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호 커버스토리 경제민주화 전성시대]
지금 대한민국은 경제민주화 전성시대다. 얼마 전에는 올해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를 투표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겠다는 응답이 86.9%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가 발표되기도 했다.1) 이러한 국민의 관심에 화답하듯 유력한 정치인들은 연일 경제민주화를 이루겠다는 사자후를 토하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표방하는 법안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대기업의 횡포와 탈법, 부조리에 대한 질타가 방송과 신문 지면에 가득하다.
경제민주화는 어떻게 ‘요즘 대세’가 되었을까? 필자는 경제문제를 다루는 국회 상임위원회 소속으로 일한 바 있지만, 길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전문 지식도 부족하다. 경제민주화가 전면에 등장한 배경과 흐름에 관한 글을 요청받고 쓸 수 있을까 고민한 이유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까닭은 경제민주화가 ‘경제 분야’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나의 문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경제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시민의 눈높이에서 경제민주화를 고민하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
민주화 : 일상으로의 초대
경제민주화를 논하기 위해서는 민주화가 무엇인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 필자는 민주화란 ‘예외적으로 실현되는 정의가 일상화된 상태’라고 정의한다. 정의가 예외적으로만 작동하는 원인은 독점에서 비롯한다. 예를 들어 보자. ‘당장 저 놈의 목을 치라’는 왕의 한마디에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던 시대에는 왕의 독재가 일상이었다. 이런 시대에도 가물에 콩 나듯 민주주의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신문고를 두드려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여 문제를 해결한 것과 같이 말이다. 그러나 정치 민주화를 이룬 나라에서는 국민이 일상적으로 여론을 형성하고 정례적인 선거를 통해 자신들의 뜻을 표출한다. 권력은 독점되지 않으며 교체되기도 한다.
교회와 신앙은 어떨까. 주일에는 거룩한 장로님들이 주중에는 부정한 돈을 꿀꺽 삼키는 비리 정치인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가혹한 처지로 몰아넣는 냉혈 기업인으로 살아간다. 일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신앙인을 길러내지 못하는 교회는 삶이 아닌 예외적인 기부와 봉사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는 일이라고 교인들을 위로하고 합리화하며 교회의 존재 가치와 이유를 찾는다. 예외적 신앙의 일상적 실천, 그것이 바로 신앙의 민주화일 것이다.
경제민주화도 마찬가지다. 지금 경제민주화가 이토록 큰 화두로 떠오른 이유는 일상적인 노동과 땀, 열심과 노력이 더 이상 더 나은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절망감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성실한 삶이 아닌 예외적인 꼼수와 요행만이 풍요를 보장하는 시대에 대한 분노가 한계에 다다랐다.
그 중심에는 한국의 재벌, 대기업이 자리하고 있다. 2011년 한 해 동안 14조 원에 육박하는 당기순이익을 달성하고 이 중 2937억 원을 사회 공헌에 사용했다는 회사가 있다.2) 그러나 그렇게 돈을 뿌리며 좋은 이미지로 자리매김하려는 회사의 생산 라인에서는 112명의 노동자가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 노출된 채 근무하다 백혈병·뇌종양과 같은 난치병에 걸리고, 이 중 44명은 이미 사망했다는 보고가 있다.3) 그 회사는 이런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면서 지금도 문제투성이 공장을 돌려 큰돈을 번다. 그뿐 아니다. 노조를 만들겠다는 직원들을 미행하고 감시까지 한다. 일상적 불의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남기고, 그 일부는 예외적 선행으로 기부하고 있다.
2010년 5조 원이 넘는 당기순이익을 기록하고 700억 원에 가까운 사회 공헌 비용을 지출했다고 발표한 기업4)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8000여 명의 사내 하청 노동자들을 부려서 이런 큰돈을 벌고 있다.
