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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삶이 먼저, 제도는 그 다음입니다”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인터뷰
[322호] 2017년 09월 21일 (목) 17:19:40 옥명호 편집장 lewisist@goscon.co.kr
   
▲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복음과상황 오지은

지난 8월 31일 교육부는 수능 절대평가 1년 유예를 발표했다. 연계되는 여타 입시 제도와 정책을 함께 검토하고 연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교육부는 수능 일부 과목 절대평가(1안)와 전 과목 절대평가(2안) 두 가지 안을 두고 공청회를 진행해왔는데,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공동대표 송인수·윤지희, 이하 ‘사교육걱정’)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8.22-24)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수능 절대평가 찬성(51%)이 반대(28%)보다 훨씬 높게 나왔고, 1안(35%)보다는 2안(45%)에 대한 찬성률이 더 높았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찬성이 반대보다 대부분 훨씬 높게 나왔다. 〈문화일보〉의 ‘문재인 정부 100일-여론조사’(8.16)에서는 수능 절대평가 찬성이 51.4%, 반대가 28.8%였고, 한국리서치 여론조사(7.13)에서는 찬성이 60.1%, 반대가 39.9%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가 초중고 교사 2,077명을 대상으로 실시(7.4)한 여론조사에서는 51.9%가 수능 절대평가를 찬성했으며(반대 37.8%), 고교 내신 절대평가에도 55%가 찬성했다(반대 37%).

수능 개편 1년 유예 발표 후 지난 9월 2일, 흔히 ‘답이 없다’는 한국 교육정책의 개선을 위해 시민교육운동을 벌여온 송인수 사교육걱정 공동대표를 만났다. 그 자신 교직에 몸담았으며 현재 두 자녀의 학부모이기도 한 송 대표에게 수능 절대평가와 학종(학생부종합전형) 폐지, 자사고 및 특목고 폐지 등 굵직한 교육 현안에 관해 물었다. 사범대를 나와 교육대학원에서 교육철학(석사)을 전공한 그는 1989년부터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1996년 기독교사들을 중심으로 ‘좋은교사운동’을 설립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2003년 3월 교단을 떠나 ‘좋은교사운동’ 대표로 5년간 일한 뒤, 입시 사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2008년 3월 사교육걱정을 세워 지금까지 공동대표로 일해왔다.

 

― 지난 8월 31일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수능 개편을 1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 교육공약 1호로 알려진 입시제도 개편이 후퇴하는 거 아닌가.
수능 절대평가는 박근혜 정부가 지난 2015년 8월에 ‘2015 개정교육과정’을 발표하고 나서 1년 이내에 수능 개편안으로 나왔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후속 진행이 안 되어 여기까지 왔고,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수능 절대평가를 공약으로 발표하면서 현 정부 공약이 된 셈이다. 5월에 대통령 당선되고 나서 수능 개편안은 아마 7월경에 발표한다고 했는데 미뤄진 거다. 그런데 수능 개편안은 대학입시 정책의 핵심일 뿐 아니라 고교 교육정책과도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만 떼어서 발표하는 건 무의미할 뿐 아니라 위험할 수도 있다. ‘2015 개정교육과정’이라는 큰 틀 안에서 수능 개편안이 어떤 의미인지 통합적으로 정리되어야 하며, 파생되는 여러 효과를 극대화하는 안으로 확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연관된 여타 교육정책은 제쳐두고 하나만 뽑아 바꾸려고 하니 그 하나가 많은 국민들에게 불안을 주는 거다. 예를 들어 수능 절대평가를 실시할 경우, 동점자를 어떻게 할지, 내신은 또 어떻게 할지 관련되는 여러 문제가 있다. 그런데 정부가 수능 절대평가 결정을 1년 미뤘다는 것은 교육과정과 대입정책을 묶어서 합리적인 안을 발표하겠다는 의미이고, 따라서 1년 유예 발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 수능 개편과 관련하여 현행 ‘학종’(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개선 요구는 왜 나오는가.
학종은 입학사정관제라는 이름으로 참여정부 때 밑그림을 그린 후 MB 정부 들어서 본격적으로 도입이 되었다. 점수 기준으로 등수에 따라 선발하는 대학입시 제도는 학생들을 ‘객관식 문제풀이형 인간’으로 만들 수 있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한 것이다. 시험 점수만으로 선발하는 방식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할 때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진로(전공)를 고려하여 잠재능력이 있는지 적합성을 보면서 뽑으려면, 정량평가로는 알 수 없고 정성평가적 요소도 필요하다. 학생부에 점수와 등수뿐 아니라 학생의 잠재성과 진로(전공) 적합성 등을 판단할 풍부한 서술 기록을 담아내어 그걸 토대로 입학사정관이 학생을 선발하면 점수 위주의 입시 문화를 개선하는 한편, 학교교육 정상화에도 유의미한 것이다. 문제는 제도의 초점을 교과 수업 과정에서 점수 이면에 나타나는 학생의 잠재성을 파악한 기록에 맞추지 않고, 교과 이외 비교과 영역으로 확대한 것이다. 즉 입학사정관이 적합성이 맞는 아이를 파악하는 교과과정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학생들에게 독서활동, 소논문, 경시대회 등 과외 활동은 물론이고 자율동아리활동까지 따로 하게 만든 거다. 이에 더해 대학이 수시 전형 과정에 수능 점수로 별도의 커트라인(수능 최저등급)을 요구했다. 거기다 자기소개서나 추천서까지 내야 하는데, 학종은 무려 17가지나 되는 전형 요소를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복잡하고 부담이 큰 전형이다.

