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호 사람과 상황]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지현·홍민정 공동대표 인터뷰

   
▲ ⓒ복음과상황 정민호

 ‘운동이 누군가를 의존하게 되고 누군가는 그 의존을 즐기게 되는 순간, 조직은 위기에 들어가는 법입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교육걱정’) 송인수·윤지희 전 공동대표가 대표직을 내려놓으며 단체 회원들에게 쓴 편지 속 내용이다. 올해 2월, 사교육걱정의 리더십이 교체되었다. 정지현·홍민정 신임 공동대표는 각각 11년차·7년차 상근자들로, 전 공동대표보다 20년이 젊은 80년대생이다. 리더십이 바뀐 사교육걱정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물론 교육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조국 사태에서도 불거진 공정성 문제는 한국의 입시경쟁 문화 속에서 점점 벌어진 계급격차 문제이기도 했다.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 사회학자 조귀동은 학벌로 계급상승을 이룩한 중산층 부모 세대가 자녀에게 계급을 물려주기 위해 이제는 고비용·저효율 투자를 하고 있으며,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어야 ‘이기는’ 구조임을 다양한 통계를 통해 보여준다. 그러나 공정함만이 잣대가 된다면 성적과 입시, 대학 간판이 주가 되어버린 교육에서 내용과 질, 공부하는 시간을 고려해야 하는 아이들의 학습권 등 놓치는 것들이 많아진다.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며 교육격차가 더 가시화하는 이 때 두 공동대표에게 근황을 묻자, 정지현 대표는 취임하자마자 계획했던 오프라인 행사와 모임이 연기되었다며 아쉽지만 코로나와 상관없이 할 수 있는 정책들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1대 국회에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최우선 4대 입법과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다음날 예정되어 있었다. 상임 변호사로 일해왔던 홍민정 대표 또한 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고민하며 여러 가지를 실험하고 있다고 답했다. 흔들림이 없고 흥이 넘친다며 서로를 ‘정 장승’ ‘흥민정’으로 소개하는 두 사람은 파트너의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인터뷰는 지난 6월 8일 삼각지에 위치한 사교육걱정 세미나실에서 진행했다.

   
▲ 홍민정(좌)·정지현(우) 신임 공동대표. ⓒ복음과상황 정민호

이번에도 2인 대표 체제다. 사교육걱정은 왜 공동대표 체제를 유지하는지 궁금했다. 그만큼 힘들어서인가.
정지현(이하 ‘정’): 맞다.(웃음) 창립 때부터 전 대표님들도 12년 임기 동안 공동대표로 일을 해오셨다. 그만큼 입시경쟁과 사교육 고통을 해결하는 운동이 어렵고 책임이 과중한 일이기 때문이다. 둘이서 해도 늘 기도로 의존했다고 하셨고, 후임은 두 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하나일 때보다는 좀 더 안정감이 있고 버틸 힘이 된다.
홍민정(이하 ‘홍’): 시민운동은 시류와 쟁점에 맞춰 아젠다를 설정해야 효율적으로 정책이 반영될 수 있는 기회들이 열린다. 수시로 좋은 판단을 해야 하는데 단독 리더십으로는 역부족일 수 있다. 나와 정 대표는 성향이 많이 다르다. 서로를 보완해, 최고의 결정인지는 모르겠으나 최선의 결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국 단위 지역모임에도 공동대표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 그렇다.(웃음) 대여섯 명이 모이는 소그룹인데 두 명씩 모임장을 한다. 혼자보다 둘이서 사람들을 끌어가고 다독이며 아젠다를 던지는 게 수월하다고 하시더라. 예전엔 슈퍼맨 리더십이 각광 받았다면 요즘은 ‘어벤져스 리더십’이라고 협업의 리더십이 각광 받는 시대다. 우리 공동대표 체제도 어벤져스 리더십이 반영된 것 아닌가 싶다.

많은 분들이 정지현·홍민정 공동대표 체제의 사교육걱정은 무엇이 다를까 궁금해하는 것 같다.
: 사람이 바뀌었다고 해서 미션과 핵심가치나 세부 과제, 운동의 전략이 바뀌는 건 아니다.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전임대표 두 분보다는 조금 가벼워지고 유쾌하게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단체 홍보 영상을 패러디물로 올렸는데 재밌다는 반응이 많았다.(웃음)
: 전 대표님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확고한 답이 있었다. 심지어 청소 분리수거에도 순서가 있었다. 그분들이 워낙 탁월하셔서 슈퍼맨 리더십을 보이실 수 있던 것 같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이 못 되고 그럴 수도 없다. 답을 찾기 위해서 계속 모여서 떠드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콘텐츠나 미션은 유사하더라도 그걸 고안하고 전달하는 방식은 시간이 흐르면 달라져야 한다. 후원자, 상근자, 그리고 시민들과 어떻게 잘 소통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것 자체가 메시지이기도 하지 않나. 다른 리더십으로 운동의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 지난 6월 9일 4대 교육 입법 과제를 촉구하는 기자 회견이 국회 앞에서 열렸다. (사진: 사교육걱정 제공)

