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호 사람과 상황] 법외노조 판결 난 전교조 조합원 기김진호 교사

▲ ⓒ복음과상황 이범진
지난 6월 19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법외노조로 통보한 정부의 처분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7월 15일에는, 시국선언을 한 교사들을 수사 중인 경찰이 전교조 서버까지 압수수색 했다. 1989년 결성 후 1999년에야 합법화된 전교조는 다시 법외노조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는 모함을 듣는다.

공기가 꽤 후텁지근한 7월 초, 재개발 지역이라 분위기가 한산한 동네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만난 기김진호(46) 교사도 6만 조합원 중 하나다. 신앙과 교직을 어떻게 잘 통합하여 살아낼지 늘 씨름하는 24년차 교사로 서울신남초등학교 5학년 3반을 담임하고 있다. 1년 전 부임한 이 학교의 중앙현관 학생 출입 제한이 마음에 걸려 중앙 통로를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아이디어를 낸 그는, 이후 준비 작업까지 도맡았고, 그렇게 학교의 중앙 공간은 원래 주인인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기김진호 교사를 만난 것은 전교조의 법외노조 판결이 난 지 10여 일이 지난 때였다. 한국의 교육 구조를 또 다른 세월호라 부르는, 초등교사로 24년째 아이들과 더불어 지내는 ‘평범한’ 전교조 교사 기김진호 선생을 만나 교직생활과 한국의 교육 구조, 전교조에 관한 이야기를 3시간 여에 걸쳐 들었다.

― 학교 마당에 채소가 자라고, 교실 밖 풍경이 꽤 푸르다. 혹시 혁신학교인가?
혁신학교는 아니다. 학교를 둘러싼 자연의 영향이 크고, 아이들도 순하다. 뉴타운 지역 내에 있는 학교라 학생 수가 줄어서 현재 전교생이 350명, 한 학년에 두세 반 정도다. 같은 학년 학생들끼리는 서로 다 안다. 초임 교사 때인 20여 년 전엔 학급 정원이 53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24~25명 정도다. 학급당 학생 수는 줄었지만 사회가 변해서 그런지 과거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는 선생님들도 있다.

― 왜 더 힘들어진 것 같나?
어릴 때부터 과열 경쟁 분위기에서 학업 스트레스를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의 현실 때문이다. 집중력이 확연히 떨어지거나 정서 장애 아이들이 많아졌는데, 참지 못하고 감정을 폭발하는 아이들도 꽤 있다. 옛날보다 아이들의 정신 건강이 취약해졌음을 체감하며 연민을 느낀다. 부모님들도 스트레스가 적지 않을 거다. 가정환경조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라 담임이라도 아이에 대해 깊이 알기가 수월하지는 않다. 그런 흐름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고, 학생과 직접 관계 맺으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 학교 가기 싫어하는 자녀로 고민하는 초등생 부모들이 주변에 꽤 있다. 정말 학교가 그렇게 가기 싫은 곳인가?
다니기 싫은 게 당연하다. 아이들이 일요일과 금요일에 쓴 일기가 다르다. 어른과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월요병’에 걸리고, ‘불금’을 맞는다. 이미 학교가 아이들에게는 어른들 직장 생활과 같다. 상대적으로 경쟁 시스템을 많이 걷어낸 혁신학교는 요즘 가고 싶은 학교로 알려지지 않았나. 아이들이 가고 싶은 학교로 만들려면 교육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교육이라는 거대 구조는 당장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작은 균열 내기라도 계속 시도하다 보면 어느새 큰 변화의 가능성도 열리지 않을까. 그 작은 균열이나마 낼 수 있는 이들은 기김진호 선생 같은 현장의 교사, 곧 ‘구조의 내부자’ 아닐까. 어릴 때 엉뚱한 질문을 자주 던졌다는 그는, 원래 기자를 하고 싶었는데 교사가 되었다. 여전히 엉뚱(?)한 질문을 하면서 나름의 기발한 방법으로 아이들이 다니고 싶은 학교로 만들어가려고 거듭 시도한다. 또한 열 차례 넘게 개인전을 열 정도로 작가(화가) 활동도  활발히 한다.