― ‘비교과 영역’과 ‘17개 항목’의 전형 요소가 현행 학종의 핵심인 셈인데, 이게 왜 문제인가. 정성평가로 학생을 선발하려면 교과목 이외에 다양하고 풍부한 영역의 활동과 관련 자료나 기록이 필요한 것 아닌가.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현행 학종이 ‘금수저 전형’이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학생이 대처할 수 있는 수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대학교수 자녀의 경우, 부모님이 봐주면 되니까 준비가 수월해진다. 부모나 집안의 자본 능력에 따라 학생의 준비와 대처, 결과가 결정되는 거다. 자율동아리활동만 해도, 일부 학교들의 경우 부모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해서 지원한다. 경시대회도 적잖은 학교가 애초부터 될 학생, 즉 전교 1, 2등 하는 학생에게 경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을 기회를 몰아준다. 소위 ‘흙수저’들에겐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전형 요소다.

둘째, ‘깜깜이 전형’이다. 내신 성적 5등 하는 아이는 붙는데 1등 하는 아이는 떨어지는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물론 잠재능력을 보고 뽑는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대다수 국민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더 근본적으로는 특목고 학생부와 일반고 학생부를 같은 값으로 보지 않는다는 의구심이 깔려 있다. 합격선이 특목고가 4등급까지면 일반고는 1등급이 되어야 한다는 의혹과 불신이 상당하다. 2009년 고려대에서 실제 그렇게 선발한 사실이 드러났다. 특목고 학생 7-8등급이 합격했는데 정작 일반고 학생 1-2등급은 떨어졌다. 이는 고교등급제 금지 조치 위반이다. 이 사례를 보면서 과연 고려대만 그랬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게 당연하다. 대학이 자의적으로 학생을 선택하는 데 근원적 문제가 있는 거다.

셋째, ‘학생 부담’이 문제다. 교과공부에 수많은 비교과 영역 스펙 준비에, 수능도 준비해야 한다. 아이들이 이걸 도대체 어떻게 다 할 수가 있나. 죽어나는 거다. 어떤 경우는 학원이 대신해주는 부분이 있을 거다. 특히 자소서는 학원에서 대필을 많이 해준다. 사교육걱정에서 2016년에 학생과 교사 2만5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학종과 관련하여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점이 ‘준비 부담’으로 나타났다. 그때 우리는 비교과 영역을 없애고 교과 영역 중심으로 학종을 개선하라고 계속 요구해왔는데 교육부는 꿈쩍도 하지 않더라.

― 사교육걱정에서는 대안으로 ‘학생부 교과 정성전형’을 내세웠다. 이 방안이 현행 학종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인가.
물론 충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 주관적 요소나 기준 자체를 인정하고 자유롭게 뽑게 한다는 점에서 ‘정성평가’ 요소를 담고 있다. 그러나 학생 부담은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교과 영역과 공식 동아리활동, 교과 세부 특기사항, 그리고 (교사추천서 대신) 비공개 교사 종합평가, 이렇게 네 가지 요소로 학생을 선발하자는 게 우리 제안이다. 물론 대학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다. 자소서로 아이를 좀 더 알 수도 있고 면접 때 자료도 되는 반면, 우리는 서류 평가로만 하자는 거니까. 여러 가지 평가 요소가 많을수록 아이들을 가려낼 가능성이 많은데 4가지로 줄어들면 볼 게 없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문제는 교과 세부 특기사항이라든지 교과 평가를 개선해서 해결할 일이지 비교과 영역 요소를 늘려서 풀 문제는 아니다.

이에 대해 대학 측의 문제제기가 예상되지만, 그럼에도 현행 학종에 대한 국민 여론이 이제 견딜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물이 둑을 넘어 범람하기 전에 정부가 개선책을 마련했어야 했는데, 이제는 별다른 방도가 없다. 다만 학종이 학교교육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아직 있다면, 등급을 매기더라도 5지 선다가 아닌 논·서술 평가 등 내신 평가 및 그를 위한 수업 혁신을 함께 이루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깜깜이 전형’ 문제를 없애려고 5지 선다 수능 정시 중심으로 가자고 하면, 시대 흐름에 맞지도 않다. 그 대신, 정부에서 ‘대학입시 투명위원회’를 구성하여 대학마다 입시 결과를 백서로 만들어 정부에 제출하게 한 후, 학생 선발 과정에서 비윤리적이고 비교육적이고 불법적인 차별행위가 없었는지를 점검하자는 게 우리 안이다.

현행 학종을 폐지하고 ‘학생부 교과 정성전형’을 도입하자고 하니, 그것도 결국 학종 아니냐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분들은 그냥 1등부터 점수로 줄 세워서 등수대로 대학 들어가는 게 가장 공정한 최상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공정성으로만 따지자면 원 점수 다 주고 전국석차, 종합석차, 과목석차 매겨서 뽑으면 간단하다. 이게 속 시원하다면서 일부 국민들이 이 방식을 원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우리 교육은 20년, 30년 뒤로 퇴보하는 거다. 그렇게 할 거라면 교육기관이 왜 존재하나. 아이들을 인재로 잘 키워서 국가의 미래를 감당할 역량을 갖추게 해야 하는데 상대평가 점수로만 줄 세우면 나라 미래가 어떻게 될까. 선진국은 지금 4차 산업혁명으로 떠들썩한데,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을 점수로 줄 세우기 하자고 한다. 이건 결국 아이들의 잠재능력과 학교 교육을 부실하게 하여 이 나라를 침몰하는 타이타닉호로 만들 뿐이고, 아이들에게 구명보트 타기 위한 순서 경쟁을 하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구명보트를 탄 소수만 살아남는 것보다는 튼튼한 배를 만들어서 모두 함께 사는 길을 만드는 게 국가교육정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일부 국민들은 국가의 미래보다도 당장 우리 아이가 피해를 보느냐 안 보느냐가 중요한 모양이지만, 정부는 국가 미래도 생각해야 하는 거다. 그게 2015 개정교육과정의 목표였다. 엄청 많은 지식을 주입하여 5지 선다형 문제풀이에 맞는 암기형 인간을 만들어내 봐야 그 능력은 앞으로 별 쓸모가 없다. 암기나 정답 찾기에서 훨씬 뛰어난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대체하는 사회에서는 다른 유형의 인재를 키워야 한다. 공정성만 내세워 점수로 줄 세우는 건 옛날로 돌아가자는 거고, 그건 쉬운 방식이다. 몰라서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 "정부에서 ‘대학입시 투명위원회’를 구성하여 대학마다 입시 결과를 백서로 만들어 정부에 제출하게 한 후, 학생 선발 과정에서 비윤리적이고 비교육적이고 불법적인 차별행위가 없었는지를 점검하자는 게 우리 안이다." ⓒ복음과상황 오지은

