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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가 ‘삼성’에 도전해야 한다
[330호 시사 잰걸음]
[330호] 2018년 04월 27일 (금) 14:30:35 박제민 goscon@goscon.co.kr
   
 

“2월 14일, 특검은 이재용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본지 2017년 3월호 ‘시사 잰걸음’ 맨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당시 이재용은 박근혜, 최순실에게 수백억 원의 뇌물을 준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1월 19일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뇌물죄의 요건인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서울지법 조의연 판사) 법이란 게 어떨 때는 엄한데 어떨 때는 묘하다. 대한민국을 마음대로 주무른다는 삼성, 그 총수가 이재용이다. 그가 불구속된다면 중요한 증거들이 사라질 우려가 매우 커 보였다.

슬프고 분했다. 북받치는 마음으로 이재용에 대해 썼었다. 막판에 특검이 보강조사를 통해 ‘안종범 수첩’ 등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며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반갑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마지막 저 문장을 썼다. 1년여 만에 이어서 써보려고 한다. 그럴 사정이 생겼다.

이재용은 2017년 2월 17일 새벽에 구속 수감됐고, 8월 25일 열린 1심 판결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함께 기소된 최지성(전 삼성 미래전략실 실장)과 장충기(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도 징역 4년에 법정 구속됐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 대해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먼저 특검이 구형한 징역 12년에 비하면 낮은 형량이었다. 뇌물공여, 횡령,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 위증 등 혐의 대부분이 인정됐지만 각 혐의에 적용된 금액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재용 변호인 측은 “전부 인정할 수 없다”며 즉시 항소를 진행했다.

항소심은 해가 바뀌어 2018년 2월 5일에 열렸다. 해만 바뀐 것이 아니라 결과도 바뀌었다. 이재용은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곧장 석방됐다. 최지성, 장충기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1심과 달리 재판부(서울고법 정형식 판사)는 이 사건을 “최고 정치권력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내 최대 기업집단인 삼성그룹의 경영진을 겁박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사실이라면 불쌍한 삼성이다. 심지어 “이 부회장을 위한 경영권 승계 작업은 존재하지 않고, 이 부회장이 도와달라는 청탁을 했다는 증거가 없다”고까지 했다. 과연 그럴까?

삼성 경영권 세습, 부당거래 없었다고?
김회권 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는 삼성을 가리켜 ‘세습왕조적인 기업’(dynastic enterprise)이라고 지적한다. 그의 말마따나 삼성은 이병철, 이건희에 이어 이재용에게 삼성의 경영권을 세습하기 위해 불법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전에도 썼지만 한 번 더 짚어보자. 자꾸 기억할수록 좋은 일이다.

1995년 이재용은 이건희로부터 약 60억 원을 물려받는다. 물론 증여세 약 16억 원을 성실하게 납부했고 남은 돈으로 삼성의 비상장 계열사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우연히’ 그 회사들이 곧 상장되어 ‘뜻밖에’ 이재용은 약 500억 원을 벌어들였다. ‘우연히’ 삼성에버랜드가 주당 8만5천 원 정도 하던 주식을 놔두고 7천7백 원짜리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전환사채란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으로 당시로서는 생소한 것이었다. 이재용이 이 전환사채의 절반을 사들이면서 ‘뜻밖에’ 삼성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됐다. 7천7백 원과 8만5천 원을 바꾼 것이다. 이후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주식을 왕창 샀다. ‘우연히’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최대주주인 탓에 ‘뜻밖에’ 이재용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게 됐다. 나중에 삼성에버랜드는 제일모직으로 이름을 바꾼다.

