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호 뚜벅이 책방 탐방]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박관용 목사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살펴보시고 이야깃거리가 없으면 다른 데 가셔도 저희는 정말 괜찮아요.” 김요한 목사가 그를 말렸다. “기자님 곤란하게 하지 마. 이런 책방도 경험해보셔야 다른 책방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되지.”

3월 30일, 서울시 은평구 갈현동에 위치한 ‘책방난달’을 찾았다. 버스에서 내리자 시장의 활기가 느껴졌다.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한적한 주택가가 펼쳐지고, 작은 수선집 옆에 서점이 있다. 박 목사가 낮때를, 육아를 하는 김 목사가 저녁때를 지키며 이곳을 함께 운영한다.

처음 취재 요청을 했을 때, 박관용 목사는 긴 시간을 고민했다. “인터뷰를 하면 의도한 건 아니지만 약간 있어 보이게 말을 하게 되는 것 같아서요. 그렇다고 저희가 처한 비루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엔… 민망하죠.” 매달 책 판매액은 따로 기록하지 않아도 될 정도. 서점을 열 땐 책 열 권으로 시작했고, 지인들이 보내온 헌책도 판매했다. 공간 유지비는 월세만 60만 원인데 각각 절반씩 부담한다.

생업으로 동네책방 운영에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게 이 인터뷰가 폐를 끼칠 수 있겠다고 박 목사는 생각했다. 책방을 연 배경에는 교회 사역자로서 큰 부담이 되지 않겠다는 계산도 있었다. 두 사람은 교회에서 파트타임으로 사역해오며 주말 운영은 하지 않고 있다.

김요한 목사는 ‘책방난달’의 애매함을 짚었다. “카페 교회 같은 덴 콘셉트가 분명하잖아요. 그런데 저흰 밥벌이를 하는 책방으로 보기도 어렵고, 이걸로 목회를 하는 것도 아니죠. 목회가 아니라 독서 운동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콘셉트를 잡을 수도 있는 건데, 그것도 아니고요. 저희는 사실 뭘까요….”

종일 손님 없는 날도 있기 마련이다. 이날이 그랬다. 모두가 어렵다고 하는 시기, 두 목사는 왜 하필 서점을 운영하는 것인가.

박관용 목사와 김요한 목사. ⓒ복음과상황 김다혜<br>
박관용 목사와 김요한 목사. ⓒ복음과상황 김다혜
3월 30일과 4월 4일 ‘책방난달’을 방문했다. ⓒ복음과상황 김다혜 <br>
3월 30일과 4월 4일 ‘책방난달’을 방문했다. ⓒ복음과상황 김다혜 

‘대중없는’ 서점

‘책방난달’은 어떤 사람이 들어와도 한 권쯤 구입할 수 있을 것 같은 곳이었다. 그렇게 말하자 김요한 목사는 “한마디로 대중없다는 거죠?” 물어왔다. 동네책방은 공간이 좁은 관계로 보통 몇 가지 주제를 정해 큐레이션을 하는데, 이곳 서점 지기들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어 보였다. 주로 인문·사회 서적이 많았고 철학·역사·신학 분야 책도 꽤 있었다. 문학·과학·미술책도 소수지만 있었고, 독립출판물도 자리했다. 비치 도서를 주문하는 기준은 단순했다. “책방이 망하면 저희가 가져가고 싶은 책을 주문해요.” 박관용 목사가 그렇게 말하며 김 목사를 가리켰다. “저 친구가 초기 기독교 신학자 오리게네스의 두꺼운 원서를 주문한 거예요. 팔려고 산 거 아니지? 놀린 적 있죠.”