― 지금까지 나온 역대 정부의 교육정책을 놓고 평가해 볼 때, 2015 개정교육과정안이 가장 낫다고 볼 수 있나.
2015 개정교육과정이 이전 교육과정과는 정책 목표가 확연히 다르다. 20년 전인 1995년에 ‘5·31 교육개혁’ 조치와 연동해서 1997년에는 소위 7차 교육과정이 개발되었다. 당시 소위 세계화 붐이 일어나면서 교육도 그 흐름에 맞춰야 한다며 ‘경쟁’을 최우선으로 강조했다. 둘째로는 ‘수월성’을 강조했는데, 당시 이건희 회장이 ‘한 명의 천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한 이야기가 그 맥락이다. 셋째가 ‘교육 다양성’으로, 고등학교를 다양한 유형으로 만들어 소위 ‘교육 소비자들의 선택’을 보장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2015 개정교육과정의 문제의식은 지난 20년간 우리 교육을 이끌어온 교육개혁 담론의 가치가 이제 그 용도를 다했다는 데 있다. 그동안은 세계화에 발맞춰 경쟁을 통해 수월성을 추구하는 것이 주요 가치였지만, 2015 개정교육과정은 ‘창의적 사고’ ‘협력과 의사소통’에 초점을 맞추었다. 다양성의 가치를 추구해 20년을 끌고 왔더니, 입시 실적을 기준으로 다양한 고교들 간의 서열화가 진행되고, 중학교의 고교 입시 경쟁은 강화되며, 그로 인해 학교 교육은 오히려 획일화되는 문제가 확인되었다. 2015 개정교육과정은 이러한 교육 내용의 획일화와 입시 중심의 학교 서열화는 더 이상 안 된다는 반성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게 과거의 교육정책에 대한 반성과 새 시대의 인재상에 맞는 교육 혁신을 위해 정책적으로 설계된 2015 개정교육과정은, 과거와는 매우 다른 가치, 즉 창의 융합적 능력, 협업-의사소통 능력 등을 핵심가치로 잡았다. 그런 능력을 키우기 위해 주입식 암기에서 탈피하는 수업 방식의 혁신이 필요했다. 따라서 교과 지식의 양을 30% 덜어내 교과 진도에 주력하기보다 교사가 자유로운 수업을 시도하게끔 하자는 취지에 맞게 새로운 교과 내용과 수업 방식 그와 연동되는 새 평가 방법을 이끌고, 내신이나 수능도 거기에 호응되게 바꾸려 했다. 이 개정안에 따라 수능도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중에 어떤 것이 더 호응될지를 따져야 했는데, 협업과 상대평가는 서로 상충된다. 협력은 서로 격려하면서 생각을 교환하고 문제를 집단적으로 풀어내는 능력인데, 상대평가를 하면 누가 그렇게 하겠나. 그래서 내신과 수능 등 평가제도가 절대평가로 바꿔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 "글로벌 시대에 전 세계의 기업 경쟁이 날로 더 치열해지는 현실이기에 내부적으로는 더 철저히 협업해야 한다. <포춘>이 꼽은 500개 세계 유수의 기업들 중 70%가 절대평가로 직원 평가를 한다. 기업의 경쟁력은 내부 협업인데, 그에 최적화된 평가가 절대평가인 것이다."  ⓒ복음과상황 오지은

― 수능 절대평가가 왜 중요한가? 상대평가보다 절대평가 방식이 좋다는 사례가 있나.
대표적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사례를 들 수 있다. 빌 게이츠 후임인 스티브 볼머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았던 10년 동안 회사가 휘청거렸다. 이유를 분석해보니 크게 두 가지 잘못된 결정 때문이었다. 첫째는 인수합병(M&A)을 잘못했는데, 부실 기업, 핀란드의 노키아와 미국의 모토롤라를 사들이는 결정을 한 것이다. 둘째, 직원 인사관리에서 상대평가제를 도입한 결정이었다. 상대평가에 따라 상위 20%는 인센티브를 주고 하위 10%는 퇴출시켰다. 그렇게 매년 직원들을 상대평가 줄 세우기 경쟁에 몰아넣었는데, 세계의 여러 기업들이 그렇게 해왔고 한국 기업들도 따라 해온 방식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박근혜 정부 시절에, 공기업과 공무원 사회도 성과연봉제를 적용하려고 했던 거다. 직원 인사관리에서 상대평가 제도를 맨 처음 설계한 사람은 잭 웰치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이었는데, 그의 가설은 ‘직원들을 줄 세우기로 경쟁시키면 회사 이익이 극대치로 수렴된다’였다. 그런데 스티브 볼머가 그 제도를 적용했더니 오히려 회사에 큰 손실을 안겨주었다. 이를 두고 역사는 “마이크로소프트사 직원들은 동료들과 경쟁하는데 몰두하느라 경쟁사인 구글과 경쟁하기를 멈추었다”라고 평가한다.

글로벌 시대에 전 세계의 기업 경쟁이 날로 더 치열해지는 현실이기에 내부적으로는 더 철저히 협업해야 한다. <포춘>이 꼽은 500개 세계 유수의 기업들 중 70%가 절대평가로 직원 평가를 한다. 기업의 경쟁력은 내부 협업인데, 그에 최적화된 평가가 절대평가인 것이다. 기업이 선해서 직원 평가를 그렇게 전환한 것이라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절대평가가 필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직원들에게 요구되는 능력이 협업이라면 초중고 시절부터 그 능력을 키워야 하고, 따라서 모든 평가 체제가 절대평가로 전환되어야 한다. 선진 국가의 교육 평가가 대부분 절대평가에 기반하고 있는 이유다. 전 세계 기업들과 학교들이 미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절대평가 환경 속에서 협업과 문제해결력 등을 강조하는 마당에, 우리는 여전히 암기와 정답 풀이만 강조하면서 학생들끼리 상대평가를 통해 내부적으로 경쟁시켜 살아남는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나라 망할 일이다!

