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호 커버스토리] 영성 공동체 ‘모새골’ 임영수 목사

ⓒ복음과상황 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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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새골공동체(모새골)의 ‘모새골’이라는 이름은 “모두가 새로워지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21:5)라는 말씀을 모태로 한다. 모새골은 기독교 영성 공동체로서 영적 치유, 영성 훈련에 대한 사역을 해왔다. 내년이면 설립 20주년을 맞는다. 10월 4일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모새골을 찾아 설립자 임영수 목사를 만났다. 팔순을 넘어선 그의 구도자적 삶과 순례의 여정에서 쉼은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물었다.

- 먼저 모새골을 만든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모새골이 내년에 20주년을 맞습니다. 교회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락교회 담임목사 10년을 마치고, 이제 기성교회 목회는 끝내고 다른 유형의 목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준비를 위해 유럽에서 1년 정도 머물면서 그 모양을 구상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 주님의교회에서 1년 동안 설교를 부탁받아 맡게 되었어요. 결국 4년 동안 목회까지 맡게 되었지요. 모새골은 60대 초반에서야 시작했습니다. 교회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고, 교회의 대안으로 만든 것도 아닙니다. 단지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 이해와 신앙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영성 공동체를 목표로 시작했습니다. 모새골은 기도원, 수양관, 수도원의 좋은 전통과 지혜를 공유하면서도 그와는 다른 새로운 개념의 영성 공동체를 추구합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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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새골의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궁금합니다.

‘일상’과 ‘영성수련’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모두 3박 4일로 진행됩니다. ‘일상’은 모새골에서 함께 머물며 일상 그 자체를 영성훈련으로 삼습니다. 아침에는 묵상하고 산책을, 오전에는 영적 독서를, 오후에는 노동, 저녁에는 공동체 모임을 갖습니다. ‘영성수련’은 기도에 대한 강의와 개인별 영적 지도로 구성됩니다. 제가 이렇게 설명하는 것보다 기자의 관점에서 직접 3박 4일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전해주는 게 독자들에겐 더 좋을 듯합니다. 내년 5월에 3박 4일로 20주년 홈커밍데이 페스티벌을 합니다. 그때 오셔도 좋겠습니다.

- “신앙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정원(garden)의 정원사로 초청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정원사들이 세상 곳곳에서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신앙을 거듭 갱신할 수 있는 리뉴얼이 필요하지요. 모새골공동체를 통해 영적으로 갱신되어서 새 힘을 얻어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그런 일을 지금까지 우리가 해오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서울에서 직장인들을 위해 아카데미 강좌를 열기도 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강좌를 열었는데 4백 명이 넘게 등록하곤 했지요. 모새골 공동체는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 21:5)는 말씀을 핵심 가치로 삼습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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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쉼과 안식이 새 힘을 얻는 필수 요소일 텐데요. 일상을 멈추고 3박 4일 동안 신앙을 돌아보는 시간을 확보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시편 23편에 있지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고, 그래서 내가 부족함이 없다고 하는 고백은 우리 인간에게는 존재론적으로 결핍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합니다. 목자가 양 떼를 데리고 며칠 동안, 혹은 그보다 더 길게 양을 칠 때 그 양들 스스로가 자신이 봉착한 문제를 하나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목자가 있어야 해요. 목자가 위험에서 구하고, 풀을 먹게도 하고, 쉼을 얻게도 하지요. 그러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하는 고백은 광야 같은 세상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을 때, 내가 원하는 바를 채울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양 무리가 자기 안식처인 고향을 떠나서 멀리 맹수의 위협이 도사리는 광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목자가 그곳에서 양을 이끌고 조용한 장소로 데려가 마음 놓고 풀을 뜯게 하고, 시냇가로 인도해냅니다. 그리고 흐르는 물이 아닌 웅덩이를 파서 잔잔한 물을 먹입니다. 그렇게 쉴 만한 물가로 이끌린 우리는, 영혼의 소생을 경험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안식을 누린다는 것은 이러한 영혼의 소생함을 얻는다는 의미입니다.

