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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누가 666인가?
[324호 올곧게 읽는 성경] 한국교회로 배달된 요한의 편지 10 (계 13장)
[324호] 2017년 10월 27일 (금) 15:25:39 정재훈 용인 덕성교회 전도사 goscon@goscon.co.kr

여기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각이 있는 사람은 그 짐승을 상징하는 숫자를 세어 보십시오. 그 수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데 그 수는 육백육십육입니다. (계 13:18, 이하 표준새번역)

폭로된 짐승의 이름, 가난한 이에게 해방이!
악마의 화신을 가리키는 수 ‘666’의 당사자가 누구인지를 특정하려는 자들은 네로, 도미티안, 교황, 히틀러, 심지어 무슨 감자칩(베리칩)까지 두루두루 등장시키며 부산을 떨었다. 그러나 저 문장(계 3:18)의 핵심은 “… 세어 보십시오. … 입니다”에 있다. 짐승의 정체는 666으로 폭로되었다. 반면 그리스도의 이름은 은폐된다.

그분의 눈은 불꽃과 같고, 머리에는 많은 관을 썼는데, 그분밖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름이 그의 몸에 적혀 있었습니다.(계 19:12)

이러한 대조가 의미하는 것은 ‘상대의 이름을 알면 그를 제압할 수 있다’라는 고대의 신념에 기인한다. 매매를 금지하는 자, 그는 곧 짐승인데 이름이 666이다. 그 절대권력을 땅에서 임시로 행사하는 자의 비밀은 해제되었고 세상에 공개되었다. 더 이상 그의 비밀스런 마력은 힘을 쓰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계시록 13장 18절이 말하고자 했던 의미다. 《삼국지》에서 권력을 잃은 동탁의 주검이 저잣거리에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사탄의 화신은 그 이름이 공개되면서 주검처럼 내던져 졌다. 세상을 쥐고 흔들던 자를 번호를 부르며 맘껏 조롱하라는 것이다. ‘503’처럼 말이다. 매매를 할 수 없었던 가난한 이에게 해방이 선언되었다.

천국은 가난한 자의 것이다. (마 5:3)

천년왕국이 환란 전에 있느냐 후에 있느냐는 한국 기독교가 미국에서 배워온 못된 퀴즈다. 교리 몇 개를 주워들은 엉터리 신학자와 성경 전체를 예화와 만담 등을 섞어 혼자 다 주석(?)한 허황된 야망을 품은 자들의 손에 한국교회와 한글 성경은 아직도 놀아나는 듯 보인다. 특히 계시록을 맘껏 유린한 교만한 허풍쟁이 신학자들로 인해 “너 이단, 쟤도 이단” 하는 사이에 자기가 그리스도라는 자들이 명동의 김 씨처럼 많아졌다.

가난한 민중들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가난과 궁핍으로 신음하면서 유일한 소망을 천년왕국에 두었고, 목사들은 그들의 절실함을 미끼 삼아 십일조니 성미니 선교비니 전별금이니 온갖 명목으로 그들의 마지막 남은 동전 한 닢까지 거두어갔다. 호환과 마마보다 무서운 것이 작금의 기독교다. 성추행범을 신주 모시듯 하질 않나, 모든 학적부를 거짓으로 꾸미고 불법으로 건축물을 지어 놓고 하나님이 건축했다고 가증을 떨지 않나, 세상에 이런 코미디가 없다. 저들이 말하는 천년왕국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저들은 천년왕국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생각이 전혀 없다. 탐관오리들이 모두 목사가 되었으니 세상에 나타날 나라는 고작 율도국이 아니겠는가?

민주 열사들을 고문했던 자가 목사가 되고, 학도들에게 빨갱이 누명을 씌우고 법을 농락한 이들이 전도사가 되고 대통령 권력으로 국부를 사유화한 자가 교회의 장로다. 추하기로 소문난 ‘빤쓰 목사’ 같은 이의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뉴스거리도 못 된다. 순교자들의 묘 옆에 세워진 어느 품성 좋기로 유명한 이의 교회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마지막 기대마저 지워버리는 비보다. 한국 기독교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자축할 자격이 없다.

666에 관한 계시록 글을 쓰는 필자의 가슴에 자막처럼 떠오르는 양심의 글귀는 ‘한국교회가 666이다’라는 것이다. 교회를 범죄 소굴로 만든 자들을 주님은 어찌 보고만 계실까?

