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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기독교, 세계관, 대학원을 새롭게 상상하다
[337호 신학자의 말]
[337호] 2018년 11월 28일 (수) 14:11:59 전성민 goscon@goscon.co.kr
   
▲ 전성민 VIEW 신임 원장. (이하 사진: VIEW 제공)

이 글은 지난 11월 1일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신임 원장으로 취임한 전성민 교수의 취임사로, 허락을 받아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오늘 저희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Vancouver Institute for Evangelical Worldview) 20주년 기념식에 오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멀리 한국에서 오신 손봉호 교수님, 지난 20년간 VIEW의 사역에 힘을 모아주신 밴쿠버 지역 교회의 목회자분들, 저희 VIEW 동문들과 재학생 가족 여러분, 이사님들, 그리고 교직원 여러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20년의 동행에 함께할 수 있도록 저를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저희 기념식의 주제는 “20년의 동행, 새로운 상상”입니다. 돌아보고 바라보는 시간인 오늘, 저는 한국 기독교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상상을 여기 오신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동기 3.0’을 이루는 3가지: 자율, 숙련, 목적의식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드라이브》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창조적인 사람들을 움직이는 자발적 동기부여의 힘”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생물학적 욕구를 ‘동기 1.0’, 보상을 바라고 처벌을 피하는 욕구를 ‘동기 2.0’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이라도 창의적인 일을 위해서는 내재적인 욕구가 훨씬 효과적이라 하면서 그것을 ‘동기 3.0’이라고 부릅니다. 그 동기 3.0을 이루는 세 가지는 자율(autonomy), 숙련(mastery), 목적(purpose)입니다. 스스로 하고 싶은 욕구, 뭔가 더 잘하고 싶은 욕구, 그리고 분명한 목적 의식. 이것들이 사람을 움직입니다.

이 내재적 동기 부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골리앗과 싸워 이긴 다윗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 때, 다윗은 사울이 자신에게 준 군복과 놋 투구, 갑옷이 불편하다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싸우러 나갑니다. ‘자율’입니다. 다윗은 매끄러운 돌 다섯과 물매를 들고 골리앗 앞에 나아가 그의 이마에 명중시킵니다. ‘숙련’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일은 여호와의 이름의 명예를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다니엘 핑크의 설명을 보며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뿐 아니라 VIEW 원우분들이 생각났습니다. 원우분들이 VIEW에 계시는 시간을 자율, 숙련, 목적 가운데 보내실 수 있다면 그 시간이 열정과 창조성으로 가득 찰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바람을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먼저 자율입니다. 뷰에 계시는 동안 하고 싶은 것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찾아 스스로의 방식으로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숙련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어떤 한 주제에 최고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TV프로그램을 다들 아시지요? 어떤 상황 속에서 한 가지 일에 집중해 삶의 대부분을 보낸 분들이 달인이 됩니다. 그 프로그램을 볼 때면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일이라도 그것을 하며 살아온 평생의 시간의 무게 앞에 존경의 마음이 절로 우러납니다. VIEW에서의 시간이 한 주제의 달인이 되시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함께 마음을 모으는 목적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모토가 된 “한국 기독교의 미래”를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 계신 한 분 한 분의 한 순간 한 순간, 하루하루가 한국 기독교의 미래, 아니, 손봉호 교수님의 도전처럼, 세계 기독교의 미래를 창조하고 있다는 목적의식을 잊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자율, 숙련, 목적. 이 세 가지를 가지고 VIEW 가족분들께 주제넘은 부탁을 드렸습니다. 이 부탁이 주제넘은 만큼 VIEW가 그러한 환경을 만드는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번에 손봉호 교수님께서 오셔서 주신 가르침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진정한 사랑은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 유익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제게 있어 VIEW의 일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제게 가장 가까운 이웃은 다름 아닌 VIEW에 오신 원우들이십니다. 그러니 제가 하는 VIEW의 모든 일은 원우분들을 사랑하는 일이어야 하며, 그 사랑이 참 사랑이 되려면 그 일들이 원우분들에게 유익을 끼쳐야만 하겠습니다. 아마존닷컴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고객에 대한 집착”(customer obsession)이 VIEW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입니다. 한국 기독교의 미래를 꿈꾸지만, 이 또한 지금 여기서 원우분들을 더욱 의미 있게 섬기는 길이기도 합니다.