- 일상에서 영혼의 소생함을 경험하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쉼은 가만히 있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이지요. 세속 사회에서 빠져나와 푸른 초원, 잔잔한 물가와 같은 장소에서 새로운 영혼의 소생함을 구하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지난 시간의 자기를 돌아보고, 하나님과의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야 또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삶을 생각하게 되고, 이 세상을 사랑으로 긍정할 수 있는 정원사의 마음도 다시 찾게 되는 거지요.

소생(蘇生), 거의 죽어가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경험하고 나면 지금까지의 생의 목표와 목적을 수정할 힘이 생깁니다. 자기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야 할지 새롭게 발견하게 되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부터 계속 순례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과 우리의 거리가 상당히 멀지만, 순례의 여정을 통해 점점 그 거리가 좁혀지는 걸 경험할 수 있지요. 영혼의 소생함 없이는 그 거리를 좁히기 어렵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쉼이란 바로 그런 의미가 있지요.

- 20년 가까이 해오신 사역인데,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땅을 사는 것부터 건물을 짓는 것까지 많은 사람의 기부를 통해 진행했습니다. 빚이 거의 없이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모새골은 만물을 새롭게 하는 하나님 사역의 한 응답으로 생겨난 거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 우주 세계를 복음화하는 거대한 목표를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전체 속의 아주 작은, 겨자씨처럼 작은 부분을 맡았다고 여기며 왔습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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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님의 순례 여정이 궁금합니다. 특히, 대형교회의 담임목사 경험은 구도자의 길에서 어떤 의미였는지요?

목사가 된 이후에 구도자의 삶, 순례의 길을 쭉 걸어왔어요. 사역의 길은 많이 바뀌었지요. 처음에는 학교 교목, 대학생을 위한 목회, 신학교, 교회 등 사역지가 계속 바뀌었는데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면의 세계가 거듭 깨지고 새로워지면서 새로운 사역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롭게 된다는 말은 성인이나 천사가 되어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 길들여진다는 거지요. 내가 하나님을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길들이는 순례의 길을 택하다 보니 사역지가 계속 바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길들면서 허세가 많이 빠지고, 교만에서 벗어나게 되고, 또 세속적인 탐욕에서 벗어나게 되었지요. 당연히 진리에 대한 이해도 크게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더 진지해지면서 순례의 여정에서 하나님의 길들임 속에서 신실하게 응답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점점 바뀌어 왔습니다. 큰 교회가 그렇게 중요한 거 아니고, 작은 교회라고 초라한 것 아니다. 내면의 변화와 함께 교회 규모에 상관없이 하나님과의 동행을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규모의 기준으로는 지금의 모새골은 대형교회와 비교할 때 형편없지요. 그러나 지금까지 제가 맡아온 어느 사역보다도 행복한 자리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할 수 있는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이곳에서 저는 참 자유한 인간으로서 섰어요.

- 26년 전 본지 인터뷰(1996년 10월호)에서 신학, 철학, 심리학에 대해 주로 말씀하시며, 디트리히 본회퍼, 칼 바르트, 폴 투르니에, 칼 융 등의 책들을 매우 비중 있게 언급하셨습니다. 지식이나 독서는 목사님께 어떤 의미인지요?

그런 지식들은 내 문제와 실존에 대해 해답을 얻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그분들을 통해 신학적인 해답, 심리적인 해답을 구하며 나 자신을 더 많이 바르게 치유하며 하나님을 알아갔다고 생각하지요. 나의 생애에서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스승이었다고 얘기할 수 있겠지요. 책을 읽는 시간 역시, 제게는 잔잔한 물과 푸른 초원을 누리는 때입니다. 내 생각을 바꿔주고, 하나님에 대한 이해도 바꿔주지요. 독서가 없었다고 한다면 제가 이 시점까지 이렇게 변화된 삶으로 여기에 설 수 없었을 거예요.

