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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총회’님
[324호 시사 잰걸음]
[324호] 2017년 10월 27일 (금) 15:16:44 박제민 기독시민운동가 goscon@goscon.co.kr
   
▲ 총회에 참석 중인 총대들 (사진: 박제민 제공)

웬만하면 다 아는 이야기 하나. 무능하고 허영심 많은 임금이 있었다. 어느 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만든다는 재봉사들이 찾아와서 특별한 옷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옷이라고 했다. 임금은 기뻐하면서 금은보화를 주고 옷을 만들라고 했다.

그런데 그 재봉사들은 거짓말쟁이였다. 작업실에서 허공에다 대고 치수를 재고 바느질을 하며 옷을 만드는 시늉만 할 뿐이었다. 드디어 옷이 완성됐다고 했다. 임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이 두려워 아주 아름다운 옷이라고 극찬했다.

임금은 그 옷을 자랑하겠다며 거리 행차에 나섰다. 아름다운 옷을 입었다지만 사실은 홀딱 벌거벗은, 미학적 가치라고는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 대다수 사람이 말없이 보고 있는데 한 어린이가 소리쳤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

그것은 모두에게 현실을 바로 보게 하는 외침이었다. 임금은 속은 것을 알고 창피했지만 체면을 지키기 위해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간, 재봉사들은 금은보화를 가득 싣고 국경을 넘고 있었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다 아는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밀월여행을 즐기던 지난 9월 어느 날, 조국으로부터 들려온 장로교단들의 총회 소식 때문이었다.

총회, 최고 치리회
‘죠션야소교장로회’라는 이름으로 하나였던 장로교단은 해방 이후 크고 작은 이유로 나누어졌다. 신앙적·신학적 차이로 나뉘었다는 것이 다수설이나, 실은 돈과 주도권 다툼 때문에 분열되었다는 소수설도 존재한다. 어쨌든 그렇게 나뉜 장로교단이 지금은 200여 개라고 한다. 이들 중에서 가장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은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예장 고신),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 통합),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 합동) 등이다(분열된 순서로 적음). 이들 교단은 매해 9월에 집단적으로 총회를 개최하는데 저마다 ‘장자교단’이라 자처한다. 또 자신들이 여는 총회가 매우 거룩하다는 뜻으로 자주 ‘성총회’라고 부른다. 총회가 열릴 때면 곳곳에서 “장자교단 성총회”라는 말이 울려 퍼진다.

장로교단 헌법을 보면 치리회라는 말이 나온다. <교회용어사전>을 보면 치리에 대해 ‘주도권을 쥐고 다스림’으로 뜻풀이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입법·사법·행정을 총망라하여 다스리는 행위라고 할 수 있고 치리회는 그런 모임을 가리키는 말이다. 장로교단은 치리회를 당회, 노회, 총회로 구분하고 있는데 하나씩 살펴보자.

교회에 다녀본 사람은 다른 건 몰라도 당회라는 말은 익숙할 것이다. 주보나 광고시간에 “3부 예배 후 당회가 있습니다”라는 말을 보거나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당회는 각 교회의 치리회로 교인들과 관련된 모든 일을 다룬다. 교회마다 다 있는 것은 아니고 일정 수 이상의 세례교인이 있는 교회에서 목사와 장로들로 구성할 수 있다. 당회가 있어야 조직된 교회로 여겨지며, 당회가 없는 경우 ‘미조직교회’라고 부른다.

다음은 ‘노회’. 장로교회 헌법에서 노회를 말할 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여러 지교회가 있으므로(행6:1-6)”라는 설명을 앞에 달아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단위인 교회를 ‘지교회’라 부르고 노회가 ‘진짜 교회’라고 설명한다. 노회는 일정한 지역에 일정 수 이상의 목사가 있고 일정 수 이상의 당회가 조직되어 있어야 만들 수 있다. 노회는 지교회와 관련된 모든 일을 다루고 총회에 보낼 모든 일도 처리한다. 지교회의 목사와 장로를 세우는 것도 노회의 몫이다. 당회와 총회 사이에 있는 노회야말로 장로교회 정치의 1부 리그라고 하겠다.

그리고 ‘시찰회’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보는 기구다. 노회를 돕는 상설기구로서 노회가 지교회들을 한꺼번에 다 보기 어려우니 좀 나눠 놓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명성교회가 김삼환 원로목사의 ‘아드님’이신 김하나 목사를 담임목사로 앉히겠다는 안건을 고덕시찰회를 거쳐 서울동남노회에 올리는 것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드디어 ‘총회’다. 장로교단 헌법은 총회를 가리켜 최고(最高) 치리회라 설명한다. 총회는 목사와 장로가 똑같은 수로 구성되는데 그 규모가 수백 명에서 많게는 일천오백 명에 달한다. 총회는 노회로부터 모여진 모든 일을 다룬다. 의견을 구하는 ‘헌의’, 이것저것 해달라는 ‘청원’, 옳고 그름을 가리는 ‘재판’ 등 다양하다. 또 교단헌법을 해석할 전권을 갖고 있고, 노회를 만들거나 합치거나 나누거나 없앨 수 있으며, 교역자를 양성하는 등 권한을 갖고 있다. 권한이 크면 책임도 막중하다. 1년에 한 번 총회를 통해 결정되는 사항은 노회와 당회, 지교회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도 크다. 아, 정말로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요가·마술·동성애만 남은 총회
명색이 최고 치리회인 총회의 결정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신중해야 하고 세상 앞에서는 설득력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올해 치러진 장로교단들의 총회도 그렇지 못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요가·마술·동성애만 기억에 남았다. 교단을 대표하는 총회의 결정이라기에는 겸연쩍기 짝이 없다.

