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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청소년들에겐 ‘엄마의 자궁’이 필요합니다”
[레드레터 크리스천] 길거리 청소년들과 더불어 밥 먹는 ‘써나쌤’ 오선화 작가
[318호] 2017년 04월 19일 (수) 15:13:00 오지은 기자 ohjieun317@goscon.co.kr
   
▲ 오선화(39) 작가 ⓒ복음과상황 이범진

오선화(39) 작가를 홍대 인근 카페에서 만난 건 원래 가벼운 독자 인터뷰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의 사사로운 삶을 하나씩 더듬어가다 어느덧 인터뷰는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본업이 동화 작가인 선화 씨가 우연히 길거리 청소년들의 ‘품’이 되고 ‘밥’이 되어주기 시작한 건 6-7년 전 놀이터에서부터였다. 그들에게 ‘오늘’의 양식이 되어 주고, ‘엄마’의 품을 빌려주었다. 그렇게 그는, 채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기성세대가 만든 나쁜 사회의 소용돌이 속에서 꽃봉오리를 희생당하는 성장기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숨을 틔워 주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밥이 제일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하는 선화 씨를 아이들은 ‘써나쌤’이라고 부르고 선화 씨는 아이들을 ‘내 새끼’ ‘우리 새끼’라고 부른다.

― SNS를 보니 ‘청소년들과 밥 먹는 사람’으로 소개되어 있던데요.
말 그대로 청소년들과 밥 먹는 사람이고, 그들에게 밥 먹일 돈을 벌어요. 대학에서 소설을 전공했고, 동화 작가예요. 대학 졸업 후 결혼을 했는데 임신을 하고 우울증을 겪으면서는 태교 동화를 쓰고, 작은 태교학교를 만든 적도 있고요.

― 왜 청소년들과 밥을 먹게 됐나요.
그냥 어느 날 동네 놀이터에서 껄렁껄렁한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중에 치킨 먹고 싶다는 소리가 들려서 “치킨 사줄까” 물은 게 시작이었어요. 그렇게 만나게 된 친구들과 계속 밥 먹고 만나면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애들이 배고프면 나를 찾아와요. 한 6년 정도 됐네요. 치킨을 매개로 교회로 불러서 교회 안에서 반을 만들어 아이들을 돌보기도 했어요. 어떻게 이렇게 아이들이랑 연결이 되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서 하나님한테 묻기도 했지요.

― 교회로 전도를 한 건가요?
치킨 사준다고 하면 만나주니까 교회로 불렀어요. 그런데 아이들을 교회에 부르고 보니 (그전엔 나도 몰랐는데) 교회에 폭력적인 요소가 너무 많더라고요. 예를 들면 ‘중등부’ ‘고등부’로 나누고, 다시 학년별로 아이들을 나누는 경우만 해도,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상처에요. 제가 대학 운동권 출신이었는데, 운동하던 레이더가 교회에서 다시 세워졌어요.(웃음) 그 안에서 풀뿌리 운동(?)을 하기로 했고요.

― 교회 내 풀뿌리 운동이라고요?
교회 안에서 시선이 안 좋았어요. 소위 ‘날라리’ 아이들을 데려온 것도, 같이 다니는 것도 눈총을 받았어요. “누가 비전 없는 청소년들을 데리고 왔느냐” 하는 분도 있었고요. 욱 하는 에너지로 교회에 새로운 반, 학년 없는 ‘비전반’을 만들었죠. 첫 비전반 아이들은 이제 다 청년이에요. 군대도 가고, 직장 다니는 아이도 있고, 해외에 있는 아이도 있고, 신학대에 간 친구도 있어요. 수감되거나 연락이 끊긴 아이들도 있고요.