ⓒ복음과상황 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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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새골은 영성 공동체를 추구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영성’이라는 말의 의미가 오해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목사님께서는 영성을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보통 영성이라고 하면 어떤 신비의 세계나 형이상학적인 면을 많이 떠올리곤 하지요. 기독교 영성은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될 때 내적인 변화가 생기는데, 그때 하나님과의 사귐이 이루어집니다. 그 사귐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의 순례 여정이 끝나고 영혼의 세계로 들어설 때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순례의 여정에서는 나 자신과의 화해가 이루어지고, 어두운 면을 받아들이게 되고, 또 숨겨진 모든 상처를 하나님께 토해내게 됩니다. 그렇게 이웃과 사회를 새로운 각도로 보게 되면, 이 세상이 더럽고 추악한 세상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극진히 사랑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긍정하게 되지요. 포기하지 않게 되지요. 이웃들과 함께 세상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새로운 긍정이 일어납니다. 이런 것들이 합쳐져 계속 사이클을 이루어 성숙해가는 것이 영성입니다.

- 대다수 교회는 그런 영성을 경험하기가 어려운 환경입니다.

교회에서는 주로 봉사나 선교에 초점을 맞추니까 내면이 자랄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교회에 가면 바쁘고 분주할 정도로 일을 많이 하는데 기도도 잘 안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허무해지죠. 여기 찾아오는 분들이, 교파를 가리지 않고 허무하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아주 정직한 고백이지요.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한 분일수록 더 그래요. 이런 분들에게 영성이 필요해요.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거듭거듭 훈련해야 합니다.

- 홀로 조용히 기도의 시간을 갖는 예수님의 모습이 모범으로 제시되곤 합니다.

그렇죠. 흔히 외로움과 고독을 비교하곤 하지요. 외로움은 군중 속에 있는데도 홀로 있는 기분이라면, 고독은 의도적으로 복잡한 데서 빠져나와 홀로 조용히 자기를 살피는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 속에서 빠져나와 밤새도록 기도하셨지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당신의 사역을 감당하게 하는 힘이었지요. 나는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병자도 고치시고 다른 사람이 믿음을 갖게 만든다. 이런 것들이 그 고독의 시간에 하나님과 깊은 교제 속에서 확신으로 다가왔겠지요. 그 깊은 하나님과의 사귐 속에서 메시아로서 더 확고한 사명을 확인했을 것이고, 그랬기 때문에 십자가에까지 달릴 수 있었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인 동시에 인간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전적으로 필요했습니다. 밤이 맞도록 기도하는 그 고독의 시간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그 자리와 책임을 감당하기 어려웠겠지요.

모새골 묵상동산의 바닥 모양은 고대로부터 발견된다. 기독교는 이것을 기도의 길(Labyrinth)로 사용한 전통이 있다. 모새골 묵상동산은 12세기 프랑스의 사르트르 성당 바닥에 그려진 것을 참고했다. 보행자는 기도의 길을 걸으면 서 기도함은 물론, 힘과 쉼을 얻고 자신을 성찰하는 영적인 모험을 할 수 있다. (사진 제공: 모새골)
모새골 묵상동산의 바닥 모양은 고대로부터 발견된다. 기독교는 이것을 기도의 길(Labyrinth)로 사용한 전통이 있다. 모새골 묵상동산은 12세기 프랑스의 사르트르 성당 바닥에 그려진 것을 참고했다. 보행자는 기도의 길을 걸으면 서 기도함은 물론, 힘과 쉼을 얻고 자신을 성찰하는 영적인 모험을 할 수 있다. (사진 제공: 모새골)

