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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주년 맞은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양승훈·전성민 교수
[334호 사람과 상황] 타문화권에서 일구어 온 ‘기독교 세계관 운동’ 20년
[334호] 2018년 08월 27일 (월) 11:06:10 옥명호 편집장 lewisist@goscon.co.kr
   
▲ 양승훈 VIEW 원장과 그 후임으로 최근 내정된 전성민 교수 ⓒ복음과상황 오지은

1990년대 중반 “기독교 세계관으로 훈련되어 교회와 사회를 변화시키는 리더를 양성”할 목적으로 세워진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Vancouver Institute for Evangelical Worldview)이 설립 20주년을 맞았다. 해외에서 학교 설립을 추진한 이래, 캐나다 TWU(Trinity Western University)의 ACTS 신대원과 협약을 맺고 1998년 설립 인가를 받은 지 올해로 스무 해를 맞이한 것이다. 1999년 여름 26명의 신입생과 함께 첫 학기를 시작한 VIEW는 지난 7월 16일 한국에서 후원자와 동문들을 초대하여 설립 20주년 기념 행사를 가졌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학교 설립으로 이어져 스무 해 동안 지속적으로 크리스천 리더를 양성해 온 일은 한국교회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지난 7월 15일 양승훈 VIEW 원장과 그 후임으로 최근 내정된 전성민 교수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VIEW의 지난 20년을 어떻게 회고하시는지요?
양승훈(이하 ‘양’): 그동안 VIEW에서 공부를 한 사람들은 500여 명, 이 가운데 과정을 다 마치고 공식적으로 졸업한 분들은 220명 정도 됩니다. VIEW 프로그램 특성상 안식년을 겸해 공부하러 온 목회자나 선교사들의 경우, 공부를 다 마치기도 전에 새로운 사역지로 스카우트되어 가거나 다시 선교지로 떠나는 경우들이 있어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교육이란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일인데, 우리 졸업생들에게서 그동안 자신의 삶이 변화되었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습니다. 극적으로 변한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삶이 변화되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지요. VIEW 동문들은 대체로 목회자가 65%, 일반 성도가 35%인데, 직업군으로는 목회자 다음으로 의사가 많은데 이분들이 변화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목회자보다는 일반 성도들이 더 많이 변화되는 거 같아요. 물론 정량적인 통계를 내본 건 아니에요. M.A(Master of Arts, 문학석사) 과정 졸업할 때까지 소논문을 15편 이상 써내야 합니다. 그 중에 개인 간증을 2편 정도 써내는데, 그걸 통해 미루어볼 수 있는 거지요. 이렇게 지난 20년간 VIEW의 교육이 나름의 성과가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대학원 프로그램으로서는 이제 어느 정도 외형적 안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합니다. 무엇보다 해외에서 개설한 한국어 과정에 대한 이미지를 많이 바꾸었다고 생각해요. 수업이 한국어로 진행된다 해도 질적인 면에서는 전혀 부실하지 않게 해왔으니까요. 그럼에도 가장 큰 과제는 질적인 부분이에요. 교육 기관으로서는 끊임없이 발전해가야 하는 거죠. 아주 만족스럽진 않지만 지금까지 어느 정도는 제대로 된 대학원 과정으로서 형태를 갖췄다고 생각하고, 홍보를 많이 못했는데도 알음알음 알려지고 비교적 지속적인 지원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질적인 진보가 제일 큰 과젠데, 가장 시급한 문제는 도서관이에요. 수업 관련 한국어 도서를 소장하고 열람할 수 있는 공간이 문제예요. 학교(TWU) 쪽과 계속 얘기 중인데 금방 해결될 것 같진 않아요. 다음으론, 교수 충원 문제입니다. 좋은 교수를 스카우트해야 하는데, 역시 재정과 관련된 문제여서 앞으로는 전 교수님이 이어받아서 함께 노력해가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전성민(이하 ‘전’): 지난 20년 가운데 5년을 함께해왔는데, 저는 좋은 시절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서 양 교수님이 말씀하신 ‘한국어 과정’에 대해 좀 더 덧붙이고 싶은데, 한국어로 공부하니 쉽고 편하지 않겠나 하는 게 일반적인 인식 아닌가 합니다. 실제로 요즘 해외에서 한국어 과정이 꽤 많이 생겼는데 편차가 좀 있어요. D.Min.(Doctor of Ministry, 목회학 박사) 과정으로 시작했다가 M.A 등 다른 과정도 한국어 수업으로 확장해 나가는 추세인데, 그 과정의 디렉터가 누구냐가 수업의 충실도를 좌우하는 거 같아요. 결국 학문적 질을 어떻게 확보해 내느냐가 관건이 되겠지요. 외국 유학까지 갔는데 한국어로 진행하는 수업이 얼마나 충실하겠나 하는 오해나 선입견이 있는데 어떤 분들에게는 한국어 과정이 훨씬 더 결과가 좋거든요. 그래서 그런 선입견을 극복해 왔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그렇게 해갈 겁니다. VIEW 지원자들 가운데도 한국어 과정이니까 공부가 쉬울 거라 여기고 정작 공부보다는 다른 우선순위나 목적으로 지원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이 와서 공부하는 중에 세계관 공부가 정말 의미 있구나 새삼 깨닫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주객이 전도된 경우라면 학생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겠지요.

