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2호 커버스토리]

일명 노가다, 건설노동자로 일을 시작한 지 만 2년 3개월이 지났습니다. 햇수로는 4년째이고요. 목사로서 작은 책방을 운영하며 살던 사람이 이제는 몸을 써서 일하며 살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작은 교회에서 목회도 겸하고 있지요. 주중에는 현장에서 몸으로 일하고, 주말이면 교회에서 목회를 합니다. 몸을 써서 벌어먹고 산다는 건 생각지 못했던 일입니다. 그랬던 제가 어느덧 익숙하게 건설노동자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기, 몸으로 하는 노동을 시작하다

처음 이 일에 발을 들일 생각을 하게 된 건 코로나 팬데믹 때문이었습니다. 2017년 11월쯤 작은 서점을 열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갈 무렵이던 2020년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모든 것이 멈추었습니다. 책방 주변 거리에는 인적이 뜸해지고 책방에서는 사람들의 그림자조차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준비했던 프로그램들은 하나도 진행하지 못했고, 그나마 팔리던 책도 먼지만 쌓여갔습니다.

그래도 저는 곧 끝날 거라고 섣부르게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좀 더 넓은 곳으로 책방을 옮기고 공간 제약으로 이전에 못 했던 프로그램들을 해보자 생각하며 들떴었지요. 그래서 그해 4월, 좀 더 넓은 새로운 장소로 서점을 옮겼습니다. 함께 예배하는 공간,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함께 이야기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나아진 점도 있었지만 상황은 별로 바뀌지 않았고, 도리어 빚만 잔뜩 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감당해보려 했는데 맘처럼 쉽지 않더군요.

어느 날 밤, 저는 혼자 울다 티베트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다 쫓겨나듯 한국에 들어와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선배님에게 전화했습니다. “형, 저도 일할 수 있을까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두려웠습니다. 몸으로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젬병인 내가 할 수 있을까? 혹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주지는 않을까? 겁이 났습니다. 그러나 저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한 팀의 부팀장이던 선배 덕분에 누구도 제게 함부로 대할 수 없었고, 맘 좋은 팀원들은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고 영 서투른 저를 “형님” “형님” 하면서 잘 대해 주었으니까요. 이제 와 생각하니, 그분들이 저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하셨을 수도 있겠네요.

제가 처음 일한 장소는 일반 아파트나 빌딩 등을 짓는 현장이 아니었습니다. 반도체 공장을 짓는 일명 하이테크 현장이었지요. 일반 현장과 하이테크 현장은 건설이라는 맥락에서 같은 노가다(?) 현장이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우선 제가 일한 하이테크 현장에는 외국인노동자가 없었습니다. 보안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스마트폰 카메라도 보안 스티커로 가리고 출근했습니다. 퇴근할 때면 일일이 스티커 훼손 여부를 확인받지요. 촬영이 엄격히 금지됩니다. 요즘은 앱을 깔아서, 아예 현장에 들어가면 카메라 기능이 꺼지도록 만든 곳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런 낯선 환경에서 일하는 게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다른 문제가 더 힘들었습니다. 각종 자재와 공구 이름을 알아야 하는데 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생초보라는 점이었죠. 드릴, 컷소, 해머드릴, 직소, 밴드소 등 각종 공구와 세트앙카, 전산볼트, 생크너트, 연결너트, 트레이, 레이스웨이 등 각종 자재 이름을 포함해 알아야 할 것이 정말 다양하고 많았습니다. 저는 몰라도 너무 모르는 그야말로 생초보였지요. 그래서 실수도 많이 하고 눈치도 많이 봤습니다. 야단도 맞고 혼나기도 했지요. 어쩔 수 있나요. 제가 잘 모르는데…. 저는 말 그대로 잡부, 조공이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시간이 흐르니 자연스럽게 저도 이것저것 알게 되고 저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할 만큼 짬밥(?)이 생기더군요.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몸으로 하는 일은 자기가 관심을 갖는 만큼 능력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저의 일과는 매일 비슷합니다. 함께 일하는 팀원들과 숙소에서 오전 5시쯤 일어나 현장으로 이동합니다. 식당에서 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7시에는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Tool Box Meeting, TBM)라고 하는 조회를 합니다. TBM에서는 몸을 풀기 위한 체조와 스트레칭을 하고, 그날의 작업 계획, 기타 필요한 건의 사항, 주의 사항 등을 서로 이야기합니다.

