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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힐 수렁에서도, 저항의 광장에서도
[316호 내 인생의 한 구절]
[316호] 2017년 02월 22일 (수) 17:00:12 장석윤 나드림교회 담임목사 goscon@goscon.co.kr

#1. 기가 막힐 웅덩이
숨가쁘게 움직이는 의료진의 손길, 복잡한 응급실 한구석에 임시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을 내보내고는 주렁주렁 빨간 피를 매달아 놓는다.

“장석윤 씨,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장석윤 씨,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마세요.”


차분하고 조용한 나와는 달리 여러 의료진들의 당부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건강한 성인에 비해 적혈구 수치 2분의 1, 백혈구와 혈소판 수치 10분의 1. 평소 숨이 차고 멍이 들고 피가 멈추지 않는 일들이 잦아 아산병원 응급실을 찾은 터였다.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샘솟듯 잇몸 사이로 피가 계속 흘러 나와 입속 한가득 핏덩이와 비린내가 진동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입이 헤지니 간단한 세균 감염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복잡한 응급실이 아니라 병실을 마련해야 했다. 지인들을 총동원하고 의료진들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차에 6인실 병실 자리가 났다는 연락이 원무과에서 왔다. ‘누구의 도움일까?’

올라가 보니 가장 좋은 창가 자리가 비어 있었다. 보통은 병실에 있던 환자들이 들어 온 순서에 따라 좋은 자리를 맡는 법인데 이상했다. 어쨌든 나는 나에게 꼭 필요했던 깨끗한 병실 창가 아늑한 자리에 누워 숨가쁘게 몰아친 하루를 쉴 수 있었다. 나중에 듣게 된 사실은 이 자리 환자분이 오후에 갑자기 돌아가셔서 나게 된 자리란다. ‘그랬구나.’

그러고 보니 차갑게만 보였던 흰색 시트가 외려 따뜻하게 느껴진다. 너라도 꼭 살아내라는 돌아가신 분의 선물 같았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누군가는 산다는 사실은, 이처럼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지 않다. 그저 은혜로 주어진 이 따뜻하고 깨끗한 침대 공간에 누운 것처럼 내 몸과 맘을 신뢰하는 그분께 맡기고 쉬는 것이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시 40:1-2)

많은 일들이 있었던 그날은 공교롭게 만우절이었다. 약물투여, 주사요법, 그리고 최종 골수이식까지.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면서 정말이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처럼 거짓말 같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치료할 방법은 없고 희귀 난치성 혈액질환인 나에게 3개월의 짧은 시간만이 주어졌다.

몇 개월 후, 정말 몸에 이상이 느껴졌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과 얼굴 전체에 출혈이 생겨난 것이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멍이 번져가고 뇌출혈이 걱정되는 상황에서 또 다시 응급실로 달려갔다. 역시나 지혈에 필요한 혈액은 여름 휴가철에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여러 곳에 혈액을 주문해 놓고 담당의사는 오늘 위험할 수 있으니 가까운 분들 오시게 해서 준비하라고 했다. 덕분에 응급실에 찬송가와 기도 소리가 나지막이 울렸다. 소위 말하는 임종을 준비하는 예배였다. 부모님과 가까운 성도 몇몇 분이 오셔서 내 침대 주위에 빙 둘러서서 흐느끼며 기도하셨다. 눈물의 간구가 뒤섞인 처절한 그 날 오후 내내 시편 40편의 말씀을 떠 올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계속 이 말씀을 되뇌었다.

저녁 무렵 요란한 구급차 사이렌 소리와 더불어 열 명분의 혈액이 도착했다. 그 후 두 달여의 입원 기간은, 몸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는 의지의 확신을 넘어서 마음속에 참평화가 임했던 특별한 시간들이었다. 그랬다. 생명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첫 일성(一聲)이 두려워 떠는 제자들을 향한 평강의 선포였다는 사실을 한참 뒤에 성경을 읽으며 알았다.