   
▲ "기본적으로 창조과학은 성경이 아닌 안식교 교주인 앨런 G. 화이트의 환상에서 출발했어요. 이 점이 반지성의 뿌리인 셈입니다." ⓒ복음과상황 오지은

― 밴쿠버 현지의 반응이나 평가, 예를 들어 ACTS 관계자나 지역 교회 쪽 피드백은 접하신 적 없는지요?
양: ACTS 세미너리의 한국어 과정으로서 VIEW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하려 했을 때, 어려움이 꽤 있었습니다. 교수회의 시간에 노골적으로 한국어 과정을 불신하는 교수들이 있었거든요. 설득하느라 애를 썼는데, 그게 말로 설득할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보여주어야 하는 문제잖아요. “나는 일반 대학교에서 가르치다 왔는데, 이 과정의 질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면 당신들보다 내가 더 큰 부담이자 문제가 된다”는 얘길 했어요. 그 뒤로 5년 정도 지나면서 여러 모니터링 과정을 통해서 그런 얘기가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ACTS의 다른 프로그램보다 더 잘하는구나 하는 걸 그들이 알게 된 거지요.

전: 객관적인 사실로 이야기하자면 첫째, ACTS의 영어 과정으로 입학한 한국 학생들이 있는데 그분들이 우리 수업을 들을 수 있어요. ACTS의 영어 M.Div.(Master of Divinity, 목회학 석사) 과정에 들어갔는데 VIEW의 한국어 수업을 선택 과목은 물론 전공 필수 과목으로 수강하는 걸 흔쾌히 오케이하고 학점 인정을 해줘요. 영어 과정이나 한국어 과정이 수업 교류가 자유로울 정도로 ACTS에서 한국어 과정의 교육 수준을 인정하는 거지요. ACTS는 내년 봄에 ‘만다린(본토 중국어) 과정’을 시작하는데, 만다린 과정 디렉터가 좋은 분이기도 하지만 VIEW를 통한 경험이 중국어 과정 개설에 작용했으리라고 봅니다. (영어가 아닌) 외국어 과정이라 해도 디렉터만 믿을 만하다면 충분히 보증할 수 있겠다는 경험 말이지요.

양: 이번 여름학기에 리젠트 칼리지와 VIEW가 상호 협력 하에 한국어 과정 수업을 2개 개설했는데, 리젠트는 그야말로 세계적인 복음주의 신학교입니다. 그런데 그런 리젠트 칼리지에서 VIEW의 학문적 열량을 인정을 한 셈이지요.

전: 강의 개설 전에 영어로 강의계획서를 보냈는데, 리젠트 측에서 그 계획서를 보고는 자기 학교 학점 과목으로 개설할 수 있을 정도로 좋다고 판단한 거지요. 리젠트 학생들이 이 수업을 듣고 나서 피드백도 잘 나왔고 그래서 내년 5월에도 리젠트 여름학기에 한국어 과정이 개설될 예정입니다. 학교측에서도 “아주 좋았다. 내년에도 개설하면 좋겠다”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보내왔어요.

― 지난 20년 세월 동안 크고 작은 어려움이나 위기가 없지는 않았을 텐데요.
양: 학교 시작 직전에 한국에 IMF가 터졌어요. 환율 문제로 아무래도 학생들의 학비에 어려움이 있었지요. 그리고 캐나다 현지에서는 해외 유학생 자녀들의 교육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법안이 만들어지려고 했어요. 문제제기하는 내용을 편지로 써서 주 정부의 의회와 교육부 장관 등은 물론이고 신문에도 냈지요. 그래서 그 법안이 의회 입법이 아니라 주 정부 시행령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주 의회 의원들도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 깜짝 놀랐다더군요. 그 뒤, ACTS 학장이 교육부 공문을 들고 찾아와서 주 정부 시행령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알려 주었습니다.

전: VIEW가 해외에 세워진 학교이다 보니 영향을 끼치는 외부 요인과 고려할 요소가 많은 게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캐나다 정부가 유학생 비자를 엄격하게 하면 우리에게 위기가 되고, 유학생 체류 기간에 벌어진 일도 그럴 수 있거든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이런 요소들을 그럼 어떻게 하느냐 할 때, 결국은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의 새라 머리 감독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이런 얘길 했어요. “동물을 보면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포식자가 있고 먹히는 동물이 있는데 둘의 차이는 눈의 구조에 있다. 먹히는 동물은 끊임없이 주변을 신경 쓰는 게 생존의 길이라서 눈이 옆에 달려 있는 반면, 공격하는 동물들은 눈이 앞에 있다. 우리 단일팀은 공격하는 프레데터(predetor)다.” 그 얘기가 굉장히 흥미있게 다가왔어요. 우리 상황하고도 연결점이 있거든요. VIEW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외부 요인에 끊임없이 신경 써야 하지만, 그건 우리가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우리는 앞을 보면서 집중하자, 그게 우리 토대를 더 견실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하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 비영리 교육기관으로서 재정적 어려움은 없는지, 따로 후원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지요?
전: 재정 구조상 등록금 의존도가 80-90% 정도로 매우 높은 편입니다. 학생들이 유학 오는 과정, 현지 거주 과정에 변화가 생기면 바로 영향 받는 구조인 셈이지요. 그런 영향에 좌우됨 없이 든든히 서갈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설득해서 뜻을 같이 하는 동역자들을 찾고 만드는 것, 눈을 앞을 향하고 장기적으로 우리 목표를 이루어나가는 방법 아닐까 해요.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버틸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그렇게 VIEW가 한국교회에 필요한 존재임을 확인하고 또 확인받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양: 후원 채널이 있긴 한데 액수가 미미합니다. 설립 초기 집중적으로 이뤄진 후원은 11년이 채 안 됐을 때 소진되었고, 이후로는 후원이 많지 않고 그마저도 거의 장학금으로 다 나가지요. 그래서 이번 설립 기념행사에서도 도서관 확충이나 좋은 교수 영입 등을 위해 기금 조성 문제를 공유하려고 해요. 등록금만 가지고는 해결할 수 없는 이슈들이거든요.