한 가지 예만 더 들어 보자. 은행에서는 돈을 빌릴 수 없어 대부 업체와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린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과 파산의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40%에 가까운 이자를 받아 돈놀이를 하는 어느 대부 업체는 고리로 등록금을 빌려 주고 번 막대한 돈의 일부를 대학생 500명에게 장학금으로 준다는 광고를 쉴 새 없이 내보내고 있다.5)
대한민국 경제, 예외로 가득한 세계 
이러한 정책은 여전해서 이명박 정부에서도 수많은 재벌특혜정책이 득세하고 있다. ‘고환율정책’으로 수출 대기업은 막대한 부를 얻었지만, 수입 물가 상승으로 서민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폐지되면서 자산 총액 5조 원 이상 대기업의 계열사는 2009년 1264개에서 2011년 1629개로 늘었고, 이는 중소 업종 침해를 통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10대 그룹이 이익을 쌓아 놓은 유보금이 348조 원에 달함에도6) 불구하고 법인세를 감면해 복지 예산이 감소하는 일도 생겼다. 이런 과정에서 재벌 총수들이 1%도 되지 않는 지분율로 거대한 기업을 이끄는 괴물 같은 상황도 연출되고 있다.7)
괴물로 변한 기업들은 성공적으로 학습한 예외적 성장의 방식을 스스로 가속화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어 급격한 성장을 이루거나, 중소기업과 거래하던 물량을 계열사로 돌려 배를 불리고, 신설 계열사에 과다한 공사비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키우면서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있다.8)
기형적 특혜와 정권의 비호로 기업들은 경제력 집중이라는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됐다. 1980년부터 2006년까지 30대 재벌의 자산은 38배, 매출액은 27배 정도 늘었고, 10대 그룹의 시가총액은 680조 원이 넘어 주식시장 전체 시가총액의 54%를 차지하고 있다.9) 이렇게 거대하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들 기업은 경제 관료 및 정치인들과 끈끈한 유착관계를 형성했는데, 이제는 유착을 넘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어느 대통령의 말처럼 국가의 행정과 사법기능을 무력화하고, 정치인과 언론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주무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독점적 지위와 거대한 부를 통해 얻은 막강한 힘은 일상적 불의와 예외적 선행이라는 기형적 구조를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그것은 재벌 기업과 총수 일가를 신성하고 예외적인 존재로까지 만들어 이들에게 무한한 특권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일상적인 땀과 노력은 실패의 길이 되고, 요행과 꼼수를 통한 예외적 성장과 독점이 성공과 풍요의 길이 되어 이 사회를 휘어 감고 있다. 부동산 투기, 주식 열풍, 복권 매출 팽창, 고리대금의 횡행 등은 이러한 시대를 보여 주는 확실한 증거들이다. 권력을 잡기 위해 온갖 비열한 방법들을 동원하고, 서로를 짓밟아야만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며, 진실이 감춰지고 거짓이 승리하는 시대, 서로 악수하고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썩어가는 회칠한 무덤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일상이 된 불의를 통해 부를 축적하며, 그렇게 쌓은 부가 힘이 되고 성공과 선망의 모델이 되어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다. 성실함의 대가가 고통과 절망으로 돌아오는 상황에서 경제민주화는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는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다. 앞서 적은 것처럼 경제민주화는 경제활동 과정에서 일상적 정의를 회복하는 것이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고통을 이용해 축적한 부의 일부를 ‘사회 공헌’이라는 이름으로 던지는 예외적 선행을 칭송할 것이 아니라, 이윤 추구라는 경제활동 과정에서 정의가 실현되도록 해야 한다.
기업은 노동자가 안전하고 쾌적한 조건에서 일하고, 일한 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윤을 위해 환경 파괴를 일삼았던 행태를 반성하고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 각종 법률을 준수하고, 세금을 제대로 내야 한다. 무언가 따로 좋은 일을 해서 불의를 감추고 변명하는 모습을 버리고, 일상적인 기업의 활동 그 자체가 사회 공헌이 되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바람직한 그림이다. 사회적 자원과 부가 일상적으로 올바르게 배분되어 활기차게 선순환하는 경제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뺨 때려 놓고 빵 하나 쥐어 주는 식의 기형적 상황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법치의 확립이다. 여기에는 물론 좋은 법을 만드는 것이 포함된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기업의 생산 활동에서 아동노동이나 강제 노동과 같은 반인권·비윤리적인 일이 발생하는지를 조사하고 공개하도록 하는 ‘공급망 투명성 법률’을 제정·시행하고 있다.10) 법치는 좋은 법을 만들고, 시행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법치는 기계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규칙이 적용되는 시스템을 말한다. 그동안 재벌과 그 총수들은 예외적 존재로서 특권을 누려 왔다. 분유 하나를 훔쳐도 교도소에 가는 세상에서, 이들은 수백, 수천억 원의 돈을 탈세․횡령․배임하고도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데 그친다. 이마저도 몇 달 후 사면받는다. 이것은 법치가 아니다. 공정하지도 않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사회적 약속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드는 법치가 경제민주화의 중요한 첫 걸음인 이유다.
