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무슨 옷을 입고 있었어?”

성폭력 생존자(피해자)들이 정말 자주 듣는 질문이라는군요.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음을 전제하는 이 질문은, 옷만 다르게 입어도 성폭력을 피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화를 담고 있습니다. 남성 중심적이고 여성 차별적인 이 신화의 허구성을 알리기 위해 <무슨 옷을 입고 있었어?>라는 전시회가 미국에서 열렸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성폭력 생존자들이 사건 당시 입고 있었던 옷을 그대로 재현한 이 전시회를 관람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었다는군요. “어, 나도 어제 저 옷 입었는데….”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이잖아.”

이번 호 커버스토리는 교회의 치부를 드러내어 수치를 보태려는 취지가 아닙니다. 이미 일반 언론에서 보도되어온 사건과 치부만으로도 차고 넘치는데 새삼 뭘 더 보탤 게 있겠는지요. 그럼에도 굳이 ‘교회 성폭력 문제를 다뤄서 교회를 욕되게 하고 전도와 선교에 걸림돌이 되게 하느냐’는 항변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정말 무엇이 교회를 욕되게 하는지, 무엇이 전도와 선교의 걸림돌이 되는지 모르진 않을 텐데 말입니다.

이달의 커버스토리에서는 무엇보다 한국교회 내 성폭력 범죄가 단순히 ‘한 개인의 일탈’이나 ‘연약함’을 넘어서는 문제임을 짚어보려 했습니다.

“다수의 피해자들이 발생했고 피해자들의 증언과 신고가 계속되었지만, 가부장적 질서의 남성 중심 리더십이 견고했던 교회는 피해 여성들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마치 한국교회를 말하는 듯한 이 글은 미국 교회 이야기입니다. 메노나이트 신학자 존 요더의 성범죄와 미국 메노나이트 교회의 대처 과정을 연구했던 김성한 IVF 춘천지방회 대표간사의 글은 ‘가부장적 위계’가 비단 한국교회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줍니다.(‘커버스토리’ 42-54쪽) 이렇듯 교회에도 깊이 뿌리내린 가부장적 위계 구조와 남성/권력자 중심의 사고방식이 교회 성폭력의 토대와 뒷배가 되어왔음을 톺아보고자 했습니다.

또한, 성폭력 가해자들은 ‘새 시대’의 주인공 노릇하며 교회를 개척하거나 변함없이 목사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과 달리, 피해자들은 쫓겨나다시피 교회를 떠나거나 트라우마로 인한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길을 모색해보고자 했습니다. 연대(#위드유)를 위해, 올해 7월 출범한 ‘기독교반(反)성폭력센터’ 이야기를 담은 김애희 센터장 인터뷰(‘사람과 상황’ 6-21쪽)를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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