인자가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죄짓게 하는 자들과 불법한 일을 하는 자들을 모조리 그 나라에서 모아다가, 불 아궁이 속에 던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 때에 의인들은 그들의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마 13:41-43)

천년왕국이 언제 있을지 우리에게 가르치려하지 말라! 이미 그 천년왕국은 영원한 천국으로 가난한 자들이 소유하고 있다.

묵인하는 부교역자, 돈을 주는 성도들
본지 연재를 계기로 되어 P 전도사를 알게 되었다. P 전도사는 최근 교회에서 추방되었다. 사실 그가 치과의사로 일하다가 신학을 공부해 전도사가 되어 박봉의 사례비로 가족에게 경제적 곤경을 안기는 모습을 보는 것은 자못 웃픈 일이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목사의 어릿광대짓이 정신이 멀쩡한 그에게 옳게 보였을 리 없고, 그 모습을 비판하던 그는 예상대로 쫓겨났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한국교회 부교역자들의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신앙이 못된 짓을 저지르는 담임목사의 추태보다 심각하다. 젊은 교역자들이 밥줄에 목이 막혀 무엇이 옳다 그르다 말을 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의보다 담임목사의 눈치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한가? 비리를 저지른 목사와 성도가 대치할 때, 가련한 부교역자들이 목사의 편에 가담하여 그들을 비호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라 생각하는가? 문제는 그런 부교역자들이 주로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중요한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젊은이들이 떠나는 데는 다 치명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P 전도사를 필자가 있는 교회로 초청해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아프리카 선교여행에서 의사보다 선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단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는 학생들에게 “꽃마다 피는 시기가 다르다”는 말로 어린 학생들을 위로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이 꽃보다 예쁜 젊은 신학도를 죽인 것이 정작 교회인가 싶었다.  

2011년 독일에서 공부가 끝날 무렵, 독일 남부의 트리어(Trier) 한인교회에서 평소 존경하던 목사님의 청으로 5주간 주일 설교를 맡았다. 설교 서두를 이와 같은 말로 시작했다. “여러분! 좋은 목사를 만나기 위해 교회를 아흔아홉 번 옮길 각오로 찾으세요.” 요즘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성추행 목사더러 교회를 나가라 하면 그 목사는 돈을 달라 한다. 설교 표절이 드러나 나가라 해도 돈을 요구한다. 헌금을 횡령했으니 나가라 해도 돈을 청구한다. 그러면 교회들은 (세상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정말 돈을 준다! 교회에서 목사가 돈 받기가 이렇게 쉽다.

한국교회의 목회란 성추행, 횡령, 표절을 하고, 발각되면 돈을 받아 나가는 것이다. 박근혜도 누리지 못하는 호사를 목사들이 누리고 있다. 돈을 주며 장로들이 하는 말이 더 가관이다. “돈이라도 줘서 내보낼 수만 있다면 왜 못 주겠는가!” 한국 목사들이 과연 사람인지, 교회 피 빨아먹는 거머리인지…. 20년 신학을 공부하며 26년간 전도사로 살고 있는 필자의 눈에 교회는 바빌론이요 목사는 666이다. “그리고 이마에는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물건들의 어머니, 큰 바빌론’이라는 비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계 17:5) 유명 성추행 목사의 넓은 이마를 볼 때마다, 그곳에 666이라 쓰고 싶다.

실형을 살아야 할 목회자들이 거금을 받고 물러나는 해괴한 한국교회 상황의 주범은 돈을 주는 교회 성도들이다. 일꾼은 본디 돈을 주는 자가 시키는 대로 일할 뿐 아닌가? 좋은 포도주를 맛본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포도주의 주인을 확인시켜주는 것처럼(요 2:9-10), 이 사태의 주인은 돈을 주는 성도들이다. 물론 억울할 것이다. 우리가 시킨 일이 아니다! 성도들은 항변할 것이다.

성도라는 단어를 입에 담기도 민망하다. 죄진 자에게 돈을 주는 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교회에만 있는 일이다. 계시록은 성도란 말 대신 ‘이기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기는 사람은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인데 나는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지 않을 것이며, 내 아버지 앞에서, 그리고 아버지의 천사들 앞에서 그의 이름을 시인할 것이다.(계 3:5)

성도라 자처할 수 있는가?

교회를 장악한 카라그마(χάραγμα)

또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할 것 없이, 다 그들의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χάραγμα)를 받게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이 표(χάραγμα)를 가진 사람, 곧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을 나타내는 숫자로 표가 찍힌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팔거나 사거나 할 수 없게 하였습니다. (계 13:16-17)

로마의 정치는 황제를 신격화하는 지방 호족들의 부추김 속에 종교화 되었다. 황제를 신으로 인정하는 제의에 참석하지 않는 자들을 국가 내 모든 자격의 기준에서 제외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동전에 황제를 새겨 넣음으로써 살고 죽는 것, 사고파는 것이 다 황제의 은혜라는 프로파간다(선전)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밧모 섬의 요한은 돈 자체가 666의 통치 방식이라고 폭로한 것이다.