최근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를 둘러싼 논란이 컸다. 운동 의제는 다르지만 같은 시민단체로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 크게 두 가지를 느꼈다. 일반 대중들이 시민단체를 바라보는 시선과 활동하는 실무자들 사이의 인식 폭이 크다는 것. 시민단체에서 일한다고 하면 월급 안 받고 자원봉사 하는 거 아니냐는 댓글도 읽었다. 시민단체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위치라고 생각했는데 일반 대중들은 이해나 관심이 적구나 절감했다. 좌절하거나 무너지는 건 아니고,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역할을 잘 해내서 기관의 정체성을 더 잘 인식시켜야겠다는 생각이다. 다른 하나는 바로미터 같은 거였다. 더 투명하고 건강하게 운영하겠다는. 사정이 어려운 곳은 유료 회계감사도 부담이다. 그래도 우리는 매년 비영리단체를 전문적으로 감사하는 회계법인에서 유료 감사를 받고 있다. 매년 지적 사항도 나오는데 작년에는 없다고 했다. 더 투명하고 건강하게 일을 하고 시민들과 소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NCS(국가표준능력직무개발서)가 개발 중이긴 하지만, 그걸 보면 NGO 분야에 있는 실무자들의 직무개발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다. 큰 틀에서 사회복지 영역으로 수렴한다. 시민운동가의 전문성이라는 것이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고 제시되어야 시민운동이 성장할 수 있는데,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봉사자 정도로 인식되는 게 안타깝다. 어떤 언론사는 정의연과 타 기관의 평균 급여까지 계산해서 공개하는 기사를 썼더라. 일반 기업에 비하면 택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도의 급여를 받고 있다고 공개하는 의도가 무엇인가. 시민단체 실무자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교육격차가 코로나로 인해 더 커졌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 코로나 이후 1분기 경제성장 지표들을 조사한 걸 봤다. 상위 20% 하위 20% 소득을 비교해보면 6배 이상 더 벌어졌다. 그만큼 급속도로 심화되고 있다. 아무리 온라인 수업을 하고 기계를 대여해도 현장의 문제는 다르다. 지인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온라인 도우미를 했다. 그런데 3, 4 학년 아이들도 게임만 했지 이메일을 사용할 줄 몰라 일일이 알려줬다고 했다. 온라인이 친숙한 세대라 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 밖이었다. 온라인 학습도 곁에서 어른들의 많은 도움이 필요한 방식인 거다. 언론에도 보도가 되었는데, 월 소득이 천 만원 이상 가정은 90% 가까이 아이를 지도한 반면, 200만 원 이하 저소득층은 절반 정도에 머물렀다.

교육격차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 거시와 미시 차원에서 준비하는 게 있다. 21대 국회가 열린 다음 상임위를 꾸리고 있는데 코로나 이후 교육격차를 줄일 수 있는 4대 입법을 추진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온라인 수업을 도와줄 어른의 유무와 학습환경 구축 정도를 조사하고 공교육 차원에서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안 등을 교사들과 간담회를 통해 모색하는 것이다.

   
▲ "전 대표님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확고한 답이 있었다. 심지어 청소 분리수거에도 순서가 있었다. 그분들이 워낙 탁월하셔서 슈퍼맨 리더십을 보이실 수 있던 것 같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이 못 되고 그럴 수도 없다. 답을 찾기 위해서 계속 모여서 떠드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콘텐츠나 미션은 유사하더라도 그걸 고안하고 전달하는 방식은 시간이 흐르면 달라져야 한다. 후원자, 상근자, 그리고 시민들과 어떻게 잘 소통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것 자체가 메시지이기도 하지 않나. 다른 리더십으로 운동의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홍민정) ⓒ복음과상황 정민호

교육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촉구하는 일이 어려울 것 같다. 당사자나 자녀의 입시가 끝나면 관심 갖지 않거나 생각하고 싶지 않아하는 이들도 있다.
: 내 아이는 졸업했으니까 후원을 정리하는 분들도 가끔 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은 이 문제가 내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안다. 입시경쟁과 과열된 사교육은 모든 아이들과 다음 세대를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다. 거기에 동의하는 시민들이 결혼 유무, 자녀의 입시 여부를 떠나 우리 단체를 지지하고 후원한다. 얼마 전 결혼했지만 나도 긴 시간을 미혼 상태에서 실무자로 참여했다. 자녀도 없고 학부모도 아닌데 내가 이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어색하게 보이진 않을까, 진정성이 오해받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나 또한 입시 교육의 피해자라는 걸 알게 됐다. 대학까지 나온 청년으로서 입시 교육에 트라우마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나중에 아이를 낳더라도 문제가 똑같다고 한다면 다시 나의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교육 문제가 교육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나. 사교육 중독과 입시경쟁은 출신학교나 학벌을 기준으로 입시나 채용에서 차별하는 구조에서 비롯한다. 개인 혹은 자녀의 입시가 끝났다고 모든 게 끝난 게 아니다.