전: VIEW가 시작될 때 정말 많은 분들이 헌신적으로 후원을 해주셨거든요. 그렇게 고액 기부로 시작이 되었는데, 그 뒤로 소액 후원, 소액 기부가 덜 계발된 점이 있어요. 졸업생들이 늘면서 조금씩 후원하고 있는데, 향후 후원 구조를 좀 더 안정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후원해 온 분들은 우리 비전에 공감했다는 의미이고, 새로운 후원자를 계발한다는 건 비전에 공감하는 분들을 발굴한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앞으로 VIEW가 무엇을 하는 곳이고 한국교회를 위해서 어떤 일을 감당할지 더 잘 제시하고 보여드리는 게 재정 후원을 위해서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 VIEW의 ‘비전과 미션’ 중 ‘가치’ 항목에, “하나님의 온 백성을 위한 기독교 지성을 활성화한다”는 문장이 첫 줄에 나옵니다. ‘기독교 지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양: 상당히 포괄적인 주제인데요. 저희가 하는 일에 비추어 이야기하자면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지성’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한국에서는 기독교적 지성이라 하면, ‘기독교적 학문’과 연결되어 이해되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대체로 기독교 학자들이 시작한 활동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거지요. 그러나 기독교 지성은 학문 활동뿐 아니라 기독교적 사고와 삶 전반을 기독교 세계관의 기초 위에 세우는 것으로 넓게 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한국의 복음주의 진영이 포스트모더니즘이나 다원주의 등의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기독교 진리가 정말 보편적인 진리라면 학문 영역뿐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런 점이 드러나야 하는 것이지요.

전: 양 교수님 말씀 중에서 기독교 지성과 관련하여 진리의 보편성이라는 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기독교 지성이 뭘까 하고 생각하면서 정리를 해보니 정작 ‘기독교적’이라는 말이 거의 안 나오는 거예요. 그게 오히려 기독교 지성의 특징일 수 있겠다 싶어요. 기독교 지성이 기독교인을 고립시키는 자기만의 논리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보편성에 대한 확신을 갖고 세상과 대화할 수 있는 지성이거든요. 미국 대학 시스템을 보면 리버럴 아츠 칼리지(Liberal Arts College)가 있어요. 여기서 ‘리버럴 아츠’가 우리말로는 정확히 옮기기 어려운 개념이긴 한데, ‘인문학’ ‘자유 인문학’ 정도가 돼요. 대표적인 기독교 리버럴 아츠 칼리지가 휘튼 칼리지인데, 이 리버럴 아츠는 단순한 인문학이 아니라 사고력을 키우는 기본 과정이라는 거지요. 운동에 비유하자면, 어떤 운동선수라도 심폐와 근력, 지구력 등 기초체력을 기르는 게 먼저이듯, 나중에 어떤 전공을 하고 어떤 직업을 갖든 그 바탕이 되는 학문적인 기초 체력을 다져주는 것이 바로 리버럴 아츠 칼리지의 교육 목표인 거죠.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와 VIEW를 생각할 때 기독교 지성이란 무엇보다 기본적인 사고력과 학습 능력을 다져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본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인식이 피상적이 되고 대화 능력이 떨어져서 그들만의 리그로 게토화되기 마련입니다. 반대로 사고력이 발휘되면 세상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화두를 대할 때 적극적으로 반응을 하되 공격적이기보다는 대화적인 자세를 보일 수 있다고 봐요. 그 토대는 진리의 보편성인데, 기독교 진리가 보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화할 수 있고 공통 가치와 지향점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거죠. 대화하는 지성, 포용하는 지성, 중심이 아닌 변방 즉 주변부 시각으로 대화하고 포용할 때 비로소 교회 안에 갇히지 않고 온 세상을 위한 지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화나 포용, 변방의 시각 등 이런 이야기하면 기독교적이 아니라고 반박할지 모르겠는데, 그렇다면 무엇이 기독교적이냐는 겁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이중 계명이야말로 가장 기독교적 가치인데, 이 계명에 따르면 기독교 지성이란 바로 사랑하는 지성 아닌가 해요. 복음주의 전통을 따르는 저희로서는 가장 핵심적인 게 십자가인데, 결국 대화와 포용, 주변적 시각을 십자가로 설명할 수 있다면 복음주의 정체성 안에서 지성운동을 하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한국교회의 세계관에는, 성경이나 기독교 신앙보다는 전쟁과 분단의 경험이 훨씬 더 크게 영향을 미쳐 왔다는 게 한국교회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복음과상황 오지은

