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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소문 vs. 평화의 기도
[324호 민통선 평화 일기 08]
[324호] 2017년 10월 27일 (금) 15:34:11 정지석 국경선평화학교 대표, 목사 goscon@goscon.co.kr
   
▲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열리는 소이산 평화촛불 기도회. (사진: 국경선평화학교 제공)

한반도 전쟁 소문과 평화기도
이 땅에 전쟁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70여 년 동안 전쟁 소문이 끊일 날이 없었지만 이번은 꽤 끈질기고 전에 없는 심각성이 짙게 밴 느낌이다. 미국의 핵잠수함과 항공모함이 우리나라 바다에 들어왔다. 북한 공격 방어와 대응공격 훈련을 한다는 소식이 텔레비전 뉴스에 흘러넘친다. 미국 폭격기들은 북한 가까이 날아가 폭격 훈련을 하고, 핵잠수함은 군함과 함께 북한 가까운 바다에서 훈련을 한다. 한반도의 땅과 바다와 하늘에서 온통 전쟁 훈련 중이다.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를 대비해 남한에 거주하는 미국 시민들을 대피시키는 훈련도 한다. 미국 정부의 관심은 오직 자국민 살리기일 뿐,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사 여부는 관심조차 없는 듯하다. 북한 정권 역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이어가며 전쟁 불사(不辭)를 외친다. 미국과 북한이 맞서고 있는 형국이지만, 한반도에서 전쟁은 남북한 전쟁이 될 것이다. 핵전쟁은 한반도 전체 생명의 생사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 전쟁은 놀잇감이 아니다. 전쟁정책은 야만적인 것이다. 평화만이 길이다. 우리 정부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을 확고하게 밝혔다. 위태로운 중에 다행스럽고 안심이 된다. 촛불민주주의 시민평화운동 덕분이다.

전쟁의 소문이 높아가는 중에도 이곳 남북한 국경마을 가을풍경은 아름답고 평화롭다. 겉으로 보기엔 평온한 일상이다. 추수가 끝난 민통선 남녘 들판은 한가롭고, 비무장지대 너머 북녘 평강 고원은 고요하다. 틈틈이 비무장지대 너머 북쪽으로부터 들려오는 대남선전 방송이 바람소리와 뒤섞인다. 늦가을로 접어들면서 겨울철새 떼들이 날아오고 있다. 북으로 남으로 자유로이 날고 있다. 이토록 아름답고 평화롭고 고요한 땅에 전쟁은 상상할 수 없다. 삼천리 금수강산에 전쟁은 절대 불가다. 어떤 이유에서든 전쟁은 안 된다. 이 소망을 현실로 만드는 길은 우리 자신에게 남겨진 과제이다. 우리가 평화를 원하고 기도하고, 실천하고 행동할 때 평화의 소망은 실현된다.

전쟁이 나는 순간 이곳 국경마을은 가장 먼저 파괴될 것이다. 마을 사람들 중에는 서울로 쏘는 북한 장거리 포탄이 비무장지대 국경마을 머리 위로 날아갈 것이기에 오히려 이곳이 안전할 것이라 말하는 순진한 사람도 있다. 전쟁의 비현실성을 믿는 마음에서 하는 우스갯소리일 테지만 끔찍한 유머다. 전쟁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격전지가 될 곳은 군부대가 밀집한 이곳 국경마을이다. 그렇다고 남북한 삼천리 방방곡곡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다. 우리 기도는 오직 평화, 한반도 땅에서 전쟁 절대불가를 외치는 것이다. 전쟁을 주장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평화를 기도하는 사람은 그들보다 많은가? 전쟁의 소문 속에서 우리의 평화 기도 소문도 늘어가야 한다.  

한반도 전쟁 소문으로 오스트리아, 프랑스가 평창 동계올림픽 불참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한다. 독일도 내년 1월 이후에 참가 여부를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바 있다. 전쟁의 소식만 들은 까닭이다. 그러니 평화의 소식이 더욱 활발하게 전해져야 한다. 우리가 이곳 국경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평화의 기도운동. 이 소식을 전 세계에 전하고 퍼뜨려야 한다.

시작이 중요하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기도운동은 특히 그렇다. 한 사람이 시작하면 두 사람, 세 사람 모이고 늘어갈 것이다. 평화의 기도 촛불을 켜야겠다. 우리 평화학교 피스메이커 친구들이 먼저 시작해야겠다. 이곳 남북한 군사 대결의 국경마을이야말로 평화의 촛불이 켜져야 할 곳 아닌가. 그러면 삼천리 방방곡곡 가정마다, 교회마다 평화의 촛불은 켜질 것이고, 남북한 내국경선 250km에 평화의 촛불 띠가 이어질 것이다. 그러면 한반도에 드리워진 전쟁의 소문은 사라지고, 미국 핵잠수함과 핵폭격기도 사라지고, 북한의 핵무기도 없어질 것이다.

