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호 커버스토리 경제민주화 전성시대] 한국개발연구원 유종일 교수 인터뷰

▲ 한국개발연구원 유종일 교수 ⓒ김은석
경제민주화 조항이라고 불리는 헌법 119조를 만든 김종인 박사를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함으로써 일단 새누리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이번 대선 국면에선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한 듯하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의 또 다른 상징적 인물인 유종일 교수는 사실상 장외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여러 잡음 끝에 민주통합당(민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한데다가, 그가 속해 있는 한국개발연구원(KDI)으로부터는 사전 승인 없이 대외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3개월 정직이라는 징계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활기차고 거침이 없다. 마치 광야에서 올곧은 소리를 내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경제민주화가 대선의 주요 이슈가 될 것이 분명한데도 가장 큰 상징성을 갖는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의 전략 부재와 더딘 대응이 아쉬울 따름이다.

7월 5일 국회 경제민주화포럼 창립식 기조 발제를 마친 유 교수를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났다. 서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진지하게 걱정하는 경제학자들이 그러하듯이 그의 고민은 이미 경제학 교과서에 머물러 있지 않고 구체적인 경제 정책과 정치제도, 그리고 정치인들의 권력투쟁에까지 미치고 있다. 무엇보다 “너희 중에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혁명적 말씀 속에 경제민주화의 뿌리가 있다는 그의 고백은 아마 복상 독자들이 처음 듣게 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총선 이후 경제민주화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정치권과 학계에서 경제민주화 이슈가 계속 회자되고 있지만 아직 시민들에게 경제민주화는 모호한 개념이다. 1987년 정치 민주화가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각인되었던 것처럼 경제민주화를 어떻게 특정하면 시민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을까.

가장 어려운 문제부터 질문하셨다. 오늘 국회에서 경제민주화포럼 창립식이 있어 특강을 하고 왔다. 여러 질문을 받고 토론도 했는데 맨 마지막에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로 얘기한 게 바로 그 부분이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사실 우리는 별로 민주화되어 있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경제민주화란 개념이 추상적이다 보니 더 멀게 느껴지고 와 닿지 않는 것이다. 아직 “우리 손으로 대통령 뽑자”처럼 탁 와 닿는 걸 못 찾았다. 어렵지만 한마디로 얘기하면 “경제가 공평해야 한다” 정도 아닐까. 예를 들어 동네 골목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분이 자본력과 브랜드 파워를 갖추고 들어온 대기업 빵집과 경쟁하는 게 공평한가. 똑같은 일을 하는데 누구는 정규직이어서 고용이 안정되고 월급도 많이 받는데, 누구는 (비정규) 하청 노동자여서 고용이 불안정하고 월급도 적다면 공평한 것인가, 불공평한 것 아닌가. 기회나 소득분배, 발언권 등이 다 잘못돼 있으니 공평하게 바로잡고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 그게 경제민주화다.

유 교수께서는 지난 총선 때 민주당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를 이끌었다. 결국 공천이 안 됐지만 출마 준비도 하셨다. 그런데 총선 이후 사전 승인 없이 대외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학교로부터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아무리 정부 출연 기관이라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 현재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이명박 정부가 임명한 현 KDI 원장이 온 후 학내의 민주적 분위기가 크게 훼손됐다. 그전까지 내가 속한 국제정책대학원은 교수회의에서 실질적으로 모든 걸 결정하던 구조였다. 그런데 그 사람이 와서 모든 세세한 걸 원장이 결정하는 식으로 만들고, KDI 직원 통제 규정을 그대로 대학원 교수들에게도 적용한다고 했다. 이것은 위법이다. 교원의 신분 보장과 학문의 자유라는 게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나는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이렇게 위헌·위법적인 규정을 지킬 수 없다고. 아무리 문제 제기를 해도 학교는 듣지 않았다. 그래서 과거에도 징계를 당한 적이 있다. 굴하지 않았다. 국회에서 강연을 한 오늘도, 학교는 내가 정직 상태임에도 대외 활동에 대해 승인받으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나는 승인 안 받고 그냥 했다. 아니, 교수가 자기 학문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국가의 공익을 위해 활동하는 건데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강의를 빼먹고 하는 것도 아니고,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하는 것도 아닌데 왜 허락을 받아야 하나? 또 징계할 테면 해 보라는 거다. 징계 건에 대해서는 일단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소송을 청구했고, 만약 거기서 안 되면 행정소송을 할 예정이다. 법무법인 덕수의 김형태 변호사께서 사건을 맡았다. 대법원까지도 갈 각오가 돼 있다.