▲ 갤러리로 꾸민 중앙 통로(기김진호 선생님 페이스북)

― 학교 건물 중앙 통로가 이채롭다. 새하얀 벽면에 조명까지 있던데, 행사가 있나?
중앙현관을 갤러리로 바꾸는 작업이다. 원래 중앙 통로는 학생 출입을 제한하는데, 상징적으로도 좋지 않은 모습인 것 같아 부임 때부터 마음에 걸렸다. 중앙현관을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문화공간으로 만들면 자연히 아이들이 올 수밖에 없는 공간이 될 것 같아서 학교에 제안했다. 7월 14일이면 개관인데 학생들 작품이 걸린다. 이어서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 작가의 작품도 받으려 하고, 나도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

― 페이스북에서 작품 사진을 봤는데 다양한 색깔의 풍선 그림들이 인상적이었다.
풍선을 자주 그린다. 삶의 메타포(은유) 같아서다. 부풀어 오르는 건 아름답고 밝아서 기분 좋은 일이지만, 지나치면 터지고, 바람이 빠져버리면 볼품이 없다. 묘한 긴장 상태에서 아름다운 형태가 유지되고, 불어놓으면 형태가 다 고만고만하다.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배웠거나 못 배웠거나 사람 사는 삶이 다 고만고만하지 않은가. 종국엔 모두 바람이 빠진다. 풍선은 거부감 없이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소재이기도 하고, 이중해석도 가능하다. 대부분은 꿈과 희망, 생명의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어떤 이는 거품과 죽음의 이미지로 받아들인다. 해석의 다양성이 있는 점도 재밌다.

― 작품 활동과 교직을 병행하고 있는데, 원래 교사가 되고 싶었나?
기자가 되고 싶어 신문방송학과를 가려 했는데, 대입학력고사 점수가 못 미쳤다. 마침 친구가 교대 지원서를 갖고 있길래, 나도 교대로 갔다. 그런데 선택을 잘한 것 같다. 24년 정도 일했는데, 학생들과 삶을 나누고 교감하는 가치 중심적인 일이 마음에 든다. 보람도 있지만, 더 큰 좌절을 마주하기도 한다. 내 가르침이 잘못됐다는 자책을 느낄 때도 있고, 구조적인 문제에 부딪힐 때는 좌절감도 온다.

― 지금은 ‘초딩’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정작 자신이 ‘초딩’이었을 땐 어떤 학생이었나?
장난꾸러기였다. 공부도 좀 했고 야단을 많이 맞을 정도의 말썽은 없었지만, 수업시간에 엉뚱한 질문을 꽤 했다.

― 요즘 아이들도 손들고 질문을 하는지 궁금하다.
물론이다. 어떨 땐 깊이 생각할 겨를 없이 답할 때가 있는데, 특히 지시적인 답을 하고 났을 때는 아차 싶다. 그럴 때면 시키는 대로만 하지는 말고, 선생님 말이 이해되면 따르지만 아니면 또 질문하라고 이야기한다.

― 그렇게 얘기할 때 아이들 반응은?
‘헐~’ 하면서도 신선해하는 것 같다. 가끔 반 아이들에게 엉뚱한 장난을 칠 때도 그렇고.