   
▲ 전쟁의 소문 속에서 비무장지대를 바라보며 평화의 기도를 드린다. (사진: 국경선평화학교 제공)

평화의 촛불 운동
평화는 행동이다. 전쟁이 관념이 아니듯이 평화 역시 이상이나 관념이 아니다. 오늘 우리는 그동안 기도하고 다짐해온 평화 행동을 시작했다. 평화의 촛불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저녁 6시 30분 우리는 소이산을 올랐다. 매일 오후 3시에 올랐던 그 길을 다시 올랐다. 캄캄하고 조용한 숲속 길이다. 함께 오르는 평화학교 친구들과 조용히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침묵하며 걸어 올라갔다.

꼭대기에 오르니 사방이 칠흑같이 캄캄하다. 북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을 따라 길게 불빛이 켜져 있다. 아마도 군부대 초소 불빛일 것이다. 그 뒤로 비무장지대와 북녘 땅은 칠흑같이 어둡다. 우리는 미리 준비해온 플래카드를 길게 펼친다.

우리는 평화를 원하며 전쟁을 반대한다.
생명을 살리는 Peace Yes 생명을 죽이는 War No

캄캄했던 소이산 꼭대기에 촛불을 켜고 앉는다. 비무장지대를 바라보며 앉는다. 침묵 속에 평화를 기도한다. 이 칠흑 같은 어둠을 몇몇 소수의 무리가 촛불로 밝힐 수 있을까, 무모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렇지 않다. 내가 기도할 때 새 일은 시작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 같이 지극히 작은 생명에서 시작된다고 우리 주님이 가르쳐주시지 않았던가. 내가 이곳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켜고 평화를 기도할 때 이 땅에 평화의 나라는 실현된다. 어둠 속에 앉아 기도하는 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깨닫는다. 기도는 가장 강한 행동이다. 기도하면 어떤 환경, 조건에서든 행동한다. 무모한 행동도 담대한 행동이 된다. 내가 기도해야 전쟁의 어둠은 사라지고 평화는 지켜진다.

한반도에서 전쟁 계획과 연습이 계속되는데 평화 계획과 훈련이 잠잠할 수 없다. 기도하자. 평화의 촛불을 켜자. 내가 할 수 있는 일,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다. 전쟁을 꾸미는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더욱 꾸준하게 믿음을 갖고 평화를 만들자.

평화 행동은 쉽고 즐거운 일이다. 너무 어려운 일로 거창한 일로 생각하지 말고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일로 하면 된다. 우리는 소이산을 오르며 기도하면 된다. 평화의 촛불을 켜면 된다. 소이산 기도순례길에서 나는 평화의 촛불을 켜자는 생각을 얻었고, 평화학교 친구들에게 이런 내 마음을 전했다.

사랑하는 친구들,
미국의 대북 전쟁 논의가 심상치 않다.
전쟁 소식은 들려오는데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남북한 평화 통일을 위해 존재하는 우리 평화학교에서부터
평화파수꾼 운동 ― 매일 저녁 석양에 촛불을 들자.
국경마을에서부터 평화촛불운동을 시작하자.
남북분단 마을에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고
전쟁을 반대한다는 뜻과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자.
우리가 시작하면 뜻있는 사람들이 함께할 것이다.
이 믿음으로 시작하자.
평화는 실천이다,
한 사람이 실천하면 두 사람 세 사람으로 퍼지고 또 퍼져갈 것이다.
이번 주일 저녁부터 시작하자.
평화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통했고, 우리는 오늘 평화의 촛불을 켰다.

국제 평화마라톤
매년 가을 철원에는 국제 평화마라톤이 열린다. 오늘 국경선평화학교 친구들과 함께 평화마라톤에 참가했다. 하프 코스(21.0975km). 작년에는 10km를 뛰었고, 재작년에는 풀코스를 완주했다. 뛰어 보니 하프코스가 제일 힘들다. 이번에도 16km 지점에서 근육 경련이 일어나서 주저앉았다. 한참을 쉬다가 나머지 구간을 걷고 뛰며 하면서 채웠다.