취임사에서 사람들은 비전과 약속을 나누곤 합니다. 그래서 약속드리고자 합니다. VIEW에 오신 분들이 이곳에서 자신의 열정을 다해 생활하실 수 있도록, 다시 말해 원우분들의 자율, 숙련, 목적의식이 최대화되도록 애쓰겠습니다.

먼저, 자율입니다. 세계관이라는 큰 우산 아래 VIEW에 오시는 분들 자신이 원하시는 공부를 마음껏 하실 수 있도록 수업과 학제의 다양성, 유연성, 그리고 전문성을 높이고자 합니다. 이것은 시간이 필요한 일입니다. 우선 지금 여기서 가능한 부분부터 원우분들의 관심과 필요에 더욱 귀 기울이겠습니다. 작년 원우 간담회에서 페미니즘 관련 강의가 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감사하게도 내년 봄 학기에 ‘종교, 여성, 사역’이라는 수업이 개설됩니다. 그것도 복음주의 안에서 그 분야의 가장 탁월한 교수님을 모시고 말입니다. 학업 방식에서도 여러분의 자율 증진을 돕는 방법이 무엇인지 더욱 연구하고 고민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숙련입니다. 스스로 찾으신 주제에 대해 달인이 되실 수 있도록 VIEW의 인적·물적 자원을 마련하겠습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말씀드리는 도서관 확충, 교수 충원이야말로 이것을 위한 노력입니다. 그뿐 아니라 학업을 좀 더 부드럽게 진행하실 수 있는 행정 시스템의 정비 또한 여러분의 숙련을 도울 것입니다. 좋은 수업을 빨리 잘 신청하고 교과서도 빨리 주문해서 미리 공부하고 싶은데(아닌가요?^^), 관련 행정이 부드럽지 못해 아쉬웠던 적 있으셨는지요. 저희 교직원들이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여러 이유로 아쉬움이 생기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이젠 그런 아쉬움이 사라지도록 함께 잘 살피겠습니다. 더불어 무엇이 여러분의 숙련을 위해 필요한지 듣고 살필 수 있는 인력과 방법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무엇인가를 숙달하는 데에는 정서적 에너지 또한 중요할 것입니다. 학생 복지가 필요합니다. 너무 구체적이어서 우습기도 하지만 이런 상상도 해봅니다. 캠핑을 가고 싶은데, 텐트가 없습니다. 1년에 한 번 가려고 텐트를 사기는 아깝습니다. 그런데 학교가 텐트를 대여해줄 수 있다면 어떨까요? 학교에서 텐트를 대여해 캠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캠핑 사이트에 있는 호수에 발만 담그기는 아쉽습니다. 그런데 학교가 카약을 대여해줄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런데 우리 가슴을 설레고 뛰게 하는 것은 이런 세세하고 구체적인 내용들이 담긴 자율과 숙련을 돕겠다는 약속이 동기 3.0의 마지막 욕구인 ‘목적의식’과 함께할 때입니다. 목적의식이 없다면, 자율과 숙련은 근원적 힘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생택쥐페리가 이런 말을 했다죠. “배를 만들게 하려면 배 만드는 법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바다를 동경하게 하라.” 우리는 동경하는 바다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한국 기독교의 미래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거창한가요? 거창하지요. 거창합니다. 그러나 이런 바다에 대한 동경 없이 그저 배 만드는 법만 가르치고 배우고 있다면, 어느 순간, 지치고 말 것입니다.