― 사교육걱정은 자사고 및 외고, 과학고, 국제고 등 특목고가 고교서열화를 조장한다면서 폐지를 주장해왔는데, 그보다는 더 근원적인 대학서열구조나 학벌주의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 아닌가.
대학서열구조가 완전히 달라지고 기업에서 학벌을 중시하지 않게 된다면 전단계인 특목고 자사고 입시 경쟁은 완화될 거다. 그 변화를 위한 노력은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해나가야 한다. 이와 관련해 사교육걱정이 ‘출신학교차별금지법’을 제안한 것이 국회에서 발의되었고, 문 대통령은 공무원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했다. 이런 변화가 계속 쌓이면 의미 있는 변화도 나올 거다. 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특목고 폐지는 별 의미 없다는 관점에는 동의할 수 없다. 대학서열체제나 학벌주의와 무관하게 고교서열체제 하에서 무척 곤혹스러운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서열체제가 없었던 과거엔 대학서열체제가 있어도, 중학교 아이들은 숨 쉬고 살았다. 입시 경쟁은 고등학생 때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런데 지금은 부모들이 고등학교 입시를 대학 입시의 1차 관문으로 생각한다. 그러니까 중학교 단계에서부터 이미 대학입시 경쟁이 시작되는 거고, 사교육 경쟁이 격화되는 거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2016년 한 해 초중고 사교육비가 월평균 25만6천 원이었다. 초등학교는 월평균 24만1천 원, 고등학교는 26만2천 원인데 비해 중학교는 27만5천 원으로 가장 높았다. 이게 뭘 의미하느냐 하면, 1차 대입 전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싸움이 중학교로 내려와서 격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2차 전선인 대입에서 이미 특목고 출신을 우대한다는 시그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신 등급이 낮아지더라도 대학이 입시에서 우대하는 특목고로 들어가는 게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과거 중학교 단계는 대학입시 경쟁 사교육 무풍지대였다. 이 시기에 아이들은 사춘기를 거치면서 맘껏 자유를 누렸다. 사춘기는 자기를 찾기 위한 탐색의 과정이고 부모 의존에서 벗어나 독립적 존재로 서기 위해 기존 질서와 권위에 부딪히는 자유와 일탈의 시기가 아닌가. 그런데 성장을 위한 이 소중한 시기가 입시 때문에 억압당하고 있어서 이제는 중학생이 되어도 사춘기가 없다. 진로를 탐색하는 나이의 중학생들에게 지금의 고교입시 전형은 진로를 빨리 결정하고 들어오라고 겁박한다. 진로 성장 발달에도 맞지 않다. 그렇게 사교육에 의존하는 아이들은 자립심이 없는 아이로 자란다. 올해 신생아가 사상 최초로 40만 명 이하로 떨어진다는 전망이 나온다. 경제활동 인력이 적어지고 부양해야 할 인구는 많다면, 경제활동 인구의 능력이라도 획기적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어렵다. 지금 아이들은 입시경쟁에 치이면서 사교육과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보니, 자기 결정권이 약한 허약한 존재로 양산된다. 큰일이다.

― 특목고를 통해 우수한 아이들이 배출되는 면이 있지 않나.
과연 그럴까? 몇 년 전 우리 단체가 중3 학생들과 고1 학생들 4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왜 특목고를 가려 하는지, 특목고 가면 뭐가 좋은지 물었더니, 1순위가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것, 2순위가 면학 분위기가 좋다는 거였다. 특목고 아이들은 왜 일반고에 비해 덜 떠들고 소위 면학 분위기가 좋은 걸까? 간단히 말하자면, 떠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파트 평수가 비슷하고 부모들의 사회적 지위, 장래희망이 비슷한 동질집단의 아이들을 모아놓았으니 이심전심인데다, 이질적인 친구들과의 공존을 위한 갈등 해소에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는 거다. 이질적인 아이들이 모여 수업 분위기가 산만한 일반고는 그래서 싫다는 거다.

반면에 최근 OECD 보고서는 미래사회의 핵심역량으로 자립심, 문제해결력, 소통능력 이 세 가지를 언급하면서, 소통능력에 관해 단서를 달았다. 소통능력이란 ‘이질적인 집단’ 내에서의 소통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즉, 동질 집단 내에서의 소통은 진짜 소통이 아니라는 것이다. 외고, 자사고, 과학고 아이들은 대부분 동질집단이기에 별다른 소통능력이 요구되지 않는다. 안에서 자란 아이들이 좋은 대학 가서 나중 좋은 직업, 가령 교사가 되었다고 치자. 그 교사들이 특목고로 발령받는가? 아니다. 태반이 일반 중고등학교로 배정받는다. 거기서 만나는 아이들은 자기 생을 통해 별로 만나보지 못한 특성을 가진 아이들이다. 면학분위기 망친다는 이유로 만남을 기피했던 대상들인 것이다. 그런 아이들 앞에 선생으로 섰는데, 제대로 가르침이 가능할까? 수업을 해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기 말을 못 알아들을 것이고, 더 심각한 것은 그 아이들이 왜 자기 말을 못 알아듣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엘리트 코스만 밟아온 자기 경험으로는 도무지 납득이 안 가는 상황들이 터져 나온다. 교사의 즐거움은 무엇인가? 아이들의 성장과 변화 아닌가? 교실에서 줄곧 엎드려 잠만 자는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미래에 대한 자극을 주어 살아가게 해야 하는데, 평상시 그런 아이들을 겪어본 경험이 없으니 어디를 찔러야 아이들의 영혼을 자극할 수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 결국 교사로서의 자신감을 가질 수가 없게 된다. 과연 그게 성공한 삶일까?