- 목사님도 유튜브를 보시거나 SNS를 하시나요? 고요한 시간을 갖기가 어려워진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유튜브 등을 통해 유익한 정보를 얻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지요. 그런 것에 몰두할수록 더 허무해질 수 있어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더욱더 몰두하게 되지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영성의 맥이 끊어지면 다른 것에서 허무함을 채우려고 합니다. 유튜브에 매달리고, SNS에 끌려다니게 되는 이유이지요.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한 시간 정도, 30분이라도 꾸준하게 그 무엇에도 침해받지 않는 영혼의 소생함을 얻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렇게 영적인 공급원과 이어져 있어야 불필요한 몰두와 과잉 몰입의 시간이 자연스레 줄어들고 없어지게 됩니다.

- 유튜브나 SNS를 통해 신앙인들이 근본주의 신앙이 강화되고, 정치적으로는 극우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신앙의 도그마, 이를테면 아주 독단적이고 진부한 교리를 붙잡는 신앙생활로는 생명의 공급을 받지 못해요. 그럼에도 그것을 붙들지 않으면 자기 존재가 없어진다고 느낍니다. 자기 경건에 하나님을 묶어놓으려고 하지요. 그 끈을 풀고 자유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보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근본주의 신앙만의 문제로 볼 수는 없습니다. 사회운동도 마찬가지고요. 젊은 층도 자기 나름대로 도그마를 다 갖고 있어요. 예전의 주체사상 같은 이념적인 도그마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도그마 속에 자기가 들어가있는 거지요. 그리고 그 도그마에 맞추어서 필요한 정보를 스마트폰을 통해 공급받습니다. 도그마가 더 강화되지요. 매우 좁은 도그마의 집 속에서 어마어마한 정보를 흡수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신앙의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되지요.

ⓒ복음과상황 정민호
ⓒ복음과상황 정민호

- 자기 도그마를 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단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만, 도그마에 사로잡힌 삶보다 더 생명력 넘치는 좋은 삶이 있다고 알려줘야겠지요. 그럴 책임이 교회에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는 이 세상에서 점점 더 무의미해질 것입니다. 오히려 적지 않은 교회가 성도들이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도그마로 공포감을 조성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어떻게 사귀며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줘야 하는데, 옛날 큰 교회 많았던 시절로 돌아가려고만 합니다. 한국교회가 쇠락하는 이유는 주일성수를 안 해서도 아니고, 십일조를 안 내서도 아닙니다. 세계의 지각 변동에 따른 일반적인 추세입니다. 저는 이번이 한국교회가 새롭게 살아나야 할 기회라고 봅니다. 다만, 지금까지의 신학이나 이론으로는 이 시대의 거센 물결을 컨트롤하거나 뚫고 나갈 수 없을 겁니다. 지금 도그마의 집에서 당신이 누리고 있는 그 삶보다 더 좋은 삶이 있다는 것을 교회가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 현실을 어둡게 진단하면서도 낙관적인 전망을 잃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하나님은 이 세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계속 간섭하시고, 최종적으로는 이 우주를 포함한 만물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마감될 거라는 걸 믿어요. 제 신앙의 근본이자 소망의 내용입니다. 그런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인 한 부분으로 모새골이라는 곳도 생겨난 거겠지요.

ⓒ복음과상황 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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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례의 길에서 노년에 이르렀다는 것은 목사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지금 팔십이라는 나이의 고지에서 내려다보니, 내가 붙잡은 그분이 참되고 신실한 분이라는 걸 재확인하게 됩니다. 어떤 철학자의 이론이나, 돈 버는 데 뜻을 두고 몰두했더라면 참 허무할 뻔했어요. 나이가 들면서 소박해지고 단순해지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나면, 무덤에서 끝나지 않고 그분이 또 다른 차원의 새로운 세계로 나를 서게 할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구도자로서 다른 차원의 영원한 세상을 기대하고 바라보게 됩니다.

진행 이범진 편집장 poemgene@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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