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7호 청년주의1]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이상민 씨 인터뷰

▲ 총을 들 수 없다는 양심에 따라 군대 대신 감옥을 택한 이상민 씨. ⓒ복음과상황 이범진
▲ 총을 들 수 없다는 양심에 따라 군대 대신 감옥을 택한 이상민 씨. ⓒ복음과상황 이범진

유엔인권이사회(UNHRC, UN Human Right Council)가 올해 6월에 발간한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분석 보고서〉(Analytical Report on 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Service)에 따르면, 세계에서 종교와 신념 등을 이유로 군 복무를 거부해 교도소에 갇힌 사람은 총 723명이다. 놀라운 것은 이중 90퍼센트가 넘는 669명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다. 매년 약 7백 명의 한국 청년들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택해 1년 6개월의 징역을 산다. 11월 6일 복음과상황 회의실에서 만난 이상민 씨(26)도 두 달 뒤면 그 대열에 합류(?)한다. 7년을 고민한 결과라고 했다. 인터뷰 내내 단호하면서도 복잡한 속내를 풀어낸 그였다.

7년을 고민했는데, 흔들린 적은 없나? 군대 대신 감옥을 택한다는 것, 쉽지 않은 결정인데….
2006년 〈복음과상황〉 7월호(187호)에서 군 복무 대신 병역거부서를 제출한 박정경수 씨의 인터뷰를 본 것이 고민의 시작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여호와의 증인’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나와 같은 개신교인이었다는 점에서 놀랐다. 그의 이야기를 읽는데, 왠지 모르게 전적으로 동의가 됐다. 이라크 파병에 대한 고민, 기독교인으로서 누군가를 해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양심의 불편함 등 전혀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도 똑같은 불편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기독교 평화주의 전통을 알게 되면서 병역거부를 해야겠다고 확신했다. 물론 중간에 흔들린 적도 많았지만, 결정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존 스토트 목사님이나 대천덕 신부님도 병역을 거부했다. 그밖에도 평화주의 사상을 갖고 있었던 퀘이커교도들이나 재세례파 사람들이 병역을 거부한 동기들을 접하면서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 나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는 점에서 안심하게 됐다.

그 ‘불편함’을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군대가 상대국에게 끼치는 폭력성에 대한 불편함, 내가 남을 해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느껴지는 불편함, 그리고 군대 내에 존재하는 폭력성에 대한 불편함 등이다.

신앙적 동기에 따른 병역거부이기도 하다. 특별히 격려가 되었던 말씀이나 이야기가 있나.
예수께서 잡히시던 순간에 베드로가 화가 나 대제사장 종의 귀를 칼로 베지 않나. 그때 예수께서 하려고만 했다면 다 물리치실 수 있었겠지만, 베드로에게 참으라 하시면서 칼을 집어넣으라고 하신다. 그 부분이 내게는 굉장히 인상적이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가족들, 특히 부모님은 어떻게 받아들이시는가?
가족들과는 소통이 잘 안 됐다. 부모님과 대화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분들이 나를 윽박지르시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대화가 감정적인 싸움으로 흘러가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나에게 “네가 감옥에 가면 우리는 이혼할 거다. 부모 자식 관계도 끊자”라고 협박하셨다. 내가 아무리 예수는 평화의 왕이고 내가 평화주의 맥락에서 이런 결단을 했다고 말씀드려도 “구약 시대에도 전쟁은 있었다”며 딱 잘라 말씀하셨다. 다시 반박하려다가 참았다. 대화가 감정적인 싸움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양심과 결단에 감동할 것은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적어도 내 생각을 천천히 들어주실 줄 알았는데 실망을 많이 했다. 아버지는 전투기 조종사였다가 지금은 민항기 조종사이고, 할아버지는 육군사관학교를 나오셨다. 할아버지께는 차마 사실대로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유학 간다고 했다. 집을 나와 생활한 지 2주 정도 되었다.

가족들이 가장 마음에 걸리겠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속도 많이 상하실 것 같고…. 연락을 끊은 상태인가?
하루는 한밤중에 어머니께서 전화하셨다. 울면서 보고 싶다고 하시기에 새벽에 집으로 갔더니, 낯선 신발이 여럿 있었다. 내 방 문을 열어보니까, 어머니랑 교회 분들이 기도를 하고 계셨다.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교회 분들이 내 얘기를 듣고 날 위해 기도해주러 오셨다고 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안수 기도를 받았다. 통성과 방언이 이어졌다. 그들은 내가 분별력을 갖게 해달라고, 미혹의 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

당시 심정은?
화가 났다. 그들은 과연 7년 동안 이어진 나의 고민과 가슴앓이를 알고나 그런 것일까? 신앙이 폭력적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나는 단지 엄마가 보고 싶어서 집에 갔는데…, 속상하고 말문이 막혔다. 그런데 그들이 기도 응답을 받았다며 “하나님께서 너를 감옥에 보내지 않으실 것이다”라고 했다. 나는 내가 감옥에 가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병역 수행이나 거부에 대한 확실한 계시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저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과 이성으로 충분히 분별하고 고민한 후 이런 결정을 했을 뿐이다. 이 결정은 나의 양심을 거스르지 않는 선택이다. 그렇게 다음날까지 집에 붙잡혀 있다가 오후 2시쯤 뛰쳐나오듯 집을 나왔다.

자신의 양심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가족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나?
아무리 나를 사랑하는 부모님이지만, 나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시진 못한다. 나는 부모님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라 독립된 존재다. 가족과 군 복무가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 때문에 이혼하시겠다던 부모님은 오히려 나로 인해 더 똘똘 뭉치시는 것 같다.(웃음)

교제 중인 여자친구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해해주고 격려해준다. 내 결정에 대해서 받아들여 준다.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덜 소중한 가치가 희생되는 것을 경험한 친구라 그런지, 내 상황을 받아들여 주는 이해와 그 친구만의 맥락이 있다. 여전히 대체복무를 하라고 제안하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막지는 않는다. 난 내 양심에 대한 숭고한 가치는 지키고 싶다.