   
▲ 사진: 사교육걱정 페이스북

특목고를 통해 ‘분리 교육’을 시키는 방식이 당시엔 편하고 좋은 것 같지만 결국은 아이들의 경쟁력, 나아가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따라서 이런 식의 동질집단끼리의 분리 교육은 우리 사회에 해롭다. 지적 능력뿐 아니라 소통능력도 중요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다양하게 섞어 길러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자사고 외고 과고는 물론, 영재고도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대학서열체제와 취업시장의 학벌주의 문화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변화가 쉽지 않다 하여 특목고 중심의 고교서열체제를 이 상태로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 ‘대입 1차 관문’으로서 특목고 입시 경쟁 대열에서 기독교인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내 아이’의 일이기 때문 아닐까. 두 자녀를 키우는 기독교인 학부모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나.
어려운 문제다. 두 가지 차원에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교육 질서와 제도에 우리 아이들을 순응시키면 앞서 말했듯 미래 경쟁력이 떨어지고 국가적으로도 위험하므로 ‘뜻 있는 개인’들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 거대한 흐름에서 나라도 빠져나와야겠다고 생각하여 독자적인 길을 가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제도와 구조가 개인의 선택에 미치는 결정적 영향력은 엄청나다. 기존 제도와 법의 틀에서 벗어나 자기 선택을 달리 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비교육적인 교육 질서와 제도에서 탈출하려는 개인의 힘겨움을 생각할 때, 현 구조에 불가피하게 순응하는 개인의 선택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두 번째 차원, 즉 기독인들은 좀 달리 선택해야 하지 않나 싶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즉,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죽어서 가는 내세의 삶의 원칙으로 유보하지 않고 지금 이 시대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부르심을 입은 것이다. 따라서 내 아이, 내 가족과 관계된 문제 앞에서 우리는 부모로서 하나님 나라 가치를 따라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부의 선택과 자식의 선택 과정을 거칠지라도 부모 중 한 사람이 중심을 잡으면 아이들에게도 일정한 정도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 진로 교육과 관련된 결정은 누구나 어렵다. 선행학습을 할지 말지, 3-5세부터 시작되는 과열된 영어 조기 교육 흐름에 어떻게 대응할지, 사립초등학교 보낼지 공립을 보낼지, 집 근처 공립학교로 보낼지 거리가 좀 멀어도 면학 분위기 좋다는 학교로 보낼지, 중학교 입학 후 특목고 준비를 시킬지 일반고로 보내야 할지 모두 어려운 결정이다. 그 결정을 표준화해서 모든 가정들에게 똑같이 하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나까지 그 뒤에 숨으면 안 되지 않겠는가. 나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 구체적으로 어떤 ‘선택’을 말하는 것인가.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는 제도와 법률과 환경의 변화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지금의 제도가 잘못되었다는 문제의식과 함께 나는 다르게 살겠다는 실질적인 선택이 있어야만 새로운 질서와 제도를 요구하는 힘이 생기는 거다. 사교육걱정 공동대표로서 내가 시민들에게 낡은 제도를 바꾸자고 말하고 그것에 힘이 붙으려면 새로운 제도에 담길 새 삶을 내가 먼저 살아야 한다. 현 제도에 찌든 삶을 살면서 새 세상을 만들자고 말하기는 어렵다. 앞서서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 나타나서, ‘이 삶이 좋고 풍요롭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삽시다. 그리고 이 좋은 삶을 방해하는 낡은 제도를 방치하지 맙시다. 우리의 삶을 지키기 위해 저 낡은 질서를 바꿉시다’ 그렇게 외쳐야 한다. 즉, 삶이 먼저 오고 뒤이어 제도를 바꾸어가는 것이다. 나부터 새로운 의식과 삶을 살면서 새로운 제도를 요구해야 되는 것이다. 특히 중심에 선 사람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교육걱정 대표로서 내가 가장 긴장하는 지점이 바로 그거다. 내가 앞장서서 살아내지 못하면 나는 머리 깎인 삼손이 된다. 지금까지 내 선택이 모두 잘됐다고, 완벽했다고 결코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뜻을 같이 하는 4,500여 회원들이 새로운 삶을 살겠다며 참여해주니 힘이 나고 나도 많이 망가지지 않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 사교육걱정의 학부모 강좌인 ‘등대지기 학교’에서 맡은 강의 제목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은 이미 왔습니다”이다. ‘이미 왔다’고 단언하는 배경이 궁금하다.
우리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제도와 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오기는커녕 작년 사교육비 지출은 역대 최고였다. 그러나 이 낡은 질서 앞에서 용감하게 새로운 삶을 앞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벌써 4,500명이나 나타났고, 전국적으로 70개의 지역별 공동체가 있다. 그러니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은 ‘이미’ 왔다고 선언하고 싶다. 그 세상의 가치와 방식을 이미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렇게 있는데, 아직 오지 않았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나. 새로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나타났으면 새 세상이 온 것이다. 마치 하나님 나라 원리와 같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와 ‘아직’의 긴장 사이에 있다고 하는데, 이미 왔다는 말이 하나님 나라가 완벽하게 구현되었다는 의미가 아닐 것이다. 완벽한 구현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심으로 이뤄지겠지만,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삶의 가치와 생활 윤리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출현했다면 그 나라는 이미 임한 것이지 않은가.