예장 통합은 이번 총회에서 요가와 마술을 금지하기로 했다. 요가는 이방신을 섬기는 행위로써 힌두교인이 되게 하는 수단이란 이유로, 마술은 눈속임이기에 신앙 공동체인 교회 안으로 가져오면 안 된다는 이유였다.

동성애와 관련된 교단들의 결정은 더욱 결연하다. 예장 통합은 신학교육부에서 올린 ‘건강한 남녀 결혼제도를 가르치도록 해 달라’는 청원안이 부족하다며, 동성애자나 동성애 옹호자의 신학교 입학을 금지하고 동성애를 옹호하고 가르치는 교직원을 징계하는 것으로 바꿔버렸다. 또 동성애자와 동성애 지지자 및 옹호자는 장로·집사·권사 등 교회 직분을 맡지 못하게 하고, 교회 직원 및 신학교 교직원이 될 수 없도록 했다. 예장 통합이 총회를 마치며 발표한 성명에서는 “동성애는 반대하지만, 동성애자들을 혐오·배척의 대상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임을 인정하여 사랑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변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했다는데, 그러면서 입학을 금지하고, 징계하고, 직분을 맡지 못하게 하고, 채용을 안 하겠다는 결정들은 다 무엇인가?

예장 합동도 동성애자, 동성애 동조자 및 옹호자의 신학교 입학 및 교직원 임용을 금지하고 향후 적발되면 징계하기로 했다. 더 나아가 목사가 동성애자가 요청하는 집례를 거부할 수 있고 심지어 동성애자를 교회에서 추방할 수 있도록 했다. 예장 합동의 신학부장을 맡고 있는 목사는 “예장 합동과 예장 통합이 한국교회의 양대 산맥이니 이런 대사회적 부분에서는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단다.

벌거벗은 총회
총회 대의원(총대)들은 모두 어느 교회의 목사이고 장로인 사람들이다. 총회가 직접 운영하는 신학대학원에서 신학과 목회에 대해 공부한 사람들이 목사가 된다. 교인들 중에 상당한 식견과 통솔력이 있는 사람들이 장로가 된다. 이들이 모두 흠이 없다는 ‘무흠교인’인 것은 물론이다. 개인적으로 보면 좋고 훌륭한 분들일 텐데, 이런 분들의 집단인 총회가 내린 결정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왜 요가와 마술과 동성애뿐이란 말인가?

총대들은 정말 요가를 하면 힌두교인이 된다고 생각했을까? 신앙 공동체인 교회에서는 마술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혹시 마술의 ‘마’(魔 : 마귀 마)자가 꺼림칙했을까? 총회의 결정을 엄히 받들어, 잘 다니던 요가학원을 끊고 연습하던 마술도구를 불태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동성애가 정말로 큰 문제라고 생각됐다면 좀 더 연구해서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세상이 동성애에 대해서 우호적인 마음을 갖는 것이 두려웠다면 사람들과 깊게 대화할 방법과 설득할 논리를 고민하고 만들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저 벌주고 쫓아내는 것이 총회가 가진 지혜의 알짬이라면 얼마나 망극한 일인가!

세상이 종교라는 것에, 그리고 교회라는 것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살기 힘든 세상에서 진짜 사는 맛이 무엇인지 발견하도록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 나 같은 이 하나 없는 세상에서 서로 알고 어울리는 마당이 되어주는 것, 혹여 남들과 다름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쉼터가 되어주는 것 아닐까?

이런 것은 온데간데없고 세상과 이웃이 원하지도 좋아하지도 주목하지도 않는 일을, 마치 하나님은 원하시고 좋아하시고 주목하시는 것처럼 떠들고 결정한 총회의 소식을 들으면서, 아름다운 옷을 입은 줄 알았으나 실은 벌거벗었던, 무능하고 허영심 많은 임금님 이야기가 절로 생각나는 것이었다. “벌거벗었다!” 모두가 현실을 바로 보게 만들, 한 어린이의 외침은 언제 어디서 울릴까!

수년 전, 처음으로 총회 감시단 활동을 하러 갔을 때 일이다. 총회가 열렸던 큰 교회와 바로 옆 대형마트 사이로 작은 통로가 연결되어 있었다. 총회 기간 동안 수많은 총대들과 관계자들, 그리고 감시단 활동을 하던 우리도 이 통로를 부지런히 지나다녔다.

어느 날 오후 회의가 끝나자 총대들은 빠르게 빠져나갔다. 우리도 저녁을 먹으러 그 통로를 지나 마트로 갔다. 푸드 코트에서 음식을 시키고 자리에 앉았는데 구석에 서 있는 직원 두 사람이 보였다. 그들은 자리가 많이 남아 있었는데도 앉지 못하고 휴지통에 식판을 올려놓은 채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통로 건너편 교회에서는 일천오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세상 제일 중요한 것 같은 ‘거룩한’ 결정들이 내려지고 있었다. 건너편 이 고달픈 사람들에게 그 결정들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박제민
20대 끝자락에 기독시민운동 판에 들어와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다. 낮에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실무자, 밤에는 ‘동네교회청년’ 활동가로 살아가는 30대 청년이다. 보수적인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자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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