이제 이런 질문이 속에서부터 차올라 옵니다. 어떤 미래인가? 우리는 어떤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고 싶은가? 어떤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원우분들의 가슴이 뛰게 도울 것인가. 이것이 제가 VIEW에서 섬긴 지난 5년 간 끊임없이 물었던 질문입니다.

   
▲ VIEW 20주년 행사의 한 장면.

새로운 기독교 세계관을 상상하다
저희 학교의 이름은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입니다. 길지만, 이 이름을 구성하고 있는 네 단어 모두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밴쿠버, 기독교, 세계관, 대학원. 저는 이제 네 단어들을 가지고 20년 동행을 이어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할 새로운 미래에 대한 상상을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새로운 기독교,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기독교 세계관을 상상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창세기 1장 1절이야 말로 우리가 상상하는 기독교 세계관의 기초입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성경에서 처음으로 “세계”를 만납니다. 여기 쓰인 “천지”라는 표현은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것을 지칭합니다. 좋으신 하나님이 세계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해 보이는 것과 세속적으로 보이는 것 모두, 몸과 영혼 모두, 육체와 정신 모두, 주일과 평일 모두, 예배당과 직장 모두, 개인적 영역뿐 아니라 공적 영역 모두 본래 선하고 거룩하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창세기 1:1에 기초한 기독교 세계관은 세계를 긍정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세계관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고백합니다. 이 고백의 이면에는 우리는 창조자가 아니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우리는 창조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의 세계관은 결코 완벽하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해 살핀 말씀의 뜻에 기초한 세계관이라 하더라도 틀릴 수 있다는 단서를 붙여야 합니다. 우리의 기독교 세계관은 겸손해야 합니다.

“흔들리는 나침반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아라비아 속담이 있습니다. 너무 확신에 찬 나머지 어떠한 경우에도 나의 세계관이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의 생각을 절대화하는 우상 숭배와 같습니다. 나의 생각과 세계관이 틀릴 수도 있다는 긴장과 겸손만이 진리에 다가가고 진리를 드러내는 길입니다. 더욱이 좋으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는 기독교인뿐 아니라 비기독교인, 소위 세상 사람, 무신론자,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이 함께 살아갑니다. 겸손은 타인과의 대화로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좋으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긍정하며 세상과 대화할 수 있는 겸손한 세계관”이 필요합니다. 아니 절실합니다. 왜냐하면 세계관이라는 개념이 가진 전체주의적 위험성 때문입니다.

세계관은 “세계”, 즉 모든 것을 총망라하는 것에 대해 관점을 말합니다. 그러다 보니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을 불러일으키기가 쉽습니다. 세계지도를 볼 때 마치 우리가 온 지구를 그 바깥에서 관찰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하나님이 된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지도가 담고 있는 세계 바깥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세계”를 총망라하는 관점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그것은 특정 시간과 장소라는 맥락 속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설령 그것이 기독교 세계관이라 하더라고 그렇습니다. 데이빗 노글의 표현을 빌자면, 세계관을 중요시 여기는 견해 또한 하나의 세계관입니다.

아무리 성경에 토대한 세계관을 만든다 하더라도 그와 동시에 우리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경험 또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에 영향을 주었고 지금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무시하거나 부인할 때 우리의 세계관은 성경적이고 기독교적이라는 미명 아래 교만하고 고집스런 독백으로 가득 찬 이데올로기가 되고 맙니다.

어떤 특정 세계관을 결코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관점이라고 여길 때, 우리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라고 물으며 자신의 사고방식을 모두의 상식으로 제시하게 됩니다. 아니면 “이것이 기독교 세계관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열면 바로 볼 수 있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라며 상식의 수사를 신앙과 연결시킵니다. 그러나 이런 말은 사실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 자신의 사고방식을 신앙의 이름으로 강요하는 것일 때가 많습니다. 이렇듯 “세계관”은 전체주의 사고의 빌미가 되는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습니다.

