사람이 지혜롭다”)이라는 견고한 어둠의 성채에 작은 균열을 일으켜야겠다는 절박함이 일어서였다. 기독교 진리와 건강한 가치관을 담은 동화책을 통해서 말이다. 자신의 전공 분야는 노동선교, 산업선교라면서, 누군가 출판을 좀 더 전문으로 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다 넘겨주고 본연의 ‘미션’으로 돌아갈 생각이라는 이성욱(49) 선교사를 본지 회의실에서 만났다. 이 선교사는 인터뷰 자리에 자신이 대표로 섬기는 망고트리출판사에서 펴낸 캄보디아 어린이책을 들고 나타났다. 인터뷰는 지난해 말에 진행했다.

― 출판사 이름이 망고트리(Mango Tree Books)다. 어떤 의미인가?
큰 나무는 한 번에 2천 개의 열매가 열리고 한 달 넘게 차례로 열리면서 따 먹을 수 있는 게 망고나무다. 캄보디아의 60-70% 서민들은 평소 하루 두 끼만 먹는데, 끼니 사이에 먹는 게 바로 신망고, 소금에 절인 망고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접 밥을 주긴 어렵지만 허기를 없애주는 망고 같은 사람이 되기를,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이름이다.

― 인쇄된 책의 색감이나 품질이 상당히 좋아 보인다.
캄보디아는 저작권 유예국가로 분류돼 있다. 그래서 (저작권 계약 및 그에 따른 제반 절차가 없으니) 원화 데이터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출판물 자체를 직접 스캔해서 편집하고 인쇄 제작한다. 우리 장비 중에 가장 좋은 게 스캐너다. 색 보정이 필요 없이 거의 한국에서 인쇄된 색과 유사한 상태로 나온다. 스캔하다 일그러져 나오는 접지 부분은 스캔 후 일일이 보정 작업을 한다.

― 그 작업을 혼자 도맡아서 하나?
처음엔 내가 일일이 다 했지만, 지금은 캄보디아 직원이 있다. 일한 지 4년 정도 됐다. 그 덕분에 내가 안식년으로 잠시 나와 있을 때도 책이 한 달에 한 권씩 계속 나올 수 있었다. 그 직원이 번역도 하는데, 번역한 책을 안식년 중에도 내가 계속 감수를 해서 낸 거다. 캄보디아에는 아직 문학 번역 시장이 없다. “티끌 모아 태산” 같은 속담은 1차원적으로 직역해버리면 캄보디아에서는 의미전달이 잘 안되는데, 그럴 때 뜻이 잘 드러나게 보완하는 게 내 역할이다. 또 작가가 특별히 의도한 표현이 담긴 문장의 경우에도 번역상에 그 의도가 잘 담기도록 보완한다.

― 캄보디아에서 유치원이나 학교를 세워 교육 선교를 하는 경우는 꽤 본 적 있다. 왜 하필 출판을 선택했는지 궁금하다.
처음부터 출판을 생각한 건 전혀 아니었다. 학부 때 전공이 컴퓨터공학이었고, 신대원 졸업 후 산업선교 쪽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1998년 캄보디아에 처음 갔었다. 신대원 4학기를 마치고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하는 ‘신학생 산업선교훈련’을 일주일 정도 받았다. 당시 산업선교회 총무인 손은하 목사님이 프놈펜에 가서 일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손 목사님 언니가 프놈펜에서 1996년 시작한, 가난한 청소년을 위한 직업기술학교 교장으로 있었는데, 그 학교 컴퓨터반 수준이 낮은 상황이라 고장난 컴퓨터 수리도 못하고 있던 터에 나에게 제안했었다. ‘산업선교회 선배가 있는데 가서 일해 볼 생각 없냐’고. ‘선교를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선배가 계시다면 가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생전 처음 비행기를 타고 캄보디아로 향했다. 장신대에는 학교 공식프로그램으로 재학 중에 학업을 유예하고 선교지를 다녀오는 ‘견습 선교사’ 제도가 있다. 이 제도를 통해 1년 정도 머물렀다.

― 직업기술학교에 가서 컴퓨터를 가르친 건가?
학부 때 전공을 살린 셈이었다. 당시 캄보디아 사회에서 컴퓨터는 흔한 물건이 아니었다. 펜티엄급부터 시작했는데, 학생들은 마우스 만지기도 두려워했다. 내가 컴퓨터 교육을 하는 동안 컴퓨터반 수준이 상당 부분 올라가기 시작했다. 기초적인 컴퓨터 수리 정도는 다 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당시 나는 첫 해외 선교 경험인지라 선교 비전을 갖고 캄보디아 사회를 넓게 깊게 보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1년 단기선교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산업선교훈련을 받고 노동선교 현장을 섬겼다. 그러다 캄보디아로 다시 와달라는 요청이 왔고, 졸업 후 2년(2000-2001)을 캄보디아에서 지내며 그 사회를 찬찬히 둘러보게 됐다.

