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예레미야의 말씀들 20]예루살렘 멸망 후② 예레미야 40~41장

그 땅에 남은 자들

예루살렘의 멸망과 함께 ‘바벨론 포로’로 알려진 역사의 한 시기가 시작된다. ‘바벨론 포로’와 같은 표현은 멸망과 함께 유다 백성이 모두 포로로 끌려간 것처럼 선입견을 가지게 하지만, 실제로는 그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예루살렘을 피해 도망을 치거나 포로로 끌려가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는 점에서 예루살렘 멸망 이후의 시기를 ‘포로기(the Exilic period)’라고 부르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있다(가령, Middlemas는 이 시기를 ‘성전 없던[Templeless]’ 시기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 이것은 ‘포로 귀환’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벨론 땅에 갔던 모든 유다 포로들이 고레스 칙령과 더불어 일거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것 같지만, 실상은 아주 긴 시간에 걸쳐 유대 지역으로 돌아왔음을 알 수 있다. 구약성경은 당시에 있었던 일을 정확한 팩트(facts) 그대로 전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책이 아니다. 이미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믿는 청중 혹은 독자를 향해 지은이가 경험하고 깨달은 하나님의 행하심을 전한다는 점에서, 구약은 근본적으로 ‘증언(witness)’이다. 이 점은 우리가 구약을 읽을 때에 구약이 선포하는 메시지에 집중해야 함을 일러 주며, 구약이 다루고 있는 시대를 파악하고자 할 때에는 구약의 진술을 문자 그대로 볼 것이 아니라 보다 주의 깊게 면밀히 살펴보아야 함을 알려 준다.

예레미야 39장 9절에서 바벨론 군대가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 그 외의 남은 백성”을 포로로 끌고 갔다고 되어 있지만, 이어지는 10절은 바벨론의 사령관이던 느부사라단이 남겨둔 이들이 있음을 보여 준다.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 두고 그 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더라.

그 땅에 남겨진 이들은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이었다. 느부사라단은 그들에게 포도원과 밭을 주었다. 이를 보건대 아무 소유가 없다는 말의 핵심은 그들에게 아무런 땅이 없었다는 의미였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윗의 후예가 다스리던 시절 동안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마땅히 지녔어야 할 기업을 잃어버리고 아무 소유 없이 살아야 했던 가난한 이들이, 다윗의 후예와 왕족들, 귀족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자, 외부 세력이던 바벨론 군대에 의해 포도원과 밭을 다시 얻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그들은 자신들이 가꾸지 않은 포도원을 받은 것이다(신 6:11). 아무것도 없던 이들이 포도원을 경작하며 땅을 가는 농부가 되었다. 바벨론이 유다에 사람을 남겨 두어 농사를 짓고 포도원을 가꾸게 한 것은 당연히 제국의 이익을 위해서일 것이다(Middlemas: 17). 유다에서 생산 활동이 일어나고 그를 통해 교역이 발생하면 이 모든 것이 바벨론 제국의 세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점은 예루살렘의 멸망이 모두에게 비극적인 사실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예루살렘에서 권세를 누리며 부귀영화를 누리던 이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날이었겠지만, 그 땅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기업 없이 극심한 가난 가운데 살아야 했던 이들에게는 예루살렘 멸망의 날이 그들이 짓지 않고 심지 않은 포도원과 밭을 얻게 되는 기쁨의 날이었다. 다윗의 후예인 왕과 왕족들, 귀족들이 사라지자, 유다 땅은 가난한 이들의 것이 되었다. 이들에게 나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무 소유 없이 땅과 기업을 잃은 채 살아가야 했던 가난한 이들에게 다윗에게 주신 영원한 약속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윗의 영광이란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에 사로잡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예레미야 역시 바벨론으로 호송되던 중 느부사라단의 호의로 라마에서 풀려나게 되었다(렘 40:1). 이곳까지 예루살렘과 유다의 포로들과 함께 끌려온 예레미야는 자신이 전하고 외쳤던 대로 나라가 망하고 수많은 이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것을 몸소 경험하고 목격하였다. 아마도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렘 31:15)는 끌려가는 동족을 바라보는 예레미야의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비롯된 깨달음이었을 수 있다(Arnold: 613~614). 느부사라단은 예레미야를 자유케 하면서 그가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도록 배려한다. 특히 예레미야가 바벨론으로 가겠다고 할 경우, 그를 선대하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하였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으로 가는 포로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키시며 평안과 미래와 희망을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렘 29장. 특히 29:10~11). 그렇지만 예레미야는 바벨론으로 가기를 선택하지 않고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들에게 가기로 결정한다(렘 40:6). 정국이나 상황의 안정을 생각하고 자신이 받을 호의를 생각한다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포로들에게 뜻하신 바를 생각한다면, 예레미야는 바벨론으로 가는 것이 백번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예레미야의 선택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미래도 희망도 없으며 아무 가진 것이 없던 그 땅에 남은 가난한 백성들과 함께 거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미 예레미야의 장래를 알고 있듯, 결국 그는 우여곡절 끝에 애굽까지 이르게 되었고, 아마도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서 멸망당하는 백성과 함께 최후를 맞이하였을 것이다. 아무런 기적도 영광스러운 약속도 없이, 그저 고난당하는 백성의 한가운데에서 살아간 하나님의 사람, 그가 예레미야였다.

