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호 연중기획] 87년형 복음주의여, 안녕
누구도 쉽게 정의하기 어렵다 하는 ‘복음주의’에 ‘‘87년형’을 붙여 1년을 함께해 온 연중기획 ‘87년형 복음주의여 안녕’이 12월 호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길고 긴 시간이었다. 저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이기에 어려웠고, 불편해하는 이들이 있을 것을 예상했기에 조심스러웠으며, 대안이나 전망을 내놓는 이나 자기 변혁을 먼저 시도하는 이들도 많지 않았기에 중간에는 조바심과 답답함도 느껴야 했다.
그러나 부러 어려울 것을 알면서도 시작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진부한 표현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모일 때마다 열띤 토론을 벌였고, 냉철하게 공과를 파악하기 위해 과거를 헤집었으며, 공들여 글을 쓰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찾아갔다. 누군가에게는 털끝만 한 아쉬움이, 또 누군가에게는 집채만 한 아쉬움이 남는 기획이었겠으나 이제 ‘87년형 복음주의여 안녕’에 ‘안녕’을 고해야 할 때이기에 연중기획을 닫는 좌담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연중기획은 끝나지만 이 기획에서 호명된 세대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고민과 운동은 숨을 골라가며 달림과 쉼을 반복하게 될 테다. 그들을 응원한다.
좌담은 10월 31일 서울 동교동 인근 카페에서 진행했으며 연중기획 최초 기획자 정정훈 위원(이하 '정훈), 논의를 확장시켜 준 정종은 위원(이하 '종은'), 반짝거리는 통찰로 논의를 풍성하게 만들어 준 정지영 위원(이하 '지영')이 참여했다. 1년 동안 달음해 온 세 분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연중기획, 이렇게 시작되다
정훈 / 작년 복상 11월호 커버스토리가 ‘복음주의운동, 지속 가능한가’였다. 거기에 ‘간사 성장 없이 복음주의 미래 없다’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활동가들의 처우를 문제 삼은 것인데, 일반 사회단체에서는 이미 90년대 중후반부터 젊은 활동가들이 회의도 같이 하고 자기 분야에서 역할을 해 온 반면, 복음주의권 활동가들은 성장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시시콜콜 다 알지는 못하지만 40대 남성 목회자와 20대 여성 간사의 구도가 눈에 띄었고, 이게 단순히 단체만의 문제일까 싶었다. 그게 출발점이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연중기획에서 명명한 3세대 복음주의 운동가 몇몇과 알고 지내면서 그들이 정말 많은 직함을 갖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어딜 가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다. 비슷한 얘기를 다른 단체, 다른 맥락에서 하게 되는 구도였고, 그럼에도 각 단체들은 공동의 기획은 하지 않고 있었다. 서로를 알고 있으면서도 복음주의 운동판 전체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함께 기획하는 모습이 없었다. 연중기획의 시작은 그랬다.
종은 / 영국 생활을 마무리할 즈음에 정훈 위원에게서 이 기획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당시 나는 87년형보다는 72년형 복음주의, 그러니까 ‘개발독재형교회’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돌아와서 보니, 양희송 대표도 이 기획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고 정훈 위원과 얘기를 나누면서 소소한 관심의 결은 다르더라도 큰 맥에서 함께 짚어내고 싶은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애초에 나의 관심은 ‘87년형 복음주의’의 시효가 다했다는 주장이 어느 범위에서 유효한 주장인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역별로 이 물음을 검증해보자는 제안을 했던 것이고, 애초 정훈 위원이 겨냥했던 복음주의 단체들로부터 우리 기획의 범위가 넓어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복상이 말하는 ‘87년형 복음주의’가 무엇이냐고 묻는데, 우리 안에도 그런 긴장과 이행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질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영 / 처음부터 이렇게 깊이 관여하게 될 줄은 몰랐다.(웃음) 평소 내가 늘 하던 고민이었고 그때는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함께하게 되었다. 나는 평소 복음주의운동이 내외부적으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봤다. 그런데 자기 영역에서만 잘 해 보려는 수준 이상의 진중한 고민, 통찰을 아무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 정훈 위원이 화두를 던졌다. 황병구 본부장의 표현대로 하면 ‘Hi’ 와 ‘Good bye’ 사이 어디쯤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의 화두와 내 생각은 세밀한 부분에서는 달랐지만 정훈 위원의 문제의식이 중요하다고 봤기에 힘을 실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주장이 맞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서 함께하게 됐다.
25편의 글, 10번의 만남에서 확인한 것과 놓친 것
정훈 / 종은 위원의 아이디어, 지영 위원의 관점 모두 필요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명망가 중심의 자본 동원 시스템이 복음주의권에 존재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 모든 세대, 모든 사람을 포괄하지는 못했지만 복음주의 지형의 큰 줄기는 그려냈다고 본다. 그 지형도를 통해 세대가 내려갈수록 힘은 약해지고 있다는 것도 보았다. 이 패러다임으로 운동이 지속되면 운동의 활력은 점점 사라질 거라는 게 지금의 내 결론이다.