눈길을 끈 건 책방 곳곳에 흩어져있던 엔도 슈사쿠 책들이었다. 엔도 슈사쿠를 좋아하는 박 목사는 《내가 버린 여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주인공이 우습게 이용하고 버린 한 여자를 엄청 사랑한 것도 아니면서 잊지를 못해요. 그 여자의 행적을 좇고 기억하는 내용인데, 엔도 슈사쿠에게 그 여자는 어떻게 보면 신앙일 수 있겠다고 느꼈어요. 자기 자신도 신을 버리려고 몇 번씩 시도했던 사람인데, 버리려 해도 버릴 수 없는 지점에서 예수를 만나거든요.”

ⓒ복음과상황 김다혜
ⓒ복음과상황 김다혜

김요한 목사도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읽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우리 인생에서 배교면 배교고 아니면 아니잖아요. 그런데 신앙의 눈으로 보면 인간이 알 수 없는 영역까지 가게 되는 것 같아요. 배교했지만 배교한 게 아닐 수 있고, 안 믿는다고 했지만 신을 따르고 있는 것일 수 있죠. 많은 기독교인들이 엔도 슈사쿠를 좋아하는 이유도 우리의 현실과 믿음이 ‘알 수 없음’과 ‘모호함’이라는 영역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복음이 확실한 것 같아도 쉽지가 않죠.”

카운터에는 굿즈로 제작한 연필과 엽서, 메모지 등이 진열돼있었다. 서점 이름과 동일한 출판 브랜드 ‘책방난달’도 만들었는데, 서점 글쓰기 모임이 쓴 서평을 엮어 펴내기도 했다. “큰 힘을 들이지 않으려고 책방을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라고 묻자, 박관용 목사는 모두 김요한 목사가 혼자 벌인 일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하고 싶은 일이 떠올라도, 최대한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일단 혼자 일을 벌인다. 한편 박 목사는 일의 마무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동업자로서 충돌할 때는 없는지 물었다. 두 사람은 서점을 운영하면서 서로 얼굴을 붉힐 때도 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고 말했다. “둘 다 책방 운영에 생사를 걸고 있지 않으니까 가능한 것”이라고 김 목사는 설명했다.

ⓒ복음과상황 김다혜<br>
ⓒ복음과상황 김다혜

교회에서는 만나지 못할 사람들

방문 둘째 날이 되어서야 손님을 봤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20대로 보이는 동네 주민인 그를 서점 지기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었는데, 그때마다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줄 수 있는지 물어왔기 때문이다. 대형 서점과 달리, 동네책방에선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는 자리에 앉아 두 사람과 잠시 대화를 나누다 갔다.

서점을 운영하다 보면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박관용 목사는 말했다. “종종 와서 차를 마시고 가는 분이 있어요. 개신교를 떠나 가톨릭에서 신앙생활하시는데, 두 번째 방문한 날 개신교 욕을 엄청 하시는 거예요. 나중에 목사 둘이 이 책방을 운영한다고 누가 SNS에 쓴 글을 보셨나 봐요. 다시 찾아오셔서 엄청 무안해하시더라고요. 요즘은 가톨릭 욕도 종종 하시면서 성공회가 좋아 보인다고 그러세요.” 교회에서 바른말을 많이 해서 다른 교인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할머니 권사님’도 이곳을 찾는데, 서점 지기가 목사라는 사실을 아직 모른다.

이외에도 두 목사는 ‘교회에서는 만나지 못할 사람들’을 서점에서 만난다. 주택가라서 저녁이 되면 깜깜해지고 서점만 불이 켜져있는데, 이때 찾아오는 사람들은 책은 안 찾고 서점 지기와 이야기하다 간다. 경계성 장애가 있거나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고, 동네 청년들도 온다고 김요한 목사는 말했다.

“어떤 청년은 여자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둥 제가 물어보지도 않은 것들까지 막 이야기해요. 이직하고 싶다고 이력서 쓰는 방법을 물어보기도 하고요. 두어 시간 이야기하다 가는데, 몇 달 안 보이다가 다시 와서 근황을 얘기해요. 목사라는 걸 밝히지 않고 대화하는데요. 교회에서 만나는 분들이랑 또 다른 느낌이에요.”