왜 이렇게 하프가 어려운가? 마라톤은 연습이 필수다. 처음 10km를 뛸 때, 처음 뛰는 마라톤이란 생각에 코치의 지도를 받으면서 연습을 많이 했다. 덕분에 너끈히 달렸다. 정말 별로 힘들지 않고 경치를 즐기면서 뛰었다. 다 뛰고 나서도 힘이 남아 더 뛸 수 있는 기분이었다. 이듬해 하프를 뛰었다. 연습이 게을렀다. 10km를 뛰고나서 자만해진 탓이다. 13km 지점에서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걷고 뛰면서 몸은 완전 탈진됐다. 그 이듬해 풀코스 42.195Km를 달렸다. 긴장된 마음으로 연습했고, 무리한 목표를 잡지 않았다. 겸손해진 것이다. 긴 시간 걷고 뛰면서 완주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생애 처음 마라톤 풀코스를 뛰었다는 뿌듯함도 있었다.

이번에 하프는 다시 힘들었다. 지난 경험의 트라우마 때문일까? 힘들 것이라는 두려움이 마음 깊이 박혀있기 때문이었을까? 충분하진 않았어도 예전에 비한다면 준비 연습도 꽤 했다. 그런데 영락없이 어렵고 힘들었다. 전에 없던 근육 경련까지 와서 주저앉고 말았다. 몸에 무리가 올 것이라는 징조는 13km를 달릴 때 왔다. 몸의 고통을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쉬지 않고 달렸다. 멈춰서서 걷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달렸다. 조금만 더 가면 골인 지점이다, 조금만 더 참고 달리자, 멈춰서지 말자, 걷지 말자, 그러다가 쓰러졌다. 평화마라톤이 상처마라톤이 됐다.

반성을 해본다. 무리했다. 몸의 아우성을 듣지 않았다. 참으면 극복될 줄 알았는데, 몸은 정직하게 무리함에 반응했다. 연습이 부족했다. 준비가 소홀한 채 무대에 오른 탓이다. 그러니 무리가 오고 상처를 입은 것이다. 결국 준비와 연습이다. 목표를 세우면 준비해야 한다. 준비의 중요성을 다시 배운다. 마라톤에서 평화 통일운동의 길을 배운다.

마라톤과 피스메이커의 만남
철원에 처음 왔을 때 내 나이 오십, 인생의 끝이 보이는 나이였다. 후반전 인생이라 작정했다. 허무하지 않은 삶, 진정 가치 있고 의미 있는 행복한 삶을 살자 했다. 기도하자. 기도하고 믿는 일은 실천하자. 행복한 삶은 단순해짐에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행동하자. 행동하기 전에 기도하고, 믿음의 확신이 서면 실천하자. 변하자, 내 삶을 변화시키며 살자. 하고 싶은 일은 하면서, 특히 처음 해보는 일을 환영하고 신나게 하자. 이렇게 마라톤을 하게 됐다.   

마라톤을 뛰어보니 피스메이커를 위한 운동으로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습과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점, 자신과의 경주라는 점, 체력과 함께 인내심을 기르는 운동이란 점에서 그렇다. 마라톤은 국경선평화학교 피스메이커 커리큘럼의 필수과정이 되었다. 10km, 하프, 그리고 3년차에 마라톤 풀코스를 뛰면서 졸업을 자축한다.

금년은 국경선평화학교 5년차다. 지난 3년 동안 풀코스까지 뛰었고, 다시 10km를 뛰고, 하프를 뛰었다. 마라톤은 나의 후반전 인생에서 얻은 선물이다. 


정지석
휴전 상태인 한반도를 비롯, 전 세계 분쟁지역을 섬길 ‘평화 일꾼’(peacemaker)을 키워내는 국경선평화학교 설립자이자 대표. 한신대 신대원에서 신학(M.Div.)을 공부했고, 아일랜드 평화에큐메니칼대학원에서 에큐메니칼 평화학 석사(M.Phil in Trinity College), 영국 버밍험 우드브룩 퀘이커대학원에서 평화학 박사(Ph.D in Sunderland Univ.)를 마쳤다. 이후 한신대 신대원과 성공회 대학원에서 평화신학을 강의하고 새길교회 등에서 사역했다. 2010년 새로운 소명의 삶을 찾고자 미국 퀘이커 영성평화학교 펜들힐(Pendle Hill)로 갔고, 기도 가운데 ‘철원으로 가서 남북한 평화를 일구라’는 소명을 받고 2011년 9월 무작정 철원으로 들어와 2013년 3월 1일 국경선평화학교를 열었다. 본지 315호(2017년 2월호)에 인터뷰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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