― 양 교수님이 미국에서 과학사를 공부하실 때 “신실한 크리스천 과학자들이 ‘창조과학은 반(反)과학이다’라고 해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요. 한국교회에서는 창조과학이 주류인데 이 점이 한국교회 반(反)지성주의의 예증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양: 기본적으로 창조과학은 성경이 아닌 안식교 교주인 앨런 G. 화이트의 환상에서 출발했어요. 이 점이 반지성의 뿌리인 셈입니다. 이건 창조과학 운동 리더들도 잘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이 주제로 제가 대학원에서 과학사 졸업 논문을 썼는데, 자료를 찾고 추적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창조과학은 그 뿌리가 안식교에 있습니다. 앨런 화이트가 10대 시절 머리를 심하게 다쳤는데,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천국을 다녀오는 환상을 2천 번 정도 봤습니다. 그 이야기를 어느 지질학 교사가 책으로 냈고 그 책이 다시 개신교 쪽에서 나온 《창세기 대홍수》(The Genesis Flood)라는 책의 기초가 되었지요. 그 책의 공저자인 헨리 모리스가 한국에 와서 창조과학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창조과학운동은 학문 운동이 아닙니다. 학문은 그렇게 교조적이지 않습니다. 한 개인이 천국을 다녀온 환상에서 시작된 것이면 이건 신앙 영역이지요. 지금 얘기한 창조과학의 기원에 대해서는 석사 논문으로도 썼고 포럼에서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창조과학회는 시작부터 이공계 석사 학위 이상의 전공자들을 정회원으로 받고 인문학 쪽 사람들은 받지를 않았어요. 제가 창립 멤버였기에 잘 아는데, 과학주의가 너무 강해서 신학과 인문학 전공자들의 참여는 굉장히 어려웠지요. 창조에 관한 창세기 해석의 경우 신학자가 있어야 하잖아요. 신학과 인문학의 성찰이 중요하고 필요한데도 이를 간과하면서 정작 반지성주의가 아니라고 얘기합니다. 창조과학 운동은 이 시대에 과학에 과도한 권위를 부여하는 것과도 연결이 됩니다. 자기 전공 분야에서 얻는 과학자 혹은 Ph.D.의 권위를 다른 분야에까지 무분별하게 확장해서 사용하는 문제가 여기서 생겨나지요. 그럼에도 창조과학의 단순함과 선명성, 전투성 때문에 우리나라 목회자들, 성도들이 박수를 치는데, 신학자들은 창조과학의 문제점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신학을 공부한 휘튼 칼리지에서는 창조과학이 반성경적이라고 대놓고 이야기합니다. 언젠가 미국복음주의 과학자 협회(American Scientific Affiliation)모임에 갔을 때 어떤 교수님은 “창조과학은 틀린 과학이고 나쁜 신학”이라고 하더군요. 그럼에도 창조과학이 한국교회에서는 여전히 주류인 건 신도들을 대상으로 대중강연을 계속 하기 때문일 겁니다. 창조과학은 한국 개신교에 큰 부담인데, 풀어나갈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보편성이 없이 편협한 건 진리가 아닙니다.

전: 창조과학을 신봉하고 주장하는 이들은 스스로를 반지성주의라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스스로 과학적이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생각할 뿐 아니라 강의를 통해서도 이성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요. 중요한 건 대화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아닌가 해요. 창조과학을 반지성이라고 하는 건 대화하지 않는 논리, 대화하지 않는 지성이기 때문인 거지요. 대화하지 않는다는 건, 주변에 나오는 과학적 연구와 증거들에 대해 열린 성찰을 하지 않는 것도 포함합니다. 결국 그들이 대화하지 않는 건 두려움 때문이겠지요. 자신들이 내세우는 진리의 보편성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이 없어서, 끊임없이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 생존하려는 두려움이 대화를 막고 스스로 게토화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창조과학 유튜브 강의나 책들을 보면, 여러 면에서 두려움이 깔려 있는 게 보이는데, 그래서 공포 마케팅을 사용하는 거 같아요. 그러니 갈수록 더 교조적이 되는 거죠. 우종학 서울대 교수가 ‘과학과 신학의 대화’(과신대) 운동을 적극 펼치고 창조과학 진영과 대화하려 노력하는데, 소명 의식으로 감당해나가는 일이지 사실 과학자로서는 할 일이 못됩니다. 과학자라면 그 일은 별 의미 없는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거든요.

양: 전 교수님 얘기를 들으니, 최근 탈고한 책 후기가 생각납니다. 그랜드캐니언에 관한 책인데, 2년에 걸쳐 쓰면서 사진과 이미지를 모았는데 그랜드캐니언 탐사할 때 누가 연구비 대주는 것도 아니고 비용이 많이 들었지요. 그 책을 쓰느라 지구 한 바퀴 반을 돌아다녔고요. 탈고하고 나서도 몇 번씩 고쳐서 출판사에 넘기는데 한심한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랜드캐니언을 연구한 학자들이 많고 학계에서 이미 많은 연구가 이뤄져서 논쟁의 여지도 없는데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나, (창조과학 쪽 주장의 허구성을 밝히고 입증하기 위해) 무슨 논쟁거리라도 되는 양 그토록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들어 책을 썼나, 하는 허탈한 마음을 후기에 담았거든요. 그런데 이 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게, 창조과학회가 끊임없이 그랜드캐니언으로 사람들을 데려가는데 거기 갔다 오면 대화가 안 되는 겁니다. 학문적으로는 이 책을 쓰는 게 아무 쓸데없겠지만, 거기 가기 전 몇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는다면 도움을 받지 않을까 해서 쓴 거지요.

