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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들아, 문제는 ‘비례’야!
[328호 시사 잰걸음] 개정 헌법에 ‘선거의 비례성 원칙’ 넣어야
[328호] 2018년 02월 26일 (월) 17:17:37 박제민 기독시민운동가 goscon@goscon.co.kr

빛나는 역사, 공명선거운동
1991년 1월 12일 사랑의교회에서 개신교 21개 교단과 15개 단체가 연합해 공명선거실천기독교대책위원회(공선기위)를 시작했다. 한경직 목사가 명예대표를 맡았고, 한국CCC 대표 김준곤 목사, 전 KNCC회장 김지길 목사, 부총리를 지낸 이한빈 장로가 대표를 맡았다. 실무를 주도한 것은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에서 활동하던 손봉호·이만열 교수였다.

같은 해 2월 7일에는 공선기위를 비롯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한국YMCA, 한국YWCA, 흥사단 등이 모여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공선협)를 시작했다. 사무국은 경실련이 맡았고 공선기위가 주축을 이뤘다. 공선협이 공명선거운동을 시작하자 시민들의 공감과 지지가 이어졌다. 그해 열린 지방선거에서 무수히 많은 부정선거 제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아니라 공선협으로 쏟아졌다. 공명선거운동은 1990년대 대표적인 시민운동으로 자리매김했고, 그 중심에 공선기위에 참여한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 국회 상징인 국회커뮤니케이션마크는 대국민 소통, 진취성, 친근함, 국민과 함께하는 국회를 상징한다고 한다.

2000년대 들어 시민운동의 한 축이 정치권 개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낙천·낙선운동’으로 옮겨가면서, 공명선거운동에 대한 주목은 서서히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공명선거운동이 우리 사회의 선거 문화를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공선기위에서 활동했던 백종국 교수(경상대 정치외교학)는 <복음과상황>과의 인터뷰(제258호, 2012년 4월)에서 공선협 활동을 통해 선거가 유의미해졌고 그 결과 평화적인 정권 교체도 가능했다는 점에서, 공선협의 주축이었던 개신교 세력의 민주화 공헌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공명선거운동은 기독교 시민단체가 우리 사회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낸 활동이었다고 하겠다. 

그래서 사람들의 삶이 나아졌는가?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개헌을 한 이후 7번의 대통령 선거, 8번의 국회의원 선거, 7번의 지방선거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바로 서고 선거도 공정해졌다. 하지만 지난 글에서 말한 것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별로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비참해졌다.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라는 책을 쓰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 계급 간 불평등 구조는 훨씬 빠른 속도로 심화되어 왔으며, 과거 교육과 근면을 통해 가능했던 사회이동의 기회는 크게 줄어들었다.” 이를 증명하는 통계와 증거들은 차고 넘친다. 요컨대 선거의 공명정대함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나아지는 데까지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똑똑히 적고 있다. 하지만 과정의 편의를 위해서 주권자인 국민이 선거 때 투표를 통해 권력을 잠시 맡길 사람을 뽑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그 과정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 지금 같은 선거제도 아래서는 한 사람은 말만 주권자이지 실상은 제한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선거의 비례성을 높이는 방법을 연구했던 비례대표제포럼(지금의 비례민주주의연대)의 자료에 의하면, 민주화 이후 제13-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주권자인 한 사람의 뜻이 사표(死票)라는 이름으로 무시된 수가 자그마치 7,162만 6,533표에 달한다. 매 선거마다 약 1천만 명의 뜻이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사람의 뜻에 밀려 조금도 반영되지 않고 버려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유권자 수는 약 4천만 명이다.) 그러다보니 언제부턴가 “될 사람 밀어주자”는 희귀한 논리가 안 희귀한 것처럼 공공연히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손님은 주인”이라고 써놓은 중식당에 갔는데 어떤 음식을 시키더라도 자장면 아니면 짬뽕만 주는 격이다. 이게 뭐냐고 항의를 하면 규칙이 그렇다면서, 먹기 싫으면 기권하라는 식이다.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이와 꼭 같은 일들이 지난 30년 동안 대한민국 선거판에서 반복되어 일어났다. 얼마나 비통한 일인가! 이제는 주권자인 한 사람의 뜻이 무시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대안이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시뮬레이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후보에 한 표, 정당에 한 표를 투표한다. 지금 우리가 하는 것과 똑같다. 국회 의석은 정당투표율에 따라 배분하여 지역구 당선자부터 우선 배정하고 남는 수만큼 비례대표 후보에게 돌아간다. 그런데 만약 정당이 배분받은 의석보다 지역구 당선자가 많으면 지역구 당선자 모두를 인정한다. 이를 ‘초과 의석’이라고 하는데 이 때문에 국회의원 정수가 고정적이지 않고 탄력적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누구라도 감을 못 잡는다. 이해를 더하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해보자. 이렇게 상상해보자는 거다. 선거제도가 바뀌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게 되었다. “특권을 없애고 일꾼을 늘리자”는 취지로 국회의원 정수도 500명으로 확대했다. 이중 250명은 지역구 선거를 통해 뽑고 나머지 250명은 비례대표로 뽑기로 했다. (국회의원들은 밉지만 우리나라는 인구대비 국회의원 수가 매우 적은 것이 사실이다. 2015년 기준으로 OECD 평균은 인구 9만7천 명에 의원 1명인데, 이를 우리나라 인구수에 맞추면 국회의원이 500여 명 정도 필요하다. 무능하고 부패한 300명보다, 특권을 없애고 일 좀 하는 500명을 두는 것이 낫고, 심지어 세금도 절약된다.)