▲ ⓒ복음과상황 옥명호

― 그렇게 찬찬히 살펴본 캄보디아 사회에 새롭게 보인 면이 있었나.
프놈펜에서 컴퓨터를 배운다는 건 어려운 가운데서도 굉장한 혜택을 받는 경우였더라. 일부에게 혜택을 주는 것보단 캄보디아 사회 전체에 유익을 주는 일이 뭘까 생각을 하다 보니 출판 생각이 들었다. 그때 캄보디아에서 단 한 권의 어린이 책도 발견하지 못했었다. 수도인 프놈펜에서조차 내가 어린이책을 처음 본 게 2002년 7월이던가,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는 NGO 단체에서 일회성으로 낸 책이었다. 지뢰 문제를 가지고 평화를 말하는 어린이책이었다. 그리고 2002년 말에 한 권 더 나왔다. 당시에는 교과서도 일본의 원조기금으로, 태국에서 인쇄·제작해서 들여왔다. 학기 초에 배부한 뒤, 학기말에 다시 수거해서 이듬해 새 학기 때 학생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자기 책을 갖고 공부할 수 없었던 거다. 그래서 출판을 생각한 건데 당시는 내가 목사도 아닌데다 신학교를 갓 졸업했으니 동기들에게 후원 요청할 형편도 못 됐다. 그래도 혹시나 이런 취지에 공감해서 후원이 들어오면 바로 출판을 할 생각으로, 컴퓨터반 학생들에게 전자출판도 가르치고 학교신문도 편집 제작해서 학생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 2년 동안은 결국 출판은 하지 못했다.

― 그럼 어떻게 출판을 시작하게 되었나.
다시 한국에 되돌아와 산업선교회 일을 했는데, 2008년에 캄보디아에서 일하자고 권유가 또 왔다. 후원 교회도 다 마련되어 있으니 몸만 오면 된다면서. 그래서 후원 교회 단기선교팀과 함께 2008년 초 캄보디아에 들어갔다가 혼자 남아 4-5일 정도 그 사회를 다시 둘러보았다. 역시나 어린이 책을 찾아보았지만 여전히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어린이 책이 50종이 안 되더라. 그때는 캄보디아어로 말을 할 수 있었는데, 정작 캄보디아어로 된 글을 읽거나 쓰지는 못했다. 그래서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당연히 어린이책을 구해서 읽었다. 이제까지 나온 그림책을 읽어보니 내 윤리의식과 사고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교훈’을 담고 있었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 민담을 담은 어린이 그림책에 거짓말로 남을 속이는 토끼가 굉장히 영리한 동물로 묘사돼 있었다.

― 그 이야기를 좀 더 들려달라.
토끼와 떡장수 할머니 이야기가 있다. 토끼가 길을 가다 할머니를 만나서 떡 하나 주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할머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떡만 다 빼앗기고, 배부르게 먹은 토끼는 도망친다. 캄보디아 출판사가 이 이야기의 교훈이라며 책 맨 끝에 요약해놓은 내용인즉 “이 이야기의 교훈: 토끼의 영리함을 배우자”였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한 아이가 엄마에게 크게 혼날 짓을 했는데, 거짓말로 매 맞을 일을 모면했다. 그 아이는 거짓말을 하니 좋은 일이 생기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렇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는데, 결과적으로 일이 잘 풀리고 지역 관청에서까지 일을 하게 된다. 나중엔 다른 나라를 상대로 거짓말을 했는데, 결국 재상에 오른다. 이 이야기의 교훈 역시 황당한데 주인공의 이름까지 넣어서 “○○○의 임기응변을 배우자”라고 되어 있다.