전: 종교에는 자칫 두려움을 조장할 수 있는 요소가 있습니다. VIEW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가르치면서 모니터하는 것은 세계관 운동의 극우화 문제입니다. 세계관 운동이 극우 운동이 될 위험이 있다는 거지요. 한국교회를 보면 극우 이데올로기 운동을 하는데 이걸 세계관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합니다. 앞서 제가 대화와 포용, 사랑을 이야기한 기독교 지성과는 정반대인 거지요. 대결보다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한국교회는 내부의 위기를 진리의 보편성에 대한 자신감으로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외연을 확장해가는 방식으로 해결하지 않고 더 확실한 외부의 적을 규정함으로써 내부를 단속하는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이런 일에 세계관이라는 개념을 갖다 붙이는 경우가 있어서 신경이 쓰입니다.

   
▲ VIEW 사무국과 강의실이 있는 포스마크 센터(좌)와 수업 장면. (사진: VIEW 제공)
   
 

― VIEW에서는 세계관 운동의 극우화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양: 세계관 운동의 극우화가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나타나는 현상도 염려스럽습니다. 여기저기서 세계관 운동이라는 이름을 걸고 극우 운동을 하는데, 세계관이라는 이름이 이미 오염되었다는 고민이 있어요. 1980년대만 해도 당시 가장 진보적인 그룹이 세계관 운동을 했지요. 그런데 30-40년 지나는 사이 세계관이라는 말을 아무 데나 갖다 쓰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이 용어에 스며든 오염을 제거 못한다면 아예 용어를 바꾸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전: 성경 이야기가 기독교 세계관의 가장 중요한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당위적으로 말하는데, 실제로 ‘세계관’은 개인이나 집단의 경험을 통해서도 많이 형성되지요. 그러다 보니 한국교회 기저에 흐르는 세계관이 곧 기독교 세계관이라고 혼동하는 경우가 있겠다 싶어요. 한국교회의 세계관에는, 성경이나 기독교 신앙보다는 전쟁과 분단의 경험이 훨씬 더 크게 영향을 미쳐 왔다는 게 한국교회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계관이란 전철학적(pre-philosophical) 틀인데, 한국교회의 경우 그게 성경 내러티브로 형성된 게 아니라 전쟁, 분단, 미국의 참전과 원조 등에 대한 경험으로 형성된 거지요. 개인적으로는 저 자신의 세계관 역시 성경 내러티브가 바탕이 된 건지, 아니면 다른 경험이 깔렸는지 계속 성찰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런 면에서 정직한 성찰을 멈추고 은연중에 자신을 형성한 세계관을 성경과 동일시할 때 경직된 이데올로기화가 진행되는데, 그게 세계관이 지닌 위험성인 거죠.

양: 그 대표적인 예가 창조과학입니다. 성경이나 과학 데이터에 대한 해석의 경직성, 내 해석은 절대 틀릴 수 없다는 그 경직성이 만들어낸 참사가 창조과학이라고 봅니다. 내 해석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대화할 수 있는데,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대화가 아니라 강요 일변도가 될 수밖에 없지요.

전: 한국교회의 지성 운동에는 강한 확신을 바탕으로 논리적 설득을 얻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확신이 없으면 안 되겠지만 이 확신은 자신도 틀릴 수 있다는 겸손한 확신이어야 합니다. 신앙은 어떤 면에서는 불안하고 흔들릴 수도 있는 건데, 지성 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그 불안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성찰과 탐구를 멈춘다면 잘못된 길로 빠질 수밖에 없겠지요.

양: 한국교회 안에는 신앙이 불안하고 흔들릴 수 있다고 말하거나 강한 확신에 차 있지 않으면, 믿음 없는 사람이라고 비판하는 일들이 있어요. 제 이야기이기도 한데, 제가 창조과학이 틀렸다고 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나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거든요. 그 결과 예수 안 믿는다, 이단이다 등 온갖 이야기를 다 들었지요. 지금도 가끔 강연해달라고 불렀다가 취소하는 일이 있어요. 이런 일을 견딜 수 있는 건 이 분야를 공부한 학자로서 당연히 치러야 하는 대가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사실에 대해 그 분야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틀렸다는 얘기를 안 할 수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힘든 일을 겪더라도 말이지요.

전: 지성 운동과 관련해서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 드라마를 보다가 논어에 나오는 ‘학이불고’(學而不固), 즉 배우면 고집스럽지 아니하다는 말을 접했거든요. 이것은 지성 운동에서 굉장히 중요한 태도라고 봅니다. 그 드라마에서 정약용이 아라비아 속담을 인용하면서 “흔들리는 나침반은 틀리지 않는다”는 말을 해요. 나침반 바늘은 끊임없이 유연하게 흔들려야 정확한 방향을 알려줄 수 있고 고정된 나침반은 이미 고장 난 거잖아요. 신앙도 그렇다고 봐요. 흥미로운 점은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일반 성도들은 쉽게 받아들이는 반면, 신학 공부를 마친 분들은 대부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는 겁니다.