그다랴 시대

풀려난 예레미야가 찾아간 곳은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머무르고 있는 미스바였다. 바벨론 정복군은 그다랴에게 그 땅을 맡기고 바벨론에 끌려가지 않고 남은 남녀와 유아와 가난한 이들을 위임하였다(렘 40:7). 그다랴는 예레미야의 선포를 따르며 예레미야의 목숨을 보호했던 아히감(렘 26:24)의 아들이며, 거슬러 올라가면 요시야 개혁의 핵심 인물인 사반 가문의 후손이기도 하다(왕하 22:3). 다윗 이래 유다의 중심지는 예루살렘이지만, 그다랴와 남은 백성들에게는 미스바가 그 중심지였다. 미스바는 왕정이 등장하기 전 시대의 중요한 제의 중심지로, 사무엘과 연관이 있는 곳이었다(삿 20:1~3; 21:1~8; 삼상 7; 10:17)(밀러∙헤이스: 533~534). 흥미롭게도, 다윗 왕국의 멸망 이후 다윗 이전 시기의 제의 중심지가 새로이 부각된 셈이다. 바벨론에 끌려간 이들 가운데는 다니엘과 같은 인물도 전해지고, 돌아온 이들 가운데는 에스라, 느헤미야 같은 이들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라가 망한 이후 유다 땅에 남겨진 자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오직 그들과 함께 있기 위해 그 땅에 남기로 선택한 예레미야의 이름으로 전하는 책을 통해서만 그들에 관한 기록이 전해질 뿐이다. 그리고 이 기록은 예레미야와 함께 그 땅에 남기로 선택하고 예레미야와 함께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바룩(렘 43:1~7)을 통해 이루어졌을 것이다.

역설적인 것은 다윗 왕가가 지배하던 시대에 예레미야의 삶은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의 연속이었지만, 왕가가 붕괴되고 나자 그에게는 자유가 주어졌고, 그의 조언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를 가둔 이는 다윗 왕가와 예루살렘 성전 제사장들이었고, 그를 풀어 준 이는 구스인 에벳멜렉과 바벨론의 군대 장관이었다. 다윗과 예루살렘의 옛 질서가 가고 그다랴와 미스바의 새 질서가 왔다. 이 새 질서의 세상은 아무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자, 예레미야, 그리고 에벳멜렉 같은 이들로 이루어진다. 그야말로 이전 시대의 ‘국외자들(outsiders)’이 중심이 된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가난한 이들이 배제되거나 밀려나지 않았고, 옛 예루살렘에서 주변부에 처하였던 이들은 새로운 도시 미스바에서 특별한 자리를 누리게 되었을 것이다(Stulman: 320).

