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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절망’으로 2018년을 맞이하며
[326호 시사 잰걸음]
[326호] 2018년 01월 04일 (목) 11:28:57 박제민 기독시민운동가 goscon@goscon.co.kr
   
▲ 대부흥 100주년이던 2007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CBS 뉴스 갈무리)

2007년 ‘어게인 1907’
2007년에 접어들면서 한국교회에는 기대감이 넘쳤다. 평양대부흥 100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1907년 1월 14일,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성경을 공부하는 사경회 도중에 지도자들이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면서 대부흥운동이 시작됐다. 이는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교회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도덕적 갱신을 불러왔고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는 계기가 됐다. (평양대부흥이 보수 기독교의 발원이라는 지적도 놓치지 말자.)

‘100’이라는 숫자 자체에 신령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100주년을 맞아 예전처럼 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어게인(Again) 1907’이라고 불리는 부흥운동이 생겼다.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기도회, 학술대회 등이 열렸다. 많은 교회에서 예배 중에 부흥이 다시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자주 불렀다. 지금은 가사조차 가물가물하지만.

백 년 전 이 땅 위에 진정한 회개 있었을 때 주의 교회는 빛이 되기 시작하였네 (중략)
어게인(Again) 이 땅의 부흥이여 천구백칠 년의 부흥이여

어게인 1907 부흥운동의 절정은 그해 7월 8일,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였다.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10만 명의 교인들이 모인 대규모 행사였다. 100주년인 것을 기념해 100명의 나팔수가 우렁차게 팡파르를 울리며 시작됐다.

설교를 맡은 고 옥한흠 목사는 다소 무거운 메시지를 전했다. 제목부터가 ‘주여, 살려주옵소서’였다. 한국교회를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사데교회에 비유하면서 지금 주님께서 한국교회를 보시면 이름은 살았으나 행위가 죽었다(계3:1)고 책망하시지 않겠냐고 했다. 평양대부흥의 진정한 기념은 복음을 변질시킨 목회자들의 회개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면서 100년 전처럼 하나님께서 회개의 영을 부어달라고 힘을 다해 부르짖자고 했다.

실무대표대회장을 맡았던 김삼환 목사는 ‘비전 메시지’를 통해 “영적 위기를 맞은 한국교회가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데 한국교회 지도자와 성도가 하나 된 오늘 저녁을 기점으로 한국교회가 성령으로 무장해 교회와 우리 사회를 살려 나가자”며 10만 선교사 파송과 1천만 전도 운동 등 계량적 비전을 선포했다.

그러나 고 옥한흠 목사의 바람처럼 목회자들이 통렬하게 회개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김삼환 목사의 말처럼 한국교회가 교회와 사회를 살리지도 못했다. 도리어 저 말을 한 김 목사는 최근에 아들 김하나 목사에게 명성교회를 세습해서 교회와 사회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단언컨대 2007년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
2017년에 접어들면서 한국교회에는 또다시 기대감이 있었다.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 성당에 교회의 부패를 비판하는 벽보 하나를 붙이면서 시작된 종교개혁은 그야말로 종교를 넘어 정치, 경제, 문화 등 세계를 바꾼 사건이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그 정신에 따라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고, 세상에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또다시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기도회, 학술대회를 열면서 나름대로 아등바등 노력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2017년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통탄스러운 일들이 가득했다.

2017년을 시작하면서 한국교회는 스스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를 받았다. 정부의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는 개신교가 가장 많은 교인 수를 가진 종교로 나타났다. 최근 10년간 불교, 천주교 교인이 감소한 것에 비해 개신교는 증가했기 때문에 더 의아했다. 여기저기서 해석을 내놓았지만 충분하지 않았고 이해가 되지 않으니 마냥 기뻐할 수도 없었다.