― 어떤 엉뚱한 장난인가?
예를 들면, 밖에 나가고 싶어서 체육을 하자는 아이들에게 ‘내가 체육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지 않지는 않다’는 식으로 답하는 것이다. 그럼 그래서 한다는 거냐고 되묻는 아이들에게 ‘내가 내일 체육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지는 않을 것 같다’는 식으로 말을 늘이는 장난을 치는 거다. 나만의 장난 패턴이 있다.(웃음)

― 혹시 체육 싫어하시는 거 아니냐?
아니다.(웃음) 아이들이 체육을 정말 좋아해서 ‘과외 체육’을 한다. 아이들에게 체육은 최고의 선물이고, 체육을 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이들이다. 그런데 종일 쓰고 (문제) 푸는 행위가 학교생활 대부분이지 않나. 그런 거 안 하는 것만으로 좋은데, 밖에서 뛰어놀기는 얼마나 더 좋겠나. 아이들에게서 체육 활동을 빼앗는 것은 반인권적인 행위이다.

― 심각한 학급 문제가 있던 적은 없나.
왕따 사건이 있었다. 화해시키긴 했지만 그대로 넘어가면 내 앞에서만 화해한 것일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쪽 학생 모두 남아 있는 감정이 계속 영향을 주게 된다 싶어 아이들에게 한 가지 새로운 제안을 했다.

― 어떤 제안이었나.
왕따 사건 관련 아이들이 재연 드라마를 찍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당시 역할을 그대로 연기해보면서 자신을 객관화시키게 된다. 연기하면서 NG가 날 때면 폭소도 터뜨리며 서로 자연스럽게 친해진다. 7분짜리 짧은 드라마였지만 영상 활동을 통해 왕따 사건을 극복한 사례로 남았다. 학부모 허락을 받아서 온라인 카페에도 공유했다.

― 학급 온라인 카페를 말하는 건가?
그렇다. 학급 활동을 영상으로 만들어 온라인 카페에 올린다. 내가 수업하는 동안 한쪽에서 컴퓨터 렌더링이 이루어지고, 한 학기면 단편 영상이 50개 정도 만들어진다.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저녁 즈음이면 부모가 관심만 있으면 자녀가 학교에서 활동한 영상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의 소소한 일상을 담는 것인데, 어떤 것은 하루 동안에 만들어지기도 하고, 한 학기 내내 찍어 놓은 것을 하나로 합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자연 친화적인 자연 감수성을 키워주려고 시작한 텃밭 가꾸기는 씨 뿌리기부터 상추쌈 싸먹기까지 찍어 놓았다. (상추쌈은 벌써 몇 번을 먹었다.) 학년 말이 되면 지난 1년을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보려 한다. 학교 상영이 어려우면 동네 문화회관이라도 빌려서 학부모, 아이들 및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1년의 영상 기록을 상영하고 싶다.

▲ ⓒ복음과상황 이범진

― 교직이 상당히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만두고 싶을 때는 없었나?
매순간 그렇다. 그럼에도 아이들과 함께 해보고 싶은 것들이 여전히 있다. 내가 어떤 영향을 얼마나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이들의 정신과 삶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 아이들이 천사는 아니지만, 어른보다는 훨씬 착하고 변화 가능성도 크다. 그 가능성 때문에 초등교사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맡은 아이들에게 혁신학교보다 더 좋은 서비스를 해보자는 마음으로 수업도 나름 교과 내용을 재구성하여 전달하려 노력한다. 요즘은 광고에 대해 공부하는데 팀별로 대본도 짜고 직접 촬영하고 편집도 한다. 영상 두세 편이 오늘 제출되었다. 물론 엉성하지만, 이런 모든 과정이 주제를 갖고 해볼 수 있는 여러 실용적 경험으로 남아서 아이들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유용하지 않겠나.

― 그런 수업이 아이들을 학교에 다니고 싶게 해줄 것 같다.
더 재밌게 해주고 싶은데, 겨우 짬 내서 조금씩 한다. 수업 외 행정 업무를 비롯하여 학생들까지 동원해야 하는 평가 및 제출 사항이 워낙 많다. 평가 방식이 개선된다면 초등학교 수준에서 훨씬 다양한 경험이 가능하다고 본다. 학교 앞산에서 해볼 거리도 많은데, 교실에 할 일이 쌓여 있으니 밖으로 한 번 나가기도 쉽지 않다.