ⓒ복음과상황 김다혜
ⓒ복음과상황 김다혜

두리번거리면서도 계단을 밟고 있는 사람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때는 10년 전쯤이다. ‘신비와 저항’ 수도원 박총 원장이 운영하는 글쓰기 공동체 ‘삼다’ 1기 멤버로 만났다. 모임이 끝났지만 멤버들은 느슨하게 관계를 이어왔고, 두 목사는 그사이 친구가 되어 2019년 ‘책방난달’을 열었다.

두 사람은 비슷한 지점이 많았다. 당장은 목회자로서 청빙이나 개척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것. 목회자로 살고자 하지만, 아직 목표점이 분명하지 않아 고민하며 찾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꿈꾸는 목회상이 닮아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교인들과 성경을 함께 읽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성경적 관점에서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지 대화할 수 있는 교회를 꿈꾼다. 교회란 본디 같은 책을 읽고 수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책의 공동체’라고 여겨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로 다름을 이야기하는 교회와, 충돌을 피하고자 아예 대화하지 않는 교회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대다수 부교역자들이 그렇듯, 이들도 목회 현장에서 부딪히고 고민하는 과정들을 겪었다. 그렇지 않은 목회자도 있었지만, ‘소돔과 고모라는 동성애로 멸망했다’라는 예시처럼 목회자 해석과 ‘하나님 말씀’으로 생각해야 할 부분을 구별하지 않는 목회자가 많았다. 서로 다른 해석을 충돌시켜 생각해보게 하거나 함께 대화하는 대신 교인들 해석을 ‘교정’했다. 교인들도 혼자 성경책 읽기를 어려워하고 목회자 해석을 듣는 데 그쳤다.

목회자의 실수나 동성애, 노동관 등 정치적 이슈에 대해 최대한 ‘함구’하는 교회 분위기도 힘들었다. 교인들은 ‘마음 어려워지는 얘긴 하지 말고 영적으로 거룩해지자’ ‘세상은 시끄러우니 교회에선 힘을 받았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하고, 목회자도 교회가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꿈꾸는 목회를 교회 바깥, 작은 데서 시작해보고 싶었다. 그 일부를 실험해보면서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면 교회로 발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교회’라는 이름이 아니어도, 서점에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만나 독서 공동체를 이루는 일도 목회가 될 수 있겠다고 여겼다.

그런 의미에서 ‘책방난달’은 두 목사가 세상을 만나는 방식이자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곳이다. 박 목사는 이름에 담긴 뜻을 알려줬다. “‘난달’은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는 곳이래요. 책에서 저희도 길을 찾고, 방문하는 사람들도 길을 찾아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복음과상황 김다혜
ⓒ복음과상황 김다혜

아직 실패하지 않은 독서모임

“기자님은 이 책방이 잘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김요한 목사가 진지한 얼굴로 물어왔다. ‘책방난달’은 어느덧 5년 차. 그러나 ‘서점을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할까’에 대한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책 판매만으로는 수익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대안은 독서모임 유료화였다. 그나마도 진입 장벽이 생길까 봐 함께 읽을 책이나 음료를 꼭 이곳에서 구입하라고 권유하진 않는다.

김 목사는 두 가지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월요일 온라인 글쓰기 공동체 ‘독작독작’은 서로 무슨 이야기든 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모인다. 삼다 멤버로 만나 관계를 이어온 몇몇과 갈현동 인근 주민이 2022년도부터 꾸준히 함께하고 있다. 동네 주민은 평화활동가로 일하는 비종교인인데, 신과 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른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매달 새로운 사람들이 모이는 ‘화요 독서모임’은 아직 ‘광야’다. 시작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아, ‘독작독작’처럼 독서 공동체로 관계가 이어지지 않았다. 주로 동네 주민들이 참여하는데, 이번 달 신청자는 단 두 명에 그쳤다. 그래도 한 명은 지난달에 이어서 신청했다. “아직 실패하지 않은 책방의 독서모임도 실패하지 않았어요.” ‘책방난달’ SNS 피드에서 발견한 문구다.