고등학교 때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배경이 한국의 정치·사회적 흐름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듯하다. 학창 시절, 교수님께 신앙이란 어떤 것이었나?

내가 기독교를 처음 접한 것은 중학생 시절 함석헌 선생님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읽고서다. 종교적 용어를 쓴 것은 아니었지만, 함석헌 선생의 무교회신앙을 통해서 역사와 삶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추구를 경험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평소 내 눈에 비쳤던 종교의 모습, 교회 다니는 아이들이나 어른들의 모습은 매력적이지 않았다. 아프면 절에 가서 비는 사람도 있었고 교회 가서 비는 사람도 있었고, 기본적으로 다 기복신앙이었다. 복을 빈다고 해서 정말 복이 오는 건 아닐 테고, 넌센스 아닌가. 그래서 종교에 무관심했다. 그런데 그 책을 읽으면서 다른 차원의 종교가 있음을 알았다.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신동아>에 실린 민청학련과 박형규 목사님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예수의 삶을 본받고 그 정신에 따라 산다는 것은 감옥에 가는 것도 무릅쓰고 이렇게 불의한 독재 권력과 맞서 싸우는 것이구나, 또 그것이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사랑의 정신을 갖고 한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깜짝 놀랐다. 기복신앙만 생각하고 우습게 여겼는데 이런 교회, 이런 목사님이 있구나 싶어 그 교회를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박 목사님은 감옥에 계셨으니, 목사도 없는 제일교회에 찾아갔다. 상당히 열심히 다녔다. 하버드 유학 시절엔 홍근수 목사(전 향린교회 담임목사)와 성경 공부도 하고 민주화운동도 같이 했다.

그런 기독교신앙이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것과 관련이 있나?

“너희 중에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정말 혁명적이다. 모든 인간은 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것이 기독교신앙과 사상의 근본 아닌가. 먹고사는 것은 우리 생활의 토대다. 거기에서부터 기독교적인 경제생활의 양식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거고, 그 답이 경제민주화라고 생각한다. 경제민주화는 경제생활을 민주적으로 하자는 건데, 그럼 ‘민주’가 무얼까. 모든 사람은 동등하고 존엄한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럼 존엄한 인간이 원하는 건 무엇일까. 자유다. 누구도 노예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기 원한다. 그리고 평등을 원하는 거다. 그걸 경제생활에서 구현하는 게 경제민주화다. 자유로운 선택은 시장경제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시장경제에만 맡기면 불평등하게 되니 시장이 공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최대한 모든 사람들이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여러 규제도 하고 보완도 해야 하는 거다. 그런 점에서 나는 시장경제를 주장하지만, 자본주의는 아니라고 본다. 자본이 주인이 되는 건 말이 안 된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입장에선 특히 돈이 주인이 되면 안 되지 않나. 사람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 사람이면 누구나 주인 노릇을 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경제제도를 만드는 것, 그게 경제민주화다.

▲ ⓒ기린
경제민주화는 아마 이번 대선에서 가장 쟁점이 될 이슈가 아닐까 싶다. 대선 주자들도 경제민주화에 관한 입장을 속속 정리할 것 같은데 정책 측면에서만 봤을 때, 주요 대선 주자들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평가한다면?