기김진호 교사는 아이들을 매년 몇백 명씩 자살로 몰아가는 한국 교육의 구조 자체를 ‘또 다른 세월호’로 보았다. 그러면서 “그 구조의 하수인”으로 일조하는 자신도 한국 교육 문제의 “부역자”이기에 죄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어쩌면 그가 전교조 활동을 하는 것도 ‘한국의 교육 체제’라는 배에 탄 선원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 세월호 참사가 난 지 석 달째다. 아이들을 담임하는 교사로서 지난 시간을 어찌 보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4·16 이후 한 달 동안을 매일 울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아이들과 함께 추모 수업을 했다. 언니 오빠 형 누나들이 죽어간 현실에 대해서 아이들도 사실 다 알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눈물은 참는 것이 좋은 건 줄 알았다고 소감을 써냈다. 속으로 억누를 일이 아니고 울고 싶을 때 울게 하는 것, 현실을 설명하고 공감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함께 울다 보니 나도 어느새 울음이 멎었고, 맡은 이 아이들을 더 보호하고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부조리의 결과가 세월호 참상 아닌가. 부조리에 대해 분노도 할 수 있어야 하고, 재발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사실 세월호는 매년 일어나는 사건이고, 교사로서 피해갈 수 없는 사안이다.

― “매년 일어나는 사건”이 무엇인가?
초·중·고 학생들이 매년 300명 가까이 자살하는데, 이제는 이슈도 안 된다. 교육이 교육이 아니고, 죽음의 문화가 되어 아이들 생명을 갉아 먹고 있다. 나도 죄책감을 느낀다. 죽음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아이들을 죽음으로 모는 그악스러운 경쟁 시스템의 하수인으로 일조하는 한국 교육의 부역자가 바로 나 아닌가. 그 안에서 더러는 의미 있는 몸짓을 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책임 없다 할 수 있겠는가. 일제고사나 교원 평가 시스템을 학교가 수용하게 되면서부터는, 담임교사로 아이들을 만나면 이런 이슈들을 피해갈 수 없을 것 같아서 한 과목만 가르치는 교과전담 교사로 남아 관련 문제를 회피하려 한 측면도 있다. 8년 정도 그랬다.

― ‘전교조’ 하면 일반적으로 강성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문제를 회피하려” 했다니 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전교조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다. 나는 남에게 이야기할 때도 조곤조곤한 편이고, 근 20년 동안 학생을 한 대도 때리지 않았다. 초임 교사로 한때 매를 들었던 때도 맞을 횟수를 학생이 정하도록 했다. ‘0대 맞겠다’고 하면 0대 때렸다(안 때렸다). ‘나 전교조입니다’ 하고 떠들고 다니는 것도 아니니 전교조 교사와 비전교조 교사 구분도 어렵다. 오래 전에 월간 〈신동아〉에 실린 “문제교사 식별법”1)이 요즘도 SNS상에서는 ‘전교조 교사 식별법’으로 돌아다니긴 하더라. 개인적으로는, 존경하는 선생님 중에 전교조가 많았다. 전교조가 중요시하는 가치가 민중, 인권, 인간화 교육 같은 것들인데, 여기 동의하는 이는 좋은 선생님인 경우가 많았다.

― 체벌 교육을 어떻게 생각하나?
매를 드는 것도 습관이다. 인간이 맞아서 훈육되는 것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가치는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어떤 가치가 체벌을 통해 얻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누구이든지 과연 인간이 타인으로부터 물리적으로 폭력을 당해도 좋은 존재일까? 폭력을 당하면 당한 이도 폭력에 무감각해지고 점점 갖가지 폭력을 용인하게 된다. 그러니 교사가 아이를 때리지 않고 가르치는 것도 중요한 교육이다. 국가가 폭력을 행사할 때 수용하느냐 반대하느냐도 학교 체벌과 상관있지 않을까?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순응적으로 만드는 교육을 해왔는데, 이게 과연 좋은 방향일까? 반항하는 학생들에게 나도 짜증 날 때가 있다. 그러나 길게 보면 그런 성향의 아이들이 사회에 이의를 제기하고,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노동조합 조직률이 기형적으로 낮은(2014년 기준 약10%) 우리 사회는 여전히 ‘노동자’와 ‘공장’을 함께 떠올리는 수준이다. 전교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도 대체로 ‘선생님이 무슨 노동자냐’는 인식이 깔려 있다.