‘정시 확대’와 ‘학종 개선’에 대한 학생·학부모, 현직 교사, 입학사정관들의 온도차가 크다.
: 교육제도에 신뢰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숙명여고 사건은 극단적 예일 수 있다. 모두가 범죄를 저지르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평가자가 개별이기에 신뢰를 못하는 거다. 과연 교사가 똑같은 잣대로 모두를 평가할지, 그리고 교사에게 역량의 차이는 없는지 등 계속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다.
: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언론에서 접하는 목소리는 상위권 학생·학부모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아무래도 더 치열하게 입시를 준비하고 기대감이 크기 때문에 어떤 제도나 이슈가 생겼을 때 더 치열하게 자기 목소리를 낸다. 그런 목소리들이 전체 학생·학부모를 대변하는지는 의문이다. 우리 단체는 학종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이다. 그래도 학교생활에 충실한 학생이 이익을 볼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교사들도 학종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거다.
: 5지선다형 교육, 객관식·암기식이 얼마나 교육적이고 미래사회 인재를 길러내는 데 도움이 될까. 많은 교육전문가들이 아니라고 한다. 길은 하나다. 정부와 시민들이 계속 쌍방향적으로 소통해서 신뢰를 회복하는 것. 그래야 정책이 성공할 수 있다.

21대 국회에 요구하는 입법 운동으로 ‘특권대물림 교육 중단’ 법제화를 첫 번째로 꼽았는데.
: 작년 조국 사태가 터졌을 때 굉장히 많은 국민들이 공분했다. 재판 중에 있기 때문에 결과를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대학입시와 관련해서 특권이 대물림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음이 드러났다. 특권이 실제로 대물림되는지, 그것이 교육 안에서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지표가 필요하다. 정부가 매년 사교육비 통계를 발표하지 않나. 그것처럼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리기 위해 정부가 특권대물림 교육 지표를 제공하고 이를 법제화해야 한다.
: 영재학교들이 전국에 있지만, 정원의 70%를 차지하는 이들은 서울경기 지역 학생들이다. 그 안에서도 소위 교육특구 출신들이 주를 이룬다. 따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영재학교 희망 학생 4명 중 1명은 월 300만 원 이상의 사교육비를 지출했다. 학생수 대비 서울대 합격자 비율이 영재고는 일반고보다 89배 높았다. 특권이 교육을 통해 대물림되고 있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시민단체들이 산발적으로 통계를 내고 발표할 수 있지만 조직해서 의미 있는 데이터를 보여줄 수 있는 건 정부기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힘을 가진 기관들이 의무적으로 발표하는 것만으로도 심각성을 알릴 수 있고, 지표별로 격차가 큰 부분들이 있다면 그 격차들을 어떻게 줄일지 정부가 목표들을 세우고 달성하는 일도 운동으로 추진하려고 한다. 더 직접적으로는 입시나 채용 선발 과정에서 아이들의 경제적 배경도 고려해 선발될 수 있도록 결과적 평등도 담보하는 장치들까지 법안에 담으려고 한다.

조국 사태나 최순실·정유라 사태 때 부정입학 의혹이 불거지자 촛불을 든 명문대 학생들이 ‘공정’을 외쳤지만 다른 한쪽에선 그들이 말하는 ‘공정’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 공정한 평가로 ‘노오력’을 해서 사회적 계급을 얻었는데 나의 가치를 훼손하냐는 주장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런 주장이 공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논할 수 있는 것인가? 공정이라는 말이 오염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이 말한 공정은 ‘변별을 위한 공정’이다. 그런데 교육에 있어 변별이 그토록 중요한가? 변별이 마치 교육의 목적, 최우선 가치처럼 여겨지고 있다. 교육은 진짜 추구해야 될 가치를 재정립하고 그것에 몰두해야 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진정한 공정이란 무엇이라 얘기할 수 있을까.
: 공정은 정의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정의라는 것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보는 일이다. 현 교육에서 큰 문제는 다른 것을 다르게 보지 않는 데 있다. 법적으로 들어가면 ‘잠정적 우대조치’라는 게 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너무 심하고 가정형편이 열악한 유색인종의 비율이 높으니 로스쿨 선발에서 흑인들에게 가산점을 준 대학 사례가 있다. 오랫동안 핍박받고 차별 당해온 집단에게 결과적인 평등까지 조금이라도 보장할 수 있는 조치를 한 것이다.