TBM이 끝나면 보통 11시까지 오전 작업을 진행합니다. 이후엔 오후 1시까지 점심시간입니다. 식사하고 대부분 휴게실, 식당, 카페 등 어디라도 몸 붙일 곳을 찾아가서 잡니다. 1시에 오후 TBM을 시작으로, 주간 작업일 경우 오후 5시에 일을 마칩니다. 연장 작업은 저녁 7시까지 하지요. 쉬는 시간은 현장마다 약간 다릅니다. 오전, 오후 30분씩 쉬는 현장도 있습니다. 이 경우 점심시간이 줄어들지요. 어떤 현장은 휴식을 따로 갖지 않고 점심시간을 늘려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개 오전 7시부터 11시까지 4시간,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4시간. 하루 총 8시간 노동이 기본입니다. 여기에 2시간 연장 작업을 하면 일당의 1.5배를 받습니다. 야간, 철야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지요. 야간은 저녁 식사를 하지 않으면 저녁 9시까지, 중간에 저녁 식사를 하면 밤 10시까지 일합니다. 야간 작업을 하면 일당의 2배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주간 작업은 8시간, 연장 작업은 10시간, 야간작업은 12시간 일하는 셈입니다.

몸으로 하는 일은 힘이 든다

몸을 써서 일하는 일명 노가다를 하다 보면 부딪치는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첫째는 몸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종일 짧게는 8시간, 길게는 10시간 이상 서서 일하다 보니 다리가 엄청 아프고 온몸이 쑤십니다. 팔, 다리, 허리 안 아픈 곳이 없다고 할 만큼 말 그대로 온몸 이곳저곳이 쑤시고 저리지요. 그래서 파스를 붙이고 짬을 내서 한의원에 가서 침도 맞곤 하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는 듯합니다. 그만큼 몸 쓰는 일에 제가 익숙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저는 예전에 목사로서 자주 “노동이 은총”이라고 쉽게 말하곤 했습니다. 창세기 3:17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너는, 죽는 날까지 수고를 하여야만,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을 것”(새번역)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걸 하나님의 형벌이 아니라 은총이라고 말하곤 했지요. 막상 제가 몸을 써서 일해보니 은총이라는 생각은 온데간데없고 입에서 욕이 나올 만큼 힘들기만 했습니다. 몸이 아프고 힘든데 은총은 무슨. 몸을 써서 일해보지 않은 목사의 섣부른 해석이었습니다. 몸으로 하는 일은 힘듭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도 목수로서 몸으로 일하는 분이었으니 그분은 내 맘을 아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수 예수. 예수님이 목수라는 말은 말랑말랑하고 낭만적인 미사여구가 아닙니다. 땀을 흘리며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일해본 사람이 그제야 겨우 ‘노동은 은총이다’라고 정직하게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많이 걸어봐야 하루에 1만 몇천 보 정도였는데, 요즘에는 많이 걸으면 2만 8천 보, 보통은 2만 보 정도 걷습니다. 걷고, 물건을 들어 나르고, 자르고, 구멍을 뚫는 등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온몸에서 땀도 나고 힘이 들지요.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 보면 어느 정도는 적응이 되지만 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어려움은 언제든 다칠 위험이 있다는 점입니다. 몸으로 일하려면 맘을 다해야 합니다. 맘 두고 신경 써서 일하지 않으면 자칫 다칠 수 있습니다. 여기저기 부딪쳐서 생기는 타박상과 걸려 넘어지는 일, 협착, 추락, 충돌 등의 위험이 있습니다. 또한 소음과 매연, 분진과 위험 물질도 취급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자료1)를 보면 작년에 건설 현장에서 안타까운 사고로 돌아가신 분만 303명입니다. 이것도 그 전해보다 38명이 줄어든 결과라는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분이 안타까운 생명을 잃고 있는 것인가요?

작년에 제가 일하는 현장에서도 한 분이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철제 빔을 고정하는 작업이었는데, 미처 고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하다가 빔이 넘어지는 바람에 현장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일하는 현장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저도 한 번은 동료와 함께 무거운 자재인 디귿 모양 형강을 나르던 중 내려놓는 과정에서 발등이 찍히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다행히 안전화를 신고 있어서 뼈가 부러지거나 금이 가는 큰 부상은 피했지만 통증은 오래가더군요.

