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2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이런 말 자주 쓰시나요? ‘하마터면’.
조금만 잘못하였더라면 원치 않는 상황에 처할 뻔했을 때 자주 쓰는 말이지요.
이런 말은 얼마나 쓰시나요? ‘하필이면’.
흔히 뭔가 되어가는 일이 못마땅하고 곤란한 상황에서 그 연유를 캐물을 때 사용합니다. 각종 참사, 재앙, 사고의 피해자들은 머릿속으로 수천 번은 더 되뇌었겠지요. 하필이면, 왜 나에게?
저는 주로 ‘하마터면’을 씁니다. 위험과 재난이 고만조만 잘 비껴갔습니다. 위협을 피한 비결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시위나 피해 현장에 가면 불식간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마터면 나도.’ (죄송합니다.) 최근 추모 현장에 가서는 ‘왜 나는 아닌가?’라고 자문했습니다. 논리적이진 않지만, 신앙적으로 어떤 책임이 맡겨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거듭되는 참사, 재난, 음해를 목도하면서도 “하마터면”이라 말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운 좋은 삶이 언제까지 보장될 수 있을까요? 송진순 박사가 쓴 “각자도생하며 존중이라는 이름으로 헐거운 연대를 공동체의 가치로 포장하는 길이 궁극의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라는 문장(그 사람의 설교 노트)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한때 유행한 ‘느슨한 연대’를 핑계로 개인의 보신에만 머물렀던 일들을 떠올리면서요.
모두가 저처럼 “하마터면”의 삶을 꾸렸다면,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없었을 겁니다. 헐거운 연대감으로는 총칼에 맞서기 어려웠을 테지요. 5·18을 기리는 이달에 광주의 봄을 맞이한 사람들의 숭고한 이야기(봄봄·김영준)를 시작합니다.
5월호는 하마터면 모르고 지나갔을,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된 지체(롬 12장)의 이야기입니다.
이범진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