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호 비하인드 커버스토리] 김다혜 기자의 단단 후기

   
▲ 《육식의 성정치》 표지(부분).

황윤 감독이 쓴 《사랑할까, 먹을까》를 읽고 예상치 못한 단어에 당황했다. 공장식 축산이랑 페미니즘이 무슨 상관이 있지? 인용된 다른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역사가이자 신학자인 찰스 패터슨이 집필한 《동물 홀로코스트》. 동물 학대와 인권 유린의 연결성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대인들과 노예, 여성을 비롯한 약자들이 동물로 비하되어왔고, 이는 이들을 학살하거나 종속시키는 데 훌륭한 논거가 되어왔으며 가해자들이 느껴야 할 죄책감마저 탕감해주었음을 패터슨은 조목조목 논증한다.

다큐멘터리 〈도미니언〉(2018)은 논증 대신 보여주기를 택했다.* 허락을 맡고(허락을 해주는 곳을 찾기조차 쉽지 않다) 그나마 ‘괜찮은’ 축에 속하는 공장식 축산 농장을 촬영한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이 다큐멘터리는 촬영팀이 잠입해서 설치한 카메라 렌즈로 어떻게 인간이 동물을 ‘다루고’, 동물들이 쉽게 죽지 ‘않는지’, 아니 어떻게 ‘산 채로’ 고통을 당하다가 죽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도미니언>을 보며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던 장면은 한둘이 아니지만, 일생동안 임신과 출산, 수유를 반복하는 암컷 동물들의 ‘얼굴’을 특별히 언급하고 싶다. 암컷이라는 이유로, 인간에 의해 수퇘지의 정액이 주입당해 임신을 당하고 임신 능력이나 (젖소나 암탉의 경우) 수유·산란 능력이 감퇴하면 도살당하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는 것만 같은 표정. 이렇게까지 해서 먹어야 하나. 페미니즘을 말한 입으로 죽은 돼지와 우유와 달걀을 먹어왔구나…. 그때부터 나는 고기와 우유, 달걀 섭취를 중단했고, 지금은 생선도 가능한 먹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채식 요리책을 사서 채식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여기, 동물과 여성의 연결 고리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다른 책이 있다. 캐럴 J. 애덤스의 《육식의 성정치》는 가부장 텍스트 속에서 고기는 백인남성 지배계급의 것이었으며, 남성에 의해 착취되는 여성과 동물이 어떻게 서로 부재하는 지시 대상***인지를 풍부한 역사적·언어적 사례를 통해 밝힌다. 대학생 때 읽은 한강의 《채식주의자》에서 주인공 영혜가 어느 날 육식을 거부하다가 마침내 물구나무를 선 채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나무가 되기를 소망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페미니즘-채식주의 이론과 연결되는 거였나. 이 책을 접하고 처음 생각했다. 

공장식 축산만이 문제가 아님을 안다. 아보카도, 커피, 과자의 팜유에도 불타는 나무와 착취당하는 어린 노동자들이 내 눈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 상품이 내게 오기까지의 과정을 생략하고 은폐하는 자본주의 구조에서 소비자는 그것들을 보지 못하고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는 기도조차 떠올리지 못한다. 하지만 문제를 인식하자, 무언가를 살 때 조금은 더 알아보게 되었고 불매하는 것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본 다른 친구들이 채식을 고민하고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편리함에 누군가의 고통이 배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조금이라도 기득권을 내려  놓으려는 감수성 아닐까. 혹자는 굳이 알아야 하는 거냐고, 알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을 먹을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이라고도 한다. 나는 반문하고 싶다. 우리의 눈을 가리는 시스템 속에서, 즉 모든 메뉴에 죽은 동물의 살이 들어가는 이 육식 문화를 유지하며 인간의 몸과 영혼, 환경 모두를 파괴하는 공장식 축산의 육류 산업 하에서, 식탁은 정말 개인의 선택으로만 끝나는 것인지. 나아가 한 가지 더 묻고 싶다. 내가 그러했듯, 알려고 하지 않는 게으름은 고통을 가하는 입장에서 누리는 하나의 ‘권력’이 아닌지. 

 

* 호아킨 피닉스 등 비건을 지향하는 배우들이 내레이션을 맡은 이 작품은 돼지, 닭, 소를 포함한 인간에게 착취당하는 동물들을 각각의 단편으로 찍어서 하나로 묶어냈다.
** 요리가 귀찮고 주방을 싫어했던 내가 변심하게 된 것은 '야채 김밥' 한 줄을 사는 데에도 동물성 재료들을 빼달라고 주문해야 하며 귀찮아하는 식당 가게 사장님들을 감내해야 하는 한국의 육식주의 외식 문화 때문이다. 
***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가리키고 있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동물은 여성으로, 또 여성은 동물로 자주 은유되는데, 즉 남성에 의해 길들이고 착취당할 수 있는 '대상물'임이 드러난다.
**** 〈Cowspiracy〉는 기업화된 축산업계와 낙농업계가 국·민영기업을 후원하는 구조를 지적하는 다큐멘터리다. 이에 따르면 팜유로 인해 인도네시아 열대우림에서 파괴된 삼림은 105,218m²이고, 가축과 사료로 인해 파괴된 삼림은 550,372m²이다.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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