―  전교조 가입 계기는 무엇인가.
내가 존경하는 선배 교사가 전교조였다. 그 선배의 영향으로, 전교조가 합법화된 1999년에 가입했다. 노조원이라고 해서 특별한 활동은 별로 없다. 조합비 내고, 단체 집회 있거나 서명 운동 있을 때 원하면 참여하는 정도다.

―  그동안 전교조가 학교 현장에서 적지 않은 변화를 일구어오지 않았나. 그런데도 우리 사회 내에 전교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상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은 당연해진 촌지 근절, 학교 운영위원회 구성, 초등 일제고사 폐지, 북한 학생 돕기 같은 것들이 그간의 노력들이다. 나쁜 이미지는 갖고 계신 분들께 직접 물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전교조〓빨갱이’로 몰아가는 분들은 근거를 대야 한다. 전교조는 북한 찬양을 하거나 시장 경제를 부정한 적이 없다. 분배 구조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일이야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비판의 영역이지 않나. 전교조를 종북으로 매도하다가 고소당해서 벌금형을 받은 어느 정치인이 생각난다. 특정 언론과 정치인이 만들어 낸 빨갱이 이미지를, 시민들이 비판 없이 수용하면서 굳어졌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른바 ‘좌파’도 아니다.

―  교원평가제도 도입 당시 전교조는 반대 운동을 전개했는데, 그 결과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화된 건 아닌가?
공교육 불신의 대안이라고 나왔던 교원평가제 반대 이후 전교조에 대한 인식이 본격적으로 나빠졌다. 자기 평가는 받기 싫어하는 이기적 집단으로 말이다. 시민사회를 제대로 설득 못 한 책임은 있으나, 전교조가 교원평가제를 반대한 이유는 평가 지표 대부분이 학생들에게 좋은 수업을 제공하고 그 인격을 발전시키는 교사 역할의 본질에 대한 평가와는 거리가 멀어서다. 행정 업무 같은 비본질적 요소가 평가기준으로 너무 많이 반영되면, 아무래도 교사들이 형식적이고 전시 성격이 강한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평가로 부적합한 교사가 걸러지는 것도 아니다. 교원평가가 좋다면 시행 이후 공교육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어야 하는데, 아니지 않나. 교원평가제보다 더 나쁜 ‘학교평가제’도 문제다. 분류하지 않은 수많은 학교를 한 가지 평가기준에 몰아넣고 등급을 나누어 성과금을 차등 지급한다. 평가에 반영된다는 이유로  구성원들은 실적 위주의 업무를 강요당한다. 결국 돈에 사람을 종속시킨다. 그 과정에서 교육의 역기능적 요소를 노출하면서 취지와는 역방향으로 굴러간다.

― 기독교사단체들의 연합운동인 ‘좋은교사운동’은 당시 교원평가제 지지 성명을 냈다.
나도 좋은교사운동 초창기 회원이었고, 가정방문이나 학생 1대1 결연 프로그램 같은 것들을 지지한다. 그러나 교원평가제 적극 환영 입장을 보인 이후에 탈퇴했다. 당시 월간 <좋은교사>에 실린, 교원평가제도가 무산될까 봐 노심초사하는 내용의 글에 대해 이견을 담은 글을 홈페이지 게시판에 남기기도 하고, 당시 대표님들과 이메일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듯, 나는 교원평가제가 공교육 신뢰 회복의 대안이 될 수 없고, 가라지 뽑으려다 알곡까지 상하게 하는 방식이라 생각했다. 좋은교사운동이 많은 고민을 통해 대안을 내려고 노력하는 단체임엔 분명했지만, 내겐 근원적 해답으로 와닿지는 않았다.