   
▲ "공정한 평가로 ‘노오력’을 해서 사회적 계급을 얻었는데 나의 가치를 훼손하냐는 주장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런 주장이 공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논할 수 있는 것인가? 공정이라는 말이 오염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이 말한 공정은 ‘변별을 위한 공정’이다. 그런데 교육에 있어 변별이 그토록 중요한가? 변별이 마치 교육의 목적, 최우선 가치처럼 여겨지고 있다. 교육은 진짜 추구해야 될 가치를 재정립하고 그것에 몰두해야 되는 것 아닌가." (홍민정) ⓒ복음과상황 정민호

과도한 사교육과 입시 경쟁을 불러일으키는 대표적 원인인 대학 서열 체제를 어떻게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을까. 
: 대학들이 교육력을 중심으로 서열화되었는가? 그보다는 간판과 이름으로 1위부터 촘촘하게 나뉘어있지 않나. 교육력을 키워주는 대학을 졸업함으로써 자신만의 색깔로 사회에서 이바지할 수 있는 인재들을 키워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학 구조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대학 네트워크를 만들고, 취지에 공감하고 의지를 가진 대학을 선별해서 네트워크에 들어오면 파격적인 재정지원을 하는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 교수 1인당 학생 수(한국은 OECD 기준 약 1.8배)를 OECD 수준으로 낮추고, 연구비를 지원하고 그 연구들을 학생들과 공유하게 하는 거다. 교육력의 재고가 대학서열화를 흔들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학생들도 대학 이름만 보고 지원하기보다는 이 대학이 실질적으로 내게 어떤 교육을 해줄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 네트워크에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가 안 들어오면 무슨 의미가 있냐’는 목소리도 있는데.
: 분명히 달라질 거라고 본다.(웃음) 돈이라는 게 굉장히 많은 부분을 해결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서울대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전국 대학 평균의 세 배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전임교원의 수나 교육 환경 등 학생들에게 지원되는 인프라 차이가 크면 4년간 누적된 차이는 더 클 수 밖에 없다. 파격적인 재정 지원을 통해서 교육 인프라를 맞춰주면 이것들이 충분히 서열화 완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대학서열화 해소를 주장하는 많은 분들이 하나같이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출신학교는 능력이다, 경제양극화랑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 요새는 국가장학금을 소득분위별로 주기 때문에 데이터가 다 있다. 고소득층(가계소득분위 9·10분위) 재학생 비중이 SKY는 46%에 달했고, 서울 8개 의대는 그 이상이었다. 국가장학금을 신청하지 않은 가계들도 있을 거다. 추정해 보면 상위 6개 대학의 고소득층 추정 학생 비중이 70%에 육박했다. 그만큼 경제적 배경이 대학을 통해 재생산되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이것의 문제는 SKY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좋은 일자리와 권력을 독점하기 때문에 계급과 부가 계속 세습된다는 것이다. 출신학교를 단지 개인의 능력이라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시정될 필요가 있다.
: 2016년도부터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 제정 운동을 했다. 문 정부가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에 도입하기도 해서 많이 아실 것 같다. 채용 과정에서 출신학교 정보를 블라인드 처리하고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 없이 차별하지 않도록 표준이력서를 의무화한 것이다. 해외경험, 어학성적, 출신학교, 학력은 물론 나이, 성별, 혼인 여부 등도 블라인드 처리해 직무능력만 보고 사람을 뽑을 수 있게 하는 게 내용이다.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 흥미로운 통계를 봤다. 부모의 학력과 소득을 집단별로 나눠 자녀의 과목별 성적을 확률 분포로 나타낸 것이었다. 부모가 고학력-고소득인 집단과 저학력-저소득 집단의 자녀의 평균 과목 성적이 가장 차이 나는 게 ‘수학’이라는 것이 흥미로웠다. 사교육걱정에서도 수학교육혁신센터가 출범한 것으로 안다.
: 우리 단체의 부속 수학교육 연구기관에서 출범했다. 이곳에서 ‘수포자’를 양산하는 수학교육에서 탈피한 대안교과서를 냈다. 시민들이 출자금을 내고 4년에 걸친 반복과 실험을 통해 완간했다. 교과서 제작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교육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수업 모델을 연구했다. 연수 시스템을 만들어서 현직 교사들에게 계속 피드백을 받아 수정하고 반영했다. 전국에 이 수업 모델을 기반한 수학교사 세미나팀이 있다.
: 현재 사범대 커리큘럼과 교육자를 선발하는 시험은 지식 위주이다. 가르치는 일은 절대 지식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혁신센터를 통해 교육자로 교육받고 평가되는 제도 마련 또한 촉구하고 있다.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교육혁신센터에서 발간한 수학 대안교과서. ⓒ복음과상황 정민호