   
▲ "교회 안에서 시선이 안 좋았어요. 소위 ‘날라리’ 아이들을 데려온 것도, 같이 다니는 것도 눈총을 받았어요. “누가 비전 없는 청소년들을 데리고 왔느냐” 하는 분도 있었고요." ⓒ복음과상황 이범진
   
▲"사실 아이들을 교회로 데려가는 게 갈수록 회의적이에요. 지금은 교회 밖에서 만나고, 찾아가서 드리는 예배를 드려요. 제가 교회 선생님인 건 밝히지 않고 만나는 아이들이 더 많아요." ⓒ복음과상황 이범진

― 교회에 적응하기 힘든 친구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교회의 굳어진 체제에 실망하고 떠난 친구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하나님을 아직 잘 모르겠다며 떠났다면 더 많은 가능성이 있을 것 같은데, 교회 자체에 반감이 생기는 경우는 상처가 더 클 거예요. 저 말고, 청소년 일을 하는 다른 분들도 힘들어 하는 부분이에요. 예를 들면, 요즘에는 아빠나 엄마가 없거나, 혹은 아빠나 엄마가 바뀌는 일은 매우 흔하잖아요? 결혼식을 보는 것처럼 흔한 경우죠. 그런데 아직까지 교회 안에는 드문 일이에요. 아빠와 성이 다른 아이가 교회에서 무언가를 작성하다가 그 사실이 알려져서 부담스런 시선을 느끼고 떠난 사례도 있어요. 교회는 정말 많이 굳어져 있지요. 사실 아이들을 교회로 데려가는 게 갈수록 회의적이에요. 지금은 교회 밖에서 만나고, 찾아가서 드리는 예배를 드려요. 제가 교회 선생님인 건 밝히지 않고 만나는 아이들이 더 많아요.

― 장소 없이 만나는 게 쉽진 않을 텐데요.
대림동에 원룸을 얻어 사랑방을 운영한 적도 있어요. 청소년들이 쉬기도 하고 상담도 하고, 엄마 아빠가 싸워서 오갈 데 없으면 와서 자고 갈 수도 있게요. 지방에서 자해하고 찾아오는 친구들도 있어서 재울 수 있는 공간으로 썼어요. 한 편으론 (우리집이 좁기도 하지만) 이 일을 지속적으로 하려면 내 가정을 지키면서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같은 공간을 쓰면 가족들이 힘드니까요. 우리 애가 둘인데 어릴 때부터 청소년들이랑 같이 컸어요. 동네 언니 오빠가 가방도 다 들어주고, 재미있게 잘 컸죠. 날라리들이랑 애들을 놀게 하면 어떡하느냐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질문을 듣고서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구나’ 놀랐어요. 이 친구들이 계속 들락날락거리는 걸 집주인이 안 좋아해서 결국 쫓겨났죠. 지금은 카페에서 만나기도 하고, 놀이터, 치킨집 등에서 만나고 있어요. 때론 공간을 빌려주는 분들도 있고, 지금은 그들이 부르는 곳으로 제가 가지요.

― 그런 식으로 옮겨다니기가 불편하진 않나요?
이렇게 게릴라식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게 저한테는 맞는 방식이에요. 하나님과 나만 하는 일로, 야인처럼, 광야성을 띠고 하는 게 좋아요. 교회에서도 해보고 공간을 따로 만들어보기도 했는데, 오히려 견제하는 분들도 생기고요. 지방 아이들도 있는데, 제가 있는 곳으로 오게 하는 것보다는 찾아가는 게 더 맞아요. 우리 ‘새끼’들 중에 공고 다니면서 지금 기술사 자격증 준비하는 친구가 있는데, 바빠서 예배를 못 드렸다고 해서 한동안 밤에 만나서 치킨집에서 조용히 예배를 드렸어요. 콜라로 애찬하면서요. 그 예배가 가장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그 예배가 정말 좋았죠. 정해진 공간 없이 제가 찾아가는 게 좋아요.

