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7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손톱 밑에 가시 드는 줄은 알아도 염통 밑에 쉬스는 줄은 모른다.’

손톱 밑에 가시가 박히는 작은 고통은 예민하게 알아차리지만, 심장에 파리가 알을 까는 것은 모른다는 뜻의 속담입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일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정작 큰 피해가 시작되는 상황은 깨닫지 못할 때 쓰이는 말이지요. 인간 운명을 총평하는 말 같아 마음 한쪽이 써늘해집니다. 본디 인간 문명은 손톱 밑 가시를 빼내기 위해 심장을 내어주는 방식으로 축조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위험의 외주화’라 불리는, 기업들이 위험한 업무를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하청업체 노동자 등 외부에 떠넘기는 현상은 인간 본성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책임지지 않는 일만큼 달콤한 유혹은 없습니다. 기업뿐일까요? 우리 일상 곳곳에서 무책임한 일들은 매우 빈번합니다.

이번 커버스토리를 통해 이웃의 안녕을 위해 우리는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 가늠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건축 감리원으로 일하는 창간 독자(익명)가 어렵게 꺼내놓는 건설 현장 이야기는 아마 우리 사회 전반의 모습일 겁니다. 시내버스 기사(성찬)의 글을 보면서는 제가 얼마나 자주 부지불식간에 타인의 ‘시간 도둑’이 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작은 소동들이 모이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는 사실에 모골이 송연해졌지요. 저마다 자기 손톱 밑의 가시를 빼느라 화나 있을 때, 누군가는 기계에 끼어 숨이 끊어집니다. 故 김용균 씨 재판의 유족 대리인 박다혜 변호사 인터뷰는 하늘의 뜻이 벼랑 끝에서 이루어지기를 애써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다시금 상기합니다.

‘사람과 상황’에서는 지난해 12월 NCCK 인권상(특별상)을 받은 임은정 검사를 만났습니다. 박형규 목사 민청학련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구형하고, 공적 기관인 검찰의 부정과 맞서 내부 고발자로 싸워온 노고에 따른 상이었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그는 “신앙이 아니었으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삶의 진원지인 신앙에 관해 더 자세히 들어 보았습니다.

이번 호와 유사한 주제를 다뤘던 2014년 2월호 ‘당신의 ‘샬롬’을 위협하는 것들’을 훑어보았습니다. 9년 동안 우리 사회는 한 발도 나가지 못한 것 같아 씁쓸합니다. 죄의 방향으로 달음질치는 세상, 무심코 2월 달력을 보다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을 발견했습니다. 이마에 재를 바르고 죄를 고백하며, 40일간 그리스도의 가시밭길을 따르는 사순절이 시작되지요. 무기력해진 생에 아직 죄를 고백할 기회가 남아있다는 사실이 묘한 위로입니다.

이범진 편집장 poemgene@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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