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호 해외 독자 통신]
- ‘신학생 증정 이벤트’에 매우 적극적으로 문의를 주셔서 어떤 분인지 궁금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캐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에서 공부 중인 이유경입니다. 사실 저는 복상과 인연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습니다. 너무 죄송하네요. 하지만 늘 제 머릿속에는 ‘지성인이라면 복상을 읽어야 하는데…’라는 무언의 압박감이 있었습니다.(웃음) 남편이 구독하던 빛바랜 복상이 집에 쌓여 있었어요. 그리고 제 주변에 깨어 기도하고 행동하는 분들이 늘 복상을 가까이하고 계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인생 첫 복상 구독’이라는 설렘과 무게감을 동시에 느끼는 중입니다.
현재 저는 기러기맘입니다. ‘기러기’라는 단어만 들어도 울적한데요. 기러기 아빠는 아빠대로 한국에서 밥벌이로, 외로움과 싸우며 고생하고 있고요. 저는 저대로 아이들 넷을 데리고 고군분투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 엄마로서, 학생으로서, 모국에서 멀리 떨어져 생활하고 계신데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 학원과 공부에 치이는 아이들을 보며 조금 쉬어가자고 꼬셨고요. 저는 일을 그만두고 공부가 하고 싶어 여기까지 날아왔습니다. 최근에 ‘기러기(mom)의 시절’이라는 글을 썼는데요. 기러기가 사실 굉장히 멋있는 새더라고요. 슬픔과 외로움과 고단함, 쓸쓸함의 이미지만 있지 않았어요. 기러기는 계절에 따라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고, 부부가 평생 짝을 이루며, 새끼들도 일정 기간 부모와 다니고, 공기저항을 줄이고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브이(V) 자 대형으로 날며, 선두 기러기가 지치면 교대해주고, 짝이 죽거나 다치면 다른 기러기들이 함께 머물러주기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사랑과 협력과 상호 존중의 이미지로 거듭나는 기러기 가족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사진에 있는 저희 아이들은 겹쌍둥이입니다. 똑같이 생겼지요. 두부는 유기견으로 안락사 직전에 구조한 개입니다. 평생 개를 키워본 적 없는 제가 유기견을 반려견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험난한 과정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브런치스토리(brunch.co.kr/magazine/dubu)를 통해 잘 기록해두고 있고요.
- 사진의 배경이 근사합니다. 동네 자랑을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 동네는 토론토 같은 대도시에 비해 평화로운 시골 느낌의 랭글리(Langley)라는 지역입니다. 최근에 사슴이랑 어린 코요테도 봤어요. 동네에 풍성하게 넘치는 것은 ‘나무’와 ‘새’와 ‘하늘’과 ‘너른 대지’와 ‘스포츠’ 그리고 ‘사과’입니다. 1년도 채 살지 않은 이방인이라 잘 알지 못하지만 제주도에 가면 볼 수 있는 이색적이고 큰 나무들이 동네 공원에만 가도 있어요. 나무가 있으니 자연스레 새들이 몰려들고요. ‘새알못’인 제가 매일 만나 궁금하여 찾아본 새는 스텔라 까마귀(Steller’s jay)와 미국지빠귀(American robin)입니다. 새소리 들으며 아침에 일어나는 일, 원자들이 에너지를 얻으며 춤을 추는 오로라를 보며 북극에 살고 있다는 현실의 감각, 품종이 다양한 사과의 맛, 누구나(특히 여성과 아이들) 스포츠를 즐기고 도전할 수 있는 자유는 지금까지 제가 느낀 캐나다살이의 사랑스러운 점입니다.