― 기존의 신학교나 기독교 대학과 다른 VIEW만의 차별점은 무엇인지요?
전: 저는 신학 공부를 리젠트 칼리지에서 시작했는데, 50년 전 학교 설립 당시 “온 백성을 위한 신학 교육”이라는, 당시로서는 굉장히 독특한 미션을 갖고 세워졌거든요. 전문 성직자 양성 과정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과 세상에 대해 신학적 성찰을 할 수 있는 기독교 지성을 훈련시킨다는 비전을 갖고 시작한 겁니다. 그러다가 목사는 그럼 하나님 백성이 아니냐, 목회자 과정도 있어야 하지 않나 해서 M.Div. 과정이 나중에 만들어졌지요. 리젠트 칼리지의 미션이 VIEW의 고민과도 맞닿는 부분이 있어요. 저희도 목회자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성도들이 자기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고 어떻게 변화를 이루어나갈지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목회자들이 많이 지원을 하거든요. 그래서 목회자 중심인 한국교회 구조상 목회자를 위해서는 어떤 교육이 필요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변화가 성도들의 변화에 중요한 매개가 되니까요.
한국의 기존 신학교는 몇 군데 제외하곤 대부분 교단 신학교입니다. 교단 자체의 체계가 있다 보니 외부에서 볼 때 신학 체계 안에 논리 비약이 있더라도 내부에서 동의하고 받아들입니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질문들을 거치지 않거나 대화 능력이 상실되는 면이 있지요. VIEW는 초교파라서 서로 다른 교단 (신학) 출신들이 모이니까 어떤 분에겐 충격이 되기도 합니다. VIEW가 속한 ACTS 신학교도 독특한데, 침례교단 신학교 두 곳, 회중교회 전통의 교단 신학교와 메노나이트 신학교 각 한 곳, 이렇게 네 신학교가 컨소시엄을 이루고 있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필수 과목으로 들어야 하는 다른 교단 신학 수업이 충격이 되기도 하고, 시야 확장의 경험이 되기도 하고, 대화를 촉발하는 긴장을 주기도 합니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신학적으로 보자면 신칼뱅주의나 장로교 전통을 배경으로 하지만, 우리 학교의 토양은 그렇지 않아서 또 다른 자극이나 사고를 안겨줄 수 있다고 봅니다.

   
▲ VIEW 학생들. 맨 앞줄 외국인이 폴 스티븐스 교수. (사진: VIEW 제공)

― 과거 인터뷰에서 양 교수님은 “창조과학의 문제가 과학의 문제이기 이전에 치우친 성경관의 문제”라고 하셨는데요.(본지 2014년 2월호〔279호〕, 6-22쪽) 한국교회의 성경관에 대해 전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고백하는 건 귀하고도 중요합니다. 문제는 성경에 대한 고백을 성경 자체보다 더 중요시하는 데 있습니다. 성경의 권위와 영감을 인정한다면 성경에 나오는 여러 현상들을 인정하고 그것을 소화해서 설명하는 게 필요한데도, ‘성경관’이 성경 본문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단편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잠언을 보면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실제로 성경에 ‘편집’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도, 전통적인 성경관으로 보자면 ‘편집’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불온하고 불손한 단어로 취급합니다. 결국 성경관이 성경 자체를 눌러버리는 역설이 발생하지요. 또 하나는, 제가 한국 구약학의 역사에 관한 글을 쓰면서 100년 전 쓰인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성경의 권위와 영감, 성경관에 관한 내용이 지금과 비교해서 하나도 변한 게 없어서 많이 놀랐습니다. 신학의 역할을 두고, 이미 형성된 교리를 지키는 역할을 하느냐 아니면 끊임없이 새로운 신학을 건설적으로 만들어내는 창조적 역할을 하느냐는 관점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스탠리 그랜츠가 《신학으로의 초대》에서 얘기하는 신학의 보수적 기능과 창조적 기능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창조적 기능을 선호하고 강조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 100년 전의 기록을 보면서, 100년이 지나도록 성경관에 관한 한 한국 신학의 창조적 역할은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겁니다. ‘성경 무오(無誤)’나 ‘성경 무류(無謬)’라는 개념은 특정 시대의 배경에서 나온 신학 용어인데, 그 시대의 맥락이 무시되고 교조화되어버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복음주의자들이 성경 무오의 토대로 보는 <시카고 선언>의 경우, 40년 전인 1978년에 나왔는데 40년 지났으면 선언이 성경이 아닌 이상 그간의 새로운 논의에 대해 더 발전된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데 당시 내용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수준이거든요. <시카고 선언>에서 자연과학과 과학의 발견에 관한 12항, 13항의 내용을 보면, 12항에는 창조과학을 지지하는듯한 부분이 있지만 13항은 그게 아니어서 선언문 안에 긴장이 있거든요.

― VIEW의 비전과 미션에는 “기독교적 관점을 가지고 교회와 사회 이슈에 참여한다”는 문장이 나오는데, 최근 예멘 난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양: 기본적으로 세계관 운동 자체가 성경 텍스트에서 출발하지만, 사회 현실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콘텍스트에 적용되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멘 난민에 대해서는 언론 보도로만 접했는데요. 전쟁 상황을 피해서 온 사람들에게 돌아가라고 하는 건, 탈북해서 남한으로 온 탈북민들에게 북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거지요. 원칙만 놓고 생각할 때, 무슬림이니까 돌아가라는 것도 성경의 정신과 맞지 않다고 봅니다.

