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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시대의 종언
[329호 시사 잰걸음] 미투운동, 이전과 이후
[329호] 2018년 03월 26일 (월) 17:07:10 박제민 goscon@goscon.co.kr
   
▲ 사진: backbonecampaign.org

#MeToo: 나는 말할 것이다
미투운동은 미국의 사회운동가인 타라나 버크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버크는 1997년, 당시 13세 흑인 여성으로부터 성폭력 피해 경험을 듣게 됐는데 너무 충격적이어서 도와주기는커녕 위로의 말 한마디도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일이 마음속 깊은 죄책감으로 남아, 2006년 뉴욕에서 유색인종 여성을 위한 비영리단체인 ’저스트 비(Just Be)’를 세우고 미투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큰 반향이 없었다.

미투운동이 크게 주목받은 것은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나서였다. 2017년 10월, <뉴욕타임스>는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인 하비 웨인스타인이 수십 년간 여성들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질러왔다고 보도했다. 웨인스타인이 거물이었을 뿐 아니라 그동안 진보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심지어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것처럼 행동해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배우 앨리사 밀라노는 SNS에 글을 올려, 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면 ‘Me too’(미투, 나도 그렇다)라는 댓글을 달아달라고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미투운동은 타라나 버크가 시작했고, 앨리사 밀라노에 의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됐다.

(여담으로, SNS에 글을 올릴 당시 앨리사 밀라노는 타라나 버크의 운동을 몰랐다. 타라나 버크는 앨리사 밀라노가 자신의 운동을 도용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며칠 뒤 이 사실을 알게 된 앨리사 밀라노는 타라나 버크에게 연락해 사과했고, 미투운동의 최초 제안자가 타라나 버크임을 명확히 밝혔다.)

미투운동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갔다. 30년 동안 체조대표팀과 대학에서 팀 닥터로 일하면서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저지른 래리 나사르는 징역 175년 형을 선고받았다. 판사는 래리 나사르에게 “당신은 다시는 감옥 밖으로 걸어서 나갈 자격이 없다”고 꾸짖었다. 북미서비스노동조합(SEIU) 부위원장으로 ‘최소 시급 15달러 운동’을 벌이던 스콧 코트니는 여성 동료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것이 드러나 직무를 정지당했다. 미국 CBS의 찰리 로즈, NBC의 맷 로어 등 방송국의 간판 앵커들도 성폭력 사실이 폭로되어 해고당했다. 보수 기독교 성향으로 공화당 텃밭인 앨리바마 주 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되던 로이 무어는 미성년자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사실이 알려지면서 간발의 차로 낙선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7년 올해의 인물로 ‘침묵을 깬 사람들’을 선정했다. 미투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2018년 1월 열린 제7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참석자들이 미투운동을 지지하는 의미로 검은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등장했다. 타라나 버크를 비롯한 인권운동가들도 이 시상식에 초대되어 검은 옷을 입고 레드 카펫에 섰다.

그리고 2018년 1월 29일, 한국에서도 세계적 흐름의 연장선에 있는 미투운동이 시작됐다.

#WithYou: 우리는 연대할 것이다
현직 검사인 A 씨는 1월 29일, 검찰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려 성폭력 피해 및 부당한 처우 사실에 대해서 폭로하고 그날 저녁 <JTBC 뉴스룸>에 나와 인터뷰를 했다. 그 자체로 권력기관인 검사도 성폭력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피해자들은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자신들의 피해 경험을 말하기 시작했다. 법조계, 연극계, 영화계, 학교, 종교계, 그리고 정치권에서 비 온 뒤에 여기저기 피어나는 죽순처럼 증언이 이어졌다.

사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참으로 끔찍하게도, 한국에서는 전부터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에도 성심병원, 한샘, 현대카드 여성 노동자들은 직장에서의 성폭력과 조직적 은폐에 대해 고발했다. 미투운동 이전에도 이미 SNS에서는 “#◯◯◯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문단, 문화예술계, 영화계, 학교 등 분야마다 만연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일이 이어졌다. 한국에서의 미투운동은 이러한 계보를 잇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3월 4일 ‘3·8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둔 일요일, 광화문광장에서는 제34회 한국여성대회가 열렸다. 수많은 여성들, 그리고 남성들이 모였다. 그들의 손에는 ‘#MeToo’와 함께 ‘#WithYou’가 적힌 팻말이 들려있었다. “나는 말할 것이다!”라고 외쳤고, “우리는 연대할 것이다!”라고 외쳤다.