다윗의 후예인 시드기야와 귀족들은 노예를 풀어 주었다가 다시 잡아들이지만, 느부사라단은 예레미야를 석방하고 원래 왕족과 귀족들의 소유였을 토지를 가난한 이들에게 재분배했다. 이 소식이 퍼지자, 광야로 피해 거하던 군벌 세력들과 난리 통에 인근 주변 국가의 지역으로 도망쳐야 했던 유다 사람들이 모두 그다랴에게로 다시 돌아왔다(40:7~12).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들이 얻게 된 성읍에 거하면서 포도주와 여름 과일과 기름을 심히 많이 모으며 살도록 허용되었다. “너희가 얻은 성읍들”이라는 표현에서, 아마도 바벨론 당국과 그다랴에 의해 유다 땅에 정착하는 이들에게 거주하고 경작할 수 있는 땅이 새로이 분배되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그 땅에서 밀려났던 이들에게 이제 바벨론이 허락해 준 지역 내에서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쫓겨났던 자에게 평화와 풍성함이 임하였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은 열왕기서 등에서 전하는 대로 바벨론으로 거의 모든 사람이 끌려갔다는 인상과는 다르다. 그리고 “포도주와 여름 과일과 기름”은 전쟁 직후의 참상과 황폐함과는 거리가 멀되, 풍성함과 넉넉함을 나타내고 있다. 바야흐로 그다랴의 시대는 새로운 시대요, 안정과 풍성함의 시기로 진전하고 있었다(Carroll: 705). 그다랴는 불안에 떨고 있던 사람들에게 바벨론에 순응할 것을 요구하면서 그들에게 평안과 안전을 제공하였다. 그다랴가 그를 찾아오는 백성들에게 권한 바, “너희는 갈대아 사람을 섬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살면서 바벨론의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유익하리라”는 내용은 일찍이 예레미야가 다윗 왕가와 그 백성들을 향해 권면하고 명령하였던 말씀이다(렘 27:11~12; 38:2,17). 예레미야가 그토록 외치던 말씀들이 그다랴에게서 드디어 응답과 메아리로 울려 퍼지며 현실에 적용되고 실천되기에 이른 것이다. 특히 그다랴의 조치로 인해 “그 모든 유다 사람이 쫓겨났던 각처에서 돌아”왔다는 언급은 예레미야를 통해 선포된 미래의 회복 말씀의 성취인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보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아가게 할 날이 오리니…”(30:3); “보라 나는 그들을 북쪽 땅에서 인도하며 땅 끝에서부터 모으리라…”(31:8). 이러한 회복 말씀은 이사야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열방 중에서 피난한 자들아 너희는 모여 오라 함께 가까이 나아오라…”(사 45:20).

바벨론과 그다랴에 의한 토지 재분배는 잃었던 기업의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원래 모든 이스라엘은 가난으로 인해 자신의 기업을 팔았다 할지라도 되무를 수 있고, 희년에 되찾는다(레 25장). 32장에서 예레미야가 하나멜의 땅을 무르는 장면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토지법이 생생한 현실이 되어야 하며, 토지법이 올바르게 준행되는 것이 이스라엘의 회복의 미래와 연관되어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현실의 이스라엘은 토지법을 지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동족 이스라엘을 종으로 삼았고, 7년이 되어도 해방시키지 않았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종으로 만드셨고, 그들을 예루살렘과 유다에서 축출하심을 통해, 왕족과 상류층들이 독점하였을 땅을 아무 소유가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재분배하게 하셨다.

멸망 이후 남은 자들의 공동체에 대한 예레미야의 그림은 이 시기를 다룬 몇 안 되는 다른 본문들과 상충된다.

우리의 기업이 외인들에게, 우리의 집들도 이방인들에게 돌아갔나이다(애 5:2).

인자야 이 이스라엘의 이 황폐한 땅에 거주하는 자들이 말하여 이르기를 아브라함은 오직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기업으로 얻었나니 우리가 많은즉 더욱 이 땅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신 것이 되느니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고기를 피째 먹으며 너희 우상들에게 눈을 들며 피를 흘리니 그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될까 보냐(겔 33:24~25).


애가나 에스겔의 내용은 포로들이 끌려가고 난 후의 유다 땅 소유권을 주장하는 이들에 대한 강력한 거부를 보여 준다. 이 본문들은 멸망 이후 유다 땅의 토지 재분배와 소유 주장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게 한다(Ben~Sasson: 161; 알베르츠: 132~133). 아울러 포로로 끌려간 이들 그리고 훗날 포로에서 돌아오는 귀환자들이야말로 이스라엘의 약속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정통 세력이라는 구약 전체의 흐름을 고려할 때에도, 포로들이 끌려가고 남은 땅이 바벨론 당국의 주도하에 이러저러한 집단에 재분배되었다는 것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이해하게 한다. 이에 대해 확실한 판단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마도 현실은 두 묘사들의 중간 정도였을 수 있으며, 애가나 에스겔의 내용들은 그다랴가 죽은 이후 유다 땅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주목할 것은 바벨론 포로들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구약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그다랴 시대에 대한 예레미야서의 따뜻한 시선이 구약 정경 안에 분명하게 보존 전달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다랴 체제의 종언 : 이스마엘

