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호 일터 신학 1] 로잔위원회 ‘글로벌 워크플레이스 포럼’ 후기

로잔 언약, 그 아득했던 이름
거의 1년 전이었을 겁니다. 로잔위원회에서 주최하는 ‘글로벌 워크플레이스 포럼’(Global Workplace Forum), 굳이 의역하자면 ‘일터신학과 사역을 세계적으로 조망하는 포럼’이 마닐라에서 5박 6일 동안 열린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직업적으로는 한국,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에서 난민들을 돕는 인권 활동에 몸담고 있지만, 기독교 세계관과 하나님 나라 운동에 기반한 ‘일터 사역’ 단체인 기독법률가회의 구성원이기도 합니다.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렇듯 법률가들 역시 고민이 큽니다. 하나님 나라 운동과 선교는 과연 일상의 직업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명쾌한 답을 찾기 어려운 고민 속 이원론의 명제를 극복해보려는 노력은 오히려 개별 일터의 논리에 포획될 근거로 변용되어 버리기 일쑤고, 구원은 또다시 피안의 세계로 밀려나는 경험을 거듭했기 때문입니다.

로잔이란 이름을 만난 것은 학창 시절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존 스토트 목사께서 초안에 관여하여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의 동등한 중요성’을 처음으로 세계 선교의 과제에서 설정했다는 〈로잔 언약〉(1974), 이를 계승하며 ‘통전적 복음’의 중요성을 천명한 〈마닐라 선언〉(1989)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에도 〈복음과상황〉을 통해, ‘일하고 기도하라’며 구체적 행동을 요청한 〈케이프타운 서약〉(2010)으로 운동이 이어져 왔음을 들었습니다. 지금도 막힌 곳을 뚫어주는 듯한, 세계 선교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된 커다란 결의들. 하지만, 언약과 선언, 서약 이후 구체적 활동이 어떻게 세계 각국 교회의 현장에서 펼쳐지고 연결되었는지는 일상을 살아가는 제겐 다소 희미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 여성에 관한 세션에서 발표하는 미국 월드 릴리프(World Releief)의 제니 양. (사진: 이일 제공)

질문들로 구성된 5박 6일의 열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마닐라의 포럼 장소에 도착해 109개국에서 온 900여 명의 참가자들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세계 교회의 디아스포라적인 역동을 확인할 수 있는 구성이었습니다. 자세히 찾아보니 로잔위원회는 각 지역별 조직 및 그간의 회의들을 통해 제시된 다양한 주제별 그룹 논의를 각 그룹 활동가들을 통해 계속해서 문서 형태로 발전시켜왔습니다. 그 주제 중 하나가 소위 ‘일터’(workplace) 사역이었습니다. 이에 관한 논의와 네트워킹을 오프라인에서 가지고자 한 것이 이번 포럼의 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로잔위원회에서 일터 사역을 담당할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게 한 것입니다.

포럼은 상당히 빡빡하게 이뤄졌습니다. 수요일 ‘직업과 정체성’, 목요일 ‘창의적 제자도’, 금요일 ‘내일의 일터’, 토요일 ‘믿음이 일하게 하기’ 등 매일의 전체 주제 아래 세 묶음의 일정이 배치되었습니다. 우선 오전에는 ‘소그룹 다니엘서 스터디’ ‘일터신학과 실제 사례연구’, 그리고 점심 식사 후엔 선택강의를 3개 정도 듣거나, 마닐라 현지 NGO들의 현장을 탐방하는 기회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선택강의 주제 중에서도 중요하게 선정된 주제들(사실 이 주제들은 모두 로잔위원회의 탄탄한 주제별 그룹명칭들입니다)을 하루에 서너 개씩 〈TED〉와 유사한 짧은 강의 형태로 10여 명이 집중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도시사역, 이주노동자, 기업가정신, 가사노동’이 수요일, ‘일터의 여성, 취약한 아동, 가난한 자를 위한 정의, 안식에의 요청’이 목요일, ‘창조세계의 돌봄, 새로운 기술, 상처와 희망’이 금요일 저녁의 주제였습니다. 