― 그 친구들 ‘법 먹일’ 돈 벌려고 일한다고 했는데요.
‘하나님, 우리 새끼들 치킨 값은 벌게 해주셔야죠’라고 하나님한테 계속 말했어요. 책 인세나 대학 선배들이 알바로 주는 잡지 외주기자 일로는 돈이 안 되니까요. 그러다 청소년 강의가 처음 들어오고, 학교에서도 특강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청소년들에게는 사실 전문 강사보다는 자기들 마음을 아는 사람, 그들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교회도 새 친구 축제 같은 거 할 때 일반 기독교인 강사를 찾다가 제가 쓴 책들을 보고 연락해와요. 그런 식으로 연결되어 강의를 나가요.

   
▲ "‘혼밥’ ‘집밥’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는 것도, 서로 어울려 함께 밥 먹는 일이 그만큼 결여되어 있다는 방증이지요.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더욱 강퍅해진 거 같아요. 애들 만나다 보면 밥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더 들죠. 제 정체성은 ‘같이 밥 먹는 사람’이에요." ⓒ복음과상황 이범진

― ‘밥을 같이 먹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밥이 가장 중요해요. 저도 청소년기를 암울하게 보냈어요. 어머니가 남대문 새벽시장에서 장사를 했고, 아버지는 음주가무에 워낙 능하신(웃음) 분이라서 어릴 때부터 혼자 밥 먹는 일이 많았거든요. 동생들도 다 챙겨야 했고요. 밥이 공평함의 시작이라고 어느 순간부터 쭉 생각해왔어요. 밥 못 먹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정의를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밥은 사람에게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요. 과거 서울시가 무상급식을 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가장 화가 났었어요. 밥으로 장난치는 사람이 제일 싫어요. 아직도 정말 많이들 굶어요. 제가 만나는 아이들 중엔 누군가와 밥을 같이 먹는 게 처음인 경우도 많아요. ‘혼밥’ ‘집밥’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는 것도, 서로 어울려 함께 밥 먹는 일이 그만큼 결여되어 있다는 방증이지요.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더욱 강퍅해진 거 같아요. 애들 만나다 보면 밥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더 들죠. 제 정체성은 ‘같이 밥 먹는 사람’이에요.

― 같이 밥 먹으면서 체감하는 우리나라 청소년 상황은 어떤가요.
너무 아파요. 초기엔 60-70%가 사회와 어른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었다면, 지금은 100% 사회와 기성세대의 문제라는 결론을 낼 정도로 아이들이 정말 많이 아픕니다. 저는 평생 이 일을 하며 살겠지만, 결코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을 갈수록 뼈저리게 체감해요. 사회 구조가 변하지 않으면 안 돼요. 아이들 문제의 모든 근원이 어른과 사회라는 건, 예를 들어 “우리는 이혼 가정이에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그들이 발생시킨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아이들은 착해서 자기 잘못이 있다고 여겨요. 희생되는 거죠. 지금은 소년원도 불우한 아이들만 들어가는 곳이 아니에요. 사교육 잘 받고 외국어를 몇 개 국어씩 하는 아이들도 탈선해서 들어가요. 어른들이 너무 누르거나, 혹은 너무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의 아픔에 너무 동화되다 보니 어른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는 한동안 못 가겠더라고요. 어른들이 미워서요. 교회 오후예배 특강을 가면 “어머니들 너무 미워요”라고 시작할 정도로요…. 저도 올초 상담을 받았어요. 우리 애들의 아픔과 울분이 제 안에서 사그라지지가 않아서요. 아픈 아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 대다수 희생자가 청소년이어서 세월호 참사가 더 피부로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면, ‘지금’ 사랑하는 수밖에는 우리 사랑을 장담할 수가 없겠단 생각이 들어요. 안산에 두 번 연속 특강을 간 이후에 세월호 참사가 났습니다. 강의를 들은 아이들 중에도 세월호 탑승자가 있었어요. 얼마 전엔 한 친구를 상담하는데,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다면서, 자기 이야기를 들어줬던 친구가 세월호에 탔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아이는 유일한 친구를 잃은 거예요. 세월호는 제게도 절실히 와닿는 일이에요. 그러다 보니 마음이 잘 조절되지 않을 때도 있어요. 유독 교회에서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야기는 하면 안 된다거나, 세월호 배지를 달면 안 된다고 그래요. 답답하고 억울한 점을 나열하자면 밤을 새워야 할 정도죠.