   
▲ 양승훈 원장 부부(오른쪽)와 전성민 신임 원장 부부

‘가시오, 그대가 가는 방향으로 내가 걷겠소’
그렇다면 세계관 개념에 담긴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세계관에 ‘자리’와 ‘방향’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의 세계관에는 자리가 있습니다. <송곳>이라는 드라마에서 구고신이라는 노무사가 노동자와 고용주의 입장 차이를 설명하며 이런 말을 합니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우리의 삶이 어떤 자리에 있느냐가 우리의 세계관에 차이를 가져옵니다. 이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더욱 필요한 것은 내가 특정한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지금 이 시대는 우리를 어떤 자리로 부르는지 성찰하는 일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출판한 책에서 창조, 일상, 공공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나눌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의 세계관은 종말적 전망 속에 시대의 과제를 푸는 방향을 향해야 합니다.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드라마에서 고애신이 유진 초이에게 작별을 고하자 유진은 작별을 거부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가시오, 그대가 가는 방향으로 내가 걷겠소.” 애신을 향한 유진의 사랑은 그를 어느 방향으론가 걷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세계관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방향으로 우리 걸음을 인도해야 합니다. 그 사랑의 방향은 새 하늘과 새 땅에 임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사야 60장은 새 하늘과 새 땅은 교회뿐 아니라 인류의 문화로 충만할 것을 알려줍니다. 에스겔 47-48장은 공평과 포용의 공동체의 환상을 보여줍니다. 이런 종말적 전망을 가지고 시대의 과제를 푸는 방향을 찾는데 있어, 우리는 이제 더는 작동하지 않는 한국 기독교를 지금까지 지탱해온 방식을 떠나보낼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상상력은 경계의 삶에서 자라납니다. <미스터 션샤인>에 등장하는 유진 초이, 구동매, 쿠도 히나, 고애신, 김희성. 이 다섯 명의 주인공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 경계에 선 삶을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경계의 삶을 통해 자신의 우물을 벗어날 수 있었으며 새로운 상상 속에 더 넓은 세계로 부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성경도 그런 인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라합, 룻, 나아만, 고넬료, 바울이 그런 경계선의 삶을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방의 갈릴리에서 사셨던 우리 주님이 그러하셨습니다.

상상을 계속 해 봅니다. 우리는 그 동안 지성이 우리 삶을 추동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아는 것뿐 아니라 욕망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세계관과 대결해 이기려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대결보다 대화가 먼저 필요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것은 혐오의 율법이 아니라 환대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구속하신 것은 자신이 창조하신 온 인류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관심 또한 교회의 성장을 넘어 인류의 번영이 되어야 합니다. 창조, 일상, 공공의 자리에서 이 새로운 방향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새롭게 상상하는 기독교 세계관의 모습입니다.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취임사를 준비하는 동안, 제 가슴에 꽂힌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김민기 씨의 <봉우리>라는 노래입니다.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라는 내레이션으로 이 노래는 시작합니다. 이 노래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세상에서 자신이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혼자 열심히 올랐습니다. 힘들어도 열심히 올랐습니다. 다 오른 후 누릴 기쁨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추구했던 봉우리에 다다른 후, 그 봉우리가 끝이 아니라 더 높은 곳으로 이어지는 고갯마루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깨달음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지금까지 열심히 바라며 올랐던 높은 곳이 아니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숲 속의 좁게 난 길이 봉우리일지도 모르겠다는 가사가 제 가슴에 박혔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기독교와 세계관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나누었습니다. 제가 오르고 싶은 봉우리입니다. 꽤 높은 봉우리입니다. 그런데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 <아침이슬>을 빼놓는다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 “그냥 함께 살아가는 늙은이로 기억되면 족하다”는 김민기 씨의 이 노래는 높은 봉우리를 오르려 하는 제 걸음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미래를 바라보며 오르려는 봉우리는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지금 여기서 걷는 한 걸음이 봉우리일 뿐이다.’