‘이미’와 ‘아직’의 긴장 가운데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 의미를 나는 사교육걱정 운동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아직’ 오지 않았지만 ‘이미’ 왔다는 의미는 그것이다. ‘이미’를 ‘아직’으로 계속 확장해나가는 것이 내 과제지만, 이 운동이 ‘이미’ 승리한 운동이라고 생각하며 일한다. 우리가 추구하고 요구하는 새로운 제도 아래서 보장되는 가치를 이미 누리며 살다 보니 운동하는 사람들이 짜증을 안 낸다. 앞장서 그 가치를 누리지 못하고 박탈감을 안은 채 없는 것을 쟁취해내려고 하면 운동이 과격해지기 쉽고, 원하는 것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에너지가 급속히 냉각되어 냉소에 빠질 수 있다.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시민운동이 상당 부분 그럴 위험이 있다. 그러나 추구하는 가치를 이미 앞장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박탈감이 아니라 충만에 잇대어 일하는 것이기에 운동의 생명력이 오래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교육걱정이 한국 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 ‘이미’와 ‘아직’의 긴장과 의미를 사교육걱정 구성원들 사이에 공유하고 있나.
우리는 기독교 단체가 아니다. 위의 이야기는 나의 믿음에 속한 것이다. 그러나 그 핵심 원리를 회원들은 잘 알고 있다. 이미 우리 회원들은 줄 세우기 교육 구조 속에서 자신은 그 구조에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그렇게 새로운 생활 실천에 참여하는 집단적 흐름이 만들어져 있다. 대화하고 실천하는 이런 흐름들이 사교육걱정 설립 이후 지난 9년간 지속되어 왔다.

― 앞서 말한 70개 지역별 공동체는 어떤 형태의 모임인가.
우리 회원들이 단순히 후원자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새로운 생활을 일구어가는 존재로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런 마음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이다. 쉽지는 않은 일이다. 대체로 옆집 이웃이나 아이들 친구 엄마를 만나면, 아이 교육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서로 조장하기 쉽다. 그래서 전체 회원들을 대상으로 각 지역별로 정기 모임을 갖도록 조직했다. 처음엔 한두 곳으로 시작했다가 이제는 전국적으로 70개 지역에서 정기 모임을 가지면서 자기 고민과 아이들 교육에 대한 해법을 그 안에서 함께 논의하고 있다. 이런 지역별 모임은 일종의 ‘새 생활 센터’ 같은 곳으로, 사교육걱정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여는 강좌에 참여하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지역별로 모임에 연결해주고 있다. 대다수 시민단체에는 이런 모임이 없다. 대부분 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회원들의 의식 개선까지 아우르는 경우가 드물다.

― 사교육걱정이 ‘사교육을 반대하거나 없애려는 단체’라는 오해가 여전히 있는 것 같다. 그 이유와 대처방안을 내부적으로 논의한 바가 있나.
아이들이 입시경쟁 때문에 한 명도 죽지 않는 세상, 입시를 위해 단돈 만 원도 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우리 단체의 궁극적 목표이다. 사교육을 없애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그냥 온 국민들이 개인적 결단으로 사교육을 안 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적절한 운동 전략이 아니다. 사교육을 강요하는 제도와 구조를 방치하면 개인의 결단은 확대되지 못한다. 사실 사교육은 그림자이지 그 실체는 공교육의 부실과 학벌 차별의 사회구조, 대학서열의 문제다. 실체를 해결하는 게 더 근원적인 목표다. 그런 근본적 제도 변화가 오기 전 사교육은 불가피하겠지만, 그럼에도 학원에서 제공하는 불량 상품을 구매하지 않도록 부모들이 똑똑해질 필요는 있다. 해롭거나 오남용되는 사교육 상품 유통과 소비 행태의 대표적인 예가 ‘선행학습’이다. 그래서 부모들에게 현명한 사교육 소비를 촉구하는 일도 한다.

사교육걱정에 대한 오해와 관련해서는, 대중들은 저마다 자신의 해석 방식으로 이해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우리가 낸 소책자가 250만 부가 판매되었는데 《아깝다 학원비!》 《학원 없이 살기》(이상 비아북) 《굿바이 사교육》(시사IN북) 같은 책으로 인해 직간접으로 사교육을 아예 반대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을 거다. 또한 우리 단체에 갖는 높은 기대치 때문일 수도 있다. 학원비 때문에 힘겨운 분들로서는 우리 단체 이사였던 서천석 박사의 자녀가 영재고를 다닌다는 보도를 보고는 상대적 박탈감, 배신감 같은 것을 느꼈을 수도 있다. 우리 단체에 대한 준엄한 기대치를 고려해야 하겠지만, 그런 비판은 우리 단체가 취해온 공식입장 때문은 아닐 것이다. 만약 사교육을 없애는 게 목표라면 전 국민 계몽운동을 벌이면 되는데 왜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치겠나. 사교육걱정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더 폭넓게 소통하기 위해 커뮤니케이션 전반을 고민하고 있다.

   
▲ "이념 공세, 신상 털기 공세는 목적하는 바가 있어서다. 즉, 진짜 이념적으로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잘못된 세상을 바꾸는 일에 영향력이 크니까 견제가 들어오는 것이다. 따라서 공세가 시작되었다면, 그만큼 우리가 원하는 세상으로 한발자국 더 가까이 간 것을 의미하고, 따라서 그런 비난은 놀랄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다." ⓒ복음과상황 오지은

― 최근 <월간 조선> 기사에서 “사걱세가 문재인정부의 교육싱크탱크라는 소문”까지 돈다면서 마치 사교육걱정이 청와대와 유착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이런 식의 언론 보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우선,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약칭은 ‘사교육걱정’이다. 대외적으로 누누이 알리고 강조해왔는데, 어감이 좋지 않아서 쓰지 말아달라고 요청하는 ‘사걱세’라는 약칭을 자꾸 쓴다. 자유한국당이 ‘한국당’이라는 약칭을 써달라고 할 때, 언론에서 ‘자유당’ 혹은 ‘자한당’이라고 쓰지는 않지 않나. ‘사걱세’라고 쓰더라도 이젠 별 무신경해졌지만, 굳이 공식 요청한 약칭을 안 쓰고 자기네 편의대로 쓰는 게 바람직해보이지는 않는다.

