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의 방송인 조나단은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암살 개그’를 하며 놀았다고 합니다. 암살 개그란, 예를 들어 친구가 “이거 조나단 흑역사인데?” 하면, 조나단이 정색하면서 “흑?”이라고 되물으며 곤란에 빠뜨리는 유머입니다. 다크서클, 짜장면 등 피부색 연관 단어가 나오면, 여지없이 암살 개그의 대상이 됩니다. 조나단은 오히려 친구들이 자기를 대할 때 ‘흑인’이라는 단어조차 피할 정도로 경직되어 있어서, 긴장을 풀고 거리감을 좁히고자 암살 개그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조나단이 “옐로카드”라는 단어를 쓰자, 친구들이 “옐로?” 하면서 맞받아칠 정도로 친해졌다고요. 이 개그는 성인 조나단의 예능 콘셉트로 자리 잡습니다.

경직된 분위기를 푸는 데는 역시 유머만 한 게 없습니다. 다만 그것도 조나단의 경우처럼 서로를 존중하는 신뢰 관계에서 가능한 일이겠지요. 유머를 무해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안전한 공동체를 지녔는지가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필수 조건인 듯합니다. 한바탕 웃을 수 있는 공간과 관계를 넓히는 일이 갈등 너머 공존으로 향하는 길일 테고요.

물론 주변을 둘러보면, 지금은 웃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도 웃을 일 하나 없는 이 울분의 시국을 웃음의 소재로 삼아 함박웃음 나는 전복을 이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라게 됩니다. 그것만큼 신나고 위로되는 순간도 없으니까요. 함께 울었던 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함께 웃는 날을 고대하는 마음으로 이번 커버스토리를 준비했습니다. 이를 위한 첫걸음으로 “너나 나나 다를 게 없다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웃음”(김지방), “억압된 눈물에 바치는 웃음”(최은), “살기 위해서 필요한 웃음”(정승환) 등 웃음의 여러 특성을 살폈으니, 개그 코드(code)라는 일치/불일치 함수를 넘어서 웃음을 둘러싼 이야기(story)에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어 번역서만 30여 종에 이르는 영국의 문예이론가 테리 이글턴은 그의 사상이 정점을 찍은 일흔여섯의 때에 마침내 유머에 관한 책 《유머란 무엇인가》를 써내며, 웃음과 그 주변 현상(희극, 풍자 등)에서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들추었습니다. 웃음의 역학 관계를 정밀하게 분석한 내용도 참 좋았지만,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문단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코미디 누아르’의 기질도 있다. 하느님은 우리를 역경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자신의 외아들을 보내는데, 우리는 그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그 외아들을 죽여버린다! 결례도 이런 끔찍한 결례가 없다.”

그의 말이 맞는다면 우리는 희극 무대의 등장인물인지도요. 웃음을 다루는 11월호를 소개하며 이렇게 심각하게 마무리하여 죄송합니다.(웃음)

이범진 편집장 poemgene@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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