문제는 사고 발생 위험이 구조적으로 상존한다는 사실입니다. ‘위험의 외주화’라고 하지요. 발주처인 원청은 시공사인 하청업체에 떠넘기고, 시공사는 협력업체라 불리는 그 밑의 하청업체를 닦달합니다. 협력업체들은 다시 팀별로 계약하니 하청에 하청에 하청인 셈입니다. 그래서 사고가 나면 원청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위험은 자꾸만 밑으로 밑으로 떠밀려갑니다. 노동자들은 스스로 제 몸을 챙겨야 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위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으나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세 번째 어려움은 인간관계입니다. 사람 모인 곳에는 이런저런 일이 생기기 마련이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별별 일이 다 있지만 인간관계는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사람들은 연결되고 팀원으로 합류합니다. 팀장이 팀원을 모집해서 현장에 들어오는 셈입니다. 팀원들은 함께 숙소에서 생활하는데, 한 숙소에 서너 명이 함께 지냅니다. 제가 일하는 팀은 현재 열두 명이고, 많을 때는 열다섯 명까지 함께합니다. 아무튼 모르는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생각과 배경이 달라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지요. 서로 맞춰 산다는 게 생각처럼 만만치 않습니다. 내 맘도 주고 최선을 다했는데 작은 일로 오해가 생기거나 다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한 번은 아들뻘 되는 나이 어린 친구들이 팀에 들어왔습니다. 나름대로 잘해주려고 맛있는 음식도 사주고 이것저것 챙겨주었지요. 곧 한 친구가 집안에 일이 생겨서 그만둔다고 하더군요. 가기 전에 그동안 고생했으니 맛있는 거 같이 먹자고 비싼 음식도 사주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다른 업체 다른 팀에서 일하고 있더군요. 얼마나 배신감이 들던지요. 상처받았습니다.

일하다 보면 사람들이 오기도 하고 떠나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람 관계에서 상처를 주고받으며,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하고, 나쁜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같은 일을 하는데 일하는 방식은 서로 다를 수 있고, 현장에서는 별별 일이 다 생깁니다. 사람 사는 곳 어디나 비슷하겠지요. 몸으로 하는 일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가느냐가 중요하겠지요.

결국 사람이 중요합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도 결국 사람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분을 믿으며 이 땅에서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국 몸으로 살아가는 다른 이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 결론 없는 어려운 문제 같습니다.

떠도는 나날들

일하기 위해 참 많은 곳을 다녔습니다. 경기도 이천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는데, 그 뒤로 곤지암, 평택(고덕), 경북 상주, 대전, 화성(동탄), 기흥, 지금은 충남 서산에 와있습니다. 말 그대로 떠돌이입니다. 가는 현장마다 오래도록 일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맡은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다른 현장을 찾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생각한 모습과 업체와 관리자들 태도가 달라 현장을 옮기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도 떠돌이셨습니다. 그분은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하셨지요. 요즘은 이 땅에 터 닦고 뿌리내려 살려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배만 불리고 다른 사람 어떻게 살든 상관없이 나만 잘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세상입니다. 그야말로 돈이 모든 것을 장악해 버렸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분명하고 확실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그저 계속해서 찾아보려 합니다. 살기 힘들고 바쁘지만 예수님을 따르고 싶습니다.

작년 겨울에는 경북 상주에 있는 자동차 배터리 공장을 짓는 현장에서 일했습니다. 무척 추웠던 기억이 나는군요. 우리가 일하던 현장은 건물 외장 벽이 없는 유틸리티동이었습니다. 매서운 칼바람과 눈보라를 온몸으로 맞으며 일해야 했습니다. 어떤 날은 너무 추워서 작업이 중지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 일을 거의 마무리할 즈음이었습니다.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그날따라 노을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절로 감탄이 나오고 정말 좋았습니다. 눈물이 날 만큼 예뻤습니다. 제게 은총은 그렇게 아주 가끔 일상 속으로 찾아옵니다. 문득 그런 순간이 찾아든 날이면, 그때만큼은 세상 모든 근심과 걱정이 다 사라지고 감사가 차오르지요. 물론 순간이지만 말입니다. 삶은 피곤하고, 몸으로 일하는 건 힘이 듭니다. 그래도 어느 순간 찾아올 은총과 감사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팀 회식입니다. 팀장이 쏘는 날이니, 맛있는 것 많이 먹고 기쁘게 즐기겠습니다. 그리고 또 열심히 일해야지요.


김한빈(필명)
대전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속가능한 목회를 꿈꾼다. 현재는 주중에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건설노동자로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주일에는 작은 교회 담임으로 목회를 한다. 필명은 김성한의 소설 〈암야행〉·〈속·암야행〉 주인공 이름인 ‘한빈’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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