학벌사회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는 반면, 이젠 학벌로 계급을 상승/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하나의 ‘신화’라는 입장도 있다. 소위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확률 자체가 이전 세대와 비교할 수 없이 어려워졌을 뿐더러,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좋은 일자리라고 믿는 직업들이 사라질 수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 SKY만 따지면 98%를 패배자로 만드는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은 그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도박을 하듯이 베팅해보는 거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목표는 낮아지더라도 욕망은 이어진다. 서열은 SKY 밑에도 있으니까. 할 수 있는 최선의 높은 곳으로 가야지 안전장치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고통의 시간에 스스로를 혹은 자녀를 내던지고 투자한다.
: 좋은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명문대라고 한들 좋은 일자리에 들어가는 건 소수의 몫이 될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입시 문제나 대학 서열 문제뿐 아니라 노동시장의 문제와 임금격차도 해결되어야 한다. 이것들은 노동운동 단체가 할 것 같지만 교육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다.

사교육걱정에서 진행한 릴레이 인터뷰를 흥미롭게 봤다. 그중 김상봉 교수는 대학서열 문제에 대해 ‘집단적 트라우마’ ‘외상 후 장애’라고 표현했다. 교육 분야 활동가이자 실무자로서 어떤 순간에 이런 걸 느끼나.   
: 김상봉 교수는 인터뷰에서 트라우마를 얘기하며 ‘우리는 인간으로서 자유롭고 소중하고 존엄한 존재라고 느껴본 적 없다’고 지적한다. 시험 성적으로 나라는 상품의 값어치가 매겨지고, 그게 우리 안에 내면화되는 나라라는 거다. 2014년 하반기에 우리 단체에서 ‘줄세우기 없는 학교 만들기’ 캠페인을 했다. 전국 22개 도시들을 돌면서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비교육적, 비인권적 줄세우기 제보를 받고 모니터링했다. 실무자들이 4-5인씩 조를 짜서 가볼 수 있는 도시들은 다 갔는데, 학업 성적으로 인간을 상품화하는 거의 모든 사례들이 나왔다. 그중 사회적으로 공분을 일으킨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급식 먹는 순서를 성적순으로 했다는 거였다. 고등학교는 더 노골적이다. 성적순으로 끊어서 그 아이들에게만 좋은 환경의 자습실을 제공한다. 특정 지역이나 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굉장히 만연한 문제다.
: 인권위에서 장학재단 문제에 대해 진정했다. 군 단위의 장학재단들이 SKY나 서울 상위 대학, 의대에 들어간 해당 지역 출신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차등해서 준다. 그 지역 대학에 가면 안 준다. 명목상으로는, 우수학생 장학금이라고 해서 지역 인재를 많이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서울에 간 학생들이 돌아와서 지역 발전에 이바지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서울에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은데 장학금을 차등해 주는 것에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문제 제기를 한 거다. 지자체가 마땅히 대답을 못했다. 그런 내용의 기사가 났는데 이런 댓글이 달렸다. ‘그럼 공부 잘하는 사람 주지 누굴 줘.’