특히 ‘일터신학’을 조망해야 하는 성격상, 참석자들의 반 이상은 신학자나 목회자가 아니라 실제로 회사 또는 NGO를 운영하거나, 예술가부터 IT 엔지니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진 경우여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문제의식이 많았고, 주로 저녁 세션에서의 개별 발표들도 새로운 통찰이나 상상력을 담고 있었습니다. 저는 현지 단체 탐방을 한 번 나갔는데, 인신매매 피해자 구조 단체에서 필리핀 현지의 심각한 성 착취 인신매매 현실과 NGO와 교회의 협력을 통한 구체적 대응에 관해 눈과 귀로 목격했던 일이 기억에 선명히 남았습니다.
 

   
 

변화하는 복음주의권 선교의 흐름을 성령 안에서 포착해서 선언하는 로잔 운동의 한 부분에 실제로 참여할 수 있었던 것, 성경의 언어로 사회의 구체적 문제를 포착해서 해결하려는 훌륭한 시도들을 본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장점이었습니다. 이번 대회에선 전체 세션과 주제 강의에 몇 그룹만 참여했지만 로잔위원회 사이트에서 찾아보니 활동하는 주제 그룹이 35개가 넘더군요. 다양한 구조 속에 창의적으로 활동하는 세계 각지에서 온 사역자들, 그리고 오랜 시간 고민을 깊이 축적해온 한국 로잔위원회 참가자들에게서도 많은 통찰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로잔언약을 포함한 기존 문건들이 신학자 한 명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수 년에 걸친 세계 각지의 다양한 공동체적 노력이 반영된 결과물이라는 사실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이는 개별 지역교회의 실천을 한 걸음 더 멀리 내딛게 할 내용들입니다.

포럼을 마치면서 생긴 고민
좋았던 만큼 아쉬웠던 점도 있었습니다. 좋았던 때는 암담한 한국교회와의 간극이 느껴져서, 아쉬웠던 때는 또 한국교회의 어떤 모습이 투영되어서, 그리고 한국교회가 긍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최대치를 상상하면서 그러했지요.

우선, 형식적인 면에서는 발표자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들로 제한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주최 측은 문화, 인종, 출신 대륙별 다양성을 반영해 치밀하게 기획을 하였으나, 결국 주된 발표자들은 미국 교회의 일원이거나, 미국 또는 영미권 국가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 학자로 제한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어가 제1언어가 아닌 예외적 발표는 강제노동에서 구조된 필리핀인 한 분이 유일했습니다. 실무상의 난점을 감안하더라도, 109개국에서 온 세계 각국의 교회를 통해 말씀하시는 음성을 포럼의 구조가 담아내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질적인 면에서는 ‘일’에 대한 조망이 다소 단순하게 보여 아쉬움이 남습니다. ‘일터’에 대한 논의가 ‘6일의 삶도 주님의 것이다’라는 폴 스티븐스의 당연한 설명 또는 기독교 세계관 논의에서 줄곧 지적한 창조론적 주장의 반복을 넘어서려면 실제 현장에서 ‘일’을 사유해야 합니다. 지금 세계에서 ‘일 또는 직업’은 단지 축복이 아니라 고통인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 서적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기쁨’과 ‘개인의 소명’이 만나는 직업을 선택할 ‘자유’가 대다수에겐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결국 다양한 자유가 주어진 특정 직업군 또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신실한 고용주의 직업이 주로 상정되고 논의될 여지가 있습니다.