종은 / 복음주의운동을 이끌어 온 상당히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담아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제3자들이 생산하는 간접적인 정보 외에 생생한 직접 정보(first-hand information)는 사료 가치도 있다. 또 복음주의 운동가들이 자신들의 운동을 돌아볼 수 있는 용어가 만들어졌다는 점도 중요한 공헌이다. 현재까지로 보면, 이 워딩(wording, 자구/어휘 선택)은 성공적이었다. 문제는 앞으로 얼마나 활발하게 사용될 것인지에 달려 있지만 말이다. 한편 9월 호에 중간 점검을 하면서, 80년대 후반 당시로는 건강한 교회들이 이 운동의 중핵을 형성했다는 사실, 허나 시간이 지나면서 해당 교회들이 힘이 빠지고 초심을 잃게 되었으며, 그 결과 그들과의 밀접한 관계에서 태동한 복음주의운동 역시 같은 길을 걷게 되었음을 확인한 것도 가볍지 않은 발견이라고 본다.
지영 / 초기에는 연중기획에 대한 극명한 반응이 있었다. 하지만 차츰 세밀한 반응은 전달되지 못했다. 그렇게 반응할 만한 바닥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완전히 실패한 이후에 실패의 원인을 돌아보기보다는 희망이 있든 없든 중간에 제동을 걸었다는 데도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버전으로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서 전과는 다를 수도 있겠다는 작은 희망을 본 것도 의미 있었다.
정훈 / 연중기획의 영향력은 5월 청어람아카데미의 포럼이 정점이었다. 즉자적인 감정적 반응이 먼저 있었고 청어람 포럼 이후 여러 단체가 강좌를 열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액션으로는 이어진 게 없다. 뜨거운 이슈라서 자리를 만들기는 했는데 이를 전제로 운동판 전체를 바꿔보려는 행동은 취하지 않은 거다. 그때 그런 자리를 만든 이유가 단순한 제스처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종은 / 단기적인 반응 유무를 떠나 이런 류의 담론이 형성되면 이후에 해당 현장은 그것을 무시하고 나아가기는 힘들다는 사실에 주목하면 좋겠다. 앞으로 복음주의운동에 관해서 논의한다고 할 때 ‘87년형 복음주의’를 빼 놓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후반부에 피드백이 적었던 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다고 본다. 어떤 쟁점이 있었는지 인터뷰이나 필자들이 던진 이야기 중심으로 나눠 보자. 먼저 ‘87년형 복음주의’ 개념의 정의와 범위가 뭐냐고 반문하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가령 권연경 교수는 “나는 여태껏 내 복음주의의 연식을 모르고 있었다. 알고 보니 ‘87년형’이라 한다”고 했고, 김형국 목사도 인터뷰에서 이 용어가 “엄밀히 정리되어 사용되는 것은 아닌 듯하여 조심스럽다”고 얘기했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영 / 복음주의운동 자체가 처음부터 모호함을 전제로 시작된 것이다. 운동을 한 이들의 지향점 자체가 ‘범(凡) 복음주의’ 아니었나. 그러니 그걸 어떻게 규정하고 범위를 정할 수 있으며, 그러니 그런 의지도 없었는데 왜 나를 그 범주에 넣느냐고 말하는 거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을 그 범주에 넣지 말라는 것은, 이 운동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은 / 규범적(normative) 차원에서 ‘87년형 복음주의’를 다룬 게 아닌데 우리 논의를 그렇게 이해한 사람들은 충분한 증거 없이 지나치게 과감한 결론을 내린 것 아니냐는 느낌을 갖게 된 듯하다. 그렇다면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규범적이 아니라 기술적인(descriptive) 접근을 했다. 어쩌면 현상학적 접근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판단을 중지하고 경험했던 사람들의 말 자체에 귀 기울여 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다가가니, 새롭게 등장한 흐름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80년대 이만열, 손봉호로 대표되는 운동이 있었고, 복음주의권 대학생들이 독자적으로 시도한 더 진보적인 운동들도 있었으며, 87년경부터는 양자의 힘이 집결되면서 여러 운동 단체가 조직되기 시작했다는 등의 객관적으로 설명 가능한 흐름이 분명히 있었다.