언론의 왜곡 보도는 계속 있어온 일이다. 최근 〈월간 조선〉 기사에 대해서는 대응 여부를 아직 최종적으로 결정하지는 않았다. 창립 당시에 〈월간 조선〉은 ‘사교육걱정’이 진보좌파 단체들이 세포분열해서 나온 단체라고 보도했다. 그 근거를 들이댄 게 윤지희 공동대표가 참교육학부모회 대표 출신이라는 거였다. 그래서 내가 기사 쓴 기자에게 메일을 썼다. 어떤 단체를 “진보좌파”로 규정하려면 그 단체의 정책을 보고 판단해야 하지 않느냐, 그런데 정책 발표 보도자료 한 건 내지 않은 막 출범한 단체를 도대체 뭘 보고 그렇게 단정하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공동대표인 나는 보수 기독교인인데 왜 나는 투명인간 취급하느냐, 그건 잘못된 것 아니냐고 정중히 이야기했다. 그 기자가 나중에 찾아와서 자신이 쓴 기사에 대해 사과했다. 몇 년 전 곽노현 교수가 서울시교육감이 됐을 때였는데, 나를 인사위원회 위원으로 추천하자, 그 명단에 있는 내 이름을 보고 당시 〈조선일보〉 등 여러 언론사에서 나를 진보좌파 인사라고 보도했다. 즉시 보도자료를 내고 〈조선일보〉 및 여러 언론사 기자들에게 정중하게 항의메일을 보내서 바로잡았다.

우리 운동이 모든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운동인데 정치적으로 한쪽으로 규정당하는 왜곡된 프레임에 갇히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초창기 때는 건건이 대응하고 바로잡았다. 사교육 문제는 진보든 보수든, 돈이 있건 없건 모든 국민과 더불어 함께해야 하는 이슈인데, 우리 단체를 진보좌파라고 규정해버리면 마치 이 문제가 진보좌파 국민들의 문제인양 오도될 수 있지 않겠는가. 사교육 문제가 온 국민의 문제이지 어떻게 진보와 보수로 갈라 칠 사안인가. 사교육 때문에 돈 없는 국민만 힘든 게 아니라 사실은 부자집 아이들이 더 고통 받는다. 아마 공부로 인한 자살 통계를 분석해 보면, 소득 상위계층 혹은 성적 상위권 학생들이 더 많을 것이다. 사교육 문제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교육걱정’은 처음부터 특정 계층만의 운동이 아닌 대중 운동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초기에 편향되거나 왜곡된 언론보도에 대해 기민하게 대응했었다.

그러나 그때 동시에 결심한 것이 있다. 어떤 의제를 두고 제대로 싸움을 벌이는 시점, 즉 나와 우리의 전쟁이 시작될 때에는 본격적으로 우리를 진보니 좌파니 색깔을 씌우더라도 호들갑을 피우며 반발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념 공세, 신상 털기 공세는 목적하는 바가 있어서다. 즉, 진짜 이념적으로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잘못된 세상을 바꾸는 일에 영향력이 크니까 견제가 들어오는 것이다. 따라서 공세가 시작되었다면, 그만큼 우리가 원하는 세상으로 한발자국 더 가까이 간 것을 의미하고, 따라서 그런 비난은 놀랄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다.

― 기사에는 대통령의 공약 채택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취지의 내용도 나온다.
〈월간 조선〉은 마치 우리가 현 정부와 밀착되어 있어서 영향력을 끼친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그들이 문재인 대통령 교육공약 1호라고 보도한 ‘수능 절대평가’는 원래 사교육걱정이 내세운 정책 제안인 것은 틀림 없다. 그러나 그것은 문 대통령 쪽과 우리가 긴밀한 관계여서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라, 지난 대선 당시 우리가 모든 정당 후보들에게 관련 공약 수용을 요구했고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당의 대선 후보들이 공약으로 수용한 정책안이었다. 오히려 우리의 정책안을 소극적으로 받은 곳이 민주당 캠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만약 홍준표 후보를 제외한 4개 정당 후보 중 누가 대통령이 되었더라도 그가 내세운 교육 공약은 곧 우리의 정책안이었던 셈이다. 우리의 어젠다를 내걸고 우리의 싸움을 제대로 벌이는 지금, 〈월간 조선〉은 “청와대 위에 사걱세 있다”는 식으로 흠집내기 보도를 하지만, 청와대 위에 국민이 있지 어찌 특정 시민단체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젠 때가 차서 그런 부당한 공세가 찾아오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놀라지 않는다.

우리를 이념적으로 덧씌우는 시도들은 성공하기 어렵다. 9년 동안 해온 우리 운동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간 이념적인 바탕 위에서 뭘 논의하거나 주장한 적 없고 데이터를 가지고 이야기해왔다. 동시에 국민 신뢰와 내부적 사고 예방을 위해 ‘단체윤리규정’을 만들어서 우리를 점검해왔다. 우리는 연구 결과나 데이터를 우리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절대 마사지하지 않는다. 또한 투명 운영을 위해 단체 설립 때부터 유료 회계 감사를 해오고 있는데, 당시 1년 예산이 7천만 원 가량이었는데도 200-300만 원이 드는 회계감사를 받았을 정도다. 동시에 행정감사도 받고 있다. 물론 그렇게 빈틈없이 해도 사고는 터질 수 있다. 〈월간 조선〉은 우리를 비판하면서 정부 쪽보다는 시민들과 더 소통하라고도 했다. 영향력의 바람을 빼고자 함인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 주문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정부 정책에 더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는 시민들과의 소통을 통한 힘이 중요한데, 이는 이제껏 우리가 취해온 중요한 전략이기도 하다.