   
 

실제로 착취로 돌아가는 대부분의 삶은 잘 논의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의 문제가 더욱 심각합니다. ‘일’을 구체적으로 보지 않으면 ‘일터신학’에서 담지 못하는 주변부(Marginalized)의 소외된 사람들이 논의에서 배제됩니다. 그 결과, 성공과 신앙을 동시에 보유한 존경할 만한 CEO들의 미담 또는 실리콘밸리에서의 사내 기독인 모임 같은, 개인의 신앙과 종교적 실천으로 모든 답이 수렴될 수 있습니다. 개인이 소명을 찾아 부르신 직업을 잘 찾고 그 직업 안에서 잘하자, 그리고 서로 잘하도록 네트워킹을 하자는 개인의 실천으로만 수렴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개인이 속해 있는 사회, 국가, 회사는 공허해지거나, 아니면 지경을 넓히자는 또 다른 형태의 ‘크리스텐덤 비전’의 대상으로 왜곡되어 남을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세계’에 대한 조망도 약간은 단순했지 않나 싶습니다. 인류가 현재 발을 딛고 있는 세계는 약간의 경제적 부정의, 환경의 파괴, 여성과 소수자의 인권 침해를 목도하는 ‘우리의 불편함’으로 설명될 단순한 공간이 아닙니다. 세상 ‘저편’의 이야기도 아니지요. 오히려 우리가 만들어낸 ‘죄와 구조적 악’이 문제여서 이에 관한 ‘진지한 회개’와 ‘책임지는 삶’이 요청되는 공간입니다. 교회 바깥의 다양한 일반 사회운동에 관한 콘퍼런스에서도 세계를 분석하고 활동가들을 통해 강의를 듣습니다. 다만, 교회가 이와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유일한 계기는 ‘이 세상’에 이런 문제가 있으니 전략을 세워 더 나은 세상을 만들도록 노력하자고 외치고 마치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죄와 악들의 팽팽한 세상 속에 그어진 경계를 인식하고, ‘이 세상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다’라고 껴안고 주님의 힘을 덧입는 공동체적 고백이 중요하기에 다같이 회개를 먼저 시작했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이번 포럼의 성격이 다양한 각론을 다루고 네트워킹을 촉진하는 것이었긴 하나, 오늘의 세계를 예민하게 조망하며 죄를 회개하는 총론적인 세션이 없었던 탓에, ‘우리 힘들 때도 많았지만, 잘하고 있는 사람도 많으니, 서로 격려를 받으며 앞으로 더 잘해보자’라는 톤으로 마쳐진 듯합니다. 만약 교회가 ‘창조세계 전역에서 들려오는 오늘의 신음’을 심각하게 포착하지 않고, 이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깊이 숙고하지 않아, 신학자들이 다양한 주제를 연역적으로 그린 단순화된 세상만을 전제하면, 결국 답변도 추상적인 형태로 나올 것입니다.

이런 아쉬움들은 한국교회에 대한 먹먹한 마음이 이곳에 투영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목회자와 평신도로 표현되는 구도를 전혀 벗지 못한 채 여전히 성속이원론의 틀과 성직주의에 완전히 포획된 한국교회 상황에서, ‘일터’를 선교적 자리로 명확히 인식하여 활동을 펼치라는 포럼의 결의는 단연 곱씹어야 할 내용입니다. 특히 목회자들은 말씀을 전하는 위치에 놓일 뿐 실제 사역의 리더십과 지향을 비목회자인 성도들에게 부여할 것을 촉구한 점은 더욱 그렇습니다. 여성, 이주 노동자, 피조세계와 같은 좀 더 선명한 각론들을 교회의 실천 영역으로 가져오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운동은 복음주의권 안에서, 경건성과 실천, 보이지 않는 헌신을 겸비하고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는 소중한 평신도 사역자들의 경험과 실천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 영감과 역동이 한국교회의 갱신으로 이어지기를, 고민을 축적해온 한국교회 역시 돈과 권력이 아닌 더 낮고 겸손한 방식으로 세계 교회에 기여할 부분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www.apil.or.kr) 소속 변호사로, 난민인권네트워크에서 의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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