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호 브루더호프 통신]

▲ 글쓴이와 아내 마그릿(2015년).

2017년 5월 25일자 <뉴욕타임스>의 기사에는 아끼는 친구들이 모두 떠난 후, 의사의 도움을 받아 치사 약물을 주입함으로 자신의 장례를 준비한 캐나다에 사는 한 남자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는 잘 쓰였고 매우 확신에 차 있었다.

그 환자는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실 병환으로 지쳐 있었다. 고대 사람들이 창조주와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던 독수리 깃털도 있고 기도 망또도 있었다. 좋은 음식과 포옹과 눈물도 있었다. 사람들은 초를 켰고 축복의 인사말을 나누는 가운데 죽음을 되찾아오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누군가는 죽임을 당하는 것이고 심지어 약물을 주입하는 의사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비록 그가 “내가 생각할 바가 아니다. 이것은 내 직업이고 나는 내 할 바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단호히 주장했지만 말이다.

다른 예도 있다. 오레곤 주에 사는 어떤 노부부는 함께 죽기로 결심했다. 결혼으로 동고동락한 지 66주년이 되었고 그 가운데는 인도로 의료 선교를 다녀온 몇 해도 포함되어 있다. 나이듦과 파킨슨병, 심장질환과 암 같은 여러 질병은 두 사람이 짊어지기엔 너무 버거웠다. 가족들이 비디오로 과정을 기록했고, 그들은 새롭게 죽음의 방식을 개척한 용감한 모범으로 찬양받았다.

그리고 브리타니 메이나드의 경우도 있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29세의 이 여성은 수술로 제거할 수 없는 뇌종양이 있었고 조력 자살(assisted-suicide)을 허용하는 법을 제정해 달라고 자신이 속한 주와 다른 주에 청원했다. 메이나드는 여러 잡지와 방송국에서 영웅으로 묘사되었으며, 결국엔 오리건 주로 옮겨와 약물 주입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단지 암이나 신경근육 이상에 의한 장애에 걸린 사람들만이 삶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삶으로부터 소진되는 우울증으로, 또는 일부 유럽에서는 그저 늙었다는 이유로 생을 마감하려 한다.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그리고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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