― 개인적으로도 그동안 여러 비난과 공격을 당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을 텐데, 가족이 ‘이제 그만하면 좋겠다’며 만류한 적은 없나.
전혀 없다. 우리 아내는 이 운동을 시작할 때 함께 운동의 전략과 방향을 구상했다. 여러 날 둘이서 밤길을 산책하며 생각을 나누고 다듬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남편이 빌미 잡힐 소지가 있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 자녀 교육 선택에서 엄격한 자세를 취했다. 그런 아내의 격려와 힘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다. 아이들도 아빠가 하는 일에 굉장히 자부심을 갖고 있고, 자기들도 나름 긴장하면서 살아왔다. 우리 단체가 사교육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니까 우리 아이들이 원하면 허용해야 하겠으나, 아이들은 교과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고3 때 ‘인강’을 들었으니 우리 아이들이 사교육 무풍지대를 산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아이들은 아빠가 하는 운동에 대한 동의가 잘 되어 있다. 지금은 고교를 졸업한 첫째가 중학생이던 사춘기 때, 《아깝다 학원비!》 소책자를 친구들한테 나눠주려고 여러 권 가방에 넣어갔다. 깜짝 놀랐다. 부모의 신념이나 하는 일의 가치를 공감한다는 뜻이니 얼마나 반갑고 감사하던지…. 학교 마치고 돌아왔을 때 몇 권이나 나눠 줬냐 물어보았다. 많이 못 나누어 주고 절친들에게만 전했다고 대답했다. 이유를 들어 보니, 학원 다니는 애들보다 자기 성적이 낮아서 못 줬다고 하더라. 그 얘기 듣는데 마음이 짠하면서도 얼마나 기특하던지, 그것으로 나는 충분했다. 그런데 뒤늦게 고3 때 공부를 시작해서 성적이 꽤 올라서였는지, 이제는 친구들한테도 소책자를 나눠줄 수 있게 됐다며 웃었다. 그렇게 아이들도 아빠와 함께 가치를 함께 붙잡는 모습이 감사했다. 지금까지 사교육걱정으로 우리 가족 모두 손해 본 것 없다.

― 그간 여러 어려움이나 힘겨움을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이겨왔나.
역시 가장 큰 힘은 성경 읽기와 기도에서 나온다. 거기에 큰 위로가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이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당신 뜻이라는 확신을 주셨기 때문이다. 꽤 긴 이야기지만 간단히 얘기하자면, 과거에 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제게 주신 사명이라면 저에게 분명한 약속과 그 근거를 보여 달라’고 했을 때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약속을 보여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나는 떠나온 길을 후회한 적이 없다. 약속을 붙들고 살아가는 인생이 복된 삶이다. 물론 ‘복된(blessed) 삶’이 행복한(happy) 삶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복된 삶을 추구하다가 행복이 찾아오면 좋고 그렇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제자 아닌가. 예수와 같이 십자가를 지는 삶이니까 어려움과 부담은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싶다. 사교육걱정에 대한 왜곡 보도나 공격 앞에서 스스로의 흠결을 돌아보는 작업은 해야 하지만, 비판과 공격, 시련은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기 때문에 겪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앞서 사교육걱정의 직원이 32명이라고 했는데, 재정적 어려움은 없나.
우리는 정부 지원금을 단 한 푼도 받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랬다. 우리를 비판하는 그룹들은 우리더러 정부 관변단체라고 모함도 하는데, 16-17억 정도 되는 한 해 예산은 전적으로 회원들의 후원금 등으로 충당한다. 그런데도 별 어려움은 없다. 해마다 연말이면 다음해 사업계획 대비 예산이 늘 부족한데, 그래서 후원자들에게 후원 요청 서신을 띄운다. 우리 운동에 관심을 갖고 뉴스레터를 받아보는 일반 시민들이 6만 명 정도인데, 그분들에게도 내년 사업계획을 제안서 형태로 정리해서 후원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낸다. 그렇게 사업비 후원을 요청하면 모두 채워졌다. 정말 신비로운 일이다. 또 우리 단체 회원들의 충성도가 매우 높은 편인데, 회원 1인당 월 후원금 평균액이 2만5천 원이다. 10만 원 넘게 하시는 분도 160여 명이나 된다. 이 정도면 시민운동에서 후원액이 높은 편에 속한다. 그렇게 많은 액수를 후원하면서도 미안하다고들 얘기하신다. ‘사교육걱정’이 붙들고 씨름하는 과제가 절박하고 거대한 데 비해 자기가 하는 후원이나 참여는 너무 약소하다면서. 우리가 해마다 그렇게 과제를 풀어온 결과를 보면서 회원들이 우리를 전적으로 신뢰해주었다. 그런 식으로 후원이 채워져 왔다.

내 생각으론, 시민들은 어떤 단체가 힘들고 딱해 보여서 후원하지는 않는다. 후원도 하나의 투자, 즉 가치에 대한 투자다. 일반적으로 기업에 대한 투자는 ‘저 회사 주식을 사면 매력적인 상품을 출시해서 최종적으로 나에게 수익을 얼마나 돌려줄지’를 계산해서 하는 거다. 시민운동에 대한 투자는 금전적 이익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와 (자기가 지지하는) 가치가 실현되는 것으로 돌아온다. 회원들이 그런 마음으로 투자한 거니까 나로서는 늘 두려운 마음이 있다. 변화를 이끌어내고 그 결실을 일구어야 한다는 부담이 왜 없겠나. 그렇게 변화한 근거를 갖고 시민들 앞에 서야 더 많은 참여를 이끌어내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변화의 성과가 없는데 누가 투자하겠는가. 그게 참 어렵다. 그래서 늘 연말연시가 되면 우리가 영역별로 계획한 행사나 프로그램, 캠페인 등을 얼마나 완벽하게 돌렸는지 평가하고, 어떤 변화가 나왔는지 양적으로 체크한다. 가시적인 변화가 있는 경우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변화가 없을 땐 다른 프로그램을 생각해야 하는데, 이때 대표들을 포함해 상근자들 전체가 늘 피로감과 자기 한계에 따른 마음 고생이 적지 않다. 그래도 우리가 감당해야 할 운명이다.

후원금이 모자라서 일을 못한 적은 없다. 돈은 필요한 일에는 늘 찾아온다. 돈이 안 모이면 그것은 필요한 일이 아니든가, 그 일을 하는 나의 자세에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꼭 필요한 일인데 돈이 부족해서 결국 못하고 말았다는 선례를 나는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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