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호 시사 잰걸음] 미투운동, 이전과 이후

   
▲ 사진: backbonecampaign.org

#MeToo: 나는 말할 것이다
미투운동은 미국의 사회운동가인 타라나 버크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버크는 1997년, 당시 13세 흑인 여성으로부터 성폭력 피해 경험을 듣게 됐는데 너무 충격적이어서 도와주기는커녕 위로의 말 한마디도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일이 마음속 깊은 죄책감으로 남아, 2006년 뉴욕에서 유색인종 여성을 위한 비영리단체인 ’저스트 비(Just Be)’를 세우고 미투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큰 반향이 없었다.

미투운동이 크게 주목받은 것은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나서였다. 2017년 10월, <뉴욕타임스>는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인 하비 웨인스타인이 수십 년간 여성들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질러왔다고 보도했다. 웨인스타인이 거물이었을 뿐 아니라 그동안 진보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심지어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것처럼 행동해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배우 앨리사 밀라노는 SNS에 글을 올려, 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면 ‘Me too’(미투, 나도 그렇다)라는 댓글을 달아달라고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미투운동은 타라나 버크가 시작했고, 앨리사 밀라노에 의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됐다.

(여담으로, SNS에 글을 올릴 당시 앨리사 밀라노는 타라나 버크의 운동을 몰랐다. 타라나 버크는 앨리사 밀라노가 자신의 운동을 도용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며칠 뒤 이 사실을 알게 된 앨리사 밀라노는 타라나 버크에게 연락해 사과했고, 미투운동의 최초 제안자가 타라나 버크임을 명확히 밝혔다.)

미투운동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갔다. 30년 동안 체조대표팀과 대학에서 팀 닥터로 일하면서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저지른 래리 나사르는 징역 175년 형을 선고받았다. 판사는 래리 나사르에게 “당신은 다시는 감옥 밖으로 걸어서 나갈 자격이 없다”고 꾸짖었다. 북미서비스노동조합(SEIU) 부위원장으로 ‘최소 시급 15달러 운동’을 벌이던 스콧 코트니는 여성 동료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것이 드러나 직무를 정지당했다. 미국 CBS의 찰리 로즈, NBC의 맷 로어 등 방송국의 간판 앵커들도 성폭력 사실이 폭로되어 해고당했다. 보수 기독교 성향으로 공화당 텃밭인 앨리바마 주 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되던 로이 무어는 미성년자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사실이 알려지면서 간발의 차로 낙선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7년 올해의 인물로 ‘침묵을 깬 사람들’을 선정했다. 미투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2018년 1월 열린 제7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참석자들이 미투운동을 지지하는 의미로 검은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등장했다. 타라나 버크를 비롯한 인권운동가들도 이 시상식에 초대되어 검은 옷을 입고 레드 카펫에 섰다.

그리고 2018년 1월 29일, 한국에서도 세계적 흐름의 연장선에 있는 미투운동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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