2014년 이건희가 쓰러지자 삼성은 이재용에게 경영권을 세습하기 위한 속도를 냈다.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좀 더 높일 필요가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삼성전자에 4% 지분을 가진 삼성물산을 가져야 했다. 당시 이재용의 재산 대부분은 제일모직 지분이었다. 그래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하자는 엉뚱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회사 규모는 삼성물산이 3배 컸지만, 합병비율을 제일모직에 3배 유리하게 책정하는 ‘과감함’을 발휘했다. 당연히 안팎으로 반대가 심했는데, ‘뜻밖에’ 삼성물산에 11.21% 지분을 갖고 있던 국민연금이 합병을 지지했다. 자기(국민의) 재산을 깎아 먹는 결정을 하다니(!) 자발적 가난이 따로 없다. 이로써 몸통은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하면서 이름은 삼성물산이라고 하는 회사가 탄생했다. 최대주주는 다름 아닌 이재용이었다.

에버랜드 땅값, 국민연금 찬성
SBS <8시 뉴스>는 3월 19일부터 21일까지 3일 동안 삼성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1시간 뉴스의 대부분을 할애한 매우 이례적인 보도였다. 3월 19일에는 에버랜드의 땅값 문제를 다뤘다. ‘우연히’ 삼성의 경영권 세습 작업이 있을 때마다 에버랜드의 땅값이 크게 내리거나 올랐다는 것이다. 삼성에버랜드가 전환사채를 발행하기 직전인 1994년과 1995년 사이 에버랜드의 공시지가가 폭락했다. 반대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을 추진하던 2015년에는 에버랜드의 공시지가가 크게 올랐다.

뉴스에서 지적한 대로 공시지가는 나라에서 정하는 것이고 세금 등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시세보다 안정적으로 움직인다. 갑자기 폭락하거나 오르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것이 삼성의 경영권 세습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1996년에 전환사채를 발행할 당시 에버랜드 땅값이 하락하면 기업 가치가 하락해 전환사채를 보다 더 싸게 발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결과가 7천7백 원이다. 반대로 제일모직이 자신보다 3배나 큰 삼성물산을 합병하기 위해서 애쓰던 2015년에는 제일모직이 소유한 에버랜드 일대 땅값이 크게 오르는 것이 제일모직의 덩치를 커 보이게 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두 사건 모두 ‘뜻밖에’ 이재용에게 모두 유리하게 작용했다. 다시 말하지만, 공시지가는 나라에서 정하는 것이다.

3월 20일 보도에서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키맨’이었던 국민연금이 에버랜드 땅값을 10배 이상 과대평가하며 손해 보는 투자를 한 것을 고발했다. 심지어 합병 당사자로서 자신의 가치는 높이고 상대의 가치는 낮춰야 할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이 소유한 에버랜드의 부동산 가치가 저평가됐다는 황당한 보도자료를 낸 것도 지적했다. 장사와 거래의 기초를 무시한 이 결정으로 국민연금은 최소 3,500억 원에서 최대 8,000억 원의 손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역시 ‘우연히’ 이재용이 이득을 본 사건이었다.

<8시 뉴스>의 연속 보도는 한마디로, 이재용이 박근혜에게 경영권 세습을 도와달라며 뇌물을 주었다는 증거가 없다는 2심 판결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재판 결과가 뒤집히고 세상이 떠들썩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대다수 언론에서 이 보도를 볼 수 없었다. 왜 그럴까?

삼성에 의한, 삼성을 위한, 삼성의 ‘언론’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는 2회에 걸쳐 장충기와 언론인들이 주고받은 문자에 대해 보도했다. 위 보도를 바탕으로 <미디어 오늘>은 해당 언론인들의 실명을 공개했다. 몇 가지 사례와 실명을 옮겨본다.

이창섭(연합뉴스TV 뉴미디어 기획위원)은 장충기에게 보낸 문자에서 “국민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으로서 대 삼성그룹의 대외업무 책임자인 사장님과 최소한 통화 한 번은 해야 한다고 봅니다”라며 연락하자고 조른다. 이후 연락이 되었는지 “답신 감사합니다. 제가 어떤 분을 돕고 있나 알고 싶고 인사하고 싶었을 뿐입니다”라고 했다. 또다시 만남을 요청하면서 “편하실 때 국가 현안 삼성 현안 나라 경제에 대한 선배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평소에 들어놓아야 기사에 반영할 수 있습니다”라고 한다. 언론이 ‘누구’를 돕고, 그 생각을 반영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김영모(문화일보 광고국장)는 “문화일보, 그동안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왔습니다. 앞으로도 물론이고요. 도와주십시오. 저희는 혈맹입니다”라고 한다. 김영만(서울신문 사장)은 “삼성은 거의 대한민국 자체만큼이나 크고 소중한 우리 삼성이란 게 제가 갖게 된 삼성관입니다”라고 말한다. 옮기는 내가 다 부끄러운데 국장님, 사장님도 혹시 부끄러울까?