전: ‘기독교적 관점’으로 참여한다고 할 때, 그 관점이 한 가지만 의미한다는 건 아닙니다. 성경을 보더라도 열왕기 관점과 역대기 관점이 다르고, 복음서들도 네 가지 시각이 있는 것처럼,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는 것도 성경적이라고 봅니다. 기독교적 관점으로 참여할 때 모두가 합의한 단 하나의 관점이 아니라 다양성에 대해 열린 태도를 취하는 것도 기독교적 관점이 아닌가 합니다. 교회와 사회에 관한 이슈들에 대해 찬성과 반대가 있고 논쟁이 일어나는 건 자연스런 일이지요. 그렇기에 사회 참여의 기초는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진보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유명한 로날드 사이더 교수님이 VIEW에서 수업을 하실 때 들은 이야기가 기억나는데요. 미국 정부의 정책에 보수적인 단체에 있는 분들과 오랜 시간 서로 정직하고 솔직하게 대화했는데, 그 과정에서 서로 동의할 수 있는 공통의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는 얘기였어요. 각자 더 중요시 하는 관점으로 인해 대화가 막힐 수도 있지만, 공유할 수 있는 근본 가치를 대화를 통해 찾아나가는 작업이 한국교회에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근본 가치를 공유하더라도 그것이 정책으로 현실화할 때는 서로 관점이 다를 수 있겠지요. 그런데 한국교회는 대화를 통해 서로 공유할 만한 근본 가치를 찾아가는 작업조차 버거워하는 거 같아요. VIEW 상황에서는 교육·학술 기관이 지니는 한계도 있어서 사회 참여가 두드러지게 나타지는 않습니다. 난민 문제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근본 가치에는 뜻을 하나로 모으고, 구체적인 실천의 모습은 각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 않나 합니다.

― 어떤 분들에게 VIEW를 권하고 싶으신지요.
양: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포괄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단순히 종교 생활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전 인격을 포함하여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이 나타나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고민을 하는 분들이라면 VIEW에서 공부하는 게 상당히 도움이 되고 유익하지 않을까 합니다. 다양한 교단 출신에다 일반 성도와 목회자가 함께 섞여서 공부하는 VIEW의 독특한 분위기는 처음에는 힘들 수도 있지만, 함께 공부하는 과정에서 서로 많은 유익을 누리게 됩니다. 신학 지식에서는 목회자가 앞서 있지만,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경험들과 상상도 못할 이야기들 가운데서 목회자들이 배우는 점들이 적지 않습니다.

VIEW의 교수와 직원 가운데 M.Div.를 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교수들의 배경이 다양하고 학부에서 아무도 신학을 공부한 분들이 없어서 이른바 신학에 찌들지 않았어요.(웃음) 거기다 외부에서 로날드 사이더, 폴 스티븐스, 마이클 고힌 등 북미주의 좋은 교수들이 와서 한 과목씩 강의를 하는데, 세계관은 삶의 모든 분야와 연결되므로 교수 한 사람이 많은 강의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이런 점이 VIEW가 지닌 독특성 아닐까 합니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신앙 안에서 어떤 함의가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분이라면 VIEW의 문을 두드려 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왜 한국에서 안 하냐고 묻는 분들이 있는데, 한국에서 할 수 없어서 캐나다로 간 겁니다. 학교 설립 제안서를 냈을 때 한국 대학에서는 거부당한 반면, 캐나다에서는 제안서만 보고 받아줬습니다. 부득이 해외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지만, 해보니까 배우는 점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나그네’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해외에서 나그네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면서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면 동병상련의 마음이 듭니다.

전: 무엇보다 VIEW에서는 소위 평신도와 목회자가 함께, 다양한 교단 출신의 신앙인들이 섞여서 함께 배웁니다. 최종원 교수님 표현을 빌리자면, 신학뿐 아니라 세상을 함께 배웁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텍스트뿐 아니라 콘텍스트도 함께 공부한다는 얘깁니다. 양희송 청어람 대표가 기존에 해오던 걸 더 열심히 한다고 한국교회의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요. 그런 면에서 열심의 부족이 아니라 방식의 재고가 필요한데, VIEW가 새 포도주를 담을 새 부대가 될 수 있지 않나 합니다. 

   
▲ "제가 행정의 은사가 별로 없어서 오래 전부터 일을 많이 넘겨 왔고, 그동안 제게는 생존이 중요했기에 늘 어느 정도 긴장을 지니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전 교수님은 달라요. 우리가 사명에 충실하게 나아갈 수 있을지 늘 고민하면서도 저보다는 한 차원 높은 도약을 이룰 수 있는 분이지요. 그러니 지금이 물러나는 적기입니다." ⓒ복음과상황 오지은

― 올해 말에 양 교수님이 원장직에서 물러나신다고 들었는데, 시기가 좀 이른 거 아닌가 하는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양: 적절한 때 물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원장직을 넘긴다는 게 저로서는 큰 의미가 있지는 않아요. 원장직은 내려놓더라도 교수로서는 계속 일해야 하니까요. 제가 한국 신학교 출신이 아니어서 그쪽으로 네트워크가 거의 없는데, 30-40대 쪽으로는 더 그렇습니다. 지금 VIEW로서는 한 학기에 강의를 열 몇 개씩 개설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교수진을 더 확보해야 하거든요. 반면에 전 교수님은 8년간 한국에서 신학을 가르쳤기에 연결되는 분들이 많고 소통도 잘하기 때문에 저로서는 잘 그만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행정의 은사가 별로 없어서 오래 전부터 일을 많이 넘겨 왔고, 그동안 제게는 생존이 중요했기에 늘 어느 정도 긴장을 지니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전 교수님은 달라요. 우리가 사명에 충실하게 나아갈 수 있을지 늘 고민하면서도 저보다는 한 차원 높은 도약을 이룰 수 있는 분이지요. 그러니 지금이 물러나는 적기입니다. 물러나면 저는 여기저기서 선교사나 목회자, 전문직 종사자 등으로 활동하는 VIEW 졸업생들을 찾아다니면서 애프터서비스를 해야 하지 않나 생각중입니다.