글쎄, 개별적으로 대선 주자들의 입장을 평가하는 것은 좀 그렇다. 지금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한 것은 박근혜 씨다. 헌법 119조를 만든 김종인 박사를 아주 잘 활용하는 것 같다. 김 박사님이 한 가지 이미지는 확실히 심어 줬다. 당내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조심스럽게 적당히 하려는 게 아니라 아무리 센 사람이라도 소신에 맞지 않으면 받아 버리지 않나. 박근혜 씨가 그런 사람에게 힘을 실어 주니, 사람들이 ‘아, 박근혜 뜻이 저기 있구나!’ 하고 인식하게 됐다. 정책 고민을 많이 한 사람은 손학규 씨 같다. 정책 발표한 걸 보면서 준비를 상당히 많이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대선 레이스가 전개되면 모든 후보가 국민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오늘 국회 특강을 하면서 “자연산 경제민주화와 성형 경제민주화를 구별해야 한다”고 했다. 여론조사를 해 보니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를 최우선으로 고려할 이슈로 꼽은 사람이 26%, 중요하게 고려할 이슈로 꼽은 사람이 60%였다. 90% 가까이가 경제민주화를 대선의 주요 이슈로 본다고 한 것이다. 그러니 원래는 아닌데 유권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다시 말해 성형을 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거다. 누가 선거 때 어필하려고 성형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온 건지, 누가 진짜로 경제민주화에 대한 철학과 의지, 실력과 능력을 갖추고 나온 건지 국민이 판단해야 한다.

다음으로 ‘민주적 경제민주화’와 ‘관치적 경제민주화’가 있다. 과거엔 박정희, 전두환처럼 강력한 지도자가 힘으로 재벌들을 눌러 나눠 주라고 명령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일시적이다. 그 권력이 힘이 있을 때 잠시일 뿐 힘을 잃으면 제자리로 돌아가게 돼 있다. 그렇게 해선 안 된다. 법과 제도를 잘 만들어야 한다. 또한 경제민주화를 반대·저항하는 힘이 강하기 때문에 여론이나 여러 이해관계를 잘 조정하고 규합해야 한다. 중소기업·소상공인·노동자·시민사회의 힘을 동원하고,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을 거쳐 형성된 정치적 힘이 바탕이 돼야 경제민주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를 심화 발전하는 방향으로 경제민주화를 하는 것과, 지금 경제정책에 부작용이 보이니 강력한 지도자가 일시적으로 하는 것은 크게 다르다. 앞으로 그 부분을 평가해야 한다.

▲ ⓒ김은석
시민들이 성형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이와 자연산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이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 같은 게 있지 않을까?


목소리만 듣고 눈빛만 봐도 저 사람이 하는 얘기에 무게가 얼마만큼 실려 있는지 알 수 있지 않나. 진짜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그동안 살아온 삶과 철학, 정치 이력, 비전에 경제민주화의 가치와 방향이 녹아 있어서 ‘아! 이거구나’ 하는 인상을 줄 것이다.

대통령의 권한이 아무리 막강해도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대통령의 힘은 중요한 자리에 사람을 앉힐 수 있는 권한, 즉 임명권에서 강력하게 발휘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선 후보들이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느냐가 중요하다. 경제민주화를 한다고 하는데 함께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 저 사람이 경제민주화를?’ 이런 의문이 드는 사람이 있다. 그런 면에서 경제민주화의 철학에 맞는 사람들이 어느 쪽에 많이 있는지, 아니면 권력 지향적이고 때에 따라 말을 바꾸는 사람이 많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내각책임제라면 섀도 캐비닛(shadow cabinet, 그림자 내각. 야당이 정권 획득을 대비해 틀을 짜 놓은 정부 각료 조직)이 있어, 어떤 정당이 정권을 잡으면 이런 사람들이 일을 할 거라는 게 분명히 보일 텐데 우리나라는 그런 게 부족하다.