(인터뷰 자리에는 여자친구도 동석했다. 그래서 직접 물었다.) 상민 씨의 결정을 어떻게 생각하나?
수감생활 말고 차라리 그 시간 동안 의무소방원 대체복무를 하는게 어떻겠냐고 이야기하곤 했다. 감옥에 가는 것 대신 우리 사회에 더 기여할 수 있는 실천적인 일을 하면서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런데 ‘집총 거부’를 포함한 병역을 거부하는 오빠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섭섭한 마음도 있지만, 오빠가 지키고자 하는 양심에 따른 행동을 지지한다.

여자친구의 말처럼, 의무소방 대체복무를 활용할 생각은 없나?
대체복무를 하더라도 4주간의 군사훈련과 복무 후 예비역 소집은 나에게 군대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다. 대체복무도 가능한데 총을 들기 싫어서 감옥을 택하는 나를 ‘꼴통’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차마 총을 잡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집총’이 필수적인 4주간의 군사훈련과 예비역 소집만 아니라면 여러 청년들이 대체복무로 감옥행을 피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개인의 희생만을 요구하는 경직된 시스템에선 그 작은 일도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4주간의 군사훈련과 예비군으로 소집되지 않는 대체복무가 있다면, 평화를 실천하고 국가 안보에 이바지하며 몇 년이 걸리든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처벌해야 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대체복무자들이 일반 군 복무기간에 비해 1.5~2배의 기간을 더 복무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헌법 제19조와 제20조에 따라 보장된 종교와 양심의 자유가 ‘국가가 처한 특수 안보 상황’에 의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유엔인권위원회가 병역거부자들의 인권을 존중하라고 할 때마다 한국 정부는 우리나라 군대의 여론이 좋지 않다는 점과 ‘특수 안보 상황’을 핑계로 대면서 무시한다. 그러나 나는 인권이 쉽게 무시당할 수 있는 전쟁 상황에서 오히려 인권을 포함한 모든 가치가 지켜질 수 있도록 더 힘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수안 전 대법관은 퇴임식에서 병역거부 처벌에 반대 의사를 표하기도 했다.

식상한 질문일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 건가?
그 질문은 병역거부 관련 법정에서 많이 듣는다. “당신 애인이 강간을 당하고 있다면, 당신은 가만히 있을 건가?” “가족에게 적군이 총을 들이민다면, 당신은 가만히 있을 건가?” 따위의 질문이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무책임한 대답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가정하면서 질문을 하는 게 좋은 접근은 아닌 것 같다. (이에 관해서는 김두식의 《평화의 얼굴》 제3장 “만약 누가 네 여동생을 강간하고 죽이려 한다면?”에 자세한 논증이 있다.-편집자)

대학에서는 유아교육을 전공했다. 아이들을 좋아하나?
어릴 때부터 성공 지향에 대한 심정적 거부감이 있었다. 이른바 명문대 정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왜 모두 똑같은 자리를 목표로 공부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가르쳐서 아이들이 조금 덜 불행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유아교육과를 선택했다. 되도록 가정을 막 벗어난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다. 좋은 이야기, 경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참된 교육가의 꿈, 출소 후에도 보장될까 걱정이 된다. ‘빨간 줄’이 가게 되면….
출소 후 10명 중 1~2명은 폐인이 된다더라. 내가 본 한 명은 감옥 안에서 트라우마가 생겨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을 정도다. 직장을 갖기도 힘들다. 다른 한 명은 게을러서 직장을 가지지 못한 것 같다.(웃음) 4~5명은 활동가로 살고, 그외 3~4명은 전과와 상관없이 일반 회사에 다니면서 평범하게 생활하며 가족도 부양한다. 병역거부로 감옥에 갔다 온다고 해서 인생이 모두 막장으로 끝나는 건 아니었다. 죽으란 법은 없구나 싶었다.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면, 이 또한 지나간 작은 일이 되고, 결혼하고 아이 낳아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20대 청년에겐 여전히 벅찬 일로 보인다. 차라리 군대에 가는 게 편할 텐데, 감옥 가면서까지 양심을 지킨다는 게 대단해 보이면서도 걱정된다.
예전에는 ‘훌륭한 사람이 훌륭한 선택을 한다’고 생각했다. 나같이 평범하고 작은 사람이, 병역거부라는 뭔가 저항적이고 무게 있는 선택을 해도 되는 걸까 싶은 부담이 있었다. 병역거부 뒤 따르는 짐은 나같이 찌질하고 미숙한 사람이 짊어질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포부 넘치는 사람이 아닌데…. 그런데 생각이 바뀐 계기가 있었다. 누군가 그랬다. “훌륭한 사람이 훌륭한 선택을 하는 게 아니고, 훌륭한 선택을 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거다.” 그저 인생에서 넘어야 하는 여러 산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두 달여 남았다. 남은 시간 동안의 계획은?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싶고, 여자친구랑도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다. 그냥 사람 많이 만나고 싶고. 볼 수 있다면 가족도 보고 싶고…. 수감되기 전에 부모님과 화해는 불가능해 보인다. 이것은 인생 전반에 걸쳐 해결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나중에 서서히 풀릴 것을 기도한다.

■ 12월 20일(금)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예정되었던 이상민 형제의 영치금 마련을 위한 일일카페가 연기되었습니다.

진행_오지은 기자, 김아란 인턴기자
정리_이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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