- 요즘 캐나다 사회의 이슈는 무엇인가요? 지역 현안이나 동네 이슈도 좋고요, 국가적인 이슈도 좋고요. 관심 기울이고 계신 담론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6학년인 딸이 학교에서 제일 많이 배운 영어 단어가 Tariff(관세)입니다. 학교 내에서도 트럼프 반대파와 지지파로 나뉘는데요. 미국 행정부의 관세와 합병 위협 등으로 반미 감정이 더 우세한 듯해요. 저희 동네는 미국 국경과 가까워서 차로도 갈 수 있는데 요즘에는 미국에 가길 꺼리는 분위기입니다. 보이지 않는 커다란 벽이 느껴지는데, 이러한 벽은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만 있는 것 같지 않았어요. 이민자 입장에서는 캐나다라는 나라가 쌓아 올리는 벽도 보일 수밖에요. 이민 친화국이었던 캐나다 역시 강력한 이민 감축 정책을 펼치며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어 유학생도 줄고 있어요. 유학생이 줄며 대학가도 힘들어져 문을 닫는 캠퍼스도 생기고요. 특정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나 불편한 감정과 말도 오가고 있습니다. 단순한 헤이트의 감정과 혐오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걸 느꼈어요. 《말이 칼이 될 때》의 저자 홍성수 교수는 혐오는 그냥 감정적으로 싫은 것을 넘어 어떤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차별하고 배제하려는 태도를 뜻한다고 말했는데, 비교적 평화롭다고 생각했던 캐나다에서 마주하는 이런 경계 짓기와 혐오 앞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 이제 막 복상을 읽기 시작하셨는데요. 기억에 남는 콘텐츠가 있을까요?
지난 4월 4일 법이 법이 될 때의 아름다움과 해방감을, 탄핵 심판 선고문을 읽던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을 통해 경험했습니다. 반면 5월 1일 법률도 양심도 버린 대법원장과 고장 난 사법 시스템을 보며 법이 법이 되지 못할 때의 추함과 억울함을 경험했지요. 복상 3월호가 마침 ‘법’에 대한 주제로 글을 실어주어 공부가 되었습니다. 근대의 법 그 자체의 불안한 예외적 폭력에 대해 말이죠. 법의 목적인 정의를 이루기 위해 사랑으로 엄혹한 현실을 극복하는 사람들에 대한 과제를 던져주신 한수현 목사님 글이 인상 깊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문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 4월호에 실린 브루더호프 통신의 글이 참 좋았습니다. 조던 카스트로의 ‘선택, 그 크나큰 신비’라는 글에 많은 밑줄을 그었는데요. 제 삶에서 문학의 역할과 저자가 기록한 문구를 비교하게 되더라고요. 문학을 먼저 경험한 저자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먼저 경험하고 후에 문학을 만난 저는 생각이 좀 달랐는데요. 문학은 누군가에게 중독과 허무가 될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구원과 신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게 문학은 후자 쪽입니다. 그리고 저자의 글에서처럼 중요한 것은 삶을 무시하지 않고 관념을 넘어 현실로 돌아오는 것, 그것에 기반한 문학이 되어야 함을 다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 이미 책을 두 권 출판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사로 살다가 일을 쉬면서 우연한 기회로 2015년 복상 전 편집장이셨던 박총 신비와저항 원장님께 글을 배우게 되었어요. (작문공동체 삼다 1기!) 계속 읽기와 쓰기에 정진하여 2018년 울산에서 수필 등단을 하고, 《서른아홉 생의 맛》, 《수고로움》이라는 졸저를 출간하였답니다. 현재 신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아이들을 위한 소설 쓰기에도 도전 중이랍니다. 쉽고 좋은 글을 써서 누구나 읽고 이해하게 하는 것, 조용히 독자를 웃기고픈 수줍은 욕망이 있답니다. 복상도 성실하게 읽고 배울게요. 제가 계속 고민하고 있던 주제들이 나와서 작은 신학교를 다니는 경험 같았답니다.
- 최근 캐나다에 독자모임이 생겼습니다. 매우 활발하게 모이더라고요.
캐나다에 유학생 신분으로 왔고, 지난 8개월 동안 공부에 집중했기 때문에 사모임에 참석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이제 두 학기가 지나 방학을 맞이해서 시간적 여유가 생겼어요. 제가 애정하고 존경하는 수아 선배님이 복상 모임에 계신다고 하셔서 조만간 참석할 예정입니다! 저 같은 새내기 구독자가 ‘해외 독자 통신’에 실려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웃음)
진행 이범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