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4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한 달 안식월을 보내고 돌아와 보니, 9월호 소재가 ‘개인주의’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기획 단계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 입장으로 주제를 맞닥뜨린 것인데요. ‘개인주의’라는 단어를 속으로는 ‘이기주의’로 읽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고 지향한다는 사전적 의미는 알고 있었지만, 그 진정한 의미를 일상에서 체득하지 못한 탓입니다. 삶의 촘촘한 맥락과 다양한 감정선 속에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구별하는 것이 아직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심오한 단어 하나를 더해 이번 호의 주제가 무려 ‘개인주의 영성’이 되었습니다. 이 주제의 원고 청탁을 흔쾌히(?) 수락해주신 필자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철학자 달라스 윌라드는 《마음의 혁신》에서 “서로에게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이 인간 삶의 본연의 모습”이라며, 개인과 개인 사이에 뿌리내림이 가능하려면 “남들이 나를 위해준다는 확신”이 절대적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한 확신이 없다면 “우리는 상처로 비틀거릴 수밖에 없고 우리 삶은 죽는 날까지 대체로 아귀다툼이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각자 스스로 살기를 꾀하는 세상에서, 옹졸한 다툼에 휘말리지 않고 타인을 믿으며 상처 입은 이들까지 위해주는 지혜를 발휘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커버스토리의 글들은 개인주의 지향이 각자도생의 늪을 요리조리 피해 이인칭, 삼인칭, 그리고 공동체와 어떻게 건강한 우정을 맺을 수 있는지 그 분투와 노하우를 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개인과 공동체 간의 균형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오랜 과제인 만큼, 최근 부상하고 부각되는 개인주의 현상이 우리를 더 돈독하게 다지는 방향으로 흐르기를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서로 엮이는 것을 적극적으로 피하는 추세는 그동안 우리 사이에 맞물림의 경험보다 엇물림의 경험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우리’라는 집단주의가 개인에게 보이지 않는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심하게 돌아봐야겠습니다.

이번 달부터 새로 시작하는 연재를 주목해서 읽어주세요. 동시대 유럽 대륙종교철학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종교적 삶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또 자유롭게 성찰하는 ‘우리 시대 종교사상가들과의 만남’(김동규)과 다양한 장르의 독서 일기를 한 줄기로 꿰어내는 ‘이한주의 책갈피’(이한주)입니다. 한편, ‘민민과 생귄의 대중문화 돌려보기’는 이번 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애써주신 두 필자(김상덕, 이민형)께 감사드리며, 못다 한 이야기는 조만간 인터뷰를 통해 듣습니다.

무더위와 폭우로 힘겨운 여름이었습니다. 독자님들이 우편함에서 9월호를 꺼내실 때는 청량한 바람이 불어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범진 편집장 poemgene@goscon.co.kr

저작권자 © 복음과상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