한국교회 성도 모두가 목회자들의 주머니이고 성도들 또한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들만의 친목과 교섭을 위해 (부패한 목사를 차치하고서라도) 교회를 떠나지 않는다. 대다수 신앙 때문에 떠나지 않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교회 안에서 복음이 다 사라졌어도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이에나도 먹을 것을 다 먹으면 자리를 뜨는데 말이다. 혹시 애초에 그들이 먹던 양식은 복음이 아니었기 때문은 아닌가? 그래서 복음이 고갈되었음에도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교회 안에서 복음이 아닌 무엇이 거래되는가? 작금의 한국교회는 돈과 명예를 자랑하러 출석하는 자들과 그 밑에서 무슨 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주위를 둘러보는 가련한 중생들로 가득하다.
이미 666은 교회를 완전히 장악했다.

솔로몬의 금 vs. 666
독일에서 《EKK 요한계시록 주석》(2017)의 저자인 마틴 카러(Martin Karrer) 교수에게서 계시록 세미나를 배울 때 666에 관한 사본학적 차이와 네로, 도미티안 황제의 이름들과의 비교를 언어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배운 후, 수업이 끝나도록 솔로몬의 세입금 666 금 달란트는 언급이 되지 않았다. “해마다 솔로몬에게 들어오는 금의 무게가 육백육십육 달란트나 되었다.”(대하 9:13) 우연히(?) 거두어들인 세금이 666 금 달란트라고만 간주하니 섣불리 사탄의 화신을 설명하는 은유적 의미를 가진 666과 비교하기 꺼렸던 것 같다.

그러나 구약 전체에서 666이라는 수의 언급이 우연적으로 단 한 번 사용된 것일까?(왕상 10:14 동일 문구) 솔로몬이 만국과 무역을 하여 어마어마한 부수입을 거두어들인 것은 아예 솔로몬의 세입금으로 잡지도 않았다.(대하 9:14) 의도적으로 666이라는 액수를 맞추려 한 것 같다. 이미 그 글이 기록될 때 666이라는 수의 부정적 느낌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열왕기서와 역대하에서 이 666이 등장하는 문맥을 보면 이런 심증은 더욱 힘을 얻는다. 열왕기는 666을 언급한 후 야훼와 솔로몬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파탄이 나는 것으로 기록한다.

그러므로 주께서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러한 일을 하였고, 내 언약과 내가 너에게 명령한 내 법규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네게서 왕국을 떼어서, 네 신하에게 주겠다.” (왕상 11:11)

역대기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이스라엘이 솔로몬의 가문을 떠나는 것으로 묘사한다. 

르호보암 왕이 강제노동 감독관 하도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보내었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돌로 쳐서 죽였다. 그러자 르호보암 왕은 급히 수레에 올라서,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다윗 왕조에 반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대하 10:18-19)

떠나는 이유는 666 금 달란트를 세입금으로 거둘 정도로 백성을 착취했기 때문이리라. 아버지 다윗 때에 행해진 인구조사(삼하 24장)는 이 세금을 거둘 때 얼마나 유용했을까? 솔로몬은 하나님의 언약과 백성의 신앙을 세금 666 금 달란트와 바꿨다. 전쟁 영웅도 아니요, 기름 부음을 받지도 않은 솔로몬이 왕의 정통성을 지혜에서 구한 것은 탁월한 ‘신의 한 수’였다.

주님, 주와 같으신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은 위대하시며, 주님의 이름은 크시고, 권능을 지니셨습니다. 세계 만민의 임금님, 누가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주님은 공경받아 마땅한 분이십니다. 세계 만민의 모든 지혜 있는 자들 가운데도, 모든 나라의 왕들 가운데도, 주님과 같으신 분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어리석고 미련합니다. 나무로 우상을 배우겠습니까? (렘 10:6-8)

인간적인 왕의 자격을 하나도 갖추지 못한 솔로몬에게 누군가 하나님의 고유한 특질인 ‘지혜’를 갖춘 자로서 왕의 자격을 부여함이 옳다는 훈수를 두었고, 나아가 예레미야 10장 12절(“권능으로 땅을 만드시고, 지혜로 땅덩어리를 고정시키시고, 명철로 하늘을 펼치신 분은 주님이시다.”)에 잠언 3장 19절(“주님은 지혜로 땅의 기초를 놓으셨고, 명철로 하늘을 펼쳐 놓으셨다.”)이 통째로 들어온 것을 볼 때, 솔로몬은 자기 지혜의 뿌리가 하나님의 지혜와 같다고 선전한 듯하다. 그러나 실상은 솔로몬의 (인간적) 지혜는 백성을 착취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에 지혜가 필요합니다’(계 13:18)