경제민주화가 일시적인 조치가 아니라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추진할 일이라는 걸 기억해야 할 듯하다. 얼마 전 김영호 단국대 석좌교수가 한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새누리당보다 많기는 하지만 큰 그림이 없다. 큰 그림을 그리고 실천할 대통령을 만들고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비판을 하더라. 이런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맞는 말씀이다. 미시적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얼마나 제한할지 등을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멀리 보고 한국 경제가 어디를 향해 갈 것인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보여 주는 분명한 메시지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경우 한미 FTA 문제에서 국민에게 혼란을 주지 않나. ‘우리는 다른 경제로 간다’고 하는 큰 그림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물론 경제라는 게 복잡해서 한마디로 쉽게 제시하기가 어렵긴 하다. 우리가 복지국가를 이야기하면서 스웨덴을 거론하지만 꼭 그렇게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모델이 보여 주는 가치와 기본 원리가 있다. 그런 것을 지향점으로 삼고 나가자고 해야 한다.

▲ 손정욱 편집위원 ⓒ김은석
최근 새누리당 내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김종인 박사의 주장에 반대하는 이들과 보수 언론에서는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이들이 서민을 위한 구체적 정책 없이 재벌 개혁과 부자 증세만 주장한다고 비판한다. 이런 비판은 어떻게 보시나?


새누리당에는 기득권의 손을 들어 줄 정치인들이 많다. 하지만 아까 말한 경제민주화를 바라는 90%의 중산층과 서민들은 그런 논쟁을 보면서 ‘박근혜가 김종인 편을 드니 경제민주화를 하는 거겠지’ 하고 생각하지 않겠나. 작전을 쓰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런 흐름에 대한 야권의 효과적 대응책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진짜 경제민주화를 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정말 잘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우위를 보여야 한다.

재벌 개혁뿐 아니라 금융시장이나 노동시장을 공평하게 만드는 것, 중소기업이나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등을 활성화하고 육성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노동시장이 지금처럼 격차가 많으면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는 고용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다. 고생해서 대학 나오고 스펙 쌓은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다는데, 다른 한편에선 일자리가 넘쳐나지만 사람을 못 구한다. 이게 무엇을 말하는가? 한국 사회에는 최소한의 사회적 체면을 유지하면서 가정을 꾸리고 살기 위해 필요한 생활수준이 형성돼 있다. 그런데 그 수준을 유지할 임금을 제공하지 못하는 직장이 잔뜩 있다는 말이다. 역으로 그런 저임금 일자리가 많이 있는데 평균 생활수준은 왜 높게 형성돼 있나. 소득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이 격차를 줄이는 게 고용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 이 문제를 풀려면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 거기에다 재벌과 중소기업이 공평하게 경쟁하도록 하고, 세금도 공평하게 내도록 해야 한다. 세금도 4대강 사업 같은 데가 아닌 복지와 미래를 위해 써야 한다. 공기업을 무분별하게 민영화하거나 자꾸 민자 사업을 벌일 게 아니라 국가가 공공성이 필요한 사업을 지키는 것, 이게 다 경제민주화를 위해 할 일이다.

자꾸 재벌 개혁과 부자 세금만 얘기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건드리지 말라’는 기득권 세력의 굉장히 속 좁은 얘기에 불과하다. 지금은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렇게 격차를 벌리고, 불공평하게 해 놓고, 가진 자들의 탐욕이 난무하게 한 결과가 무언가. 글로벌 금융 위기가 왔고, 전 세계 경제의 미래도 불확실하지 않나. 심지어 세계 경제계의 큰손들이 다 모인다는 다보스포럼에서도 도저히 안 되겠다며 대전환을 얘기하지 않았나. 대전환이란 게 뭔가, 국제 금융자본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경제정책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고 부자들 세금 깎아야 더 잘 살게 된다고 했던 것, ‘완전 잘못됐다’는 것 아닌가. 돈이 주인 노릇 했는데 다시 사람이 주인이 되고, 자본이나 시장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라는 거다. 예수님이 그러시지 않았나. 율법이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고. 그런 대전환을 얘기한 거다. 기득권 세력은 이런 변화의 흐름을 외면하고 자꾸 위기를 막을 수 있다느니, 우리는 건드리지 말라느니, 국제 경쟁력을 위해 재벌을 밀어야 한다는 식의 옛날 얘기를 계속 하는 거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를 바라는 사람 입장에선 불안하다. 지난 총선 전후로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보여 준 실망스런 모습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김종인 박사가 이용만 당하고 버려졌다고 얘기될 정도였고, 민주당도 교수님을 비롯해 경제민주화를 주창하던 분들 대부분이 공천조차 안 됐다. 그때에 비해서 정치권 상황은 아직 바뀌지 않은 듯하다.