정훈 / 두 가지 구분이 필요하다. 87년형 복음주의는 ‘이념’적으로는 분명 존재했다. 그것은 하나님나라운동이었다. 특히 교회 개혁과 사회 참여가 거기 포함됐고, 방점은 사회 참여에 찍혔다. 하지만 그건 형식적이었을 뿐 ‘내용’적으로는 자기 내용이 없었다.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정확한 관점이나 운동의 주체가 없었고, 신학적 정교함도 없었다. 늘 당위로 운동을 했다. 특히, ‘우리는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라는 입장이 강했고 네거티브 차원에서 담론을 형성했기 때문에 복음주의운동은 수세적 위치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종은 / 87년형 복음주의를 세대별로 구분을 했는데 각 세대의 특징을 세밀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복음주의운동이 공세적 위치를 다시 차지하고자 한다면, 앞으로 특별히 주목할 부분이 이 지점이 아닌가 한다. 가령, 김회권 교수의 ‘우리’와 홍정길 목사의 ‘우리’는 상당히 느낌이 다르다. 이시종 간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손봉호‧이만열‧홍정길 등 1세대가 빌리 그레이엄과 존 스토트 사이에 서 있다면 2세대인 김회권‧이문식‧강경민 등은 존 스토트와 로널드 사이더 사이에 서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3세대는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 90년대 이후 학번인 4세대와 5세대는? 각 세대의 약진은 물론이고 세대 간 연대를 위해서도 이와 같은 이해는 꼭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부분을 명확히 짚지 않은 게 무척 아쉽다.
정훈 / 총론 수준에서 각 세대의 역할 분담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구체적으로 각 인물들의 사회적 배경, 역량 등에 대해 들어볼 기회는 있었는데, 세대별 특징을 자세히 구분하지 못한 건 나도 아쉽다.
지영 / 그 부분은 이번 기획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그런 정리를 통해 다음 세대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솔직히 있다. 여러모로 우리의 한계 아니었겠나 싶다.
종은 / 뉴라이트운동을 분석한 서명삼의 글이나 이국운 교수가 인터뷰에서 개혁적 복음주의자들이 손봉호, 이만열 등을 “가왕 조용필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라고 평가한 내용 등을 보면 87년형 복음주의가 예나 지금이나 얼마나 이질적인 구성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목표와 치밀한 프로그램과는 꽤나 거리가 있는 운동임을 인지하게 된다. 그렇다고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걸쳐서 이룩한 ‘성공’을 폄훼할 필요는 없다. 이 대목에서 이시종 간사가 90년대 중반부터 쇠락을 했는데 왜 이제 와서 ‘종언’을 말하느냐고 반문하는 것이 상당히 재미있었다. MB 시대의 도래가 (적어도 캠퍼스에서는) ‘부활’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주고 있다는 그의 분석이 앞으로 현실화될지 주목된다.
복음주의운동의 미래, 어디로 가야 하나
정훈 / 시대적 적합성이 끝났을지는 몰라도 조직과 시스템은 남았다. 우리는 그 지금 그 조직과 시스템도 끝내야 한다고 말한 거다. 이 패러다임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는 뜻이다.
지영 / 우리가 이해하는 87년형 복음주의는 말한 대로 끝났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시 교회 개혁과 사회 참여에 관심을 갖고 뜨겁게 반응하고 있다. 쉐퍼를 비판하고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쉐퍼를 모르는 세대가 나타나 그가 누군지 다시 책을 꺼내 들고 공부하고 있는 모습이다. 쉐퍼의 업그레이드도 아닌 업데이트 판일 뿐인 낸시 피어시의 <완전한 진리>가 필요한 시기가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사람들은 왜 구모델에 반응을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말처럼 MB 정부로 인해 새로운 문제의식이 드러나서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를 보면서 우려되긴 하지만 뭔가 다른 것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훈 / 난 그걸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최근 복음주의단체가 극도의 갈등이 존재하는 강정에 가서 한 쪽 편을 든 것은 유의미하다. 그런 것들을 허용하는 교회가 생기는 게 자체적 진화일 수는 있다.
종은 / 이후에 구모델이 진화할 수도 있고, 신모델이 등장할 수도 있겠다. 어느 경우건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운동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맺힌 것들을 풀어주는 대안이 되면 좋겠다. 백종국 교수님과 인터뷰 직후에 정지영 위원이 한 말을 복기하자면, 87년형 복음주의의 ‘균형자’ 패러다임은 이제 먹히는 시대가 아니다. 드디어 눈치 보지 않고 ‘해방자’ 패러다임을 추구할 때가 온 게 아닌가.
지영 / 미련이 많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87년형 복음주의가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고, 새로운 것을 펼칠 만한 자리에 이제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훈 / 그 사람들이 87년형 복음주의를 이어받아야 할까 아니면 새로운 형태를 창출해야 할까.
지영 / 새로운 걸 한다고 하더라도 과거를 완전히 단절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그들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모르기 때문에 결론을 열어 둬야 한다고 본다. 어쩌면 우리의 결론이 섣부르다고 이르다고 할 수도 있으면서 반면에 우리의 비판은 유의미하고 유효하다고 본다. 요는 기대를 접지는 말자는 거다.
