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호 오수경의 편애하는 리뷰]
코로나 백신이 개발되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이 지겨운 ‘마스크’에서 벗어날 날이 오긴 오는구나 싶어 설렜다. 오랜 기다림 끝에 백신을 맞게 되었을 때 ‘코로나 지나면’이라는 마음속 상자에 넣어두었던 ‘일상’과 ‘미래’를 조심스레 열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변이되었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간신히 열어본 상자는 다시 봉인되기를 반복했다. 희망은 곧 두려운 질문으로 바뀌었다. 코로나는 과연 끝이 날까? 더 강력한 바이러스가 들이닥치면 어쩌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tvN 드라마 〈해피니스〉는 이 두려운 질문이 현실이 된 근미래(2023년) 사회에 관한 이야기다. 이제 겨우 코로나 시대를 벗어나게 되었는데 또 다른 ‘바이러스’가 출몰한다. 폐렴 치료제로 개발되었다가 부작용 때문에 판매 중지된 ‘넥스트’라는 약과 연관이 있다고 알려진 이 바이러스는 극심한 갈증을 느끼다가 물이나 피에 반응하여 인간을 공격하는 증상을 보인다. ‘광견병’처럼 인간을 문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광인병’으로 명명된 이 바이러스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한다. 감염자가 대거 발생한 아파트는 봉쇄되고, 도시에는 계엄령이 선포된다. 드라마는 봉쇄된 세양시 르시엘 아파트를 중심으로 광인병에 대처하는 인간 군상을 그린다.
바이러스 시대가 종식되지 않을 것 같은 현실적 공포를 반영한 설정, 봉쇄된 아파트 입주민들이 임대 세대와 일반 분양 세대를 구분하고 신분과 직업을 따지며 차별한다는 설정을 보면 최근 방영된 드라마 중 가장 동시대적인 문제의식을 드러낸 드라마가 아닌가 싶다. 이 동시대성 때문에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며 보기 힘들었지만, 이 드라마는 재난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지, 우리는 어떤 사회를 도모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이 고민은 드라마 속 인물들을 통해 풀어볼 수 있다. 거칠게 보면, 〈해피니스〉는 이기적 인간에 대항하는 이타적 인간의 분투기로 요약할 수 있다. 감염된 자신의 치료를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어야 치료제가 개발되리라고 여겨 ‘넥스트’를 불법 유통한 제약회사 사장, 임상 단계에 있는 치료제를 빼돌려 먼저 맞으려는 권력자들, 생존을 위해 이기심과 광기를 발하며 아귀다툼을 하는 아파트 입주민들은 이기적 인간상을 대표한다. 반면,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의무사령부 한태석 중령, 봉쇄된 아파트를 지키는 경찰특공대 전술요원 윤새봄과 강력반 형사 정이현 등은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고 함께 살고자 애쓰는 이타적 인간상을 상징한다. 흥미로운 점은 광인병에 걸린 이들에게서도 이런 구분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감염자들은 한 명이라도 더 물기 위해 타인에게 달려들지만, 어떤 감염자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을 물게 될까 봐 두려워하며 초인적 인내심을 발휘하거나 스스로 격리된다.
여러 인물 중 특히 흥미로운 인물은 1202호에 사는 오연옥과 선우창 부부다. 오연옥은 각종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동대표를 자처한 속물이고, 그의 남편 선우창은 (사이비) 목사다. ‘빌런’ 오연옥에 비해 존재감이 없던 선우창이 ‘목사’로서 존재감을 발휘하는 순간이 온다. 정이현의 선배 경찰인 김정국이 불안감에 휩싸인 걸 감지한 오연옥과 선우창이 그의 불안감을 ‘기도’로 조종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려 한 것이다. 두 사람에 의해 심리적 조종을 당한 김정국은 자신이 아끼는 후배인 윤새봄과 정이현을 향해 총까지 겨누게 된다. 다행히도 두 사람의 계략은 실패로 끝나고, 선우창은 감염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종교는
인간의 불안과 공포를 이용하려는 신념과 종교가 얼마나 해로울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의식은 넷플릭스 화제작 〈지옥〉에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지옥〉은 느닷없이 ‘당신은 며칠 후 몇 시에 죽어서 지옥에 갈 것’이라는 천사의 ‘고지’를 받은 사람들이 지옥의 사자들로 불리는 초자연적 존재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시연’)당하는 재난 상황에 놓인 인간 군상을 그린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불가해하고 불가항력적 재난에 ‘신의 의도’를 부여하며 인간과 사회를 자신들의 의도대로 조종하려는 신흥종교 ‘새진리회’와 폭력 및 광기를 정의로 포장하는 광신도 집단 ‘화살촉’ 등을 통해 종교의 가장 어두운 속성을 드러낸다. 상황과 양상은 다르지만 〈해피니스〉와 〈지옥〉 속 종교는, 인간을 불안과 공포에서 구원하며 사회 안녕에 기여하기는커녕 혼란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유익을 구하거나 집단을 결속하고 공동체(사회)를 더 혼란스럽게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두 드라마를 보다 보면 종교란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해 질문하게 된다.
종교(특히 기독교)에 관한 대중문화의 부정적 재현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재현된 종교의 면면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반박 불가’ 상태일 때가 많다. 비록 ‘사이비’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해피니스〉 속 목사 부부는 주변에서 흔하게 보았던 속물적 목사들과 닮았고, 〈지옥〉에서 새진리회 창시자 정진수와 그의 사제들이 설파하는 ‘신의 의도’는 어느 교회 설교와 견주어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폭력을 정의로 포장하는 광신도 집단 화살촉 무리들은 폭력과 혐오를 신앙으로 정당화하는 이들과 닮았다. 어쩌면 종교가 사회에서 온전한 책무를 감당하지 못할 때 ‘돌들이 소리치게’ 하듯 대중문화를 통해 직면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서두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재난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또한 우리는 어떤 사회를 도모할 수 있을까? 여기에 하나의 질문을 더해보자. 종교는 어떤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통과하기 위해 대중문화가 재현한 종교의 어두운 면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억울하다고 항변하기에는 종교는 이미 ‘신의 의도’와 너무 멀어진 게 아닐까?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배제와 혐오를 신앙적으로 정당화해온 종교가 세상에 흩뿌린 해악이 너무 크다.
오수경
낮에는 청어람ARMC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쓴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이웃들의 희로애락에 참견하고 싶은 오지라퍼다. 함께 쓴 책으로 《을들의 당나귀 귀》 《불편할 준비》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