― 교회에 가장 결여된 것이 무엇일까요?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품는 힘이 없어요. 우리 시대는 ‘자궁의 힘’이 필요한 시대 같아요. 보통은 아버지의 부재로는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우가 드물어요. 그러나 엄마에 대한 결핍과 상처는 다른 것으로 채워지기가 어려워요. 내 새끼들 중에도 엄마의 부재를 겪은 아이들의 상처가 더 깊어요. 여자 아이들은 엄마의 부재가 더욱 크죠. 처음 브래지어를 구입하거나 위생팬티를 사는 일부터 해서, 성적인 문제를 어디에다 털어놓겠으며, 임신이라도 하면 누구한테 말할 수가 있을까요? 어느 날은 우리 딸 위생팬티를 사면서 다른 아이 것까지 사서 건넸는데, 그 아이가 고맙다면서 울어요. 저도 엄마의 부재를 겪었는데, 과연 한국교회 안에 그런 모성이 있나요? 교회에 그런 품이 있나요? 교역자도 거의 남자, 강사들도 다 남자, 제가 볼 땐 여성은 없다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부계 중심이에요. 하나님은 여성도 남성도 아닌데 말이죠. 국회에 아직도 여성 의원이 부족하지만, 교회는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에요. 지금은 엄마가 필요한 시대, 언니가 필요한 시대인데 말이에요….

― ‘자궁의 힘이 필요한 시대’라는 얘길 하셨는데요.
그 힘은 여성이 타고나는 것 같아요. 제가 엄마의 부재를 겪고 애기도 낳은 엄마라서 느끼는 특수성일 수도 있겠지만, 여성주의와 무관하게 이미 여성이 갖고 태어나는 힘이라는 걸 느낄 때가 많아요. 미혼모 친구도 같이 산부인과에 가서 임신 사실을 확인하면, 일단 아이를 뱃속에 가질 수 있다는 감격을 느껴요. 임신을 하면 아기는 아주 작은 점이지만, 그 자체로 감격이고 생기자마자 내 새끼로 받아들여져요. 출산할 때까지 품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자궁’은 제게 보여주신 ‘하나님 마음’이기도 하고요.

― 구체적으로 풀어 주신다면요.
보통 작가는 한 장르로 쭉 가야 경력이 쌓이고, 소위 장사도 더 잘 되거든요. 그런데 동화로 쭉 가게 하지 않고 ‘태교’ 이야기를 쓰게 하시고, 또 ‘청소년’을 주제로 쓰게 하시니까 하나님한테 물었던 적이 있어요. 왜 이렇게 여러 가지를 같이 하게 만드시느냐고. 그때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 ‘자궁’이었어요. 자궁을 보여주시더라고요. 내가 너에게 임산부를 주든, 청소년을 주든, 네 자궁에 주면 모두 다 네 새끼라고 하시면서요. 정말 그렇더라고요. 임산부여서 품지 못할 것도 없고, 청소년도 노랑머리든 파랑머리든 빨강머리든 내 자궁에 품으면 내 새끼 되는 거잖아요. 교회에도 이런 자궁의 힘이 필요해요.


사실 엄마라는 건 정말 너무 힘든 일이에요. 농사짓는 게 더 수월할 거 같아요. 안 해봐서 그런 말 한다고 하셔도 어쩔 수 없지만, 제가 해온 모든 일 중 엄마 노릇이 가장 힘든 일이었어요. 정답도, 기준도 없이, 무조건적인 품이 되어주어야 하니까요.

