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8호 에디터가 고른 책] 《부당한 빚, 정당한 빚》 외 3권
빚 없이 사는 사람이 존재할까. 부채로서 빚을 이야기하든 은혜로서 빚을 이야기하든, 그리스도인에게 빚은 친숙한 주제다. 구약과 신약을 보면, 신앙 실천으로 빚 탕감을 논하기도 하고, 비유로도 유용하게 쓰인다. 교회에 출석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매 주일 ‘빚’에 관해 한 번 이상 언급할 수밖에 없다. 예수께서 기도를 가르쳐주실 때 말씀하신 대로라면,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는 셈이다.
“우리가 우리 채무자에게 빚을 탕감해 준 것같이 우리 빚을 탕감해 주소서.”(《죄의 역사》)
성경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이 고백이 단순히 죄에 관한 개인적 차원의 비유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빚’ 공부를 도와줄 책 네 권을 소개한다.
“부채는 더 이상 도덕과 관련이 있는 문제로 여겨지지 않고, 도덕적으로 가치중립적이며, 따라서 특정 계약 조건에 기초한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도덕과 관련이 없는”(amoral) 계약으로 여겨진다는 데 문제가 있다. 원대하고 야심 찬 그 사상 프로젝트 때문에, 부채는 대체로 역사적·사회적·종교적 배경에서 분리된 단순한 계약 문제로 축소되었다.”
그리스도인 사회 윤리학자인 저자에 따르면, 경제학이 본격적으로 발달한 18세기 말부터 부채에서 ‘가치’와 ‘도덕’이 배제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빚을 지고 갚는 문제가 채권자와 채무자 간에 사법적-경제적 차원의 계약 문제로만 인식되었다. 이는 부채를 둘러싼 많은 ‘이야기’를 없애버렸고, 빚을 갚을 의무와 빚을 돌려받을 권리에 한정해서 부채 윤리를 논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로 오기까지 부채와 교묘하게 결합한 착취·남용·조종의 문제가 취약계층의 무수한 생명을 앗아갔고, 이 부작용은 현재 더욱 심화되었다.
이 책은 인류학·철학·경제학·법·종교 등에서 관련 탐구를 가져와 오늘날 부채에 얽힌 구조적·사회적 맥락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이 문제를 총체적으로 살필 수 있게끔 돕는다. 저자는 빚이 인류 초기 역사에서 ‘선물’ 개념에 가까웠고, 이슬람 금융 전통이나 유대교 희년 사상 등을 예시로 들어 공동체와 개인을 유지·보호하는 지원책으로 쓰이기도 했음을 드러낸다. “부채의 다양한 얼굴들”을 살펴 도덕적으로 부당한 빚에서 비롯한 현상을 비판하는 이 책은, 탈선한 금융 환경 재건과 남용·착취 가능성을 물리친 정당한 빚의 경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앞의 책에서 ‘은혜 경제’ 개념으로 기독교 미덕 부채 윤리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학자로 언급되는 캐스린 태너가 썼다. 불평등한 경제, 불완전한 고용, 불안정한 호황·불황 등 현대 금융 지배 자본주의 체제가 일으키는 현상을 정교하게 분석하는 책이다. 복지의 위기와 공동체의 파탄, 부채로 미래가 저당 잡힐 수밖에 없는 체제 아래서 훈육되는 노동자의 삶도 들여다보며, 새 세상을 향한 대안으로서 기독교적 저항과 상상력을 이야기한다.
이 책에 따르면, 성경적 사고에서 ‘죄’는 어떤 실체를 죄인에게 부과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저자는 짐이거나 얼룩이었다가 ‘빚’의 개념으로 이미지화된 ‘죄’의 역사를 성경과 전승, 고대 문헌 등을 통해 정밀하게 다루고 있다. 죄와 용서를 논할 때의 빚 비유가 어떻게 구제·자선의 실천으로 연결되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해에 영향을 끼쳤는지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어떤 점에서 예수는 세금징수원들 및 빚진 자들(“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세금과 임대료의 면제를 촉진하기 시작했다. 권능(항상 현재하는 하나님 나라)이 이 땅에서 필요한 재화들에 대한 위대한 통치권(rights of eminent domain)을 부여했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적극적인 조세 저항은 예수가 열망했던 효과적인 치유와 식사를 나타냈다.”
고대의 혁명은 빚 탕감과 토지 재분배 요구가 핵심이었다. 이 책에 따르면, 로마 시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은 극심한 불평등의 중심에도 빚과 세금 문제가 있었고, 빚과 세금에 관한 언급이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도 영향을 주었다. 예수가 치유했던 이들의 육체적·정신적 질병 역시 부채로 인한 인간 착취의 현실과 무관할 수 없었다. 저자는 주기도를 포함한 예수의 말씀을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고찰하면서 탐욕의 체제에 저항하는 성경 속 대안적 메시지를 드러낸다.
강동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