― 후임으로서 전 교수님은 VIEW가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에 대해 어떤 ‘그림’을 그리시는지요? 아울러 끝으로 나누고 싶은 말씀을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 존 스토트의 《선교란 무엇인가》(원제:Christian Mission in the Modern World, IVP) 40주년 기념 개정증보판 추천사를 쓰면서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한 신학자의 성과를 다음 세대 사람이자 제자인 크리스토퍼 라이트가 선배이자 스승인 존 스토트의 40년 전 초판에 각 장마다 해설과 비평을 덧붙여서 더욱 유의미한 결과물을 만든 것을 보면서 참 멋지구나 싶었어요. 리더십 이양에서 한국교회, 특별히 대형교회의 실패가 두드러지는 이 즈음에 VIEW에서는 설립자이자 초대원장이신 양 교수님을 이어 리더십 이양이 바람직하게 이뤄진다 싶어서 감사하면서도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후임인 저로서는 기독교 지성 운동 맥락에서 VIEW가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고 함께할 동지를 모으고 동역자들을 확보함으로써 사역의 토대를 더 잘 다져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최근의 리더십 이론에 따르면, 자기 주변에 변화를 일으키는 게 리더십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지도자의 폭이 넓어졌는데, 자기 주변에 변화를 일으키는 지도자를 배출하는 일과 함께 과거의 지도자와 지도력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할 거 같아요. 또 하나는 교육과 연구, 실천을 수행하는 기관으로서 기존에 해오던 일을 새롭게 잘 다지는 측면에서 ‘기독 교수 네트워크’를 생각합니다. VIEW는 그동안 기독교 세계관으로 구비된 교수를 양성함으로써 지성 운동을 활성화한다는 방향성이 있어왔는데, 방향을 전환해서 하나의 허브, 즉 학자들의 네트워크 중심 노릇을 함으로써 ‘세계관 관련해서는 VIEW를 가면 된다’는 얘기가 나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는 물론 도서관 확충과 함께 단순히 장서뿐 아니라 아카이브 구축과도 연결되는 문제겠지요.

양: 이번에 VIEW에서 학술지 <통합 연구>를 복간하는데 이게 기독 학자들의 네트워크 매체로서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학자들이 논문을 쓰는데, 그 글을 싣는 <통합 연구>를 통해 서로 소통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전: 앞서 제가 동역자를 찾고 만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좀 더 직접적으로 얘기하자면 후원을 더 많이 기대한다는 뜻입니다.(웃음) 결국 그것이 VIEW가 주변 상황에 좌우되지 않고 소명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거니까요. 또 하나는 국제적인 네트워크도 감당해야 할 부분 아닌가 해요. 그동안 쌓아온 국제적 경험들을 나눌 수 있지 않나 하는 거지요. 올해 리젠트 칼리지와 여름학기를 처음 시작했는데, 더디더라도 앞으로 영국의 런던현대기독교연구소나 북미주의 다른 신학교와 비전을 공유하면서 하나씩 국제 네트워크를 확장해 나가기를 꿈꾸어 봅니다.

양: 최근에 탈고한 원고가 《기독교 대학의 이념과 실제》입니다. 지난 20년간 VIEW 사역을 통해 기독교 대학이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과 질문이 녹아든 책이지요. 한국 사회에 경건과 경영이 함께 갈 수 있는 기독교 대학의 좋은 모델이 되고, 그런 대학을 세우고자 할 때 잘 돕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전: 저는 VIEW의 사역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중 계명에 대한 독특한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는 어떤 방식으로든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며, 지금 이대로는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성경 해석학 수업의 마지막 시간에 늘 인용하는 책이 있는데, 헨지 조지의 《진보와 빈곤》입니다. 도입부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어떠한 논점도 피해가지 말고, 어떠한 결론이 나더라도 위축되지 말고, 오로지 진실만을 추구하기로 하자. 우리는 진정한 법칙을 찾아야 할 책임이 있다. 오늘날 우리 문명의 한 가운데서는 여인들은 기절하고 어린이들은 신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법칙이 어떤 내용으로 나타날 것인가는 우리는 상관할 바가 못 된다. 우리가 도달하는 결론이 우리의 편견과 충돌하더라도 움츠리지 말자. 그 결론이 오랫동안 현명하고 자연스럽다고 받아들여온 제도를 부정하더라도 되돌아서지 말자.” 이 얘기는 기존의 경제학이나 경제 패러다임이 현실의 어려움을 양산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진실을 추구했을 때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른 결론이 나오더라도 위축되지 말자는 얘기를 합니다. 그의 이 말이 개인적으로는 제가 신학을 하는 방법론이자 태도입니다. VIEW에 오시거나 관심을 가진 분들도 어떠한 결론이 나더라도 진리를 추구해왔다면 새로운 포도주를 담을 새 부대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일에 VIEW가 사용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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