성경을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 20:19)

   
▲ 나드림 교회, 이 공동체는 새롭게 산 내게 하나님이 주신 열매요 선물이다. (사진: 장석윤 제공)

#2.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이
 극적인 사건들을 접하면서 모든 문제를 믿음으로 잘 이겨낼 것 같았지만, 문제는 전혀 변하지 않는 매일을 살아내는 일이었다. 여전히 온 몸에 멍과 수혈 부작용이 있고, 몇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차는 체력, 종일 입안에 머금은 피까지. 더군다나 잠을 자다가 내부 장기출혈로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불면증으로 수면제를 복용하는 환우들도 많았다. 이렇게 일상의 두려움과 싸우는 일은 크고 작은 기적을 경험한 나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매일이었으니까.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시 92:1)

매일 밤 자기 전 이 말씀과 찬양을 부르고, 또 매일 아침 눈을 뜨고선 누구와 시간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이 말씀과 찬양을 불렀다. 그리고 내 방 구석진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찬란한 아침의 빛을 보며 오늘도 살게 하심에 감사기도를 드렸다. 자다가 죽을 수 있는 사실을 잊고 평안히 잔다는 것, 아침마다 새날을 주심을 찬양한다는 것은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라는 특별한 은혜였다. 이런 예배가 내 삶에 또 있을까? 매일 생명을 의탁하고 그 생명 주심에 감사하는 예배, 생명을 드리는 삶의 예배. 이러한 경험은 내가 이제껏 생명과 예배라는 주제에 천착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3년간 집과 병원을 숨 쉴 사이 없이 오간 지난한 과정들을 톺아보니 감사와 은혜의 연속이었다. 만약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지시고 내 걸음을 반석 위에 두지 않으셨더라면, 만약 내 마음에 참평안이 없었더라면, 만약 매일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노래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기도하는 부모님과 아내가 없었더라면….

말씀이 나를 일으키고 세우심은 분명하다. 아울러 주께서는 그 생명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사는 사람을 통해서도 역사하셨다. 그렇다. 나에게 말씀은 그 말씀대로 사는 삶과 사람을 통해 능력이 되었다.

#3. 나드림(NADREAM)
생명에 대한 집착은 이제 직업병(?)이 되었다. 사역자가 되어 외적 부흥을 경험하고 청년들을 양육하면서도 늘 이 질문이었다.

살아 있는 공동체, 생명의 말씀으로 힘입어 타자를 사랑하고 연약한 이웃들을 환대하고 그들과 연대하는 공동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로마서의 이신칭의라는 관념적 언어가 부활의 능력으로 새생명 가운데 행하는 삶(롬 6:4)의 요청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게 된 그 무렵이었다. 나드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를 드린다는 의미와 나의 꿈이 그분께 있다는 이름의 나드림. 로마서 12장의 말씀을 따라 우리의 존재를 흠이 없는 제물로,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으로 드리는 교회를 꿈꾸며 오르간학원, 카페, 어린이집을 거쳐 지금은 사당동에서 선교한국과 공간적 연대를 통해 성숙한 나눔을 이어 오고 있다.

내 몸을 드린다는 것, 이 하찮은 몸뚱이가 제물이 되어 세상 속에서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감을 통해 우리의 존재를 선명한 예배로 드리는 이 공동체는 하나님이 새롭게 산 나에게 주신 열매요 선물임에 틀림없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 6:6)  

더 정성을 드려 예배하는 것이 온전한 예배라 착각한 이스라엘에게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결여가 문제라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의 관심과 선택은 늘상 더 큰 정성, 더 많은 헌신, 더 큰 것, 더 쎈 것을 사모하는 방식으로 옮겨 간다.