그러나 이러한 평화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그다랴공동체를 찾아온 이들 가운데는 유력한 군대 지휘자들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이들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이었다. 요하난이 여러 경우마다 나서서 말하는 것을 볼 때, 아마도 이들 군벌들의 대표자로 행세하였던 듯하다(40:13). 그다랴를 찾아온 요하난은 암몬이 그다랴를 암살하기 위해 이스마엘을 보낸 것이라고 전하면서, 자신이 미리 이스마엘을 제거하겠다고 제안한다. 이후에 이스마엘이 실제로 암몬으로 몸을 피한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요하난의 말은 사실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와 동시에, 이제 안정되고 풍요를 회복하고 있는 그다랴 체제 내에서 실권을 차지하려는 군벌들 사이의 암투로 요하난의 제안을 이해할 여지도 여전히 있다. 좋게 보자면, 그다랴 체제의 평화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자는 의도일 수 있지만, 달리는 그다랴 이후 최대의 상대가 될 이스마엘을 미연에 제거하려는 것이 요하난의 의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다랴는 요하난의 말을 믿지 않았다. 왜 그다랴가 믿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아마도 그다랴는 이스마엘을 믿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에 그리도 처참하고 불안정하던 상황이 이제 이렇게 안정되고 평화를 되찾아 가고 있으며, 쫓겨났던 이들도 다시 돌아오는데, 이 평화를 자신들의 야심과 욕망을 위해 부수어 버릴 리가 없지 않은가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더욱이 이스마엘이 불안하다 하여 그를 “사람이 모르게” 암살해서 일을 해결하는 방식에 그다랴는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Carroll: 707). 여기에는 이스마엘이 “왕의 종친”(41:1), 즉 다윗 가문의 한 사람이라는 점도 고려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다랴의 진실함과 순전함과는 별도로, 요하난의 예상대로 이스마엘은 그다랴를 방문한 자리에서 그다랴를 죽이고 만다. 이스마엘이 자신의 수하 열 사람이나 데리고 함께 그다랴와의 식사 자리에 갈 수 있었다는 것은 이스마엘 역시 이 새로운 공동체에서 일정한 위상을 지닌 이였을 것임을 짐작하게 하는데, 그가 다윗 가문이라는 점도 여기에 기여했을 것이다(Holladay: 296).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죽인 까닭은 무엇일까? 요하난과의 갈등과 대립 속에서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다툼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보다 심층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미스바에서의 그다랴가 주도하는 평화로운 세상을 참을 수 없었을 수도 있다. 이 새로운 세상에서 다윗의 후손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전혀 없었다. 아니, 이 공동체에서 다윗의 후손이라는 위상 자체가 전혀 불필요했을 것이다. 다윗의 나라가 사라진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다윗 왕가의 후예가 아닌 사람에 의해 지탱되는 세상, 그리고 흩어졌던 사람들이 그에게로 모여드는 현실을 이스마엘이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아닐까? 오랜 신앙의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예루살렘이 아닌, 미스바가 새로운 세상의 중심이라는 점 역시 이스마엘로 대표되는 다윗 왕실의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이탈과 변칙으로 여겨지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그다랴가 바벨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은 이스마엘 같은 이들에게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다윗 왕가의 회복이라는 이상과 민족주의적 이상의 교묘한 결합이 그다랴의 제거로 결과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다랴를 죽인 다음에 이스마엘이 그다랴가 맡았던 모든 사람을 이끌고 암몬으로 가려고 시도했다는 언급(41:10)은 그의 행동이 철저하게 권력의 교체, 리더십의 교체를 의도한 것임을 확인시켜 준다. 결국 이스마엘이 지향한 것은 다윗의 나라였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금 다윗 왕가의 통치는 아무것도 없는 그 땅의 유다인들에게 그리고 쫓겨난 자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볼 수 있으며, 다윗 왕가는 오히려 이들의 평화를 깨며 죽음을 초래하고 고통을 가져다 줄 뿐이다. 다윗의 의로운 통치가 아니라면 다윗 왕가의 존재 의미는 전혀 없다.