―  학교에서 전교조 소속임을 숨긴다는 어느 선생님의 인터뷰를 본 적 있다. 동료 교사들이 색안경을 끼고 보지는 않나.
그런 점은 잘 못 느낀다. 대다수 교사는 전교조가 하는 일을 지지하거나 마음으로나마 동조한다고 생각한다. 학교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는 교사가 주로 전교조 조합원이다 보니 교장 혹은 교감은 경우에 따라 전교조 교사에 예민한 편이다. ‘센’ 전교조, 아니면 그냥 ‘조합비만 내는 전교조’ 하는 식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자기 의견을 꼭 띠 두르고 투쟁하듯 관철할 이유가 없고, 관계 안에서 얼마든지 협력할 수 있다. 학생 출입이 제한된 학교 중앙현관을 갤러리로 활용하자는 제안도, 교장 선생님과 대화를 통해 잘 설득해서 좋은 방향으로 협력했다. 내가 센 전교조인 줄 알았다가 의외의 느낌을 받은 분들도 있을 것 같다.(웃음)

―  얼마전 전교조가 법외 노조 판결을 받았다. 회원으로서 심정이 어떤가?
안타깝다. 노조 보호 명분으로 노조를 파괴한 몰상식한 판결로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전교조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연일 서명운동과 집회가 계속되고 있는데 이렇게 소모적인 일에 에너지를 쓰게 하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 노조 확대가 세계 역사의 흐름이다. 교수 노조는 흔하고, 어떤 나라는 군인과 경찰도 파업을 하고, 심지어 판사 노조도 있다. 노동자를 대변하는 노조에 권한을 주었을 때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고, 자본주의도 지속 가능한 시스템으로 안정화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헌법적 권리를 노조에 준 것 아니겠나. 전교조는 합법화되었을 때부터 단체행동권(파업권)이 없는 기형 노조였다.2)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보수층에서는 무슨 위협을 느끼는 모양이다. 전교조에 대한 ‘종북 몰이’식 알레르기 반응은 일종의 두려움의 표현이라고 본다. 그 두려움을 없애려는 노력의 결과로 법외 노조까지 온 것 같다. 정부의 압박이 무서워서 이탈하는 이도 있겠지만, 오히려 핵심 역량은 강화되고 정신의 날도 더 날카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전교조 지도부는 단식투쟁을 하고 있고, 회원들도 연일 집회와 서명을 한다. 전교조를 없애려는 노력이 성공하기는 힘들 거다.

―  학교 현장의 신임 교사들이 지닌 교사 노조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한국의 초·중·고 과정에서 노동교육을 실질적으로 배울 기회도 없고, 교과서에 몇 줄 나오는 것만으로는 아예 없는 거나 다름없으니 대부분 잘 모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여전히 노동자 하면 블루칼라 이미지만 있지 않은가. 독일에서는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노조 협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협상 연습도 진행한다. 아이들 대부분이 결국 노동자가 될 것이니 공교육에서 노동교육은 당연하다. 만약 이런 내용의 수업을 내가 교실에서 실질적으로 가르친다면? 아마 빨갱이 선생이라고 뉴스에 나올 거다. 서구 교육에서는 그야말로 상식인데 말이다.

기김진호 선생님이 마음에 품은 키워드는 ‘환경’과 ‘통일’이다. 지금은 핵발전소 문제에 몰입하여 자료를 계속 모아서 정리하고 소개한다. 교사로서 그런 키워드를 마음에 품는 것도, 전교조 활동을 하는 것도 신앙인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길로 통합된다.

