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이번 호 표지 그림 어떻게 보셨나요?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미드저니’가 ‘복음과 상황’을 키워드 삼아 만들었습니다. 인공지능이 이렇게 창의적인(?) 생성 작업을 할 수 있을지 전혀 몰랐습니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직업으로 화가, 사진작가 등을 꼽았습니다. 예상이 크게 빗나갔네요. 현재 인공지능은 논문뿐 아니라 문학 작품까지도 그럴듯하게 써냅니다.
이제 막 인터넷에 홈페이지들이 생겨날 때 복상은 “사이버스페이스도 다스리라”(1996년 3월호)라는 특집을 다뤘고, 스마트폰이 팔리기 시작했을 때는 “예수는 스마트폰을 사용했을까”(2011년 8월호)라는 커버스토리를 꾸렸지요. 당시 편집위원으로 기획회의에 참여했던 저는 한마디도 못 하고 그저 아이폰을 능숙하게 다루는 다른 편집위원의 손놀림을 넋 놓고 보고 있었습니다. 몇 달 뒤 거짓말처럼 저도 스마트폰 중독자가 되었지요. 당시 적지 않은 기자가 잃어버린 것들을 성찰해보자며, 스마트폰 없이 일주일 살기 유의 체험 기사를 썼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그런 체험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핸드폰이 이미 신체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식당에 함께 가서도 각자의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현상이 매우 ‘자연스럽게’ 보이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생성 AI에 대한 다채로운 해석과 예측이 쏟아지는 가운데, 복상은 이 파도에 올라 ‘하나님 형상’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시대가 급변하는 때가 오히려 불변하는 진리가 드러날 기회이기도 하니까요.
김호경 필자는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라는 질문은 결국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파기된 관계를 들추어낸다”라며 끊임없이 숨는 인간과 그런 인간을 거듭 부르는 하나님 모습을 통해 오늘을 진단합니다. 코람데오(coram deo). 이길용 필자는 지금이야말로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는 ‘암기’ ‘학습’의 패러다임을 버리고, 정보와 데이터에 구속받지 않는 하나님을 오롯이 느낄 기회라고 말합니다. 이민형 필자가 지적하듯 ‘○○시대’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않는, 나아가 “시대의 소문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인간다운 모습이자 사람들이 종교에 기대하는 역할이겠지요.
5월은 사이버스페이스 바깥을 누리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입니다. 5.18에는 광주에 발을 디딜 수도 있겠고, 5.1에는 노동자들 곁을 지킬 수도 있겠네요. 어린이, 어버이, 스승을 사랑하기에 딱 좋은 5월. 제자 요한처럼 “예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어서, 그것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그 기록한 책들을 다 담아 두기에 부족할 것”(요 21:25)이라 고백할 수 있다면 더 좋겠습니다. 생성 AI의 시대에,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이범진 편집장 poemgene@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