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호 책방은 열린 문]
부천시 원미동에는 지하 1층에서 운영하는 숨겨진 보석 같은 서점이 있다. 용서점. 소설가 양귀자가 쓴 스테디셀러 《원미동 사람들》 배경지인 ‘원미동 사람들 거리’(구 원미동 71번지, 현 부천로136번길 27) 바로 근처로, 서점이 입점해있는 곳은 원미구청 맞은편 건물들 중 하나다. 건물 근처로 가면 ‘책방 모임, 꾸준히 쌓아가는 글쓰기 모임들’ ‘책방 OPEN’이라는 작은 피켓이 보인다. ‘노래연습장 지하 1층’이라는 커다란 문구에 속지 않고, 그곳에 서점이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한 층 내려가면 용서점이 나온다. 용서점에는 빈티지 그릇도 있고, 헌책 포함 1만여 권 책도 있고, 박용희 대표도 있다.
용서점 박용희 대표는 대학 졸업 후 장신대 구내 서점 매니저, 잡지사 홍보팀장, IVP 직영 서점 관리자로 일했다. 7년간 책을 팔다가 8년째 됐을 때 스스로에게 안식년을 주고자 했다. 6개월 동안 북한 접경 지역, 티베트, 인도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처음부터 서점 주인이 될 생각이었던 건 아니다. 여행을 마친 후 하고 싶었던 일은 ‘여행 강연’이었다. 내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특별히 청소년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도전해 보라고, 모험을 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말이다. 그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이었다.”(박용희, 《낮 12시, 책방 문을 엽니다》(꿈꾸는인생), 15쪽)
여행에서 돌아와 종종 들어오는 강연을 하며 지내다 지인에게 “공용으로 쓰려고 만든 공간이 있는데, 무언가 해보지 않겠냐” 제안을 받았다. 보증금 없이 최소한의 세만 내는 조건으로 말이다. 자유로운 여행 강연자의 삶과 병행할 수 있는 일로 서점을 떠올렸다. 2017년 1월 고양시 덕은동에서 용서점을 시작했다.
박용희 대표가 집에 보관하던 책 3천 권에다가, 책방을 연다는 소식을 들은 지인들 서가에 있던 책들이 모였다. 그중에는 평생 서점을 운영하고 싶어 책을 모은 지인 아버지의 책들도 있었다. 덕은동 시절 용서점은 손님이 찾아오기 어려운 장소에 있어서 ‘온라인 헌책방’ 정체성을 중심에 두고 운영됐다. 개인 SNS로 회원을 모으고, 카카오톡 플러스친구의 카드뉴스 형식 메시지에 회원 맞춤으로 큐레이션한 책들의 표지를 넣어 올렸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회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면 연이어 완판될 정도로 잘됐다. 좋은 헌책도 많았지만, 오랫동안 책을 팔아온 박 대표의 센스도 빛을 발했으리라.
순조롭던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서점 운영 9개월 차에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모든 일상이 멈췄다. 박 대표는 서점 문을 닫고 병원에서 먹고 자면서 4개월을 보냈다. 서점 존폐를 놓고 고민했지만, 그만두지 말라는 어머니 말씀에 마음을 다잡았다. 집-일터-병원으로 동선을 한 번에 이으면서, 주거비 부담이 덜하고 의료 서비스를 받기에 적합한 위치를 찾다 보니, 부천까지 오게 됐다. 부천 역곡동에서 용서점 두 번째 시즌이 시작된 셈이다.
‘아무것도 아닌’ 책방이 되고 싶어서
역곡동 용서점은 2018년 5월 8일 문을 열었다. 시장과 인접해있고, 오가는 사람들 눈에 잘 띄는 장소에 자리 잡았기 때문에 ‘작은 독립 책방’을 정체성으로 삼았다. 이때부터는 새 책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역곡동 시절은 정말 내내 좋았어요. 그때가 개인적으론 진짜 힘들 때였거든요.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병원에서 생활할 때라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오픈한 날부터 사람들이 많이 왔어요. 지나가다 들어오고, 지인이 와인 가져오면 낮부터 나눠 마시고, 와인 마시며 시 낭송하는 모임도 하고,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분이 독서 모임을 만들어 밤늦게까지 대화하고, 인근 거주하는 인디 뮤지션이 제안해서 크리스마스 공연도 하고요. 연결된 사람들, 옆 가게 사장님들과 마음을 모아 플리마켓도 열고, 전시도 열었죠. 2018-2019년에 북토크를 비롯해 행사를 참 많이 했어요.”
병원에 있는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까닭에,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서점 운영 중 갑자기 병원 갈 일이 생기면, 손님들이 대신 서점을 봐주었다. 심지어 가끔 서점을 오픈하는 일까지 맡았다. 서점이 비어있는 낮 시간에는 손님들이 자발적으로 독서모임을 만들어 진행하기도 했다.
