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3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전쟁 뉴스에 내성이 생겼습니다. 하루 이틀 미사일 날아가는 장면을 접할 때는 심각하지만, 사흘째부터는 잊고 잘 지내니까요. 반복되는 망각이 인간 본성으로 인한 것은 아닐지 돌아보게 됩니다. 프랜시스 쉐퍼는 “전쟁이란, 극한에 몰린 이웃을 돕는 일에 무제한 쏟아부어야 할 사랑을 사용하지 않는 비기독교적 사랑 결핍이 역사의 어느 한 시점에 표출되는 현상”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만성적인 사랑 결핍에 빠진 거겠지요.

영화 〈기생수: 더 그레이〉의 원작 《기생수》 마지막 에필로그에 이르면, 한 살인범이 등장해 자기를 변호합니다. 그는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한바탕 할퀴고 지나간 뒤라 더 의기양양합니다.

“왜 다른 놈들은 이렇게 참을성이 강할까? 인간이란 원래가 서로를 죽이는 생물 아냐? … 괴물 따위는 필요 없어! 인간은 원래 서로 잡아먹게 돼 있다고.”

오늘의 현실을 보면, 살인마의 말이 틀리지 않게 들립니다. 그는 본능에 충실한 자기가 오히려 ‘진정한 인간’이라고 주장하지요.

물론 지구 한편에서는 본능에 반하는 일들도 일어납니다. 평화를 갈망하는 여러 모양의 반전운동과 작전이 펼쳐집니다. 보도되지 않는 곳곳에 전쟁을 막기 위해 분투하고, 생명을 구하고자 위험을 무릅쓰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부류의 선행을 보면서 《기생수》의 ‘돌연변이’ 외계인은 말합니다.

“그야 인간이 그렇게 한가한 동물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게 바로 인간이 지닌 최대의 강점이라고. 마음에 여유가 있는 생물. 이 얼마나 멋진 일이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무제한 사랑을 쏟아부으려는 그리스도인들의 ‘한가한’ 이야기(6월호)를 독자님들께 전합니다.

이범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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