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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 트럼프와 남북미 판문점 회동
[345호 평화를 읽다] 트럼프와 남북미 판문점 회동
[345호] 2019년 07월 31일 (수) 10:52:44 윤환철 goscon@goscon.co.kr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비즈니스에서 국제질서로, ‘흔들기’의 진화
국가를 잘 ‘경영’할 사람을 갈망하던 한국인들에게 나타난 것은 국가를 비즈니스 모델로 삼는 ‘샐러리맨의 신화’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기업과 정치가 얼마나 다른지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했고, 그걸 혼동한 대가는 앞으로도 몇 대에 걸쳐 치러야 할 판이다. 원한 바 없지만, 한국인들은 트럼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진 셈이다. 그는 이십대부터 부동산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며 부를 일궈나갔고, 노년에는 언론과 포퓰리즘으로 정치권력을 파고드는 경로를 개척했다. 세계 최강대국의 최고 권력을 획득한 지금은 그가 흔드는 대상이 세계의 보편적 가치들, 지역의 정치·경제적 질서들이다.

국제정치를 업으로 삼는 미국과 아시아의 지식인들은 상당 기간 ‘트럼프 미스터리’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트럼프는 함부로 예측하면 안 된다”는 답변이 전문가의 입에서 스스럼없이 나올 정도였다. 필자는 2016년 11월 “미국 신행정부 출범과 동아시아” 제하의 공개 포럼에서 최초의 수렁에 빠진 미국 전문가들을 봤다. 그들의 발제문에는 ‘미국 신행정부’가 트럼프가 아닌 힐러리 클린턴으로 인쇄돼 있었다. 원고를 보내고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에 출구조사를 뒤집는 개표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그래도 전문가 수준의 임기응변을 기대했으나, “우리가 김정은과 북한은 좀 압니다 … 그런데 … 트럼프와 미국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라는 멘트는 좀체로 잊혀지지 않는다.

최초의 미스터리였던 그의 득표력 대부분은 미국의 백인 블루칼라 유권자라는 대집단에 있었고, 지금은 재선 가능성이 같은 구도에 들었다. 그 이외에는 그가 ‘설마 그 일을 벌일 것인가’ 하는 것이니, 이는 그의 안에 답이 있다. 극우 유대인 집단과 같이 유권자들의 표피적 욕구들에 맞춰진 공약들도 약속이라는 당위(當爲)가 있으니 설마 지킬 것인가.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고 이름했지만, 사실은 그의 지지층에게 어필하는 굴뚝 산업을 다시 유치할 것인가. 이런 의구심들은 어느새 현실이 되어 있다.

2017년 트럼프는 ‘공약을 이행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는 의미로 주 이스라엘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도록 했다. 이는 미국이 오랫동안 취해 온 ‘2개 국가 해법’, 즉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존을 목표로 하는 정책을 뒤집고 분란을 일으킨 것이었다. 2019년 6월, 미 국방부는 ‘인도·태평양전략 보고서’에서 대만을 국가로 표현했다. 7월에는 국무부가 ‘M1A2 에이브람스 탱크 108대와 관련 장비, 스팅어 미사일 250기 등의 무기를 대만에 수출하는 방안을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무역전쟁 상대인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1979년 중국과 수교한 이후 유지해 온 ‘하나의 중국’ 원칙을 크게 훼손하고 안보 위협과 양안 관계를 흔들면서 일정한 경제적 이득도 챙긴 셈이다.
 

   
 

하노이의 ‘노딜’과 6월 30일 판문점의 ‘남·북·미 회동’은 정반대의 사건이지만 미국 언론의 말머리(헤드라인)를 확실하게 돌려놓는 데 주효했다는 점에서는 용도가 같았다. 2월 하노이 협상 결렬의 배경은 트럼프 자신이 트위터에 쓴대로 코언 청문회였고, 7월 일요일 오후(미국 시간 새벽)의 갑작스런 남·북·미 회동은 오사카 G20 기간 내내 신경 쓰이던 민주당 TV토론의 흥행을 잠재우고 월요일(7.1) 국내외 신문·방송의 헤드라인을 완전히 장악했다.