공정한 법치 사회에서는 누구에게나 기회가 부여되며, 공정한 규칙을 통해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에는 신뢰가 쌓인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신뢰는 막대한 사회적 이익을 가져온다. 서로 믿지 못해 발생하는 갈등과 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올바른 법치가 바로 설 때 사회적 활력이 살아나고 노사 갈등, 정치 파행, 불공정 사회, 사회 양극화, 신분과 부의 세습 고착화라는 단어들은 점점 우리의 머리에서 희미해질 것이다. 민주화는 가장 효율적인 사회를 만든다.
각자의 아바타를 여의도에 보내자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 수많은 법률이 논의되고, 법치의 확립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법과 제도를 세워 ‘나쁜 짓을 못하도록 하는’ 소극적 정의를 달성할 수는 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고 상상력을 더해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데는 정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정치는 우리 삶을 나누는 일이다. 경제민주화를 가로막는 불의와 관련한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대한민국 정치 제일선은 여의도 1번지다. 그러나 여의도의 정치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도, 세상이 나아갈 모습을 그럴듯하게 그리지도 못하고 있다. 정치의 현장에서 정치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각종 정치·경제·사회의 꼬인 실타래를 풀어내는 데 최고의 능력을 보여 줘야 할 정치인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오히려 법관들에게 시시비비를 가려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대한민국 정치 1번지 여의도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치가 이렇게 망가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정치가 ‘훌륭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변호사․교수․명망가로 이루어진 정치권에서 서민․노동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돌보는 일은 ‘좋은 일’일 수는 있어도, ‘나의 일’은 아니다. 때문에 삶에서 우러나오는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머릿속의 논리와 명제가 맞부딪히는 소모적인 갈등만이 정치를 지배한다.
국회의원 자녀 중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과연 지금같이 그들의 억울한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세상에 묻혀 버렸을까? 철거, 정리 해고, 대리운전, 사업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이 국회의원이라면 이들의 아픔과 고통에 조금은 더 귀 기울이지 않을까? 군복무를 회피한 사람들이 아니라, 온갖 설움에도 성실하게 군복무를 한 사람들이 정치권의 다수이자 지도부가 된다면 군인들의 처우가 지금보다는 더 개선되지 않을까?
정치는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대신해 누군가가 일해야 하는 곳에는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와 같은’ 사람을 보내야 한다. 이는 경제민주화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원칙이다. 경제민주화를 공부한 사람, 경제민주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보다 그 폐해와 고통을 몸소 겪은 사람들이 일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경제민주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대표를 세우고, 이들에게 투표하는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글을 마무리하며 온갖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권력을 잡은 어느 나라의 대통령을 생각해 본다. 대다수 서민과 중산층의 삶을 내팽개친 채 일부 부자들의 삶에 복무하면서도 많은 거짓말을 일삼는 어느 나라의 지도자를 생각해 본다.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실망과 아픔을 주었으면서도 자신의 월급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기부한다고 자랑하는 어느 나라의 권력자를 떠올려 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대통령은 대통령의 일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며, 그렇게 정의가 일상에서 실현될 때 민주화된 것이라고.
각주)
1)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하여 2012년 7월 3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다.
2) ‘2012 삼성전자 지속 가능 경영 보고서’
3)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cafe.daum.net/samsunglabor)의 ‘반도체 전자 산업 직업병 피해 제보자 현황’, 2012년 3월 5일 기준
4) ‘2011 현대자동차 지속가능성 보고서’ 및 ‘2010 현대자동차 사회 공헌 활동 백서’
5) 재단법인 아프로 에프지 장학회, ‘2012 러시앤캐시 행복 나눔 등록금 캠페인’
6) 재벌닷컴 조사, 2011.9.28
7) ‘자산 5조 원 이상 기업 집단의 주식 소유 현황’에 따르면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의 지분율은 0.04%,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지분율은 0.52%에 그치는 등 상위 10대 재벌 총수의 평균 지분율은 0.94%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 2012.7.1
8) 공정거래위원회와 경제개혁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자동차 등 모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2001년 1995억 원이던 매출액이 2010년 5조 8340억 원에 이르렀다. 또한 STX그룹은 계열사인 STX건설에 15%나 높은 공사 대금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9) ‘30대 재벌 자산 5년간 2배 증가 … 국내총생산 앞질러’, <경향신문>, 2012.2.3
10) 서울 공익법센터 어필 홈페이지 참조, www.apil.or.kr/1039
권오재 님은 법학을 전공했으나 ‘법대로 하자’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참여연대에서 민생담당 간사로 일하며 이자제한법 제정 등의 일을 했고,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와 정무위원회 소속으로 경제문제를 다루고 배울 기회를 얻었다. 지금은 임수경 의원 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다. '기회'가 모든 이의 것이 되는 꿈을 꾼다. 페이스북 주소는 www.facebook.com/vacso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