― 하나님과 친밀해보여요.
제가 겪은 엄마의 부재를 하나님이 채워주셨어요. 정말 따뜻했지요. 하나님 말고는 어디 이야기할 데가 없었어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는 교회를 반대했고, 아빠에게서 독립하고 싶어서 일찍 시집을 갔는데 이번엔 시댁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요. 노트북 살 돈도 없어서 글을 다시 쓴다는 엄두조차 못내던 때도 있었고요. 양쪽 집에 경제적 원조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주부 모니터 알바로 살림 비용을 충당하기도 했어요. 남편은 그동안 제 일을 응원하면서도 마음은 모르겠다고, 그런데도 제가 6년이나 하니까 “오래한다”고 해요.(웃음) 지금은 많이 생겼지만, 제가 모태신앙도 아니어서 신앙의 동지가 늘 있던 것도 아니었어요. 날라리 친구들 만난다고 온갖 말 듣고, 제가 하는 건 다 지지받지 못했죠. 내편이 하나님밖에 없었어요. 워낙 제가 틀이 없는 사람이라서 기도도 따지듯이 했다가, 대화하듯이 하다가 그래요. 길 다가가도 미친 사람처럼 하나님께 말 걸고 물어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처럼 틀이 없어서 살아가는 게 힘든 아이들을 만나게 하시는 것 같아요. 늘 물어보고 나서 시도하고, 길이 아니면 돌리실 거라고 믿어요. 맞으면 계속 가는 거고요.

― 엄마의 부재를 겪었다고 했는데, 문득 어떤 분이셨는지 궁금하네요.
유일한 친구였어요. 아버지는 잘못을 교정하는 이미지라면, 엄마는 잘못을 저지르고서 이미 아파서 울고 있는 나를 그냥 안아주는 분이셨죠. 아빠가 때리고 나가면 엄마가 된장을 발라주셨어요. 의학적으로는 좋지 않다지만, 회복이 됐어요. 제가 우리 아이들에게 진짜 엄마는 되어 주지 못하더라도, 그런 된장만 될 수 있다면 아이들을 살릴 수 있겠다 싶어요. 똑똑한 소리하는 건 제 역할이 아니에요. 이미 지식은 채워주는 곳이 너무 많아서 아이들이 더 잘 알고 있고요. 아이들은 결코 가르치는 교육으로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 신앙생활은 언제부터 시작한 건가요.
어릴 때부터 이상하게 교회 가고 싶은 맘이 있었어요. 아버지의 외가는 기독교인이 많은데 아버지가 워낙 교회를 싫어하셔서 가기가 어려웠어요. 아버지의 작은아버지가 목사가 되자마자 돌아가셔서 ‘교회 다니면 죽는다’가 할아버지 입버릇이었고, 아버지는 교회가 보이면 침을 뱉을 정도였어요. 교회 간다고 하면 무조건 맞았어요. 그런데 이모할머니들이 워낙 저를 교회 다니게 하려고 하셨어요. 교회를 나가게 된 건 동네에 새로 생긴 개척교회 목사님 덕분이었어요. 그 목사님이 전도하러 다니다 우리집 앞에만 오면 머리가 아프셨대요. 하루는 아버지 혼자 집에 있을 때 전도하러 왔는데,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어 보니 주보를 건네면서 교회 나오시라고 하니 아버지가 됐다면서 손사래 치다가 주보를 떨어뜨리셨지요. 아버지가 주보를 주워주며 예수쟁이 싫어하니 다신 오지 말라고 얘기하다, 얼핏 주보에 적힌 목사님 성함을 봤는데 같은 오 씨더래요. 따져 보니 한 본관 ‘조카’뻘이고, 행패 부린 것도 미안하고 해서 딸을 보내겠다고 하신 거지요. 그게 제가 교회 나간 계기예요. 그렇게 해서 19살부터 교회를 다니게 됐지요.