분노하는 시민들이 있는가 하면 너무 익숙해져서 당연시하는 이들도 있는 것 같다.
: 한쪽은 좌절과 분노가 쌓이고 다른 한쪽은 그 문제에 익숙해져 무감하다. 우리 단체 회원인 학부모들도 이런 말을 한다. 학교 운영위원회에 들어가고 싶어도 자녀 성적이 낮아서 눈치가 보인다고. 학부모회나 학운위도 성적순으로 들어가는 거다. 내 아이가 공부를 잘해야 엄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학교에서도 인정받는다. 그런 학운위를 운영하는 게 정말 민주적인 학교를 운영하는 것일까.
: 공부를 잘하면 다 대접받아야 되는 걸로 인식을 해서 놀랐다. 또 하나 가슴 아픈 건 대학이나 성적 때문에 자신의 가능성을 재단하는 일이다. ‘난 지방대니까 여기까지야’ 하면서 스스로를 재단하고 내 능력조차 인정하지 않으면서 쟤는 좋은 대학 다니니까 나보다 나을 거야, 지레 생각하는 거다. 나도 대학 가서 이런 가치관이 바로잡히기까진 시간이 걸렸다. 12년간 학생들이 대학서열이 달려가야 할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고 경주하지 않나. 가해자이자 피해자로서 열등감과 우월감 모두를 느꼈다. 이 고통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학벌로 모든 게 결정되는 것이 아니구나, 사람마다 각자 잠재된 재능이 다르구나 알게 됐다. 서울대, 하버드대를 나왔다고 해도 이런 가치관의 한국사회에서 자라다보면 내 안의 의식들과 싸움을 할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들이 불합리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 트라우마의 대표적 예라고 생각한다.
: 한 명에게만 주는 기회를 더 많은 아이들에게 나누는 방식을 고민할 수 있는데, 우리 사회는 그런 상상을 하지 못한다. 소수의 아이에게 모든 혜택과 자원이 쏠린다. 성적순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사교육걱정을 소개하고 싶은데 내 아이 성적이 안 좋아서 꺼내기 어렵다는 회원 분도 있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의 부모인데 이런 운동을 하고 있는 게 자기합리화라고 생각할까 봐, 또는 이 자체로 부끄럽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교육 시스템을 바꾸자는 운동을 할 때 아이의 시험 성적이 필요한 건 아닌데, 우리 사회가 너무 시험 성적에 발목 잡힌 것이 아닌가. 암기식 시험이 한 아이의 지혜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게 아닌데도 성적이 굉장히 중요한 잣대라는 것이 모순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불행할까.
: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을 주제로 공모전을 했던 적이 있다. SKY 다니는 한 학생이 ‘군대에 갔을 때 명문대 재학 중이라는 것만으로 혜택을 얻고 기대를 받는 것만으로 불편했다’는 에세이를 냈다. 누구는 우대받고 좋을 것 같지만 이 구조 안에서는 아무리 우위에 있다고 해도 이 사람 또한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승자가 없고 모두가 피해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육 활동가로서 청소년 피해자, 가해자가 쏟아져 나왔던 n번방 사태는 어떻게 봤나.
: 우리 교육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가르쳐준 적이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도덕이나 윤리 시간에 외운 한 줄 문구가 아니라 아이들이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는 정도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스스로를 존엄한 존재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피해를 입어도 방어할 힘이 없고,  가해를 하면서도 상대의 존엄성뿐 아니라 나의 존엄성을 해치는 일이라는 걸 모르는 심각한 문제라고 봤다.
: K대 의대 동기생 성폭행 사건도 있지 않나. 성적과 좋은 학교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교육이 되니까 정말 중요한 가치와 교육은 소홀해지고 있다. 지식적인 것만 선별하지 태도나 성품은 검증하지 않는다. 공부를 잘하고 1분이라도 더 공부해야 한다는 이유로 청소 시간에 청소를 안 하는 학생도 교실에는 존재한다. 그런데 이게 용인이 된다. 정말 중요한 건 친구들과 업무를 나누고 교실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다하는 일 아닌가. 선생님들도 문제의식이 있지만 진학성적이 민감하게 작용하다 보니 제대로 된 교육을 못한다. 나와 타인을 존중하는 기본적인 가치에 대한 교육이 성적과 학교, 입시에 의해 압도되어버렸다. 친인척 행사가 있어도 고등학생은 안 가는 게 너무 당연해졌다. 공부에 의해 모든 게 유예되고 면제되는 게 당연한 일인가? 우선순위를 어른들이 정해놓고 괜찮다고 하는 게 아이를 위한 올바른 교육인가?

   
▲ "우리 교육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가르쳐준 적이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도덕이나 윤리 시간에 외운 한 줄 문구가 아니라 아이들이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는 정도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스스로를 존엄한 존재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피해를 입어도 방어할 힘이 없고, 가해를 하면서도 상대의 존엄성뿐 아니라 나의 존엄성을 해치는 일이라는 걸 모르는 심각한 문제라고 봤다." (정지현) ⓒ복음과상황 정민호

: 보통 청소년 범죄사건에 대해서 처벌을 강화해야 된다고 하는데 그런 면도 물론 있겠지만, 예방을 하지 않으면 범죄자만 양산하는 사회가 될 거다. 예방을 위해서는 무엇을 바꿔야 되나. 이걸 고민하고 에너지를 투입했으면 한다. 처벌을 강화하는 건 제일 쉬운 방법이다.
: 공부를 잘하는 아이 외에 나머지 아이들은 관심을 못 받고 방치되어 있는 것도 청소년 범죄의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21대 국회에 제안하는 4법 가운데 영유아인권법 제정 운동이 낯설었다. 운동의 취지와 현황을 알린다면.
: 소위 영어 유치원이라 불리는 곳들이 유치원이 아니라 유아 대상 학원이다. 서울시에 있는 반일제 유아 대상 영어학원 학원비 통계를 보면 월 100만 원이 넘는 것으로 나온다. 제일 심한 경우 학원비가 대학등록금의 4배 정도였다. 비용 문제뿐 아니라 아이들이 한창 모국어를 통해 관계 맺고 사회성을 길러야 하는 유아기에 이런 식으로 공부하게 하는 건 환경적·정서적 학대로 볼 수 있다. 아이들의 놀 권리를 보장하고 발달 단계에 맞는 교육들을 하기 위해 이런 부분을 충분히 규제하는 법들이 필요하다.
: 유아 대상 영어학원의 수업시간을 보면 중학교 수업시간과 맞먹거나 좀 더 높은 수준이다. 영유아기에 국제기준이 정한 쉬는 시간과 바깥 놀이 시간이 있는데 이걸 충족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모든 영어학원을 조사한 것은 아니지만 심한 곳은 중학교 수준을 육박하는 단어수와 난이도가 확인된 바 있다. 많은 교육자들은 영유아를 다른 취학 아동들과는 다른 특수한 시기라고 본다. 문재인 정부도 다른 이름이긴 했지만 영유아 인권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사실상 이 법은 유실된 상태다. 앞서 말했던 다른 세 가지 법도 문 정부의 공약이거나 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이어서 임기 내에 꼭 통과되어 교육 분야에서 확실한 변화들이 일어나길 바란다.