화요일 저녁, 날이 어두워지자 독서모임 참여자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나이가 지긋한 멤버는 자신이 좋아하는 학자가 언급한 과학책을 구입했고, 퇴근하자마자 서둘러 온 사회복지사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나이가 지긋한 멤버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자기 고집이 생기는 것 같다며, 다양한 세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유연한 사고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사는 주중엔 직장을 다니고 주말엔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환기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 이번 달에도 독서모임을 신청하게 됐다.

‘화요 독서모임’은 신청자들이 책을 선정하는데, 이번에 고른 도서는 저명한 신경과 전문의 올리버 색스가 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다. 사고나 질병으로 뇌 신경이 손상된 환자들을 임상해 그 기록을 에세이로 썼다. 저자가 만난 환자들 중에는 제목처럼 아내를 모자로 착각해 머리에 쓰려고 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첫 모임이라 책을 어디까지 읽어오자는 약속 없이 모였는데, 다양한 질문이 나왔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처럼 ‘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만 문제없이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사람에게 사실을 알려주는 게 옳은가?’ ‘이를 치유하는 것이 반드시 당사자의 행복을 담보하는가?’ ‘영혼은 존재하는가, 아니면 뇌의 작용에 따른 착각에 불과한가?’ 모인 사람들은 낯선 이 앞에서 개인의 경험과 가족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풀어나갔다. 대화는 밤 10시를 넘길 때까지 이어졌다.

모임이 끝나자, 사람들은 인사를 건네고 각자 갈 길을 갔다. 두 목사는 뒷정리를 위해 남았다. 책방을 나와 뒤를 돌아보았다. ‘책방난달’이 밝힌 불빛이 어두운 골목을 비추고 있었다.

ⓒ복음과상황 김다혜
ⓒ복음과상황 김다혜

에필로그

박관용 목사는 온갖 ‘구독’의 시대에 SNS도 하지 않고 복상만 구독한다. 최근 3년 치 정도를 그대로, 그 이전 과월호는 필요한 부분만 스캔해 보관하고 있다. 그도 김요한 목사도 복상을 20대에 처음 접했고, 현재 ‘책방난달’에서 모이는 은평구 독자모임에 꾸준히 참여한다. 박 목사는 복상을 좋아해서, 김 목사는 박 목사가 복상을 좋아해서 모임에 나간다.

김요한 목사는 복상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이슈에 대해 개교회나 교단을 넘어서서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이야기해 주니까 고마운데, 일하는 것만큼 지지받지 못하는 듯해서요. 신앙적인 내용이나 복상의 영향력이 더 작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 다들 바라는 것 같아요.”

복상에 바라는 것을 물었다. 박 목사는 커버스토리와 관련된 주제의 책들을 ‘비하인드 커버스토리’에서 자주 소개해주길 바랐다. 김 목사는 故 임보라 목사를 떠올렸다. “한편에서만 추모제를 하고 금방 마무리돼 버리는 모습이 안타깝더라고요. 그분이 취했던 입장이 우리 교계 다수 의견이 아니었고, 서로 말하기 껄끄러우니까 그런 면도 있겠죠. 저는 개인은 안정적인 길을 선택하고, 공동체는 좀 더 행동을 하는 게 어떤 환경을 바꿔나가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매체 성격과 호흡에 따라 뜨거운 시기를 지나 무르익은 성찰을 전해야 한다는 걸 잘 알지만, 복상이 때로는 조금 더 날것의 ‘뜨거운’ 이야기를 전해줬으면 좋겠다는 한 독자의 의견이었다.

구입한 책들. ⓒ복음과상황 김다혜
구입한 책들. ⓒ복음과상황 김다혜

진행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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