사실 극적 체험을 통한 강력한 ‘한 방’(간증)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끊임없이 유혹이 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바로 간증의 권력화다. 더 큰 기적, 더 큰 은사, 더 큰 헌신, 더 센 체험을 한 사람은 교회 내에서 보이지 않는 권력과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이 힘에 대한 유혹은 방송국의 배틀 프로그램처럼 상대방의 아픔을 내 기준으로 재단해 그 아픔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내고선, 더 센 체험을 경험한 사람이 등장할 때까지 폭력적인 방법으로 체험과 은혜의 메시지를 휘두른다. 작금의 우리, 아니 나에게도 더 큰 간증, 더 센 체험은 힘의 논리로 작용해서 성도들을 자유케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정죄하고 더 교회 안에만 머물도록 옥죄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기에 늘 조심스럽다.

그렇다. 인애는 이웃을 향한 사랑의 방식이고 그 이웃을 향해 팔을 벌리신 하나님을 아는 출발이 된다는 점에서 더더욱 은혜의 크고 작음으로 우리네 신앙과 믿음을 줄 세우지 않았으면 한다. 나아가 청년들을 향한 ‘노오력 부족’이라는 기성세대의 채찍질은 스펙과 믿음을 개개인의 내면을 더 채우는 방식으로 시선을 옮기게 만들어 정작 사회구조악은 외면하고 복음의 공공성과 연대를 희석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자극적인 간증 배틀이나 저잣거리의 성공담을 버리고 하나님을 힘써 아는 일에 우리의 시선을 두면 좋겠다.

#4. 진리로 공의를 베푸실 것을 기대하며
2014년 4월 이후 팽목은 나에게 길갈(Gilgal)이 아니라 갈기갈기 찢겨진 생채기 같은 곳이 되었다. 십수 년 청년들을 이끌고 다녔던 낙도 수련회가 바로 이곳 팽목에서 출발한 사역이었기 때문이다. 몇 날을 고생하고 각자의 섬에서 나와 서로 안고 울며 기뻐하던 기억이 선명한 자리에서 304명의 희생자와 9명의 미수습자를 기리는 분향소와 가족들을 마주하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온전한 선체인양과 진상규명, 관련자 처벌이라는 상식적인 요구가 이토록 어려운 것일 줄 그때는 몰랐다.

광화문과 팽목, 안산을 오가며 추모하고 기억하고 저항한 시간들 속에서 순수하지 못한 목회자라 의심받고 손가락질받던 그 무렵 붙잡았던 말씀은 시편 72편 4절이다.

저가 백성의 가난한 자를 신원하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시 72:4)

 도무지 보일 것 같지 않은 처절한 울음과 비통함 속에서 그분의 부재라 느낄 만큼 우리의 신앙이 온통 헝클어진 그 상황 속에서 이 말씀은 나에게 위로요 소망이었다. 뜨거웠던 광장이 다시 눈보라로 덮이고 다시 봄이 찾아오길 세 번째. 탄핵 정국과 맞물려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는 사랑에 힘입어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외치는 그 현장에 오늘도 서 있다.

예배당이라는 울타리를 넘는다는 것, 저 광장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복음을 진정으로 안다는 것이다. 이웃을 외면함으로 주어지는 내적 충만함과 자기만족을 버리고 고통과 아픔을 오롯이 느끼며 서 있는 힘은 이 말씀을 아는 힘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사 42:3)

올 한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회복될 것을 기대한다. 연약하고 상처투성이인 우리를 여전히 아시고 사랑하시는 그분께서 주실 것들을 기대한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 그분께서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을 기대한다. 패역한 세상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낙심하지 않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주께서 도우시길!

 

장석윤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다 새로운 부르심을 받고 신학교에 편입, 한국성서대와 안양대 신대원을 거쳐 2010년 한독선연(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지금은 사당동에서 잘 먹고 뜨겁게 사랑하며 삶으로 예배하는 공동체, 나드림교회를 유쾌하게 섬기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 하나님의 선물 수아(중1), 새순(초4)이와 경기도 양평 서종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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