건강한 사교육이 가능하려면 어떤 전제가 필요하다고 보나.
: 비교육적이고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는 사교육도 있지만 일부 건강한 사교육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분들도 있다. 저희 실무자들 가운데 학원에서 일하시다 온 분들도 한두 분 있다. 회원들 중에도 현직인 분들도 있다. 건강한 사교육이 가능하려면 사교육을 선택하고 결정할 때 부모가 일방적으로 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필요와 의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어느 순간까지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 얼만큼 의존할 것인지 계획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충분히 대화해야 한다. 최대한 이윤을 얻기 위해 공포마케팅을 써서 아이들을 붙잡아두는 학원도 있지만, 자기목표를 달성한 아이들에게 학원 그만 나와도 된다고 말하는 학원이 늘어나면 좋겠다. 가끔 그런 소수의 분들을 만난다. 사교육에 종사하는 분들도 교육자라는 마인드가 필요하고, 사교육도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는 교육기관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 시민들 스스로 건강한 사교육을 판단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시하는 것도 우리 단체의 중요한 사업 중 하나다. 그 예로 소책자 발간 사업을 하고 있다. 

교육 문제를 얘기할 때 정작 학생들이 이야기하는 기회나 통로가 적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떻게 교육 정책에 아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을까.
: 예를 들면, 지난 공론화 위원회에서 아이들의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담는 시간은 적거나 없었다고 알고 있다. 수시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정시를 지지하는 사람들, 교육 전문가들의 논거를 취합하고 성인 시민들이 배심원단처럼 의사결정한 걸 표현했다. 아이들에게 당사자로서 문제의식이나 입장에 대해 제대로 듣지 않은 것이다. 또 하나 기억나는 일은 선행교육규제법을 위해 고3 학생을 패널로 섭외해서 국회에서 토론회를 한 적이 있다. 한 학생이 나와서 한 첫 마디가 ‘주위를 둘러보십시오’였다. 학생 당사자로서 친구들이 많이 온 줄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 학생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얘기였다. 우리 단체는 총선이 있기 전 처음 투표를 하는 만 18세 이상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새 국회에 기대하는 바를 묻고 카드뉴스로 제작해 공유하는 일을 했다. 반응이 무척 좋았다. 교육 제도나 학교 안의 구조적 문제를 민주적으로 개혁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지만 학생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플랫폼으로 우리 단체가 기능해야겠다고 느낀다.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사교육이 횡횡하는 이유를 공교육이 무너진 데서 찾는다. 물론 공교육은 회복되어야 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모든 것을 교육할 수 있다고 믿는 ‘교육 중독’ 자체를 비판한다. 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는 것도 존재하지 않나.
: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배부른 소리인 거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외고 1학년 학생들의 경우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이 5시간 미만으로 답한 비율이 셋 중 한 명이었다. 홍세화 교수는 프랑스는 고3 학생도 4시쯤 수업이 끝나서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다, 그 경험들이 다 교육이라고 말했다. 생각하고 사색하며 자기 것으로 체득하는데, 한국 아이들은 단순 지식을 머리에 넣기 바쁘다는 것에 분개해 했다.
: 김누리 교수는 한국 교육이 비교육이 아니라 반교육이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따라서 조금 바꾸는 게 아니라 교육 개혁이 필요하고, 반교육을 철저하게 바꿔야 한다는 거다. 절대 제대로 된 교육을 하고 있지 않다.
: 교육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사회 자체가 경쟁적이고 자원이 없을수록 교육도 사실은 틈이 없고 경쟁적일 수밖에 없다. 사실 유럽은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인프라가 있기 때문에 그런 교육제도가 가능한 것이다. 교육 문제가 교육에 한정될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체제 개선이 되어야 한다는 게 확인되는 지점이다.