― 굉장히 충격적이다.
그 사회를 들여다보면 무리도 아닌 것이, 캄보디아에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책임지는 리더십이 존경받는다. 제 식구를 책임 못 지면 결코 올바른 리더십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여기서 책임은 공공적인 성격과 거리가 멀다. 예를 들면, 캄보디아는 공무원 급여가 굉장히 낮아서 부정부패로 생계에 필요한 나머지를 채우는데, 조직적으로 이른 바 ‘삥’을 뜯어서 모은 수입으로 수하 경찰들 주머니를 다 채워주는 경찰서장이 존경받는 ‘책임지는 리더’인 거다. 이렇다 보니 외국인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삥을 뜯기도 한다. 나도 아내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가다가 여권이 든 가방을 날치기 당한 일로 경찰서를 네 군데나 들렀는데, 문제 해결보다는 여권 재발급 과정에서 돈을 요구하더라. 이런 일이 캄보디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진다. 오히려 공익적이고 정직하면 능력 없다고 비난받고 자리를 유지하기 힘들다. 지인 중에 캄보디아 노동부 장관이었던 분이 있는데, 부정을 저지르지 않으니까 직원들이 생계를 위해 오전에만 업무를 하고 오후엔 자기 밥벌이 하느라 다른 일로 바빴다. 결국 그분은 능력 없는 상사로 비난당했고 자리를 오래 유지하기 힘들었다.

― 단지 생계의 문제 때문인지, 아니면 더 깊고 오랜 사상적 문화적 요인이 깔려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다.
내 해석으로는, 이런 상황의 배경엔 카르마, 곧 업보 사상이 깃들어 있는 거 같다. 전통적인 힌두교적 카르마 사상을 지녔는데, 자신이 거짓말이나 부정부패를 통해서 잘되더라도 그건 모두 전생에 덕을 쌓은 이유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카르마 세계관이 아이들이 보는 동화책에도 녹아 있다. 이렇다 보니 장애인들은 아예 집밖으로는 못 나온다. 그들은 전생의 업보 때문에 장애인으로 태어났다고 여겨서 함부로 대하는 거다. 카르마 의식의 단적 예가, 캄보디아 지식인들이 자기 나라를 가리켜 “껌뿜찌어”라고 하는 말에서도 나타난다. 이 말은 ‘더 이상 나아질 운명이 아닌 나라’라는 의미다. 내전과 학살, 독재체제로 인해 절망적인 자기 나라를 자조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이 단어 자체에 카르마 의식이 짙게 들어가 있다. 이런 의식이 자연스럽게 아이들 그림책에까지 녹아들어가 있다.

― 어린이책 출판을 통해 카르마 의식을 변화시키려는 목적도 있는 건가?
그걸 단지 틀렸다고 할지, 아니면 오랫동안 내려온 문화적 결과물로 봐야 할지, 쉽게 평가하기는 어렵다. 무조건 틀렸다고 판단 내리는 건 자칫 문화 우월주의일 수도 있지 않나. 그래서 조심스럽다. 그렇다 해도 계속 카르마에 갇혀 있으면 캄보디아 사회가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함께 살아가기 어려울 텐데, 다른 세계관도 있다는 걸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아이들 책을 내기로 한 것이다. 기독교적 가치를 담은 고전물이나 보편적 윤리를 담은 책 말이다. 또 캄보디아가 전쟁(내전)을 오래 겪은 나라여서, 평화 관련 책을 많이 펴내고 있다.

― 학교나 교회를 개척하면 후원받는 데 유리한 측면이 있지 않은가. 어린이 책 만드는 일에 공감하고 후원하는 곳이 있는지.
어느 시골 마을 아이들 네 명의 심장병 수술을 한국과 캄보디아에서 해준 게 인연이 되어서 가게 된 적이 있다. 후원 교회쪽에서는 교회 후원으로 수술해줬으니 거기 교회를 개척하면 좋겠다고, 개척 후원금이 들어왔으니 빨리 땅을 사라고 했다. 난 그런 방식이 의문이었다. 당시 주민 중에 민주화운동하시던 분이 해외 거주 캄보디아인 기금을 받아 교실 3개짜리 학교를 지은 터였다. 그분은 반정부 발언으로 구속당하기도 했다. 마을 주민들과 유대가 잘 형성되어 있었기에, 주일에만 학교를 임대해서 교회로 사용하면서 학교에 기여하는 방식을 교회 측에 제안하니 싫다고 하더라. 그래서 교회를 지어도 캄보디아인들이 자기 신앙을 가지고 스스로 헌금해서 모은 돈으로 짓는 게 좋겠다 했더니 그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금 후원 교회 대다수는 산업선교회로 연결된 작은 교회들이다.