새로운 자리와 방향을 제안하는 기독교와 세계관에 대한 상상은 거창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의 나머지 두 단어, 밴쿠버와 대학원에 대한 상상은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 속의 작은 길”에 대한 상상이고 싶습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이웃인 원우분들을 사랑하며 그분들의 내적 욕구를 성취케 하는 대학원을 상상했습니다. 지금 여기 계신 원우분들의 자율, 숙련, 목적에 도움이 되어드리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봉우리입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밴쿠버를 상상할 때에도, ‘지금 여기’를 바라보려 합니다. 밴쿠버는 무엇보다 우리 동문들의 삶과 사역의 자리입니다. VIEW가 상상하는 새로운 밴쿠버는 동문들의 삶과 사역에 도움을 드리는 것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더불어 밴쿠버의 지역 교회와 성도님들의 사역과 삶에도 더욱 도움이 되는 VIEW가 될 것입니다. 저희가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말씀해주십시오. 귀 기울이고 움직이겠습니다. 함께 상상하고 기대해주십시오.

상상 아닌 상상
2018년 11월 1일, 오늘은 매우 역사적인 날입니다. VIEW 20주년 기념식 때문만이 아닙니다. 11월 1일 0시를 기해 남북한이 땅, 바다, 하늘에서 모든 적대 행위를 중지했습니다. 북한의 해안포 포문이 폐쇄된 것도 확인했습니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문익환 목사님은 1989년 새해가 밝으며 <잠꼬대 아닌 잠꼬대>라는 제목의 시를 세상에 내어 놓았습니다.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

이 잠꼬대가 쓰여진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 그의 잠꼬대는 제목 그대로 잠꼬대가 아니었음을 깨닫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상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상상 아닌 상상입니다. 꿈 아닌 꿈입니다. 이제 저는 이 상상을, 상상에 그치지 않는 상상으로 만들자고 초청하고 싶습니다.

함께 보고 싶은 테드(TED) 영상이 있습니다. <How to start a movement>, 한 외로운 사람의 움직임에 어떻게 많은 사람이 함께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영상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은 많은 도움과 사랑이 있었지만 20년간 혼자 춤을 추었던 외로운 돈키호테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배짱으로 춤을 시작했던 한 외로운 리더의 뒤를 한 추종자가 따릅니다. 이들을 외롭게 만들지 말아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그 춤이 지금 좀 괴상해 보여도 한국과 세계 기독교의 미래를 그리는 춤사위입니다. 함께 춤추어 주십시오. 여러 분이 함께해주실 때 흐름이 바뀔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 기독교와 세계 기독교를 새롭게 할 것입니다. 또한 지금 여기 숲 속에 좁게 난 길을 조금씩 새롭게 하며 함께 땀 흘리며 걸어가고 싶습니다.

이 모든 새로운 상상에, 온 세계를 창조하고, 마른 뼈를 살아나게 하고, 종과 주인, 여자와 남자, 노인과 젊은이 모두가 환상을 보고 꿈꾸게 하는 하나님의 숨결이 불어와 깃들기를 간구합니다.
감사합니다.

 

전성민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원장으로 세계관 및 구약학을 가르친다.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리젠트 칼리지에서 성서언어(M.C.S.)와 구약학(Th.M.)을 공부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구약 내러티브의 윤리적 읽기’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D.Phil.)를 받았으며, 2014년 한국인 신학자로는 최초로 학위논문이 옥스퍼드 신학 및 종교학 단행본 총서로 출판되었다(Ethics and Biblical Narrative).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창립 연구위원으로 현재는 초빙연구위원으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세계관적 설교》 《사사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 등이 있으며, 전문영역인 구약 윤리 외에 평신도 신학, 세계관적 성경읽기와 설교, 미션얼 운동의 구약적 토대, 성서학과 과학의 관계 등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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