장충기에게 “충성” 소리를 남발하는 김대영(매일경제 금융부장)은 “서양원 국장과 상의해보니 매경이 어떻게 해야 삼성의 면세점 사업을 도와줄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셨으면 좋겠다고 합니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언급된 서양원(당시 매일경제 산업부장)은 “축하드립니다. 잘 팔로우업하겠습니다. 면세점 또한 모양 만들어 내실 있게 클로우즈업하겠습니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위 문자가 오갔을 때는 서울 시내 면세점 운영권을 두고 7개 대기업이 경쟁하고 있던 때였다. 언론이 특정 기업에 유리하도록 구체적인 보도지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충격적이다. 가히 삼성에 의한, 삼성을 위한, 삼성의 ‘언론’이라 하겠다.

이제 우리는 ‘삼성’에 도전해야 한다
이재용이 삼성의 경영권을 세습하기 위한 작업을 할 때마다 수상한 움직임이 있었다. 에버랜드 땅값이 갑자기 폭등했고, 국민연금이 손해 보는 장사를 했다. 국가가 움직였다고 볼 수 있고 그때마다 이재용은 원하는 것을 얻었다. 그 전후로 돈이 오간 것은 밝혀진 사실이며 ‘대가성 여부’를 두고 다투고 있다.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를 보도하는 언론이 별로 없다. 유력한 언론인들은 삼성의 실력자에게 치근대고, 찬양 고무하고, 봉사하느라 바쁘다. 심지어 ‘장충기 문자’를 보도한 언론도 별로 없다.

하고 싶은 사람이 하면 된다. 한 달에 한 번 <복음과상황>에 글을 쓰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나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고, 삼성이 곧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혈맹을 맺은 적도 없고, 도움을 받을 일도 줄 일도 없으니 딱이다. 게다가 다루는 주제가 세상 돌아가는 일, 시사(時事)이니 빠져나갈 수도 없다.

예전에 심야 막노동 알바를 한 적이 있다. 평소 하지 않던 일을 하려니 몸과 마음이 퍽 힘들었다. 간사하게도 평소에는 잘 읽지도 않는 책이 보고 싶고 글이 읽고 싶었다. 쉬는 시간 공사장 바닥을 뒤져 딱 신문지 한 장을 주워서 읽기 시작했다. 마침 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가 〈경향신문〉에 쓴 칼럼을 읽었다. 그는 우주적 평화와 그 평화를 짓밟는 불의에 대한 깊은 분노는 동전의 양면처럼 이어져 있다며 이렇게 글을 맺는다.

이건희 씨가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한 것은 닥쳐올 새로운 싸움을 위해 전열을 정비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는 적어도 이 싸움이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 만큼은 현명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 역사적 싸움터에서 그와 맞서 싸울 장수는 누구인가? 다시 역사가 용기 있는 자를 부른다.

그렇다. 역사가 용기 있는 자를 부른다. 역사의 주인은 우리에게 사랑과 정의로 복 주신다. 여럿이 촛불을 들고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을 공유한 우리는 이제 ‘삼성’에 도전해야 한다. 삼성에 사로잡힌 세상 곳곳 ‘삼성들’에게 도전해야 한다. 

 

박제민
20대 끝자락에 기독시민운동 판에 들어와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다. 낮에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실무자, 밤에는 ‘동네교회청년’ 활동가로 살아가는 30대 청년이다. 보수적인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자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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