미투운동은 그동안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설명할 수 없었던 여성들도 일깨웠다. 지난 2월 26일, 한국여성단체연합 주최로 열린 ‘미투운동 긴급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여한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이 전한 이야기이다. 한 회원이 설을 맞아 시골에 갔는데 마을 할머니들이 미투운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더란다. 동네 한의사가 치료를 핑계로 노인 여성들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몰랐던 노인 여성들이 미투운동을 통해 비로소 자신들의 경험을 설명할 말을 갖게 된 것이다.

역시 토론회 발제자로 참여한 여성학자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투운동이 “미안한 감정과 스스로에 대한 자책을 넘어, 결의의 감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특수한 사건에 대한 개별적 응원과 지지가 아니라, 여성들의 경험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스스로 겪었던 고통에 대해 환기하고 커밍아웃하며, 그동안의 무지와 무책임에 대해 자각과 죄책감을 느끼고, 변화를 위한 다짐으로 나가게 되는 서사구조를 가졌는데 이것은 마치 각본화된 것처럼, ‘강남역 살인사건’과 유사하다고 했다.

#Idid: 내가 그랬다
2016년 5월 17일, 한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한 남성에게 살해당했다. 곧바로 여성들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추모가 시작됐다. 사건 현장과 가까운 강남역 10번 출구는 희생된 여성을 추모하는 쪽지들로 가득 채워졌다. 여성들은 자신도 살해당할 수 있었다고 공포에 떨었고, 우연히 살아남았다며 분노했다.

사회는 사람을 여성과 남성으로 양분하려고 한다. 그 구분에 따라 나는 지난 30여 년 동안 남성으로 살아왔다. 오직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공포에 떨 일도 분노할 일도 없었는데, 여성이란 이유로 공포에 떨고 분노하는 모습을 보니 충격이었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그렇게 느낀다면 이것은 하나의 사회현상이고 그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를 규정할 수 있는 것은 피해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미투운동이 남녀성별 문제가 아닌, 권력의 유무에 따른 문제라고 말한다.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우월적 위치에 있었던 것은 맞는 말이다. 여성 가해자의 존재 가능성 또는 동성 사이의 성폭력 의혹을 생각했을 때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나 가해자의 절대다수가 남성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그만큼 권력이 남성에게 많이 치우쳐져 있다는 강력한 증거다. 이런 상황에서 성별과 무관한 성폭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남성으로 살아온 나도 가해자였음을 부정하기가 쉽지 않다. 애쓰지 않아도, 눈짓으로 말로 행동으로 여성들에게 가해왔던 가해가 떠오른다. 성경은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9-30)라고 말한다. 미투운동에 대해 생각하면서, 내가 이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이도 아닌 예수가 직접 하신 말씀을.

#Time’sUp: 너희들의 시대는 끝났다
할리우드에서는 배우, 스태프 등 300여 명이 모여 미국에서 성폭력을 끝장내기 위한 ‘타임즈 업’(Time’s up, 이제 그만해)이라는 운동단체를 만들었다. 타임즈 업은 성폭력에 취약한 블루칼라 여성 노동자들의 피해 해결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며, 이를 위해 약 1,300만 달러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법률 지원을 하고 법 제정을 위한 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얼마 전에는 한국의 이주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자리가 열렸다. 곧 심리적 압박을 떨쳐낸 남성 피해자들도 나타날 것이다. 더 많은 여성들의 고발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 모두 연대하게 될 것이다. 성폭력으로부터의 해방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 미투운동의 창시자 타라나 버크의 말마따나 “미투운동은 성별과 관계없이 성폭력 희생자를 위한 운동”이다.

분명한 것은, 이제 미투운동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어떤 누구도 성폭력을 저지를 엄두조차 낼 수 없을 것이다. 지난 3월 5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너희들의 시대는 끝났다’는 제목의 성명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여성’들의 용기 있는 말하기는 지속될 것이다. 우리는 지속적인 연대로 ‘남성’들의 강간문화를 끝장낼 것이다. (…) 너희들의 시대는 끝났다. 우리는 달라졌다. 달라진 우리는 너희들의 세계를 부술 것이다. (…)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달라진 우리가 승리할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그런 세상이 왔다. 더러운 시대가 끝났다. 

 

박제민
20대 끝자락에 기독시민운동 판에 들어와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다. 낮에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실무자, 밤에는 ‘동네교회청년’ 활동가로 살아가는 30대 청년이다. 보수적인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자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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