인자는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 그들이 말하기를 “보아라, 저 사람은 먹기를 탐하는 자요, 포도주를 즐기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한다. 그러나 지혜는 그것이 한 일로 그 옳음이 증명된다. (마 11:19)

지혜는 예수 자신이며, 그는 복음 자체였다.

그러나 우리는 성숙한 사람들 가운데서는 지혜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지혜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고 멸망할 자들인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닙니다. 우리는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시려고, 영세 전에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이 세상 통치자들 가운데는, 이 지혜를 안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이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전 2:6-8)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을 제외한 그 어떤 것도 교회 출석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은 성추행, 표절, 횡령을 허락한 적 없고 복음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666을 세는 데 필요한 지혜는 히브리어, 헬라어와 라틴어의 자모를 숫자로 세는 지식을 넘어선다. 바코드의 행간을 읽는다고 666이 밝혀지지 않는다. 지혜이신 예수와 예수의 복음, 즉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앞에 내놓고 비추어 보면 누가, 무엇이 666인지 어린아이도 알 수가 있다. 666을 세는 것은 지혜, 즉 십자가의 지혜 앞에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큰소리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권세와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마땅히 받으실 만합니다” 하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계 5:12)

‘감추는 자가 범인이다’
한국교회는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간 듯하다. 타락하고 방종하며 몰염치한 목사들을 엄히 꾸짖고 교회로 잠입한 666을 버려야 할 때이다. 올 8월에 소천한 브루스 말리나(Bruce Malina) 교수는 어린양 별 자리 바로 위에 뜨는 삼각형의 별 델토톤(Deltoton)이 666 수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다.(《Social-science Commentary on the Book of Revelation》, 173쪽 이하) 어린양의 별과 이방 신을 의미하는 델토톤의 별자리가 한 자리에 붙어있다. (어린양의 별자리도 삼각형이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888의 별과 이방의 우상을 상징하는 별 666이 지척에 떠 있다. 두 개의 삼각형 별 중 어느 별이 어린양인지 분별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특히 주의 이름을 빙자하여 ‘주의 종’들이 ‘주의 주’ 노릇 하는 걸 허락하는 한국교회 성도들이 그 힘을 길러야 한다.

루터의 공격을 받던 교황은 이제 없다. 그 자리에 루터의 후예들이 자리를 대신했다. 한국교회는 이 비극적 상황에 답해야 한다. 만인이 제사장의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왔다. 이제껏 성도들은 그리스도인의 책무를 모두 목사에게 떠맡기고 헌금과 예배당 출석으로 천국행 기차에 무임승차하려 했다. 목사가 표절하는 이유는 성도가 무식하기 때문이요, 딸들을 집어삼키는 것은 자기를 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재물을 탐한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논하는 목사가 교회 재물을 횡령하고서 물러나지 않음은 일말의 양심을 저버린 것이다.

한국 사회의 부패세력이 뻔한 도둑질을 하고서도 그 증거가 보이질 않아 온 국민을 탐정으로 만들었다. 국민들이 확보한 증거는 오로지 ‘감추는 자가 범인이다’라는 정황증거뿐이었다. 후에 범인들이 ‘캐비닛’에 숨어서 하던 모든 은밀한 범죄의 증거가 그들이 남기고 간 캐비닛에서 쏟아졌다. 역시 감추려는 자가 범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짐승의 수 666은 불의를 묵과하고 감추려는 병든 신앙 양심을 먹고 혈기를 얻는다. 곧 불의를 저지르고, 감추는 자가 가난한 이들의 해방을 막는 666이다.

 

정재훈
대한신학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 독일 뷔르츠부르크와 튀빙겐 대학교를 거쳐 부퍼탈 신학교를 졸업(Mag.Th)했다. 10여 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한신대 신대원을 졸업(M.Div)하고 현재 용인 덕성교회에서 청년학생부를 지도하고 있다. 토요일 밤마다 대치교회 성서학당을 통해 요한문서들을 강해하고 탁상담화를 진행한다. 전공 논문은 〈요한계시록 인자 기독론〉이며, 현재는 ‘요한계시록’ ‘지혜’ ‘기독론’을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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