― 대학생 때 운동권이었다고 했는데, 교회 생활이랑 잘 맞던가요?
데모하던 친구들은 워낙 ‘더불어’ 마인드가 강해요. 저는 성경에 그 마인드가 깔려 있다고 봤거든요. 게다가 민중가요와 찬송가가 너무 비슷하다고 느꼈고요! 그러니 교회 가면 너무 좋고, 자연스레 빠져들었어요. 어릴 때부터 소외된 이웃에 관심이 많았는데, 하나님이 주신 마음 같아요. 우리집도 없는 형편에 집에서 몰래 뭐 가져가서 어려운 할머니들 가져다 드리고 그랬거든요.

제 모토는 ‘지금’ 천국을 사는 거예요. 교회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제 마음이 지옥이어서 너무 힘이 들었어요. 그런데 불현듯, 엄마가 천국에 있고 내가 믿는 하나님도 천국에 계시니 내가 여기서 천국을 살아야 그들과 같이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지금 천국을 사는 사람’이 인생 모토가 되었습니다. 지옥 가운데 있는 우리 아이들을 만나면 가슴 아프지만, 그럼에도 어떻게 천국을 사는가를 늘 고민해요. 제 모든 강의 주제이기도 하고요. 상황이 변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지금 천국을 주셨다는 게 제 믿음이고, 아이들도 그 길로 초대하고 싶어요.

   
▲ 오선화 작가가 집필한 책들. 30종이 넘는다.

― 힘이 들 때가 있을 텐데요.
체력과 건강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지긴 했어요. 탈모에 수면장애도 있고 공황장애도 왔었고, 불면증은 그냥 달고 살아요. 아이들 재판이 있고, 합의를 해야 하고 그럴 땐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피해자 만나서 빌고 또 빌어야 하거든요. 제가 벌레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강의할 땐 좀 있어 보이기도 하는데 말이죠.(웃음) ‘맨날 지기만 하고 이러다 뽕빨나겠다’ 생각이 들면 로마서 8장 37절 말씀을 떠올려요.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새번역)

간신히 이기게만 해달라고, 어떻게 맨날 지냐고 하나님께 묻는 저에게, 이기고도 남는다는 말씀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자존감을 회복하는 계기였지요. 제가 사람들 앞에서 벌레처럼 빌지언정,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갑을관계로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고, 이 싸움이 결코 내가 지는 게 아니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잠언 16장 9절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개역개정)는 말씀도 신혼시절 힘들 때부터 쭉 품고 살아가요. 어려운 제 형편에 스스로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자식을 똘똘하게 키우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아무리 애써도 도대체 우울한 마음은 없어지질 않더라고요. 처음으로 아이를 떼놓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을 때 류승완 감독의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를 봤는데, 엔딩 후 블랙아웃 때 뜬 구절이 그 말씀이었죠.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내가 하나님을 가두어놓고 스스로를 옭아매다보니 마음의 평화가 없었구나’ 했죠. 그때부터 하나님께 묻는 습관이 생긴 거예요.

― 지금 하는 일을 언제까지 계속 하실 생각인가요.
저도 모르겠어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매일매일, ‘오늘’ 하고 있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왔어요. 사실 교회에서 ‘비전반’을 처음 시작할 때는 우리 애들이 스무 살 되면 졸업시킨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럴 수 없었어요. 지속적으로 돌봄이 필요했으니까요. 그래서 ‘지속의 영성’을 고민합니다. 일회성 만남은 아이들에게 별 도움이 못 돼요. 시간이 쌓여야 한 사람의 마음이 열리는 법이죠.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죽겠다고 자해하는 친구를 구해달라면서 제게 데려와요. 어른들은 누가 옆에서 죽어가도 잘 모르거나 그냥 내버려 두는데, 아이들은 서로를 살리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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