“역곡동 용서점은 2020년 코로나19로 위기가 찾아왔어요. 활발했던 모임이 순식간에 사라졌죠. 아등바등 코로나 시기를 견뎠습니다. 어떻게든 뭔가를 해보려 하면서.”
그때쯤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역곡동으로 오면서 덕은동에 두고 온 책이 많았고, 우연히 대량의 책을 기증받으면서 넓은 공간이 필요해졌다. 덕은동 시절처럼 자유로운 공간 운영과 더불어, 온라인 판매에 주력할 생각을 갖고 원미동 용서점을 계획했다. 용서점 2호점 형태로 오픈할 수 있었다. 역곡동 용서점은 작아서 모임을 열었을 때 다른 공간을 활용하기가 어려웠지만, 원미동 용서점은 공간을 분리해 모임 장소도 따로 마련했다. 한쪽에서는 모임을, 다른 한쪽에서는 전시를 진행하면서 손님도 맞이할 수 있었다.
역곡동 용서점은 단골손님 살구 님이 운영을 도왔고, 박 대표는 주로 원미동 용서점에 머물렀지만, 두 곳을 동시에 운영하기란 쉽지 않았다. 2022년 5월을 끝으로 역곡동 용서점은 문을 닫았다.
“다섯 살, 중2, 고3, 대학생, 30대 직장인, 40대 전문직 종사자, 60대 할아버지, 70-80대 할머니까지. 역곡동 시절에는 남녀노소, 빈부·직업·학력이 다양한 동네 사람들이 오갔던 점이 가장 재밌던 부분이자, 용서점의 지향점이에요. 한국에는 탁월하고 특별한 사람들이 많아서일까요, ‘뭔가 이래야 한다’는 기준이 많잖아요? 독서도 공부를 잘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해야 한다는 이미지가 있죠.
저는 역곡동에서 다른 걸 느꼈어요. 공사 일 다니는 아저씨가 지방 갈 때마다 책을 잔뜩 사셨죠.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시거든요. 일이 일찍 끝나면 여관방 가서 내내 책을 읽는다면서. 소설·인문학을 사랑하시는 70대 할아버지, 밤늦은 퇴근길에 책 사는 아주머니도 계셨죠. 이 아주머니는 입주 청소를 하시는 분인데, 강남까지 출근길이 멀어서 그때 읽을 책을 사시는 거예요. 종종 이분을 위해 늦게까지 문을 열어놓기도 했죠.”
용서점에는 여성 손님뿐 아니라 남성 손님도 많이 오는 편이다. 60-70대 어르신들은 깔끔하게 잘 꾸며진 서점이 부담스러워서 못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마음 편히 가는 공간이 아닌 셈이다. 용서점은 이런 점에서 ‘아무것도 아닌’ 책방이 되고 싶다. ‘용서점’이라는 이름에서 ‘용’은 쓸 用 자다. 무엇에든 쓰임이 있길 바라며 지었다.
느슨하게, 각자의 속도대로
용서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중에는 ‘써용’이라는 글쓰기 모임도 있다. 역곡동 시절부터 해오던 것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박 대표는 이 모임에서 ‘쓰고 대화하는 일’이 갖는 힘을 충만하게 느낀다. 사람 사는 온갖 이야기를 글을 통해 들으니, 타인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엔 주변에 다양한 모임이 많잖아요? 이런 모임들은 욕망을 따라가는 성향이 있는 듯해요. 얻고자 하는 바가 있으니 더 열심히 하려 하죠. 일종의 자기계발처럼, 성장하고자 하는 모임이 많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용서점이 운영하는 모임은 그렇게 가고 싶지 않아요. 느슨하게, 각자의 속도대로, 시간을 쌓아가면서 운영하고 싶어요. 이상적이죠? 그러다 보니, 실패를 연속해서 경험하고 좌절하기도 하죠. 그래도 어떤 방향으로든 용서점이라는 공간을 통해 삶에 좋은 영향을 받은 사람들 얼굴을 떠올리면, 서점 열기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박 대표 개인 SNS에는 할머니 손님 포도 님이 쓰신 《유한양행, 미스 고》 출간 소식이 올라와있다. 포도 님은 역곡동 시절 필사 모임에 참여했던 손님이다. 2020년 코로나19로 대면 모임을 못 하게 되자, 이후 5년간 꾸준히 글쓰기를 이어온 끝에 자서전을 출간했다.
“역곡으로 옮겨 올 때만 해도 팔순을 앞둔 어르신이 단골이 될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포도 님은 용서점이 자신에게 기회를 주었다며 자주 감사를 표하시는데, 사실 포도 님 때문에 내가 감사한 것이 더 많다. 동네책방에게 70대 단골의 존재란 곧 든든함이고, 자랑이다.”(《낮 12시, 책방 문을 엽니다》, 112쪽)
빼곡하게 9년 동안 써 내려간 사람 이야기
9년간 용서점을 운영해오면서 박용희 대표 삶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안 변한 부분 말하는 게 빠를 것 같은데….(웃음) 서점 운영 기간이 사실은 간병 기간이었잖아요? 2023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어머니 영향을 계속 받는 것 같아요. 사진이나 영상을 엄청 찍어둬서, 스마트폰 아무 데나 눌러도 어머니가 나와요.
