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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과 100년은 멀어진 한국교회
[340호 시사 잰걸음]
[340호] 2019년 02월 28일 (목) 13:50:41 박제민 goscon@goscon.co.kr
   
▲ 1919년 3월 1일, 공원에서 만세를 부르는 군중. (사진: 위키미디어코먼스)

올해는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100! 백! 꽉 찬 듯, 가슴 뿌듯해지는 숫자임이 틀림없다. 어떤 일을 기억하고 기념하기에도 적절한 시간이다. 때문에 여기저기서 3.1운동의 의미와 정신을 되새기기 위한 일들이 비 온 뒤에 솟아나는 대나무 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3.1운동을 기억하는 키워드
3.1운동이 가지는 의미는 어마어마하다. 한국 사학계의 거장인 이만열 선생은 “한국의 민중민주운동은 19세기 농민운동에서 시작해 갑오동학혁명에 이르렀고 3.1운동, 4.19혁명, 광주 민주화운동, 6월 민주화운동을 거쳐 촛불혁명으로 연결되는데, 그 최고봉에 3.1운동이 우뚝 서 있다”고 단언한다. 그 의미를 다 담을 수 없겠지만, 최근에 좋으신 선생님들을 만나 배우며 익힌 내용을 바탕으로 몇 개의 키워드를 꼽아보고자 한다.

비폭력 저항
3.1운동은 우리 민족이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강제 점령에 저항하기 위해 온 민족이 다같이 일어나 독립을 선포한 사건이었다. 3월 1일 하루만 했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겠지만, 이 운동이 거의 1년 동안 지속됐다는 것을 아는 이도 많지 않다. 억누른 자들의 힘이 셌지만, 억눌린 자들의 저항도 질겼다.

기미독립선언서에 있는 ‘공약 3장’에 따르면 “모든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며” “배타적인 감정으로 정도에서 벗어난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고 권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3.1운동은 비폭력적으로 진행됐다. 직접 만든 태극기나 피켓을 들고나와 흔들며 외치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당시 일제에 물리적으로 저항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고, 일제의 탄압이 거세지자 산발적으로 폭력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절대다수가 총칼 앞에서 본능을 초월해 비폭력으로 저항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종교를 초월한 연대
3.1운동은 종교인들의 연대가 중심이 됐다. 언론·출판·집회·결사와 같은 자유가 철저하게 가로막힌 시절이었지만, 종교단체는 집회가 가능했고 전국적으로 조직을 갖출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종교인들이 세상의 아픔에 함께 호흡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책임감도 강하게 느끼고 있었으며, 공공선을 위해서 차이를 넘어 연대하는 유연함을 갖고 있었다. 특히 개신교와 천도교의 협력이 눈에 띈다. 두 종교는 일시와 장소를 협의하고 업무를 분담했는데, 교세가 더 강했던 천도교는 개신교에 당시 돈으로 5천 원을 빌려주기도 했다. 최근 한국 기독교사 연구자들 중에 개신교가 천도교에 이 돈을 갚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 흥미롭다. 당시 개신교 지도자였던 이승훈 선생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3.1운동에 참여하기를 꺼리던 개신교인들에게 “이놈, 저놈” 하며 꾸짖었다고 한다.

민주주의의 시작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요즘, 3.1운동을 ‘3.1혁명’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고 실은 예전부터 있던 주장이다. 혁명이라는 말이 세게 느껴져서 좋아하는 사람도, 꺼리는 사람도 있겠다. 한 편으로는 모름지기 혁명이라면 옛것이 무너지고 새것이 들어서야 한다고 생각해서, 3.1운동을 통해 결과적으로 변한 것이 없으니 혁명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3.1운동을 통해 당장은 독립을 성취하지는 못했지만,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민주주의 정치를 꿈꾸기 시작했다는 점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3.1운동의 여파로 조직된 임시정부는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 정했다.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똑똑히 적고 있다.

3.1운동 정신과는 거리가 먼 한국교회
한국교회가 3.1운동을 기념하겠다고 한 지 꽤 되었다. 기특한 일이다. 3.1운동은 우리 민족 전체의 자산이므로 교회들도 기념할 자유가 있다. 또한 당시에 적은 세력이었지만 어떤 종교보다 적극적으로 3.1운동에 앞장선 것은 자랑스러운 유산이기도 하다.