일련의 행동은 트럼프와 그의 미국이 ‘인류 평화 증진’이라는 일관성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충돌하는 집단 이익이나 일정 기간 유지돼 온 질서를 흔들어서(shake) 자신의 재선에 맞춰진 정치적 이득을 향해 배열하는 습성을 보여준다. ‘2개 국가 해법’을 유지해야 할 중동에서는 1국만 인정하고, 1979년 이래 40년 동안 하나로 인정했던 중국은 별안간 2개로 만드는 등, 정치의 최고단위인 국체(國體)들도 서슴없이 뒤흔드는 것이다. 이러한 행보가 장기적으로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신뢰를 갉아먹고, 선택지를 제한할 우려가 있지만, 그것은 트럼프의 이해관계에 들어있지 않다. 미래 세대를 생각하거나, 국제 정의를 고려하는 것은 정치철학적 사고를 뜻하는데, 트럼프가 받는 지지와 비난은 바로 그게 없는 데서 기인한다.

흔들려야 하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추구한다는 것은 현상 변화를 원한다는 의미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오바마 집권기까지의 미국은 동아시아에 바람직한 변화를 만들지 못했고, 당시 대한민국 정권도 그걸 원하지 않았으며, 실력도 없었다. 트럼프의 미국 역시 이익을 찾아 흔든다는 원칙뿐, 그것이 어떤 가치와 그에 부합하는 속도와 방향을 가져야 한다는 진정성은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는 범죄가 되는 김정은에 대한 ‘찬양·고무’를 입에 달고 다니며, 대북 제재를 종교적 신념으로 가진 존 볼턴을 칼처럼 휘두른다.
 

   
▲ 남북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났다. ⓒ청와대

볼턴은 북한의 항복을 뜻하는 ‘리비아 모델’을 거론함으로써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을 좌초시켰고, 하노이에서 ‘노딜’이 필요할 때 당길 수 있는 방아쇠였다. 청와대까지 왔던 볼턴이 사상 최초의 남·북·미 판문점 회동 시간엔 몽골에 간 것을 두고 용도 폐기된 것처럼 쓰는 언론도 있었지만,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상태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곧 전쟁이 날 것 같은 팽팽한 긴장에서 벗어나자마자 난기류(turbulence)를 만나는 곳이 한반도이고, 남한 대통령은 그걸 에너지 삼아 방향을 잡아야 하는 극한직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용케 다 죽었던 북미회담을 살리고, ‘노딜’ 쇼크 상태인 북·미 관계 상황에서 사상 최초의 남·북·미 회동이라는 심폐소생술을 성공시켰다. 이분이 매우 성실한 것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이 정도의 반전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기밀문서들이 풀리기 전까지는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 그리고 꿈이 이뤄진다”는 과거 청와대의 전설에 그 설명을 미루기로 한다.