―  교사로서의 새로운 시도나 전교조 활동이 신앙과 어떻게 연결되나?
신앙이 없으면, 공공의 가치보다는 내 이익이 최우선 기준이었을 거다. 신앙이 없어도 양심 있는 시민들처럼 무언가 했을 수도 있겠지만, 별로 이타적이지 않은 나로서는 사익(私益)이 기준이었을 거다. 신앙 안에서 소명의식이 생기고,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전교조 활동이 연결된다. 교사로서의 내 키워드가 ‘환경’과 ‘통일’이다. 아름다움은 추구하지 않더라도 생존을 위협하지는 않지만, 환경과 통일 문제는 생존을 위협한다. 요새 원전 문제에 꽂혀서 많은 자료를 모아서 정리하고 소개하는 중인데, 문제가 심각하다.

―  전교조에 기독 교사가 얼마나 되나?
정확한 수는 모르지만 꽤 될 거다. 좋은교사운동 회원이면서 전교조 활동을 하는 교사도 꽤 많다. 그러나 예전에 다니던 학교의 교사 신우회가 나를 빼놓고 몰래 모임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일이 있다. 전교조 소속인 내가 모임에 나올까봐서였다. 전교조를 무슨 이단처럼 생각하는 거,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이 이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대다수 기독교인이 시민사회보다 낙후된 의식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고 절망할 때가 많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다는 걸 더 절실히 깨닫는다.

▲ ⓒ복음과상황 이범진

―  “교육이 중요하다”는 구체적인 의미는?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은 교육을 통해 기득권적 구조를 확대재생산하려 한다. 약자들이 그 구조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는 학교에서 잘 가르치지 않는다. 그 결과로 약자들이 강자의 논리에 순응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 사회에서 그걸 돌파하는 수단이 교육이고, 해결책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같은 맥락에서 전교조가 필요하다고 본다.

―  출석하는 교회가 있나?
기독교 정체성을 지닌 ‘가나안(교회 안 나가) 성도’ 200만 시대라서 그런 질문이 당연해졌다.(웃음) 탈북 대학생들이 100명, 남한 어른이 20명 정도인 하나로 교회에 출석한다. 목사님도 탈북자 출신이시고, 교회가 탈북 학생들을 지원한다. 그들에게는 경제적 문화적 정신적으로 여러 도움이 필요하다. 목사님과 신앙적 생각을 비롯한 여러 영역에서 다른 점이 있지만, 차이를 극복하고도 남는 의미가 있다. 통일 이후에 이 아이들이 해야 할 역할이 중요할 텐데, 탈북 청년들과 신앙생활을 하고, 돕는 것도 통일운동이라 생각한다.

―  앞으로 어떤 선생님으로 남고 싶은가?
사회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교육 구조하에서 내가 밥벌이를 하는 동안 그저 내게 맡겨진 아이들에게 열정을 다 바치고 싶다. 그리고 마침내 교직을 그만두는 날은 더 큰 상쾌함을 느낄 것 같다.

―  끝으로 참교육을 위해 애쓰는 초년 교사들에게 선배로서 조언해 달라.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자. 독창적인 교육활동을 시도할 때는 특히 옆반 선생님 눈치가 가장 보이는 법인데, 그런 것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물론 싹수도 갖추면서 의식하지 않아야 한다.(웃음) 그러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더 친절하고,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저 사람이 하는 건 적어도 진정성이 있다’는 인식을 확보하지 않으면, 인기 영합적 행동이나 돌출 행위로 보인다. 눈치를 많이 볼 나이가 아닌 나도 학교 중앙현관을 갤러리 만들 때는 동료 선생님들이 일거리가 늘어난다고 싫어할까 봐 신경이 많이 쓰였다. 이런 문제로 좋은 아이디어가 생겨도 추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스스로 수고하면 사람들은 결국 진정성을 알아준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지 않은가. 전교조 문제도 마찬가지일 거다.

진행 오지은 기자 ohjieun317@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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