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호 시사 잰걸음]

   
▲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의 길을 여는 판결을 내렸다. (사진: 전쟁없는세상 제공)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으로 친숙해진 헌법재판소가 가진 제1의 권한은 여러 법률이 최상위 법인 헌법에 맞게 작동하는지 심판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어떤 법률에 대해 헌법에 부합한다는 뜻의 ‘합헌’ 결정을 하면 그 법률의 작동이 그대로 유지된다. 반면에 헌법에 위배된다는 뜻의 ‘위헌’ 결정을 하면 즉시 그 법률의 작동이 무효가 된다. 한편 ‘헌법불일치’ 결정은 사실상 위헌인데 즉각적인 무효로 인한 사회적 충격을 줄이기 위해 시간을 주고 법률을 고치라고 하는 것이다.

2018년 6월 28일에 헌법재판소가 내린 판결은 역사에 기록되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병역법 규정(병역법 제88조 1항)에 대해 여전히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러면서도 병역의 종류에 대체복무가 없는 것(병역법 제5조 1항)은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를 선고하고 2019년까지 법을 고치라고 했다. 참으로 절묘한 판결이었다. 병역을 기피하면 처벌한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자기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처벌해왔던 관습을 뒤엎고 대체복무의 길을 연 것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헌법 제19조)고 명시한다.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이 조항을 근거로 병역을 거부한다. 그런데 ‘양심적’이라는 표현이 불필요한 오해를 가져왔다. 어떤 이들은 군대에 안 가면 양심적이고, 군대에 가면 비양심적이냐고 성낸다.

이러한 오해는 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양심의 의미와 헌법상 양심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생긴다. 국립국어원이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은 양심에 대해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라고 한다. 옳고 그름과 선과 악. 양심의 의미를 이렇게 받아들이면 성이 날만도 하다.

하지만 헌법이 말하는 양심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이 보호하려는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고 했다.(전원재판부 96헌가11, 1997. 3. 27) 양심의 의미를 이렇게 받아들인다면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마음의 소리’에 따라 도저히 군사 행위에 가담할 수 없어서 거부한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이들과 다른 선택을 해서 군대에 간다고 비양심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이 같은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안보 문제’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특수한 안보 상황’을 이유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 헌법재판소도 “병역거부라는 양심의 자유가 군복무라는 공익의 가치보다 우선할 수 없다”면서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것에 대해서는 합헌이라고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다른 나라들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처럼 분단을 겪었지만, 그 특수한 안보 상황에도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60년부터 대체복무법을 도입했다. 특이한 것이, 대체복무를 결정할 때 국가가 양심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철저히 개인에게 맡긴다. 독일은 매년 약 10만 명 이상이 대체복무를 하고 있다.

대만은 지금까지도 중국과 오묘한 긴장 관계에 있지만 2000년부터는 대체복무를 허용했다. 병역을 회피할까 봐 강력한 처벌 규정을 두었지만 그러한 시도는 없었고, 대체복무를 너무 많이 신청할까 봐 할당제를 두었지만 항상 미달되었다고 하니, 우리도 걱정을 한시름 놓아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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