   
▲ "또 하나 기억나는 일은 선행교육규제법을 위해 고3 학생을 패널로 섭외해서 국회에서 토론회를 한 적이 있다. 한 학생이 나와서 한 첫 마디가 ‘주위를 둘러보십시오’였다. 학생 당사자로서 친구들이 많이 온 줄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 학생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얘기였다. 우리 단체는 총선이 있기 전 처음 투표를 하는 만 18세 이상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새 국회에 기대하는 바를 묻고 카드뉴스로 제작해 공유하는 일을 했다. 반응이 무척 좋았다. 교육 제도나 학교 안의 구조적 문제를 민주적으로 개혁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지만 학생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플랫폼으로 우리 단체가 기능해야겠다고 느낀다." (홍민정) ⓒ복음과상황 정민호

학교 밖 청소년들의 교육권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나.
: 직접적으로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해서 중요한 과제로 붙들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대안교육이나 언스쿨링을 주요 과제로 삼는 다른 진영에서 활동하는 분들께서도 우리 사회에서 궁극적으로 회복되어야 하는 것은 공교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단체를 후원하고 지지한다.
: 승자를 위한 교육제도의 모순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는 비율이 많다고 알고 있다. 지금의 교육제도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학교 밖 아이들도 다시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찾아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첫 단추라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 활동하면서 마주한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을 텐데.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있다면.
: 제도를 변화시키는 굉장히 많은 부분은 정치권이 가지고 있다. 그쪽에서 반응이 없어 우리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울 때 무기력해지고 좌절하기도 한다. 그런데 회원 중 한 분이 지혜로운 말을 해줬다. ‘바위에 계란 쳐봐야 바위 끄떡도 안 한다. 그래도 바위에 얼룩은 생긴다.’ 이 말처럼 당장 눈앞에 결과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실망할 때도 있지만 변화되는 지점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더라도 중요한 건 언젠가 변화의 순간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 나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후원뿐 아니라 국회나 광화문에서 기자회견하면 열 일을 제쳐놓고 달려오는 시민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이 계시기에 그런 믿음이 생긴다.
: 교육을 바꾸기 위해 일하고 있지만 다른 아이들이 이미 저만큼 가고 있는 걸 봤을 때 부모로서 불안감이 몰려올 때가 있다. 우리 단체 회원뿐 아니라 자기 신념을 가지고 자녀교육을 하는 분들도 그럴 것 같다. 우리 아이만 너무 다르게 자라는 거 아닌가, 하는. 하지만 입시 경쟁 속에서 고등학생 자녀들을 바르고 건강하게 키워내는 선배 부모 들을 통해 마음을 다잡는다. 어떤 회원은 이런 말을 했다. ‘너무 불안할 때 사교육걱정을 알아서 우리 가정이 구원받을 수 있었다, 나도 한 가정이라도 구하기 위해서 (사교육걱정에) 참여한다.’ 그분들과 연대하는 힘 때문에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것 같다.

   
▲ "‘가난과 고통 속에 있는 타자는 나의 주인이다’는 레비나스의 철학이 우리 운동에 녹아있다고 생각한다. 내 자식만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입시 경쟁 속에서 고통받는 학생, 학부모, 교사, 과거의 피해자였던 시민을 해방시키는 운동이다. 비인권·비교육·반교육이라고 평가받는 한국 교육을 새롭게 하고 모두의 내면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 운동이 쓰임받고 있다고 믿는다." (정지현) ⓒ복음과상황 정민호

현재 입시경쟁에 압도된 상황에 놓인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 ‘노워리 기자단’이라고 회원 자녀분들 가운데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진로를 개척하면서 성장해온 학생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그걸 보면서 자기 인생을 자기로 사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이 이런 길이 안전한 길이라고 해도 내게 맞지 않는 길일 수 있고, 앞일은 누구도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 당장 중요한 것이 성적이고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기에 다른 생각을 하기 어렵고 그것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답답함이 있을 거다. 학생들 마음에도 부당함, 사회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 나서서 해결책을 내놓거나 목소리를 내지 못하더라도 그 문제의식을 붙들고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 꿈틀꿈틀하면서 개혁의 물꼬가 트여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시민들이 일어나 연대하는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단체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다. 많은 분들이 우리 단체를 사교육 담 쌓고 독야청청한 사람들만 일하고 후원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더라.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 단체의 최우선 핵심가치는 학생의 유익이다. 맹목적 중독이 문제지 필요하고 건강한 사교육이라면 할 수 있다고 본다. 사교육을 한다, 안 한다로 우리 운동이 분별되고 가름되는 건 아니다. 본질은 지금 우리 교육에 문제가 있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는 다른 교육이 실현됐으면 좋겠다. 어떤 학생이나 청(소)년, 시민들 누구든 참여해 즐거운 상상력을 발휘하며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길 바란다.
: ‘가난과 고통 속에 있는 타자는 나의 주인이다’는 레비나스의 철학이 우리 운동에 녹아있다고 생각한다. 내 자식만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입시 경쟁 속에서 고통받는 학생, 학부모, 교사, 과거의 피해자였던 시민을 해방시키는 운동이다. 비인권·비교육·반교육이라고 평가받는 한국 교육을 새롭게 하고 모두의 내면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 운동이 쓰임받고 있다고 믿는다. 복음과상황 독자들도 우리 운동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제도와 우리 삶을 바꿔나가는 데 적극 동참해 달라.

 

 

 진행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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