다윗?

우리는 이미 예레미야 22장에서 다윗 가문의 왕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살펴본 바 있다(김근주: 148~158).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영원한 언약을 약속하셨지만, 다윗의 위가 견고해지는 것은 오직 그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공평과 정의”(개역개정의 번역을 따르자면 “정의와 공의”)에 달려 있다. 공평과 정의가 실행되지 않는다면, 백향목 궁에 거하는 다윗은 무의미하다(22:13~17). 왕의 형통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할 때에 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위에 앉는 왕에게 이를 요구하신다(21:12; 22:3~4). 이것은 예레미야만의 외침이 아니다. 이사야서의 여러 구절들 역시 다윗 통치의 본질로 “공평과 정의의 통치”를 언급하고 있다(사 9:7; 11:1~5; 16:5; 32:1).

예레미야 22장에 이어지는 23장의 첫머리는 이 점을 명확히 보여 준다. 이제껏 양 무리를 이끌던 목자들은 양을 흩는 목자였으되, 하나님이 새로운 목자들을 세우실 것이며, 이것은 곧 등장할 다윗의 의로운 가지에 관한 말씀과 연결된다.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23:5~6).

동일한 내용이 조금 더 간략하게 33장 15~16절에서도 반복된다. 23장에서는 다윗의 공평과 정의의 통치가 흩어진 포로의 회복과 연결되어 있고(23:7~8), 33장에서는 다윗 가문의 영원함 그리고 레위 제사장의 영원함과 연결되어 있다(33:17~18). 즉, 다윗 가문의 영속성 그리고 제사의 영속성은 공평과 정의의 통치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다윗의 의로운 통치가 구현되지 않는다면, 다윗 왕실은 말 그대로 무의미하다. 그런 점에서 예수를 찾아와서 오실 메시아가 당신인지를 물어보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참으로 적절하다(마 11:2~5). 주님은 자신이 다윗의 후손임을 내세우지 않으시되, 메시아가 오면 일어나는 일을 실제로 보여 주신다. 메시아 됨은 혈통으로 입증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한 변화로 드러난다. 다윗의 후예 됨은 핏줄에 달려 있지 않고, 다윗으로 상징되는 변화된 세상에 달려 있다. 그래서 이스마엘이 비록 핏줄로는 왕의 종친이었지만, 그것과 다윗의 나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오히려 여기서 다윗은 가난한 백성들에게 임한 평화 세상을 단번에 부수어 버리는 압제자일 뿐이다.

생각해 볼 점

1. 느부사라단에 의해 자유의 몸이 된 예레미야가 바벨론 포로들과 함께 가지 않고 유다 땅에 남은 것에 대해 그 까닭이 무엇일지, 예레미야의 마음에 어떤 생각이 있었을지 나누어 보자.
2. 그다랴 체제의 형성 원인, 이 체제가 이루어 낸 현실, 그리고 이 체제가 붕괴되는 까닭을 정리해 보자. 그리고 그다랴 공동체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느낌을 나누어 보자.
3. 다윗이라는 상징성이 가져다줄 수 있는 폐해를 이스마엘의 행동에서 볼 수 있다.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이 점은 어떻게 고려되어야 할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고백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참고 문헌
P.M. Arnold, “Ramah” in Anchor Bible Dictionary V: 613~4.
R.P. Carroll. Jeremiah 26~52 (Old Testament Library; SCM Press, 1986).
W.L. Holladay, Jeremiah 2 (Hermeneia: Fortress Press, 1989).
J. Middlemas, The Templeless Age: An Introduction to the History, Literature and Theology of the ‘Exile’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7).
H.H. Ben~Sasson, A History of Jewish Peopl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5).
L. Stulman. Jeremiah (Nashville: Abingdon Press, 2005).
김근주. “이스라엘의 죄악 2 : 예레미야 2장 20절~4장 4절”. <복음과상황> 236호. (2010. 06), 148~158.
J. 맥스웰 밀러 ∙ 존 H. 헤이스 지음, 박문재 옮김. <고대 이스라엘 역사>(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6).
라이너 알베르츠, 배희숙 옮김. <포로 시대의 이스라엘>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6).

김근주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 kjkim10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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