사실상의 종전선언, 사실상의 종전행동
‘사실상의(de facto)  통일 상태’는 김대중 정부 이후 본격적으로 거론돼 온 개념으로 통일을 하나의 사건(event)이라기보다는 변화의 과정(process)과 실효성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서로 적대하지 않고, 자유로이 왕래하고, 상호 협력함으로써 깨지기 어려운 평화 상태를 만들고 누리는 것이다. 국가연합체, 연방 혹은 단방국가가 되는 결과는 그런 상태가 된 이후에 논의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는 함의가 담겨 있다. 다만 이 개념을 받아들이려면, 적대 관계에서 벗어나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합리적 숙고가 가능한 여론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9월 평양에서 서명된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사실상의 종전선언’으로, 경호 조치 없이 북미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넘나든 판문점의 ‘남·북·미 회동’을 “사실상의 행동으로 적대관계 종식을 선언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앞의 ‘선언’은 뒤의 ‘행동’의 필요조건이었다. 군사분야 이행합의서에 의해 판문점 일대 공동경비구역(JSA)이 비무장화되지 않았다면 제아무리 세계를 흔드는 트럼프라도, 아무리 정치 이벤트에 목말랐어도, 맨몸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극이든 춤이든
점점 누가 흔들고, 흔들리는지 구분이 어렵게 돼 간다. 미국뿐 아니라 2개나 3개로 보이는 중국, 팔레스타인, 남미를 흔들고 있는 트럼프는 한반도도 그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청와대가 치밀하게 벌여놓은 판을 그는 즐겼고, 서명에 앞서 몸으로 하는 종전선언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를 두고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 극장’이라며, 연출 정치라고 비판했다는데, 소설가 정찬의 표현대로 ‘냉전 박물관’보다 훨씬 나은 것이 극장이고, 각본이 없어도 너무 없었던 극 치고는 성공적이었다. 극장 다음 단계는 ‘춤’이었으면 좋겠다. 일생 비즈니스 파트너와 대중과 지구촌의 이웃들을 흔들어 온 트럼프 자신도 그러한 일방적 관계가 피곤하다는 걸 느끼고, 누군가와 동기화하며 같은 리듬에 몸을 맡기는 편이 훨씬 행복하다는 걸 체득하길 빈다.

그게 ‘극’이었든 ‘춤’이었든, 분단사에서 평화의 방향으로 가장 가까이 가 본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런 엄청난 사건을 만나고도 길게 기뻐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걸 우리는 본능처럼 느낀다.

판문점 남북미 회동 이후 미국에서는 ‘비핵화’에서 ‘모든 대량살상무기 제거’로 말을 바꿔 협상을 어렵게 가져간다는 기사와 ‘석탄과 섬유’ 수출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는 협상설이 거의 동시에 나오고 있다. 여전히 난기류지만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정권의 한결 차분한 대응은 칭찬할 만하다. ‘오지랖’ 운운했던 태도는 사라지고 판문점에서 문 대통령에게 감사 인사를 건넨 이후 대 일본 메시지 말고는 거친 언사가 안 들린다. 계속 그러기를 바란다.

큰 행복을 부르는 소소한 행복
판문점 회동은 비무장지대를 ‘비무장화’하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소소한 행복을 챙겼고, 트럼프를 오사카에서 불러들인 데서 비롯됐다. 김정은이 트럼프의 트윗을 팔로우 하는 관계라는 것도 드러났다. 필자는 국제사회의 제재나 거대 담론에 속하는 변화에 앞서 남북이 현재 실현 가능한 평화 조치를 적극적으로 이행하는 것을 강조해 왔다. 북한이 국제제재 해제를 주장하면서, 해제 이전에 누릴 수 있는 평화조차 누리지 않는다면 설득력 없는 주장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탁한다. 다음 달부터 일상적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자. 어떤 극보다 더 극적인 장면들이 트럼프의 탑 다운 방식을 못마땅해 하는 ‘바텀’들을 움직일 것이다. 교동도와 황해도 사이 철조망을 걷어내고 배를 띄워도 좋겠다. 서로 상대방 지역에 매장된 소중한 유골들을 알려주고 넘겨주자. 그리고 역사상 최초가 될 일이 하나 더 남았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남한 방문이 그것이다. 8.15든 추석이든 서울과 외가에 해당하는 제주를 방문한다면, 세계인들은 ‘사실상의 통일’ 개념을 확연히 이해할 것이다.


 

윤환철
시민사회운동가이며, <복음과상황>, 사단법인 남북나눔운동, 한반도평화연구원(KPI)에서 일했다. 북한과 경제협력, 인도적 지원, 개발 협력을 진행하는 실무자로서 평양, 신의주, 개성 등지를 왕래했다. 성공회대에서 NGO를, 연세대에서 통일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미래나눔재단 사무총장으로 탈북민 장학, 취업 창업지원과 대북인도적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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