예전에는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했어요. 주변에서도 그렇게 보셨죠. 어디 갖다놓아도 깨지지 않을 것 같다, 면역력도 강하고 탈이 안 나는 사람이다. 간병 기간을 보내면서, 저든 다른 누구든 약할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됐어요. 제 일이 아닌 남 일이었다면 공감하지 못했겠죠. ‘그냥 좀 하면 되지’ ‘아프면 약 먹으면 되지’ ‘산이 있으면 넘으면 되지’ 같은 방식이랄까요. 어머니가 쓰러지고 난 뒤, 뇌경색에 대해 알아볼수록 알게 된 것은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어요. 뇌가 손상돼서 인지능력을 잃었다면, 그 상태로 사는 거예요. 생체 기능은 남아있으니 그대로 10년이든 30년이든 유지된다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했어요.
약한 채로 살 수밖에 없는 일도 있구나, 그런 삶이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겠다. 극복 서사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구나. 책방을 놓고도 그런 마음인 거예요. 9년째 책방을 운영해왔지만, 예전에는 ‘이렇게 하면 잘될 거야’ ‘코로나가 왔지만, 저렇게 하면 잘될 거야’ 하는 태도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안될 수도 있겠다. 지금은 알죠. 안될 수도 있지. 어떻게 다 성공해. 아, 좀 밝은 이야기 없나?(웃음)”
박용희 대표는 서점을 운영하던 중 사랑하는 사람과 만났다. 어머니를 오랫동안 간병하게 되자, 누군가에게 삶을 함께 나누자고 말할 용기가 없어졌다. 혼자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게 됐다. 서점 운영과 간병의 시간을 통과하며 생긴 가장 행복한 변화였다.
“원미동 용서점은 6월부터 추리 미스터리 소설 읽기 모임 ‘추미스’를 진행하고 있어요. 미스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서 트릭을 풀고 이유를 찾아내는 이야기잖아요? 삶을 살면서 예상치 못한 일들, 미스터리를 만나죠. 곡절을 겪을 때 ‘뭐야, 이거 왜 이래’ 하면서도 ‘삶이란 원래 그래. 이해할 수 없는 일로 가득하지’ 하고서 미스터리한 일들 이면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표현을 바꾸면 ‘도대체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일까?’가 될 수 있고요. 미스터리를 풀어보겠다는 접근법만으로도 삶에 의욕이 생겨요. 그냥 손을 놓고만 있지 않겠죠. 삶이 미스터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풀어보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박 대표는 책을 좋아하지만 책 너머 사람에게 더 관심이 많아 보였다. 그가 사랑하는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이현주 목사가 쓴 《예수와 만난 사람들》에는 예수님 이야기를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시점에서 풀어간다. 그는 이 콘셉트가 흥미로워서 이 책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용서점을 운영하면서도, 이곳에서 책이 빛나기보다 오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남기를 내내 바란다. 용서점을 다녀간 분들이 쓴 리뷰도 열심히 본다고 했다.
박용희 대표와 인터뷰를 진행한 9월 5일. 사실 조금 숙연해진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원미동 용서점 모임 공간에 앉았을 때, 박 대표는 ‘그만둘 용기’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큰돈을 벌지 않더라도 빚은 지면 안 되잖아요. 마이너스가 나면서까지 유지할 일은 아니니까. 이 부분에서 늘 고민이 있고, 시작보다 끝이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진짜 솔직히 말하면, 끝내기가 어려워서 서점을 계속하는지도 몰라요. 제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여기까지 온 건지도요. 진작에 실패를 받아들였으면 더 빨리 포기하고 다른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이제는 조금씩 들어요.”
실패를 인정할 수 없어서 용서점을 여기까지 운영해 왔을지도 모르겠다고 자조했지만, 덕은동-역곡동-원미동의 여정에서 생각대로 척척 해내온 그가 ‘그만둘 용기’가 없어 서점을 이어가고 있다는 말을 솔직히 믿을 수 없었다. “책을 좋아하는 동네 주민의 사랑방”으로 문을 연 이 공간에서 아직 해보고 싶은 일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빼곡한 실패담을 들으며, 2년 6개월간 서점에서 근무했었던 나도 덩달아 마음이 아팠다. 용기 내서 적어보자면, 나는 용서점에 가득한 사람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다. 용서점은 아직 끝날 때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장진경
본지 객원기자. 독립서점 매니저, 오래된 서점 직원, 논술 강사로 일한 경험이 있고, 현재는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오랫동안 서점을 운영하셨던 할아버지처럼 훗날 서점을 열고 싶다. 할아버지처럼 책만 파는 서점을 열 수 없을 것 같아, 다양한 형태의 서점을 고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