그런데 3.1운동을 기념한다는 오늘날의 한국교회가 앞서 말한 3.1운동의 정신, 즉 ‘비폭력 저항’ ‘종교를 초월한 연대’ ‘민주주의’ 등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100년의 세월은 멀기만 하다.

3.1운동은 비폭력으로 대표되는데, 오늘에 이르러 한국교회 일부가 물리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우려된다. 폭력 행사에 대한 죄책도 반성도 별로 없어 보이는 점이 더 걱정이다. ‘퀴어 축제’ 현장이 대표적이다. 한꺼번에 몰려가 물리적으로 행사를 방해하고 무산시킨다.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하면 폭력을 써도 되는가? 예수님이 보시면 뭐라 하실까?

3.1운동은 억눌린 자들의 저항이었는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무엇에 저항하는가? 시대의 모습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한국교회는 거의 대부분 돈과 힘에 아첨하며 기득권에 빌붙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과연 억눌린 자들과 함께하는가? 얼마 전, ‘약자를 위한 정의’를 올해 운동 주제로 삼은 모 개신교 시민단체의 페이스북에 어떤 사람들이 “성경이 말하는 약자와 사회가 말하는 약자는 다르다” “기독교라는 말은 빼고 그냥 윤리실천운동이라고 해라” 같은 댓글을 달았다. 성경이 말하는 약자와 사회가 말하는 약자가 어떻게 다른지, 배움이 짧은 나로서는 모를 말이다.

3.1운동은 종교를 초월한 연대를 통해 이뤄졌는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가장 열심히 타종교를 배척한다. 타종교 믿으면 지옥 간다면서 일방적인 전도를 시도하다가 잘 안 되면 상종을 하지 않는다. 2017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실시한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교회와 성도들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로 “지나치게 배타적이기 때문”이란 의견이 많았다.

   
 

‘3.1절 10만 구국행사’, 그리고 ‘100주년을 기억하는 기독인연합’
3.1운동을 통해 이 땅에 민주주의가 시작됐는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가장 권위적인 조직으로 손꼽힌다. 교회의 반민주성은 밖으로도 뻗친다. 한국 사회에서 반인반신의 우상이 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추모하겠다는 예배에서, 어떤 이름 모를 목사가 하나님도 독재하셨다며 한국은 독재를 해야 한다고 말해서 사람들을 충격과 공포, 는 아니고 비웃게 만들었다. 최근에는 한국교회 일부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짜뉴스의 진원지로 지목당하기에 이르렀다.

올해도 한국교회는 3.1절을 맞아 으리번쩍하게 구국행사를 연다. 10만 명이 모여 찬양제를 열고, 연설을 하고, 만세운동을 재현하고, 선언문을 발표하고, 뮤직비디오(!)를 제작한단다. 이 행사의 ‘짱’을 맡은 어떤 목사는 자기가 책임을 맡았으니 절대로 정치 행사가 안 되도록 할 것이라고 했단다. 나로서도 바라는 바인데, 왠지 모를 기시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런 한국교회 한구석에 ‘복음주의’를 모토로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10만 명은커녕, “적은 무리됨을 기뻐하는 이들”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간담이 뜨끈해지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1운동 100주년을 기억하는 기독인 연합’이란 모임을 만들었다. 3.1절 하루 전인 2월 28일에 기념예배를 드리고 탑골공원으로 가서 선언문 발표하고, 홍수 같은 기념식들이 지나가고 3월 19일에 청년들과 함께하는 집담회를 연다고 하는데, 기미독립선언서의 한 구절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이 없다. 현 사태를 수습하여 아물리기에 급한 우리는 묵은 옛일을 응징하고 잘못을 가릴 겨를이 없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오직 자기 건설에 있을 뿐이요, 그것은 결코 남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자기의 새 운명을 펼쳐나갈 뿐이오, 결코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남을 시새워 쫓고 물리치려는 것도 아니로다.”


박제민
20대 끝자락에 기독시민운동 판에 들어와 어느덧 30대 후반이 되었다. 낮에는 기독 시민단체 실무자, 밤에는 ‘동네교회청년’ 활동가로 살아가는 30대 청년이다. 보수적인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자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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