지영 / 이런 운동 방식, 이런 문제의식으로는 안 된다는 우리의 주장이 옳다고 본다. 다이애너 버틀러 배스가 《Christianity After Religion》이라는 책에서 정치하게 보여주듯이 위기라고 인식할 정도 바뀐 사회적 · 문화적 · 영적 기상도를 교회는 빨리 읽어내고, “포스트 복음주의”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반면에 New Calvinist와 같이 전통적 교리를 재발견하려는 움직임과 여전히 87년 복음주의 메시지와 방식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그들 또한 주목해야 한다는 거다.
정훈 / 인적 청산이 아니라 운동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게 나의 주장이다. 송인수 대표와 인터뷰하면서도 성취나 결과 지향이 아닌 운동 자체를 지속하는 데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구체적인 문제를 놓고 씨름하고 진일보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한 거다. 나는 이런 고민을 3세대가 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복음주의운동의 기초는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의 패러다임도 변해야 한다.
종은 / 교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말하려면 앞으로 ‘개발독재형교회’를 정치하게 분석해야 한다고 본다. 아직까지 강단을 사유화하는 일인독재모델이 지배하는 교회가 태반이다.
정훈 / 개독교는 물론이고 사랑의교회도 대안이 될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교회2.0목회자운동이나 나들목교회 정도를 주목하고 있다. 특정한 모델을 따라하기보다는 원리와 정신을 공유하는 이들이 지속적으로 모일 필요가 있다.
지영 /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예배의 중요성을 다시 말해야 한다고 본다. 이 땅에서 유일하게 삶에 깃든 모든 영성을 포괄하고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예전의 중심성을 복음주의는 회복해야 한다. 예배하는 사랑의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세상의 권력과 세속적 정치에 저항한다는 복음의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구모델이든 신모델이든 교회에 모여서 예배 이외의 것을 하는 건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예배를 제대로 하는 것으로 충분히 변혁적 의미를 지닐 수 있어야 하는 거다.
종은 / 동의한다. 87년형 복음주의가 ‘안락한 이원론’에 빠져 있었다는 고세훈 교수의 지적과도 일맥상통하는 분석이다. “이원론을 극복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내면에 흐르는 것은 ‘복음과 윤리’, ‘믿음과 행위’, ‘복음과 상황’ 식의 이원주의였고 그것이 시민운동에도 전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원론이 문제의 본질을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것을 방해해 왔다.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는 가나안 성도들, 즉 교회에서 상처받은 수많은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사회 참여를 죄악시하고, 건축 헌금을 강요하고, 돈 많은 사람들만 대접하는 교회와 맞서 싸워야 한다.
정훈 / 10년 전 기독교세계관 논쟁 때도 그렇고, 이번 연중기획을 시작하면서도 그렇고 나는 기독교가 삶의 모든 영역을 장악하려는 것 자체가 필연적으로 내적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본다. 기독교적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성경은 규정해 주지 않는다. 치킨 튀기는 법을 성경이 안 알려주는 것과 같다. 중요한 것은 태도다. 교회는 그 태도를 형성하는 원칙을 제시해 줘야지 모든 걸 장악하려 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건 교회 생태계(church 가 아니라 선데이 처치다.
지영 / 복음주의의 사회 변혁에 대한 입장은 어차피 아마추어리즘일 수밖에 없다. 교회의 전문성은 그것이 아니라, 교회의 교회됨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복음주의가 에큐메니컬과 달리 민주화 이후에도 그나마 생명력을 유지하고,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경건성 ·영성·초월성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했듯이 교회는 예배의 정치성을 재발견하고 그것의 변혁성에 집중해야 한다. 자신의 교회에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가 다닌다면 우리 예배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정훈 / 교회뿐 아니라 교인들도 교회를 통해 모든 걸 하려고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촛불집회 다 나갔던 사람들이 굳이 교회의 이름으로 뭔가 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종은 / ‘그리스도의 이름’은 우리 삶에서 아주 소중한 원칙이고 동기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실천이 ‘기독교의 이름’을 빌려 행해질 필요는 없다. 이와 같은 강박은 하루 빨리 벗어 버려야 한다. 모일 이유가 있다면 자발적으로 모일 수야 있겠지만, 특별한 운동의 깃발 아래 사람들이 잘 모이지 않는다고 슬퍼할 이유는 없다는 말이다. 87년형 복음주의가 태동한 지 25년이 지났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경우가 잘 보여 주듯이, 단체든 개인이든 이제는 사회 참여하려면 바로 일반 시민단체로 가는 게 낫다. 거기에도 이미 기독교인들이 많다.
정리 이종연 기자 limpid@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