곧이어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발표한 ‘2017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개신교를 신뢰한다는 응답이 18.9%에 그쳤다. 최근 10년간 5번의 조사에서 한 번도 20%를 넘지 못했다. 교인 수는 많지만 신뢰받지 못하는 종교가 2017년 개신교의 실상이었다.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까지 국정농단 사태가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을 때, 개신교 일부가 보여준 극우적 행보는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탄핵 반대 집회에 십자가를 앞세우고 태극기와 성조기도 모자라 이스라엘 국기까지 들고나온 모습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한 네티즌의 “이스라엘은 예수 안 믿는데?”라는 일침에 할 말이 없었다.

이어진 조기 대선 국면에서도 거의 그 사람들이 ‘범(凡)기독교’를 자칭하면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촛불 혁명을 통해 깨어난 사람들 중에 개신교인들도 많았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범기독교 논란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고, 그들이 지지하려 했던 후보는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모름지기 종교가 되어서 권력과 연이어 밀착해보려는 시도는 추해 보였다.

2017년 내내 한국교회는 종교인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소득세를 신고하게 하려는 정부 방침에는 사사건건 훼방을 놓았다. 불교나 천주교가 공식적으로 찬성하고 협조하는 데 비해서, 자칭 보수라는 분들이 세금을 못 내겠다고 버티는 것은 이해도 안 되고 공감도 받지 못했다. 교회에서 이중장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상식 밖 발언도 나왔다. 결국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이도 저도 안 되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자기들끼리는 잘 됐다 했을지 몰라도 개신교는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있다.

9월 장로교단들의 총회에서 내려진 결정들은 요가와 마술을 금지하고, 동성애자를 교회에서 쫓아내겠다는 둥 유치하고 가볍기 짝이 없었다. 명색이 총회라면, 특히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총회라면 교회를 개혁하는 문제와 세상과 충돌하는 가치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내놓았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냥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 내가 성경 더 잘 믿고, 내가 더 하나님 사랑한다면서 경쟁적으로 자위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2017년 막판에 이뤄진 명성교회의 불법 세습은 그야말로 종교개혁 500주년에 찬물을 끼얹은 사건이었다. 명성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예장통합)는 2013년 압도적인 찬성으로 세습방지법을 만들었다. 총회 산하 신학대 교수 124명의 말처럼 세습방지법은 “헌법에 명문화된 현행법으로서 세습을 판단하는 가장 권위 있는 법적 근거”다. 그러나 한 몸인 교회 중 하나가 제힘과 돈을 믿고 세습을 강행함으로써 공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헌법의 권위에 도전했다.

이후 세습에 반대하는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목사들에 대한 선교지원금을 중단하고 갑자기 미자립교회를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을 보면, 그동안 명성교회가 어떤 방식으로 일해 왔는지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다행스럽게도 세습과 행패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서울시 강동구 명일동 구천면로 일대를 빼고는 모두 반대한다. 누가 세습에 부역하고 복종하는지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2018년을 맞이하며
1517년을 생각해본다. 100여 년 전부터 곳곳에서 터져 나온 개혁 요구는 성공적이지 못했고 개혁자들은 죽임을 당했다. 1517년이 개혁의 원년인 것은 그 시절이 참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 더러웠기 때문이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1517년과 2017년은 닮았다. 500주년은 500주년인 것이다.

시인 박노해는 말했다.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우리가 지나 보낸 2017년에 대해 정직하게 절망해야만 거기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2018년이다. 굳이 말하자면 종교개혁 501주년이다. 평양대부흥 111주년이기도 하다. 지나간 500주년을 아쉬워하기보다, 501주년을 꼿꼿이 살아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고 옥한흠 목사의 절절했던 외침처럼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죽은 행위를 벗어버리면, 신께서 당신의 영을 부어주시지 않겠는가.

언제부턴가 새해 인사를 거창하게 하지 않는다. 그저 나와 내가 아는 사람들, 또 그들이 아는 사람들이 지난해보다는 조금만 더 좋아지고 행복해지면 좋겠다.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희망하는 것 같다. 지난해보다 조금만이라도 더 나아지시길! 잰걸음을 걷는 여러분도, 한국교회도.
 

박제민
20대 끝자락에 기독시민운동 판에 들어와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다. 낮에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실무자, 밤에는 ‘동네교회청년’ 활동가로 살아가는 30대 청년이다. 보수적인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자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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