선거를 하게 되어 주권자인 국민들이 지역구 후보자에게 1표, 정당에 1표 씩 투표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

   
 

① 선거에서 A당 45%, B당 40%, C당 10%, D당 3%, E당 1%, F당 1%, G당 0% 득표했다.
② 득표율에 따라 A당 225석, B당 200석, C당 50석, D당 15석, E당 5석, F당 5석, G당 0석을 배분받았다.
③ 한편 250개 지역구에서 치열한 선거 끝에 A당 125명, B당 110명, C당 10명, D당 4명, E당 0명, F당 0명, G당 1명이 당선되었다.
④ A당은 확보한 총 의석수 225석 중에 지역구 당선자 125명을 뺀 나머지 100석을 비례대표 후보들로 채우게 되었다. 즉 A당은 비례대표 후보 1번부터 100번까지 당선됐다. 이런 식으로 B당은 90명, C당은 40명, D당은 11명, E당은 5명, F당은 5명, G당은 0명의 비례대표 후보가 당선되었다.
⑤ 그런데 G당은 지역구에서 당선자 1명을 냈다. 이것은 지역구 투표자들의 선택을 존중해 당선자로 인정한다.
⑥ 최종적으로 A당 225석, B당 200석, C당 50석, D당 15석, E당 5석, F당 5석, G당 1석을 얻게 되었다. 정당득표율을 정확하게 반영하면서도 G당 당선자 때문에 국회의원 총수가 1석 늘어났다. 한 사람의 투표는 어떤 경우에도 무시되지 않고 정치에 정확하게 반영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반론에 대한 재반론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기존 정치인들에게 유리하지 않다. 그들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소극적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오히려 주권자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유리한 제도다. 자신의 정치적 의사가 정확하게 반영되기 때문이다. 민주공화국에서 개인이 가진 유일한 권력 수단인 한 표가 찍어도 소용없는 표, 즉 사표(死票)가 될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진다. A당이 되는 것이 싫어서 B당을 찍을 필요가 없이 C당, D당, E당, F당, G당 등 내가 지지하는 정당을 찍으면 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싫어하는 어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든다.

첫째, 정당이 난립해 정치가 불안해질 것이라고 한다. 아니다. 그동안 정치는 늘 불안했다. 거대한 두 개 정당이 정치를 장악한 채 끝 모르고 싸웠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몇 개의 유력한 정당을 탄생시킨다. 이런 걸 ‘다당제’라고 하는데 각 정당이 서로 정치력을 발휘해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오히려 정치의 역동성이 생긴다.

둘째, 지역의 대표를 뽑을 수 없으니 지역 입장에서 손해라고 한다. 아니다. 위 시뮬레이션에서 보았듯 절반은 지역구에서 뽑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의 대표성도 보장하면서 지역에 매몰되지 않는 다양한 정치적 의견이 정치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장점이 있다.

셋째,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가 되기 위해서 비리가 많아질 거라고 한다. 아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정당득표율이 선거의 승패를 결정하는데 득표의 기준은 얼마나 좋은 후보를 내세우느냐에 달렸다. 비례대표 후보 자리를 놓고 비리를 저지른다는 것은 정치적 자살 행위에 가깝다. 그리고 솔직히, 비리는 지금도 차고 넘치지 않나?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도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질 나쁜 정치꾼에 있다.

개정 헌법에 ‘선거의 비례성 원칙’을
30년 만에 헌법을 개정하자는 논의가 진지하게 시작되고 있다. 그 시기와 내용을 놓고 정치인들은 자신들에 어떤 것이 유리한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그 계산기를 나도, 우리도 한번 두들겨 보자.
헌법은 큰 틀에서 기본권과 권력 구조에 관련된 내용으로 나뉜다. 개헌에서 기본권 강화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권력 구조 부분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다 중요하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것이 헌법에 ‘선거의 비례성 원칙’을 똑똑히 적어놓는 것이다. 핀란드와 오스트리아가 그렇게 하고 있다. 헌법이 그러라고 하면 선거법을 바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한 사람의 목소리가 정치에 정확하게 반영되어 한 사람의 기본권이 보호되고, 한 사람 때문에 권력구조가 바뀔 수 있다.

과거 기독시민운동은 공명선거운동을 주도하면서 선거 문화를 바꾼 역사를 갖고 있다. 그때의 고민과 방향은 옳았다. 하지만 그것이 천하보다 귀한 한 사람의 삶을 실제로 변화시키지 못했다. 지금의 고민과 방향은 달라야 한다. 오늘 기독시민운동은 개정되는 헌법에 선거의 비례성 원칙을 똑똑히 적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한 사람의 뜻을 정치에 정확히 반영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박제민
20대 끝자락에 기독시민운동 판에 들어와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다. 낮에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실무자, 밤에는 ‘동네교회청년’ 활동가로 살아가는 30대 청년이다. 보수적인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자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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