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호 내 인생의 한 구절]

#1. 기가 막힐 웅덩이
숨가쁘게 움직이는 의료진의 손길, 복잡한 응급실 한구석에 임시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을 내보내고는 주렁주렁 빨간 피를 매달아 놓는다.

“장석윤 씨,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장석윤 씨,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마세요.”

차분하고 조용한 나와는 달리 여러 의료진들의 당부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건강한 성인에 비해 적혈구 수치 2분의 1, 백혈구와 혈소판 수치 10분의 1. 평소 숨이 차고 멍이 들고 피가 멈추지 않는 일들이 잦아 아산병원 응급실을 찾은 터였다.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샘솟듯 잇몸 사이로 피가 계속 흘러 나와 입속 한가득 핏덩이와 비린내가 진동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입이 헤지니 간단한 세균 감염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복잡한 응급실이 아니라 병실을 마련해야 했다. 지인들을 총동원하고 의료진들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차에 6인실 병실 자리가 났다는 연락이 원무과에서 왔다. ‘누구의 도움일까?’

올라가 보니 가장 좋은 창가 자리가 비어 있었다. 보통은 병실에 있던 환자들이 들어 온 순서에 따라 좋은 자리를 맡는 법인데 이상했다. 어쨌든 나는 나에게 꼭 필요했던 깨끗한 병실 창가 아늑한 자리에 누워 숨가쁘게 몰아친 하루를 쉴 수 있었다. 나중에 듣게 된 사실은 이 자리 환자분이 오후에 갑자기 돌아가셔서 나게 된 자리란다. ‘그랬구나.’

그러고 보니 차갑게만 보였던 흰색 시트가 외려 따뜻하게 느껴진다. 너라도 꼭 살아내라는 돌아가신 분의 선물 같았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누군가는 산다는 사실은, 이처럼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지 않다. 그저 은혜로 주어진 이 따뜻하고 깨끗한 침대 공간에 누운 것처럼 내 몸과 맘을 신뢰하는 그분께 맡기고 쉬는 것이다.

구독안내

이 기사는 유료회원만 볼 수 있습니다.

후원구독, 온라인구독 회원은 로그인을 해주시고 인증 절차를 거치면 유료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후원구독(월 1만 원 이상), 온라인구독(1년 5만 원) 회원이 아니시면 이번 기회에 〈복음과상황〉을 후원, 구독 해보세요.

저작권자 © 복음과상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