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성의 자연과 영성/ 예수 안에 있는 우리에겐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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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제공 최병성) | ||
제가 마당에 심은 나무들 중에 앵두나무도 있습니다. 앵두는 먹음직스럽지는 않으나, 동글동글한 빨간 열매가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앵두나무 사이를 헤집고 이상한 나뭇가지가 삐죽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복숭아나무였습니다. 제가 심은 앵두나무는 복숭아나무 뿌리에 앵두나무 가지를 접붙인 녀석이었던 것입니다. 보나마나 열매가 실하지 못한 개복숭아가 분명하리라 싶어 복숭아나무 가지를 주저 없이 잘라버렸습니다.
그런데 참 대단한 녀석입니다. 자르고 또 자르고 보이는 대로 잘라버려도 복숭아나무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새 가지를 밀어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벌쭉하게 자란 복숭아나무를 잘라버리려 톱을 들고 나서는데 제 마음 속에 “아저씨, 제발 저도 같이 살게 해주세요! 한 번만, 제발 한 번만…”라고 호소하는 복숭아나무의 애절한 목소리가 내 마음 속에 들려왔습니다.
살고자 하는 생에 대한 소망이 이렇게 간절한데, 더 이상 야박하게 그 생의 소망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기다려준 보람이 있어서일까요. 개복숭아이긴 했지만 올해는 달짝지근한 작은 복숭아를 많이 맺었습니다. 이제 기이하게도 아래쪽에는 앵두나무가 위쪽에는 복숭아나무가 나란히 자라며 전혀 다른 꽃과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한 뿌리 두 나무인 셈입니다.
인생은 선과 악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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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제공 최병성) | ||
성경 안에 우리처럼 한 뿌리 두 나무로 인해 갈등하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갈등과 아픔을 대변하듯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이 없노라. 내가 원하는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 도다”(롬 7:18)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마치 내 마음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나의 아픔과 동일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좀더 훈련을 받고 신앙이 성숙해지면, 이런 갈등이 없어질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과 동행하는 능력 있는 전도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신 안에 두 열매로 인해 좌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절망하고 있는지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바울의 좌절과 갈등을 보며, 허물 많은 나의 못난 모습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 앞에 저는 무한한 위로를 얻게 됩니다. 능력의 전도자 바울도 원치 않는 두 열매로 고통스러워했다면, 오늘 나의 보잘 것 없는 모습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 사도 바울과 우리와의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허물과 연약함 앞에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지 않을까’ 하는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악으로 절망 가운데 있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롬 8:1)라고 담대히 외치며 희망을 향해 일어섭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예수 안에서는 나의 허물과 연약함 때문에, 나의 죄악들 때문에 너는 왜 그것밖에 되지 않냐는 책망과 정죄가 없습니다. 이 얼마나 우리에게 위로와 희망의 소식입니까? 복음은 예수 안에서 나의 허물과 연약함의 죄책감으로부터 자유케 하는 위로와 희망의 기쁜 소식입니다.
벌써 한 해가 다 지나가고 새해가 다가옵니다. 지난 한 해를 시작하며 마음에 품었던 소원들을 다 이루지 못했고 또 마음에 원치 않는 허물들이 많은 한 해였지만, 후회와 자책보다는 이제 예수님의 넓고 따듯한 품에서 새로운 희망을 계획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최병성 / 목사·생태운동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