― 해보지도 않은 일로 뛰어든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엿보인다.
2008년에 갔을 땐 교단 파송을 받은 거여서 2년간은 언어 공부에 전념해야 했다. 2011년부터 프놈펜에서 출판일을 시작하는데, 시행착오가 많았다. 출판에 대한 것도 전혀 모르니 바닥부터 알아가는 과정이 녹록치 않았다. 캄보디아엔 출판법 자체가 없어서 자영업으로 등록되어 있다. 지금까지 47종의 책을 펴냈고, 48번째 책은 인쇄 직전이다. 대부분은 해외 NGO 관계자나 선교사들이 우리 사무실로 직접 와서 구매한다. 오직 출판에만 전념하면 달마다 세 권은 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나는 캄보디아 내 다른 사회적 문제에도 참여한다. 프놈펜만 해도 현지 주민들 가운데 불합리한 철거 문제로 주거권을 위협받고 쫓겨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거기서 철거 반대 투쟁을 진행하면서 어린이 프로그램 지원을 나가기도 한다.

― 망고트리에서 펴낸 책들에 대한 현지 반응을 접하기도 하나.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은 선교사들이 전해주는 정도다. 사실, 캄보디아엔 출판·독서 문화라고 할 게 없다. 《강아지 똥》 같은 책을 대학생들이 서로 생일선물로 줄 정도다. 워낙 책이 없는데다, 대학생들도 복잡한 스토리나 액자 구조식의 이야기는 이해를 잘 못한다. 그러니 <아바타> <매트릭스> 같은 영화를 좋아하지도 않고 이해도 잘 못한다. 단순하고 명확한 이야기 구조에 겨우 반응하는 정도다. 이들은 살면서 이야기 구조가 복잡한 중단편 이상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다. 이런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 해도 내용을 정확하게 요약해서 정리해내는 경우가 드물다.

― 1차 독자라고 할 수 있는 직원 반응은 어떤가? 책에 대한 현지인의 반응을 출판 과정에 계속 반영하는 것이 중요할 텐데….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번역할 당시, 직원이 “나는 이런 이야기는 싫다”라고 하더라. 그런 점에서 독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 부분을 시도할 생각이다.

   
▲ ⓒ복음과상황 옥명호

― 어떤 독서 교육을 말하는 것인가?
캄보디아엔 전생의 잘못으로 현재의 처우를 받는다는 카르마 사상이 강해서 친한 친구끼리 상처받은 것이 있어도 서로 이야길 안 한다. 아내가 여기서 한국어를 가르쳤는데 학생들이 정말 자기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런데 현지 신문엔 한 달에 한두 번씩은 큰 사건사고가 올라온다. 옛 연인의 결혼식장에 가서 폭발물을 던졌다는 사건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 억눌려온 감정이 폭발하는 사고들이 아닐까. 어릴 때부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우리가 내는 책들이 그 통로가 되길 바란다. 이곳에서 사실 독서 지도라는 건 낯선 문화일 수 있다. 매뉴얼을 만들고 기본 토대부터 마련해나가려고 한다. 올해는 여러 선생님들을 모아서 독서 지도 과정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삼으려고 한다.

― 앞으로 더 꿈꾸는 일이 있다면?
책을 토대로 캄보디아어로 구연동화를 만들어 MP3 파일로 보급하고 싶다. 캄보디아에는 유선전화가 없고 모두 무선전화를 쓰는데, 무선전화로 MP3를 듣는 기능이 있다. MP3 구연동화를 시골에 보급할 수 있으면 좋겠다. 책을 시골까지 다 보낼 수는 없으니까. 캄보디아 문맹률이 20% 정도라는데, 캄보디아 인구의 80%가 거주하는 시골로 들어가면 그 비율은 훨씬 높아진다. 여러 구상과 고민은 있는데, 그런 작업들을 역량 있는 분들이 함께해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에는 화가는 있지만 그림책 전문 일러스트레이터는 없는데 이 일에 합류해주실 분이 있으면 좋겠다. 내 전공은 사실 산업선교니까, 능력 있는 분들이 지금 일을 맡아준다면 나는 산업선교에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아직 캄보디아에는 팝업북(pop-up book)이 없는데, 대인지뢰 피해를 입은 장애인들과 함께 팝업북을 만들어서 그들의 자립도 돕고 싶다. 이 일에도 역시 전문 디자이너가 필요하다. 참여하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생활비 문제는 방법이 있을 것도 같다. 코이카(KOICA)나 정부지원 프로젝트를 통해서 지원받을 수도 있다. 캄보디아 어린이들에게 좋은 책을 보급하고 계속 펴내고자 하는 열정만 있으면 어떻게든 함께할 방법이 있을 거다. 복상 독자 가운데는 혹시 그런 분들이 있지 않을지….

■ 망고트리 출판사 이메일 : scapirit@hotmail.com
■ 후원계좌 : 신한은행 56100-198-298798(이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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