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7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어떤 문제를 들춘 사람에게 “그래서 대안이 무엇이냐” 되묻는 광경을 왕왕 목격합니다. 겉으로는 대안을 묻지만, 사실은 ‘묘수’를 듣고자 하는 속내가 읽힙니다. 아니, 어쩌면 묘수에도 큰 관심이 없고, 문제를 문제시해 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느냐는 불만이 녹아있는 말인지도요. “그래서 대안이 뭔데?” 이런 질문, 살면서 몇 번 (하거나) 들어보셨나요?

이번 커버스토리는 ‘기독교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라는 거창한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만든 여러 실천이 우리네 교박한 생활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 따져보자는 목적이었지요. 자료 조사와 회의를 거듭하다 보니, ‘대안’이라 쓰고 ‘도전’이라 읽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도전이었는데 지금은 대안이 되어있기도 하고, 지금의 도전이 (비록 실패하겠지만) 언젠가는 미래의 대안으로 인정받을 것 같았습니다. 이번 호의 여러 글을 도전의 맥락으로 읽는다면, 대안까지도 헤아려지리라 기대합니다.

본지 400호 기념으로 진행된 ‘연재 기획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구선우 작가의 첫 연재가 이번 달부터 시작됩니다. 동물을 묵상하는 필자의 진실한 질문을 꼭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다소간 무리를 해 진행한 공모전이 유의미한 도전이자 대안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독자분들과 함께 보고 싶습니다.

찌는 듯한 더위는 지났지만, 비참한 소식들에 가을을 온전히 누릴 수 없습니다. 딥페이크 성폭력, 의료 공백, 세계 곳곳의 전쟁, 지구적인 기후위기 등 지면에 다 나열할 수 없는 죄악과 재앙 앞에서, 기독교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기독교의 평판을 고려하면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세상의 비웃음을 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의연히 대안을 향한 질문과 도전을 거듭하는 것이 기독교 잡지가 해야 할 일이지요.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10월, 기독교 신앙이 참혹한 세상에 도전이 될 수 있는지 자문해보는 달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범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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