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호 김다혜의 독서일기]
채식을 하는 인스타그램 유저라면, 한번쯤 ‘#비건’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연관 검색어로는 ‘비건빵’ ‘비건맛집’ 등이 뜨는데, 대부분 건강한 음식보다는 사진을 찍음직한 ‘예쁜’ 디저트 빵과 파스타 류가 화면을 채운다. 부끄럽지만 한때 이런 인스타그램 피드에 자극 받아 비건 빵에 빠져 있었음을 고백한다.
1년 전 ‘돼지를 생각하다’(본지 2019년 12월호 커버스토리) 이후 채식을 시작했다. 지금도 이어가고 있지만 깨달은 게 있다. 채식이 곧 윤리적이고, 지속가능하며, 건강하게 먹는다는 뜻이 아닐 수 있다는 것. 완벽하고도 개인적인 비거니즘에 몰입하다가 함께한 식탁의 고기 소비량을 오히려 늘린 적이 있고, 식재료를 살 때마다 플라스틱 비닐 쓰레기를 피할 수 없었고, 정크 비건이 되어 건강을 잃기도 했다. 몸은 정직하게 반응했는데, 이후 병원 처방은 간단했다. 고강도의 짧은 운동을 매일 할 것, 그리고 ‘삼시세끼를 잘 챙겨먹을 것.’
‘무엇을, 언제,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채식을 하고 쓰레기를 덜 배출하면서도 몸을 돌보는 식사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너무 많은 음식이 존재한다. 무엇이 ‘건강한’ 식사일까? ‘완벽한 식단’을 짜면 그것을 건강한 식사라고 할 수 있을까? 건강하지 않은 음식을 먹는 것이 과연 개인의 책임일까? 먹을거리에 대한 윤리적 측면과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가리면서 건강하지 않은 음식 소비를 부추기는 SNS와 ‘먹방’ 같은 미디어, 고가공 식품에 ‘초특가 할인’ 스티커를 붙이는 현대사회의 식산업 문화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우리네 식탁의 짤막한 역사
계속된 질문 끝에 집어든 《식사에 대한 생각》 초반부는 식단의 변화사를 짤막하게 기술한다. 모두 아는 것처럼, 인류는 수렵 채집과 사냥을 하다가 농경 시대를 맞아 거대 문명을 이룩했다. 이때는 곡물이 주식인 탓에 기근과 결핍성 질환에 취약했지만 이후 농업기술이 발전하고 요리법이 다양해지면서 이러한 문제들을 다소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다 도시화·기계화가 진행되어 새로운 어려움을 만났다. 육체노동은 줄었는데 대규모 국제무역 형태의 농업이 발달하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양이 획기적으로 는 것이다. 덕분에 굶주림의 문제는 대폭 줄어들었지만 이에 따른 값싼 잉여 곡물이 공장식 축산 및 다국적 식품기업에 투입되어 고가공 식품 산업과 마케팅이 폭발했다. 이들 기업은 1차 식품을 공급하는 농부(3-6%의 이윤)보다 더 많은 이익(고가공 식품은 약 15%의 이윤을 보장한다)을 가져가게 되었고 값싼 고가공 식품의 섭취 증가로 사람들은 비만과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다.(전 세계 인구 3분의 1이 식습관에 따른 건강 문제가 있다.)
정크푸드만의 문제는 아니다. 비료와 트랙터의 개발로 단일작물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일이 가능해지면서 그만큼 토양의 질은 악화되고 땅에서 나는 작물들이 획일화되었다. 한 곳에 앉아 세계 도처의 음식들을 맛볼 수 있지만 어디에서, 무엇을 먹든 접시에 담긴 음식의 원재료들이 동일해진 것이다. 과일 또한 이전 조상들이 먹던 것보다 무척 달아졌지만 영양소는 훨씬 줄어들었으며, 무엇을 먹든지 이전보다 더 많이 더 자주 먹고 있다. 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치아씨드나 아보카도처럼 유행하는 슈퍼푸드에 몰두하기도 하는데 뜻하지 않게 그곳 사람들의 먹을거리를 빼앗고 토질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건강한 식사’를 위한 조건
‘어떻게’ 먹느냐도 문제다. 회사에 정해진 식사 시간이 없다면? 허겁지겁 빨리 먹고 업무로 복귀해야 한다. 피곤에 절은 몸으로 집에 돌아와 채소를 다듬는 요리를 하는 일은 라면을 끓이는 것보다 허들이 높다. 이제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이아들의 ‘혼밥’도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여성의 무보수 가사 노동으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이렇듯, 저자가 인용한 음식 저널리스트의 말처럼 “개인이 수천 번 저항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 중 누구도 혼자서 이 지형을 바꿀 수는 없다.”
이에 맞서, 저자는 국가 규제를 통해 사람들의 건강 문제를 개선한 성공적인 실례를 든다. 시리얼 상자의 만화 캐릭터를 없애고 설탕세를 부과하며 식품 성분을 경고하는 라벨을 큼지막하게 붙이는 칠레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또 매력적인 채소 홍보 광고를 제작하고 농부들에게 보상을 제공하는 아이디어도 언급한다. 패스트푸드 입점을 막고 텃밭과 음식을 만드는 수업을 여는 학교와 채소 푸드트럭과 주거 개선을 통해 저소득층의 채소 섭취량을 개선한 도시 사례도 눈에 들어왔다. ‘밥상을 위한’사회 전체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건강한 식사’란 무엇인지, 또 이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울타리’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고민이 계속된다. 기후위기 때문이든 건강을 잃는 어른들과 아이들 때문이든, 지금의 식산업 구조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 책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공장식 축산 문제나 환경적 측면에서 비판할 대목은 다소 있다. 그러나 앞서 살핀 것처럼, ‘건강한 식사’는 결코 하나의 측면으로만 설명되지 않고, 해결할 수도 없다는 점을 다각도로 밝힌다.
저자는 눈으로 음식의 '재료'를 따질 수 있으면 건강한 음식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다음과 같은 행동도 건강한 식탁을 위한 운동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음식이 만들어지고 식탁이 차려지기까지의 과정을 따지는 일. 그리고 이를 개인의 윤리에만 맡기지 않고 대안적인 산업 구조를 상상해 보는 일이 그것이다. 하나하나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하는 일이 우리 모두의 건강한 식사를 위한 길임은 분명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