우리나라는 정당정치가 제대로 발달되지 않았다. 민주주의 역사도 일천하다. 지금 우리가 ‘새누리당, 새누리당’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한나라당이었다. 민주통합당도 생긴 지 얼마 안 됐다. 굉장히 불안정하다. 당이 맨날 바뀐다. 당이 지향하는 이념과 이상, 가치가 있고 그것을 같이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그 지지자들이 정당을 이루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정당들은 그렇지가 않다. 정당이 정치적 기득권을 가진 이들의 기득권을 재생산하는 게 일차적 기능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은 굉장히 취약하고 대통령의 권력은 비대하다. 대권 향배에 따라 늘 정치권이 출렁거린다. 그러다 대통령의 힘이 빠지면 정당도 바뀐다. 계속 그런 식이다.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이 구조가 빨리 바뀌어야 한다. 대통령의 권력이 비대화된 것이 바뀌어야 하고, 정당도 정상적인 정책 정당으로 바뀌어야 한다. 정치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그러려면 선거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예를 들면 독일식 비례대표제 같은 게 정책 정당으로 가는 데 훨씬 바람직한 선거제도 아닌가 싶다. 하루아침에 바뀌길 기대하긴 어렵다. 어쨌든 주어진 상황이 있기 때문에, 결국 대선이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철학과 비전이 확고한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되고, 그걸 같이 실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 결집해서 바꿔 나가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은 누가 자연산이고 누가 성형인지 판단해야 할 것이다.

말씀하신 대로 2012년은 대선이 있기 때문에 향후 우리나라의 미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이자, 그만큼 개혁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열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대를 사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아이러니하게 노인들은 열심히 투표하는데 청년들은 투표를 많이 안 하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 정치권에서 그만큼 투표의 중요성을 심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정치 구조는 청년들을 소외하고 있다. 정치권이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와 이유를 만들어 줘야 한다. 그러나 청년 입장에서 보더라도 정치란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직접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자기 미래만 두고 봐도 영향력이 크다. 자기가 살아갈 세상의 미래를 열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모색하면 참여할 길은 열린다. 길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권력은 절대 길을 열어 주지 않는다. 요즘 청년들은 조금 주눅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취직은 어려운데 등록금은 비싸고, 스펙을 쌓는다고 이것저것 해야 할 게 많다고 한다. 인생의 축복받은 기간인 청년 시기에 맨땅에 헤딩도 해 보면서 자기를 발견해야 하는데, 이 사회가 청년들이 젊음을 발산하지 못하고 주눅 들게 만들고 있어 가슴이 아프다. 그럼에도 자신감을 갖고 하고 싶은 걸 찾아서 도전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청년들이 되면 좋겠다.

앞으로 활동 계획도 궁금하다.

여러 일정 때문에 미루고 있지만 팟캐스트로 경제학 강의를 하려고 한다. 대한민국처럼 경제지가 많은 나라가 없는데 지금 경제지들이 앞장서서 경제민주화를 반대하고 있다. 일반 신문의 경제면도 내용이 편향됐다. 경제를 조금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편향된 시각을 갖기 쉽다. 반면 다수의 국민에게 경제는 너무 어렵다. 모르는 용어투성이다. 학교에서 경제학개론을 들은 사람들에게도 잘 와 닿지 않는다. 경제 공부가 돌아가는 실생활과 유리되어 있다. 소망이지만 사람들이 실제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방송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경제에 대해 올바른 관점을 갖게 되고 그것이 앞으로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는 데 바탕이 되고, 힘이 되었으면 한다.

진행 손정욱 편집위원, 국회의원 보좌관 sonjungwook@empal.com
정리 김은석 기자 warmer@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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